< 제 424화. >
사우디 왕세자의 성명문 발표 이후, 우후죽순 다른 OPEC의 국가들 역시 증산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러시아가 코너에 몰렸음이었다.
“제기랄··· 도대체 미국이 뭐라고 꼬셨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푸틴이었다.
그러나 그는 움직여야 했다.
망할 SKY때문에 중국이 비협조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음을 푸틴 역시 알고 있었다.
러시아는 원유를 팔아먹지 못하면 안 그래도 파탄난 경제가 더욱 파탄나게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경제 전문가들 역시, 러시아의 인민들 역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재고가 남아 돈다는 인식을 갖지 않도록 서둘러 움직여야 할 때였다.
“이란과 인도정부에 연락 넣어, 어떻게든 계약을 가져 와!”
“예, 각하!”
“군부 새끼들, 언제 우크라이나 가져오겠다는거야? 하루종일 회의만 할 거야?”
“3일 이내로 준비가 끝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들어가는 무슨 3개월이나 준비를 해!”
“죄, 죄송합니다.”
“듣기 싫어!”
보좌관이 푹 고개를 숙였다.
최근 푸틴의 성격이 더욱 괴팍해졌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실제로 점점 손을 들어 올리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원래는 왕좌에 고고하게 앉아있는 한마리 용 같았던 사람이 이제는 포악하기 그지 없는 뱀이 된 것만 같았다.
“이란의 로메이니에게 연락해, 아무래도 록펠러가 이란의 대통령을 만난 일이 찜찜하니까.”
“예, 각하.”
“정보총국장.”
“예! 말씀하십시오.”
“CIA가 미국에서 뭘 꾸미는지 캐봐, 아무래도 곧 뭔가 있을 것 같으니까. 이란이 조용한게 자꾸만 신경쓰이는 군.”
“비핵화 선언을 하며 미국과 친교를 다질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망할 비핵화는 우리도 바라던 거니까 어쩔 수 없지.”
푸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용한게 아무래도 너무 신경쓰이는 군··· 폭풍전야. 그래 폭풍전야 같아.”
“우려하시는 일 없도록, 속히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어서!”
“예!”
***
같은시각 이란의 테헤란.
눈만 나오게 히잡을 두르고 있던 여인이 고급진 호텔방에 들어와 히잡을 풀자 감춰져 있던 그녀의 미모가 세상에 드러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방에는 그녀의 미모에 감탄을 해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똑똑. 똑똑. 똑똑똑.
특이한 노크 방식.
마치 정해진 암호같은 그 노크에 픽 웃음을 흘린 여인이 조심스럽게 방 문을 열어주었다.
“웃차~”
김장원이 문이 열리자마자 여인을 번쩍 안아든다.
“아앗, 문 닫고! 문 닫고!”
독거미가 답지 않게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김장원 사장을 뜯어내려 했다.
“우리 마누라 다녀온 일은 잘 했어?”
“잘 했지, 누구 마누란데.”
“워따 그려? 그라믄 내일부터 이란이 겁나게 시끄럽겠구마?”
“응, 늙다리 종교쟁이들 하여간 어딜 가도 더러운건 정말이지.”
독거미가 잔뜩 혐오스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여그서는 지가 왕이나 다름 없는디 깨끗할 수 있겄어? 워찌보면 뭐 당연한 것이지.”
“후아, 이제 이란도 끝났으니까 한국 넘어가면 되려나?”
“잉 그래야제? 우리도 식도 올리고 그래야제?”
독거미 김장원의 양 볼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양손으로 누르고는 말했다.
“으이구, 하여간 그놈에 결혼 생각밖에 없지?”
“흐흐, 콱 도장을 찍어부러야 우리 마누라가 도망을 못 가제? 확 입술도장도 막 찍어부릴까?”
김장원이 육탄전을 걸어오기 시작하자 독거미는 못내 못이기는 척 슬쩍 받아주려는 찰나.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따 염병 허네.”
탁, 탁.
“비켜봐, 비켜봐, 회장님.”
“쯧, 받아야제 회장님 전화는.”
***
가족들과의 단란한 저녁식사.
이런 소소한 것들이 이번삶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언제나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휑하고 퀘퀘한 먼지만 나를 반길 뿐이었다.
가끔 쉬는 날이면 부족한 잠을 자고, 끓인 라면에 마트에서 사온 김치를 먹으며 그저 주야장천 역사, 다큐멘터리 채널등을 시청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 삶은, 일이 끝나고 와도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르겠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발코니에 나와 짧은 시가 한대를 무는 것, 이것이 참 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한지, 별 하나 없는 서울의 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내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뭐가 좋다고 실실 웃고 있어?”
생견 발코니 쪽으로는 발길을 데지 않으시는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나도 모르게 시가를 스륵 숨기려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선수를 치신다.
“됐다. 그냥 태우거라.”
“아.”
“네 놈도 다 컸으니 이 할애비가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잖으냐?”
“예.”
슬쩍 눈치를 보며 시가를 입으로 가져가는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답지 않게 눈치를 보기는··· 쯧, 유교 늙은이처럼 예를 중시하지 않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재차 말씀하시니 나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옆 자리에 앉으시며 스파클링 와인을 툭, 내려 놓으시더니 얼음잔 하나를 내 앞에 놓고는 와인을 따라주신다.
“오, 오늘은 독주가 아니네요?”
“끌끌, 나도 늙었어 욘석아.”
“에이, 지금도 위스키 수십병은 거뜬하시면서.”
“미리미리 관리 해야지, 슬기로운 은퇴 생활을 위해서 말이다.”
“오, 진짜 은퇴하실 생각은 있으신가 보네요?”
“그래, 이제 바쁜거는 제발 네 놈 혼자했으면 싶구나, 천사같은 내 새끼들과 그냥 하루하루 북치고 장구치고, 여느 노인네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구나.”
그렇구나.
내게 가족이란 소중하고 날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가 생긴 것 처럼.
전 삶. 가족은 전혀 없던 할아버지에게도 가족이 생긴 것이었다.
여지껏 ‘은퇴’를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크게 와닿는 느낌이었다.
“예, 은퇴 하셔야죠.”
“오냐, 편히 살게 가만 좀 두거라.”
“거의 다 됐습니다 할아버지. 조금만 참으셔요.”
“쯧쯧, 네 놈도 대단하구나 벌써 다섯째라니.”
저번 미국 일정에서 루시는 입덪을 하더니, 이제는 어느새 배가 볼록 튀어나와 있는 임신 중기에 접어들어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도 쌍둥이라고 하더라고요.”
“휘유, 11명 채워서 축구단이라도 만들 셈이냐?”
“크큭, 루시가 너무 고생이지 않을까요?”
“북적북적하니 나야 좋다만··· 훗날도 생각해야지.”
“훗날이요?”
“그래 이놈아, SKY는 결국 하나가 아니더냐.”
“하하하하하하.”
웃음이 튀어 나왔다.
벌써부터 나의 은퇴를 걱정해주시는 할아버지였다.
“웃기는 이놈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문제 없을 테니까요.”
“문제가 없다?”
“예, 문제 없습니다.”
“어째서?”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고는 말했다.
“제가 만드는 세상은 기득권이 득세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노력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가진바 신분을 탈바꿈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거든요.”
“그런 세상이 올거라고 생각 하더냐? 자본주의 세상에?”
“자본주의 자체가 나쁘다기 보다는, 그 생리를 악용하는 기득권들이 나쁜 거죠, 아닙니까?”
“제 놈들이 힘들게 일군 것을 남들에게 주고 싶은 놈들은 세상 천지에 없는 법이다.”
“그렇죠, 어쩔땐 내것이 아니라도 남의 것이 되는건 보기 싫은 경우가 있으니까요.”
“헌데, 너는 그리 하겠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희뿌연 연기를 서울 하늘에 흩뿌렸다.
“SKY는 전문경영인이 경영하게 될 겁니다.”
“아아, 그래도 결국은 지분이 남는구나.”
“지분은 공평하게 나눠 줘야죠.”
“그래, 그런 식으로 시작하다 종래에는 다시 제 주인이 나타나는 법이란다. 피튀기는 혈전이 펼쳐질지도 모르지.”
“루시와 제가 열심히 교육해야겠네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
“끌끌, 바로 네 자식들은 어떨지 모르지, 어쩌면 손주들까지는 잘 따를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그 다음은?”
픽 웃음을 흘렸다.
“저 떠나면 그만 아닌가요?”
“크크큭, 우문현답이로고.”
할아버지가 즐거우신듯 와인을 홀짝이신다.
“그거 나도 좀 줘보거라.”
할아버지가 시가를 찾으신다.
적절한 습도가 유지되야 하는 시가이기에 바깥에서 보관하는 놈은 없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림자같은 철웅이 할아버지에게 고급 시가를 하나 건넨다.
“냄새가 참 좋구나.”
“예, 비싼놈이거든요.”
“아이티에서 만든다고?”
“예, 쿠바에서 노하우좀 훔쳐 왔습니다. 요즘은 아이티 시가도 알아줘요.”
“SKY LINE은 정말 유통하지 않는게 없구나.”
“그래도 마약은 유통하지 않습니다.”
“끌끌, 당연한 소리를.”
뻑, 뻑.
시가를 몇 모금 태우신 할아버지가 불이 붙었나 확인을 하고는 내게 물었다.
“나 다음으로는 대통령이 없을 수 있다라···”
아까전 차에서 했던 말을 곱씹으시는 모양.
날 빤히 바라보는 할아버지.
두 눈에서 어떤 열망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늙은이 욕심일까?”
“글쎄요.”
“우진이 네가 한 말···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어지럽히는구나.”
“제가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언제고 한번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할아버지.”
“그래··· 틀림없이 싹수가 노오란 있는 놈들을 멸하겠노라 그리 말했었지.”
“기득권이란게, 없애면 또 생기고 없애면 또 생기고하는, 그런 것이더라고요.”
“그렇지, 안타깝게도 그런게 인간의 생리지.”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모든 기득권들을 폄하 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이상함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외국이라고 다르더냐 하면 사실 그건 또 아니니까.
“그저 목표한 바가 있기에 밀고 나갈 뿐입니다.”
“그것이··· 새 나라를 세우는 일이더냐.”
“예, 적어도 제가 세울 새로운 나라에서는 기득권이 없길 바라거든요.”
“그것도 고작 한 시대가 전부일 뿐일 것이다.”
“예, 아마도 100년을 유지하면 다행인 그런 일이겠죠?”
“익히 알고 있구나.”
“그러니 그런 일이 100년을 넘어 1000년이 가도록 준비를 단단히 해 놔야죠, 제 마음대로 제단할 수 있는 나라를 세워서요.”
픽 웃는 할아버지.
“칭송받는 대통령에서 쌍욕을 먹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물러난 뒤의 일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러시아따위는 걱정거리도 아니었어, 끌끌··· 네 놈이 세계정복을 부르짖을 때, 그저 어린아이의 치기라고 생각했던 내가 다 부끄럽구나··· 진정 하나의 목표를 우둑커니 걷는 그런 놈이었는데.”
“이제 아셨으니 됐네요.”
“그래서, 네 놈이 세울 나라의 이름은 무엇이냐.”
난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하늘 천자를 써서, 천국이요.”
“크하하하하하하.”
할아버지가 만족스러우신지 명동 하늘이 떠나가라 크게 웃으신다.
“천국이라, 천국. 하하하하 예수쟁이들이 입에 거품이라도 물겠구나.”
“이슬람도 좋아하진 않을 것 같네요.”
“크크큭,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네 놈의 천국, 어디 한 번 기대해보마.”
“예.”
< 제 42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