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18화. >
푸틴이 헤벌쭉 입꼬리를 들어올리고는 정보총국장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우크라이나에서 우리 몰래 가스를 빼돌리고 있었다?”
“예. 다른 국가까지 계산해서 흘려보낸 가스의 총량이 이상하게 매일 줄어든다 싶었는데, 조사를 해 보니 우크라이나에서 조금씩 빼돌리고 있었습니다.”
“크크크큭, 하하하하하.”
푸틴이 해맑게 웃는다.
“아주 좋은 명분이 생겼구나.”
“예?”
정보총국장은 푸틴의 의중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야, 우크라이나에게 강하게 경고를 하면서 벨브, 잠궈.”
정보총국장이 눈을 부릅떴다.
“각하!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배관을 잠그면 당장 서유럽쪽에서 에너지 난이 심각해질겁니다.”
푸틴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그러니까, 잠그라고.”
“······”
고개를 돌려 보좌관을 바라본 푸틴.
“OPEC에 연락해서, 거기도 밸브좀 잠그라고 그래, 러시아가 먼저 보여주겠다고 얘기하고.”
“예, 각하.”
“기자들 불러,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서 쇼좀 해야겠어.”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푸틴.
기분좋은 얼굴을 하고는 보드카를 입 안에서 굴리며 알콜 특유의 씁쓸한 맛을 즐기며 히죽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우크라이나 놈들이 이쁜짓을 할 때가 있네?”
“설마, 알고 계셨던 겁니까?”
정보총국장의 질문에 푸틴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 몰랐지. 어떤 명분으로 벨브를 잠가야 되나 싶었는데 알아서 명분을 만들어주니 이리 고마울때가.”
“으음.”
“생산량 조절하고, 우크라이나에게 강력한 경고까지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둬, 그리고 우리 연방의 영향력이 닿는 모든 유럽 국가들의 정부에도 강력하게 경고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예, 각하.”
“록펠러랑 천우진이 지금 이란으로 갔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프스스, 바람빠지는 웃음을 뱉어낸 푸틴.
“그치들도 황당하겠구만, 우리 연방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푸틴은 당황할 천우진의 얼굴을 생각하니 자꾸만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건, 그거고. 우크라이나가 빼돌린 가스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추정치로는 약 1억 8천만 유로입니다.”
“정확한건 모른다는 얘기네?”
“그렇습니다.”
“오케이, 금액 올려 18억 달러로 가지.”
순식간에 10배로 올려버리는 푸틴.
“그런···”
“그리고 추정치라는 단어 삭제하고, 최소치라고 적어서 서류 준비 해 놔. 기자들 앞에서 제대로 경고해줘야지.”
“예, 각하.”
“나가, 나가서 준비 해. 경제 전문가, 기업전문가라는 놈들 계속 닥달해, 돈은 내가 벌어올테니까 어떻게든 우리 연방의 산업구조를 바꾸라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푸틴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웃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들어 가장 기분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
이란측에서 마련해준 최고급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나와 장인어른은 TV에 집중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러시아의 푸틴이 기자들 앞에서 성명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우리 러시아 연방은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가스 배관에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서유럽의 종착지로 다다를수록 그 처음 흘려보낸 가스의 양이 부족했고, 이것은 설비의 노후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었습니다.
“과거형이군, 설비 노후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겠어.”
장인어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과거. 그러니까 전 삶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크라이나가 가스를 빼돌렸네요.”
“뭐?”
장인어른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바라본다.
“그게 무슨 말인가?”
“러시아에서는 주문량 만큼 가스를 흘려보냈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스가 계속 부족했겠죠, 그래서 추가로 흘려보냈을테고.”
“그러니까, 자네 말은 우크라이나가 중간에서 제 놈들이 주문한 양보다 더 많은 가스를 가져갔다?”
“예, 그럴겁니다.”
“허, 미친놈들이군. 그런 양아치짓을 해?”
나도 피식 웃어버렸다.
생각보다 유치한 짓거리이고 안 걸릴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우크라이나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크라이나 난리 나겠네요.”
“푸틴이 가만두지 않겠지.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가스가 모자랐던 것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이번 조사단이 진상조사를 한 결과,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많은 가스 배관에서 주문량보다 많은 가스가 뽑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쾅! 카메라가 있음에도 푸틴이 단상을 부술듯 내려치면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설비의 노후화로 가스가 샌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많은 가스를 가져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고, 피해 추정액의 최소치는 18억달러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가스를 가져간 주체는 우크라이나로 판명되었음을 밝힙니다.
“배짱도 좋군, 러시아 가스를 18억 달러나 훔쳐갔다고?”
본래라면 이 사건은 2006년도 후반쯤에 나타났을 사건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2년이 지난 지금 이게 터졌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지만 답은 없었다.
이것 역시나 나로 인한 나비효과가 아닐까 그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가만히 푸틴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와 협상 결렬은 물론, 우크라이나는 아직도 우리 연방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연방은 다른 유럽국가들로 향하는 가스배관 공사를 시작했고,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음을 밝힙니다.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았다.
“러시아의 새로운 배관들 얼마나 완성 되었어요?”
“전문가에 따르면 빠르면 6개월 이내에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다고 합니다.”
“6개월?”
“예, 회장님.”
고개를 돌려 장인어른을 바라보았다.
“장인어른 최근에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고 움직이고 있었죠?”
“그렇지.”
“그것도 큰 이유겠네요.”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가스를 훔쳤든 훔치지 않았든 그딴게 중요한게 아니라는 소리군.”
“예, 푸틴은 일단 우크라이나를 찍은 겁니다. 가스 벨브를 잠그기 위해서.”
“유럽이 한 바탕 난리가 나겠어.”
“그럴 것 같습니다.”
-··· 해서, 우리 연방은 현 가스배관을 신뢰할 수 없고,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타날 때 까지,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남은 채무와 훔쳐간 가스의 사용료를 지불 할 때까지 무기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가스를 통제하겠다 밝히는 바입니다.
장인어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이 좋아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가스를 통제하는 것이지 저것은 대놓고, ‘유럽 친구들아, 너네 가스 못줘. 우크라이나가 도둑질을 했데 글쎄?’하고 있는 것이었다.
“재밌는 술수를 부리네요.”
“그렇군.”
“아무래도, OPEC 전부를 이란으로 다시 불러야겠습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장인어른.
“푸틴이 그들을 만난게 신경쓰이나 보군.”
“러시아를 제재 하려면 일단 OPEC에서도 협력을 해줘야 할테니까요.”
“제재라··· 명분이 워낙 좋아서 흐음.”
“이참에 러시아는 완벽하게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도 모르죠.”
장인어른이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푸틴이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 생각하나?”
“푸틴이니까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국제사회의 눈치는 전혀 보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나가 아닙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죠, 러시아로서는 이참에 반드시 먹어버리고 싶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장인어른.
옛날 러시아 제국시절부터 우크라이나는 어떻게든 사수하려던 러시아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게 아주아주 중요한 전략 요충지임과 동시에, 최대 식량 생산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하자원 역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러시아가 탐 내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였다.
“덕분에 다른 국가들만 죽어나가겠군.”
장인어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의 정상들이 성명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값싼 러시아 가스에 취해있던 유럽국가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습니다.”
장인어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구름폰을 탁자위에 턱 하고 던져 놓는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미친듯이 몸을 떠는 장인어른의 구름폰.
“하하하, 이럴때만 미국형을 찾죠.”
내 농담에 장인어른이 피식 웃어버린다.
“당장 급한건 유럽 놈들 뿐이 아니야, 우리 미국도 난리겠군.”
“예, 아직 원유 얘기는 없지만 이 여파는 원유까지 미칠테니까요.”
장인어른이 날 보며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작업을 치기 시작할 겁니다. ‘가스 도둑’이라는 명분으로 벨브를 잠근 만큼, 다른 유럽 국가들은 아마도 러시아의 편에서 손을 들어주려 하겠죠.”
“그렇지.”
“그 틈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거나 어쩌면 정권 자체를 바꿔버릴지도 모릅니다.”
“우크라이나에 강제로 쿠데타를 일으킨다?”
“예, 아니면 직접적으로 들어갈수도 있죠, 방법이 여의치 않으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최대한 피해야 할텐데.”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푸틴 역시 그러고 싶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극단적인 선택 역시 가능하다는 얘기군.”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손을 들어주면 이제 푸틴은 말하겠죠.”
나와 장인어른은 마주본 상태로 동시에 입을 열었다.
“원유 수출 금지.”
“원유 수출 금지.”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푸틴이 OPEC과 만난 이유가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예, 그러니까 일단 장인어른께서는 OPEC와 좋게좋게 해결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일단 유럽 놈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당장은 우리도 대안이 없습니다. 그게 현실이죠.”
“그렇지··· 일단 가스가 문제인데.”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가스를 훔쳤는지를 밝히는게 최우선입니다. 푸틴이 훔쳤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아닐 수 있으니까요.”
“명분을 없애야 한다?”
“예, 유럽쪽에는 그 진상규명부터 철저하게 해달라는 식으로 러시아에 요청을 해야겠죠.”
“휘유··· 보통 일이 아니구만.”
장인어른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분쟁같이 보이지만, 알고보면 이것은 전 세계적인 분쟁과 같았다. 총탄없는 전쟁이라는 소리였다. 바로 ‘경제’에 관련된 전쟁.
“세상은 언제나 위기속에 기회가 있는 법이죠 장인어른.”
“기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집중할 때, 우리는 OPEC와 이란에 집중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는 것은 막아야 하는게 옳은 판단 같은데?”
“살을 주고 뼈를 취하시죠.”
“우크라이나가 고작 살인가?”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까 놓고, 유럽이 문제지 미국이 문제는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지.”
“최대한 도우려고 노력했지만 러시아의 강짜는 어쩔 수 없다로 가시죠.”
“흐음, 우리는 이득만 쏙쏙 취해가자?”
< 제 41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