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423화 (423/458)

< 제 423화. >

사우디의 왕세자 무하마드 압둘이 성명문을 발표했다.

-우리 사우디는 평화를 저해하는 러시아 연방의 요청을 거부하며 기존의 일일 원유 생산량을 최대 300만배럴 이상 증가시킬 계획임을 밝힙니다.

쾅.

TV를 통해 그것을 보고 있던 푸틴이 신경질적으로 테이브를 내려쳤다.

“OPEC이 미친거야? 당장 눈 앞에 이득이 얼마인데 그걸 버려? 원유는 뽑으면 계속 나온데? 남아 도냐고!”

“지, 진정하십시오 각하.”

“진정?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이렇게 되면 우리 연방이 외교적으로 고립을 당하는거야!”

“우크라이나를 빨리 처리하고 가능한 평화적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크라이나놈들이 버틸거라고, 미친듯이 버틸거라고.”

“으음.”

“제기랄.”

푸틴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사우디의 원유 증산 소식에 OPEC의 여러국가들이 감산이 아닌 증산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우디처럼 가시적인 증산은 아니었다.

대부분 20만 배럴 수준의 무늬만 증산이었으나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미국의 눈치를 보는 행보가 분명했다.

“도대체 왜 저런 미친짓거리를 하는거야? 정보총국장!”

푸틴의 재촉에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그.

그 역시 정확히 사우디의 왕세자와 미국의 대통령 록펠러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각하.”

“죄송! 죄송! 죄송! 내가 그딴말이나 듣자고 네 놈을 그 자리에 앉혀놨어?”

“죄송합니다.”

어지간해서는 군 시절 습관이 나오지 않는 푸틴이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정보총국장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차버렸다.

“크읍.”

정보총국장은 이를 악물어 자리에 버텼다. 여기서 넘어지거나 무릎을 꿇게 된다면 더 모진 결과가 기다린다는 걸 익히 알기 때문이었다.

“네가 나랑 몇년이 됐지?”

“4년이 됐습니다. 각하.”

“이제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된거야?”

“각하! 그 누구보다, 우리 연방에서 그 누구보다 이곳 정보총국의 생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네놈이 그랬지. 그 총기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지 의심스럽군.”

이를 악 문 정보총국장이 푸틴을 바라본다.

“감히 누구도 이 자리를 넘 볼순 없습니다! 각하께 충성을 다 할 자리입니다.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다른 놈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충성심을 과시하는 정보총국장.

“후우, 그러면 잘 해야 할 거 아냐?”

“이 세상 그 누구도 미국 대통령의 비공식 일정에 도청을 심어 둘 순 없습니다.”

“쯧···”

푸틴도 이해하기에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다시 소파에 몸을 파 묻었다. 보드카를 꿀꺽 꿀꺽 많이도 삼킨 푸틴이 말했다.

“미국 내, 여론이 안 좋다지?”

“예, 각하. 정보부에서 제법 일을 잘 하고 있습니다.”

“더 부추겨, 활활 타오르게.”

“예, 명심하겠습니다.”

***

내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마중나온것은 할아버지셨다.

“엥? 할아버지가 나오셨네요?”

“바쁘니까 타거라.”

“아니 뭐, 오랜 출장으로 고생한 손주 안아주신다거나?”

“흰소리 그만하고, 바빠!”

“아니 그러니까 바쁘신 분이 뭐하러 나오셨어요? 루시랑 내 자식새끼들도 안 나왔는데.”

“네 놈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니까 그렇지!”

틀린말은 없기에 나는 입술을 삐쭉이며 할아버지 차량에 올랐다. 대통령 차량이기에 당연히 경호 수준은 최고 수준이었다.

물론 나의 경호수준 역시 대통령 못지 않은 최고단계의 경호이기에 할아버지 덕분에 공항 사람들에게 나와 할아버지는 쏠리는 이몫을 감당해야 했다.

“어우, 내일 기사 뜨겠네. 천혁수 대통령, 손주 마중에 경호원 대동, 뭐 이런식으로.”

“이 놈아, 이 한국땅에서 우리한테 그럴 간큰 기자 없다.”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반 농담으로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였지만 실제로 SKY나 현 대통령인 할아버지에게 악의적인 기사나 뉴스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압도적인 지지율도 지지율이지만, 눈에 보이는 대한민국 자체가 하루가 아깝다는 듯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게 보이기 때문.

IMF의 아픔은 어디갔냐는 듯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이제 일본을 지배하고, 중국에게 상국 대접을 받고 있었다.

역사상 등장하지 못한 대한민국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상황에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손가락질 하는 인물이 존재 할 순 없었다.

촤락.

신문하나를 내게 보여주는 할아버지.

“네 놈이 아프간에서 땅이나 파고 있을 때, 미국과 한국은 난리가 났다.”

할아버지가 내민 신문은, 내가 아프간에 가기전 접했던 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장작이 더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록펠러 대통령! SKY의 꼭두각시?’

자극적인 헤드라인이었다.

“이야, 요즘 언론인들 모가지 내놓고 일하네요?”

“사돈이 걱정이 많으시겠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조만간 싹 들어갈테니까.”

“벌써 한달째 이런 여론이 돌고 있어, 그나마 최근에는 사우디의 원유 증산과 우크라이나, 러시아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니 관심이 분산되지만.”

“예, 알고 있습니다. 여론 반전시킬려고 SKY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으니 걱정하실 일 없습니다.”

“쯧, 알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겨우 언론이 시끄럽게 떠들고 여론이 조금 나빠졌다고 나를 공항까지 마중나오셨을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을 푸틴에겐 미안하지만 이런 여론전 따위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러시아의 언론은 철저하게 통제받고 있기 때문에 여론전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한국인들에게 이정도 쓰레기 기사는 익숙하디 익숙한 그런 것들이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짬뽕되면서 심하게 타락한 언론들이 쏟아지듯 나오는 세상이었다. 더 자극적인 뉴스, 더 많은 판매량, 더 많은 조회수.

그런 것들을 위해 기레기들이 양산되는 세상에서 이런 쓰레기 기사들 따위야 신경 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왜 마중 나오셨는데요?”

“본래의 계획과 다르게 조금 급하게 가져가는 것 같아서 노파심이 생기는구나.”

“국민들도 반발이 없잖아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래, 북한이 완벽한 대한민국의 자치령이 되었고, 약속대로 김은정이가 북한 행정을 이끌고 있다. 북한군들은 우리 군이 흡수해서 빠르게 조직개편을 시작했고.”

“예, 그런데요?”

“아직 북한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흑룡강성을 받아 왔어 이놈아.”

“거긴 관리가 힘드신가 보죠?”

할아버지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쉽지가 않구나.”

“그쪽 사람들 여론은 어떤데요? 계속 중국인 하고 싶데요, 아니면 이제 한국인 하고 싶데요?”

“물을 걸 물어야지, 중국이 어디 한족말고는 사람취급이나 하더냐? 한족이란 족속들은 대대손손 자신들이 약할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지만, 제 놈들이 강할때는 악랄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지.”

결국 흑룡강성 일대를 주름잡던 조선족들은 당연히 대한민국에게 편입되는게 자신들이 더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SKY공장들도 돌아가고 있어요 바쁘게, 조선족들이 굶어죽을 일은 없다는 얘깁니다.”

“국가 예산이 천문학적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소리다 이놈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빠르게 정상화 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세금이 투입되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

“좀 더 뜯어 내세요 그럼.”

“말은 쉽구나.”

“할아버지가 민주당 출신인 건 알겠는데, 보편적 복지가 말이 되나요? 차별점을 줘야죠.”

“차별점?”

“복지는 네 놈들이 다 똑같이 받아가니, 세금은 있는 놈들이 훨씬 더 많이 내자로 가시죠, 물론 없는 사람들도 좀 뜯어내고.”

“후우··· 벌써 욕먹을 것 같은 기분이구나.”

“별 수 있습니까? 없으면 긁어와야지, 생각보다 국민들 반발 크지 않을겁니다. 이미 우리나라가 일본의 평균 임금을 뛰어넘은지 오래에요.”

“쯧, 네 놈이라면 또 획기적인 돈 주머니를 가져올지 알았더니 재정부랑 똑같은 소리나 하고 있구나.”

“아니 제가 무슨 신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의심의 눈초리로 날 지긋이 바라보신다.

“정말 수가 없는게야?”

“수는 있어도, 뜯어낼 건 뜯어내야죠 할아버지, 언제까지 이미지만 좋게 가져가실거에요? 힘을 가지셨으면 그 힘을 쓰셔야죠.”

“에휴, 말년에 얼마나 더 오래살라고 쌍욕을 먹게 하느냐?”

엄살이셨다.

쌍욕 먹는게 싫다는 식으로 말씀하시지만, 두 눈에는 오랜만에 재미있겠다는 흥미가 가득한 할아버지셨다.

그저 대통령 답게, 조금더 국민들에게 나은 방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해서 내게 오셨을 뿐이었던 것이다.

“진짜 대통령 다 되셨네.”

“이 놈아, 이짓거리도 벌써 8년이 다 됐어.”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긴, 2002년부터 지금까지.

자리에 오래 앉아계신 할아버지셨다.

“네 놈이 약속한 10년 이제 2년 남았다. 알고 있더냐?”

“예, 알고 있습니다.”

“다음타자 얼른 찾아 놓거라, 이제 나는 그만 쉬고 싶으니까.”

“예, 그래야죠.”

할아버지가 날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틀린 내 입매가 신경쓰이시는 모양이다.

“이 놈이 또 무슨 꿍꿍이를···”

“비밀입니다.”

“썩을 놈.”

스르륵.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새 차량을 청와대에 도착해 있었다.

“엥? 왜 청와대로 와요?”

“이 놈아, 할애비 바빠. 여기서부터는 알아서 가거라.”

“와.”

할아버지가 열린 문으로 몸을 반쯤 빼다가 다시 차량 안으로 들어오시더니 묻는다.

“그런데 정말 방법은 없는게야?”

“있어도 안 알려 드립니다.”

“있구만, 돈 나올 구멍이 있어.”

“없습니다.”

“돈 귀신이 아주 네 놈에게 단단히 붙어있구나.”

“마른 오징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옵니다 할아버지, 이번만큼은 국민들에게 양보하라고 하세요.”

“쯧쯧···”

“앞으로 더 좋은 복지를 받으면서 살아갈 국민들입니다. 반발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할아버지는 별 수 없다는 듯 결국 차량 밖으로 나가셨다.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 나가려는데 다시 할아버지가 엉덩이를 밀고 차량으로 올라오신다.

“아, 또 왜요?”

“이 썩을놈이 요즘 머리가 아주 굵어졌어!”

“아니 바쁘시다면서요.”

“갑자기 손주놈들 얼굴이 아른거려서 안 되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산댁이 차려주는 저녁이나 먹고 오련다.”

슥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여전히 화가나시면 용도 씹어먹을 대호의 기운을 가진 할아버지지만 지금은 한 없이 작은 여느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 모습이 싫지는 않기에 나는 픽 웃으며 엉덩이를 움직여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우진아.”

차량이 다시 움직이고 한참이 지나고서야, 나를 조심스럽게 부르는 할아버지.

“예, 할아버지.”

장난기 하나 없는 진지한 부름에 나 역시 진지하게 대답했다.

“지금 네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국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일이 틀림없이 국익에 보탬이 되는 일이더냐?”

“예, 장담합니다. 받는것에 너무 익숙해지면 안 되요.”

“네 놈에게 이득 되는 길은 아니고?”

역시 눈치가 아주 귀신이시다.

“둘 다입니다.”

“둘 다라···”

다시 한참을 말이 없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굳이 대한민국 영토를 계속 확장시키는 이유가 무엇이냐? 네가 바라는게 무엇이야?”

“아시잖아요.”

“세계정복인지 지랄인지, 그걸 기어코 하겠다는 뜻이더냐?”

“이제 거의 다 왔잖습니까? 러시아만 거꾸러 트리면 게임은 끝난 것 같은데요.”

“후후··· 이런 미친놈이 내 손주구나, 내 손주야.”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할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고개를 주억거린 할아버지가 스윽 날 바라보신다.

“나 다음으로 앉힐 놈이 누군지 알겠구나.”

“저라고 생각하시나봐요?”

“아니더냐?”

난 픽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되실 겁니다.”

“뭐?”

“더 이상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 없을 거란 얘깁니다.”

“그게 무슨?”

나는 그저 입꼬리만 스윽 들어올릴 뿐이었다.

< 제 42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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