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416화 (416/458)

< 제 416화. >

탁.

미국 대통령의 방탄 차량.

링컨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구나 싶었다.

“승차감이 좀 딱딱하네요.”

내 말에 장인어른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로켓포까지는 방어가 가능하다하니 타야지 않겠나?”

“하하하, 미국땅에서 어떤 미친놈이 대통령의 차량에 RPG-7을 날리겠습니까?”

어깨를 으쓱이는 장인어른.

“그나저나, 표정을 보니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이야?”

“공짜로 유라시아 횡단철도가 유럽까지 이어지게 생겼는데 당연하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장인어른.

“우리는 분명 이란에서 터키 국경까지만 지원해주기로 했네만.”

“아프간까지 포함해주셔야죠.”

“어쨌든, 터키부터 다시 유럽까지 가는길은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물론이죠.”

물끄러미 날 바라보던 장인어른.

“자네 꿍꿍이가 있구만.”

“어이쿠, 티가 낫습니까?”

잠시 생각을 하던 장인어른이 박수를 짝 치면서 말했다.

“올커니, 에너지가 부족할 서유럽국가들에게 돈을 뜯어 내시겠다?”

한쪽 눈을 찡긋 거리며 답했다.

“정답입니다.”

“하긴, 그치들이 몸이 닳았을테니 하하, SKY만 노가 나는군.”

“그러게요, 이거 푸틴한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할까봐요?”

“크큭, 푸틴이 뒷목잡을 거 생각하니 내가 다 기분이 좋군.”

장인어른의 말에 맞장구를 처주며 서로 쳐다보며 씨익 하고 입꼬리를 들어올리다 물었다.

“이란으로는 언제 가실 예정입니까?”

“대통령과는 얘기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최고지도자 때문에 조금 번거로운 모양이더군.”

“아직 반미감정이 줄어들지 않은 모양이네요.”

“그렇지, 대통령은 어떻게든 경제개혁을 일으키고 싶은 모양인데, 이슬람국을 세우겠다는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니 말이야.”

이란은 참 특이한 형태의 국가였다.

‘종교’라는 것에 진심이기도 했다.

“러시아를 견제하려면 입바른 소리를 좀 해줘야죠 뭐.”

“그렇겠지. 어쨌든 이란의 대통령도, 최고지도자도 슬슬 내부 경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으니 어떻게든 움직이려 하겠지, 러시아의 편에 서서 망조를 늦추느냐, 우리의 편에 서서 망조를 타파하느냐.”

고개를 주억거렸다.

장인어른의 말이 정확하다 할 수 있었다.

느리지만 천천히.

러시아는 조금씩 조금씩 체재불안에 잠식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러시아의 여인들, 혹은 러시아의 남정네들이 타국으로 떠나 일자리를 찾고, 외화를 벌어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러시아 사람들은 미국땅에서 쉽게 발을 붙이지 못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러시아’국적을 가진 사람을 쉽게 왕래 하도록 두고 보지 않는 다는 뜻.

그나마 유럽국가들이나 대한민국, 일본처럼 몇몇 국가에서는 스스럼 없이 받아주는 편이기에 그들은 그런 곳에서 3D업종에 많이 종사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특유의 불같은 성정이나 조금은 뒤 떨어진 규범의식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타국인들이 점점 늘어가기도 했다.

어쨌든 러시아인들은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속에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에 가실 때, 같이 가죠. 결국은 SKY도 이란쪽이랑 협의를 봐야 할 테니까요.”

장인어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야지, 그런 쪽으로는 SKY가 전문가니까. 우리 역시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고.”

“예.”

“빨라도 이틀은 걸릴테니, 잠시 쉬자고.”

“예, 장인어른.”

***

이틀을 얘기했지만 국제정세라는게 그렇게 쉽게 이렇게 저렇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장인어른의 이란 행은 결정되었다.

한국에는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는 시기.

약 10일만에 장인어른의 이란행이 결정되었다.

모두가 둘러 앉은 록펠러 저택의 식탁 앞.

“그래, 우진이랑 같이 간다고?”

데비 할아버지의 말에 장인어른이 고기를 한점 씹어 삼키고는 답했다.

“예, 아무래도 이란의 대통령과 최고지도자에게 철도와 함께 국경 개방, 거기에 가스관 설치등을 얘기하려면 전문가가 있어야겠지요.”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는 아니고?”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 하는 것이죠.”

“둘이 너무 붙어다니면 좋은 시선이 붙진 않을게다.”

데비 할아버지가 우려하시는 것.

그것은 아무리 내가 미국의 대통령의 사위라고 해도, 서로 연관된 사업을 너무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였다. 자칫, 권력에 빌붙고, 권력은 돈에 빌붙는 그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여론 면에서는 조심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래, 그걸 알면 됐다.”

사뭇 진지한 얘기를 하는데 태양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킹 할아부지.”

‘킹 할아버지’란 데비 할아버지의 애칭같은 것이었다. 어느새 데비 할아버지는 태양이 별이, 루나에게 ‘킹 할아버지’가 되었고, 우리 할아버지는 ‘왕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어이구, 우리 똥강아지. 할애비 불렀어?”

“밥 언제 다 먹어?”

“왜?”

“할아버지가 체스 알려준다고 했잖아! 오늘은 내가 꼭 별이한테 이길거라고!”

“흥, 넌 나한테 안 돼.”

“오냐오냐, 내가 얼른 다 먹고 알려주마.”

언제 진지한 얘기를 나눴냐는 듯, 식탁에는 어느새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데비 할아버지가 눈빛으로 나와 장인어른에게 말한다.

‘둘이서 알아서 잘 하겠지, 내가 과한 참견을 했구나.’

‘아닙니다. 옳은 말씀이셨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죠, 아버지.’

“읏차! 나는 먼저 일어나지.”

데비 할아버지가 먼저 일어나 태양이와 별이를 데리고 사라지고, 이유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루나는 어느새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루시, 먹는게 영. 왜 그래? 입맛이 없어?”

“그러게, 이상하네 오늘따라.”

알맞게 익은 미디움 레어 스테이크를 적당하게 썰어 루시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핑크솔트를 살짝 찍어서.

“치.”

이제 챙겨주냐는 듯 날 한번 쏘아보던 그녀가 입을 벌리다 스테이크 앞에서 인상을 찌푸린다.

“우웁.”

“어머!”

록산나 여사.

나의 장모님이 화들짝 놀라며 루시를 바라본다.

“설마 또?”

“예?”

장인어른, 나. 장모님이 루시를 빤히 바라보았다.

루시가 손가락을 들어 하나씩 접으며 날짜를 센다.

“어머,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루시.

장모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날 바라보았다.

“천 서방.”

잘 하지 않는 한국말로 말씀하셨다.

“예, 장모님.”

“넷째까지만 낳게··· 넷째까지만.”

“예···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모님의 걱정가득한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출산이란 것이 얼마나 여성을 힘들게 하는지 백퍼센트 공감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의 몸을 망가뜨리는 일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충분한 치료와 휴식, 운동과 같이 많은 관리를 받고 있는 루시지만, 그래도 때때로는 여느 엄마들처럼 앓는 소리를 내기도 하니까.

“하하하, 자네가 돈을 더 많이 벌어와야겠구만, 이번 이란에 가는 일 아주 제대로 해결해야겠어.”

장인어른은 장모님의 속도 모르고 그저 손자가 더 생긴다니 기분이 좋으신 모양.

장모님이 한번 장인어른을 째려보시고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루시와 루나를 데리고 사라지셨다.

“흐음.”

장인어른이 뻘쭘한지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켜신다.

“이제 제대로 먹어 볼까요?”

“그럴까?”

아직 식탁위에 잘 익은 스테이크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장인어른이 크게 한덩이를 퍼 가셨다. 부위를 보니 채끝살인 듯 싶었다.

나 역시 질 수 없으니 크게 한덩이를 퍼 왔다.

“살치살이군.”

“가장 비싸고 기름진 부위죠.”

우연일까?

장인어른이 가져간 고깃덩이의 모양이 꼭 이란을 닮아 있었다.

“꼭 덜떨어진 놈들이 사는 곳처럼 생겼군.”

장인어른이 나이프로 내가 가져온 스테이크 덩이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예, 러시아를 닮아 있네요.”

“다 먹어버리자고.”

“예, 장인어른.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 각국의 영토와 묘하게 닮은 스테이크들을 씹고, 또 씹었다.

***

러시아연방 대통령 관저.

“흥. 애가 탔나 보군.”

뉴스를 바라보며 독주를 삼키고 있던 푸틴의 혼잣말에 러시아 정보총국장이 그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이번 록펠러 대통령의 일정에 SKY의 천우진 회장이 함께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에 SKY가 동행한다?”

“예, 각하.”

“으음.”

천우진이란 이름이 거론되자 푸틴이 팍 인상을 찌푸렸다. 록펠러가 이란에 방문한다는 것은 개의치 않던 그가 어째서인지 천우진의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표정이 180도 바뀐 것.

“천우진이 같이 간다라···”

“마음에 걸리시는 게 있습니까?”

정보총국장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푸틴이 잠시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아직 로메이니에게 별 연락이 없었지?”

“예, 각하.”

“미국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거. 그건 틀림 없는 정보겠고?”

“여태까지 미국을 욕하던 로메이니입니다. 그것은 공공연한 사실일 뿐만 아니라 전 이란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죠, 이번 이란의 대통령의 당선에 유감을 표명할 정도로 친미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에겐 가차없는 사람입니다.”

“그래, 그게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지.”

크리스탈 잔은 딱딱 두들기던 푸틴이 꿀꺽꿀꺽 보드카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쯧, 어째서일까?”

“어떤것이 말입니까?”

“왜, 천우진이라는 그놈 이름만 나오면 이렇게 불안할까? 일을 망칠 것 같은 느낌이야.”

“별 일 없을겁니다. 각하.”

“후우, 이란이 원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유럽과 세계전역으로 퍼지려면 최소한 5년이라고 했었지?”

“예, 각하. 이란 자체적으로 개발은 한다면 최소 10년, 미국의 도움을 받아도 최소 5년입니다. 상용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푸틴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최악을 가정해도 5년동안은 우리가 유럽놈들에게 제대로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얘기군.”

정보총국장이 잠시 푸틴의 눈치를 보다 말했다.

“미국 대통령과 같은 비행기를 이용할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저쪽에서도 여론에 신경을 쓸 테니까요.”

“여론에 신경을쓴다?”

“SKY의 천우진 회장과 미국의 록펠러 대통령이 장인과 사위의 사이가 아닙니까?”

“아하, 록펠러가 사위 사업을 도와주는 그림처럼 보일 수 있다는 얘기군.”

“예, 정치 전문가들이나 경제 전문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일반인들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호오··· 그 부분도 재미있군.”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푸틴.

자신의 얘기를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정보총국장이 얼른 말을 보탠다.

“극단적입니다만, 천우진회장의 전용기를 요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각하.”

푸틴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3차대전이 일어나도 어색하지 않아.”

“연방을 위해서 각오하고 있습니다.”

“미친 소리 그만하자고, 그런 멍청한 대처는 우리 연방의 생명을 불태우는 일이니까.”

“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정보총국장.

푸틴은 지금 그가 고도의 아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쯧.”

푸틴이 혀를차자 정보총국장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미국과 이란이 붙을 거라고 확신하시는군요?”

“그래, SKY의 천우진. 그 놈은 확실하지 않은 것에 베팅하는 놈이 아니더라고.”

“으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다시 움직여야 겠구만··· 동유럽 국가들 정상 소집해. 우리 연방의 영향력을 공고하게 세운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꼭 참석시키도록. 현재 우리의 가스관은 그곳을 통해 유럽으로 흘러가는게 80퍼센트니까.”

“예, 각하.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던 그 여론, 그것도 조금 만져 봐. 우리가 잘하는 정보공작으로.”

정보총국장이 자리에서 벌떡 이러나며 외쳤다.

“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정보총국장의 뒷모습을 보지도 않은 푸틴이 신경질적으로 TV를 끄고는 술병을 들기 위에 손을 뻗는 찰나, 무심코 리모컨을 쳐다보았다.

“제기랄.”

리모컨에는 선명하게 SKY의 로고가 반짝이고 있었다.

“어쩐지 이번에도 영··· 재수가 없어. 재수가.”

< 제 41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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