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15화. >
귀빈대우를 받으며 백악관의 지하로 이동했다. 특수한 보안 시설을 지나자 넓다란 회의실이 등장했다.
그 회의실로 내가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 주며 나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바삐 걸음을 옮겨 상석에 앉아계시는 장인어른과 악수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는 미국의 대통령과 SKY의 회장으로서 만남이기에 장인어른도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추셨다.
대통령의 배려로 그의 곁에 앉은 나는 외무부와 재무부 장관들에게 브리핑을 들었다.
굳이 브리핑을 들을 필요도 없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어쨌든 그들 브리핑의 큰 틀은 이것이었다.
미 연방은 동맹국들의 어려움을 무시 할 수 없다.
OEPC와 함께 석유, 천연가스등을 러시아가 통제한다면 당장 유럽국가들은 심각한 에너지난에 시달리게 된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공급하는 천연가스로는 한계가 있으니, 러시아가 잠가라 밸브를 시작하면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미국을 신뢰하지 못한 동맹국들이 러시아 제재에 함께 힘을 쓰지 않을 수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이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해서, 혹시 SKY에게는 다른 해결책이 있습니까?”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란과의 사이 개선이 필요하겠습니다. 이란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전 세계 2위니까요.”
장인어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란과 따로 협의를 해 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들이 비핵화에 동의하고 핵사찰에 동의만 한다면 관계 개선이야 나쁠 것도 없지.”
“전임 대통령의 정부에서 이란과 사이가 더 나빠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우··· 유대계 자본 때문이겠지.”
장인어른의 입에서 가감없는 말이 튀어나오자, 오히려 미 정부 관계자들의 헬쓱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나 쉽게 거론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유대계 자본.
항간에는 이제는 미국땅에서 사라진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이 10만조달러에 달한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였다.
소문의 진실이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순 없겠지만, 대충 그런 소문이 낫다는 것만 하더라도 유대계 자본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방증과도 같았다.
어쨌든 이스라엘을 필두로한 유대계 자본.
그것때문에 굳이 이유가 불명확한 ‘이란’이란 국가를 악의 축으로 묘사했던 미국이었다.
“어쨌든 다시 관계 개선에 나설 생각이 있으시다면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장인어른.
외무부와 재무부, 국무부의 장차관들 역시도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굳이 러시아가 먼저 움직이는 판떼기를 깔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이란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를 시작한다면 최소한 20년간 석유가격과 천연가스 문제에서 전 세계가 자유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OPEC의 파워가 줄어들면 줄어 들 수록, 전 세계의 에너지가격은 크게 안정 될 테니까요.”
“이란의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관계와, 자신들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많이 뽑고, 많이 팔아먹어야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일간 석유 생산량은 대충 천만배럴을 웃돌았다. 그런데 일간 석유 소비량이 이천만배럴에 가깝다. 최대 생산국가지만, 최대 수입국가이기도 하다는 뜻.
“이란과의 관계개선에 들어가면서 몇가지 조건을 걸고 시추하는 회사들을 투입시킨다면 손해는 아닐 겁니다.”
“시추 회사들을 투입해라?”
“현재도 미국의 셰일층 시추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너도나도 고유가 시대를 경고하면서 우후죽순 생겨나던 셰일 오일, 셰일 가스를 전문 시추하는 기업들이 분명 미국에는 많이 생기고 있었다.
오일 머니라는 일확천금에 기대는 기업들이 많다는 뜻, 게다가 기름과 가스의 필요성이 특히 높은 미국 정부는 그들의 산업 양성에 크게 힘을 쏟고 있었다.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뜻이었다.
“당장 이란의 경우, 설비는 물론 기술력도 모자랄 겁니다. 그런 부분을 해당 기업들과 협의를 통해 빠르게 진출시킨다면, 빠르게 생산을 시작할 수 있겠죠.”
재무부장관이 불쑥 끼어들었다.
“원유는 그렇다고 하지만 문제는 가스입니다. 액화플랜트 시설은 쉽게 지울 수 없죠, 지금 당장 유럽쪽으로 향하는 가스배관을 짓는것도 무리입니다. 결국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거고, 그 동안 우리는 러시아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렇게 국제정세, 세계경제는 참 복잡했다. 솔직히 한국으로서도 문제였다 당장 전 세계 석유생산국가들이 ‘안 팔아.’해버리면 난리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높아진 가격이어도 참아야겠죠.”
내 입에서 나온 소리에 재무부와 외무부에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겠습니까? 제 놈들이 비싼 가격에 팔겠다는데, 필요하면 사야죠.”
사실 해결책이라는 것 모든게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다만, 놈들이 목표하는 이익을 전부 채워줄 수 있는지는 미지수겠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최소한 5년, 혹은 10년은 필요한 계획일테니까요.”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러시아 뿐 아니라 OPEC에게도 확실하게 뜻을 알리는 게 좋을 겁니다. 그들은 러시아와 다르게 국력이 강하다고 볼 순 없으니까.”
장인어른이 날 빤히 보며 말씀하셨다.
“천우진 회장, 방금 한 얘기는 위험한 얘기입니다. 발언에 신중하세요.”
자칫 전쟁으로 붉어질 수 있는 얘기였기에 만류하는 장인어른.
“솔직히 3차대전 일어나면 중동 아랍권의 석유 국가들 다 무너지는건 기정 사실화입니다.”
숨김없이 솔직한 말을 내뱉으니 곳곳에 싸늘한 정적이 자리잡았다.
꿀꺽.
긴장했는지 여기저기서 침을 삼키는 사람들도 많았다.
세계3차대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 장내에 누구도 모르지 않을 터였다.
장인어른이야 내 성격을 아실테니 픽 웃으며 넘어가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그러지 못한 얼굴들이었다.
“평화적으로 갑시다. 평화적으로, 현 시점에서 전쟁은 이겨도 손해, 지면 더 손해인 것 아니겠습니까? 국가도 국가지만 전 세계적 경제, 자연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SKY는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없습니다.”
확실하게 그들이 안심할 수 있는 말을 전달하자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들이 있었다.
외무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SKY그룹의 천우진 회장님 말씀은, OPEC국가들에게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괴팍한 경고까지 염두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겁니까?”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계가 평화에 찌들었습니다. 허울좋은 평화를 너무 믿고 있어요, 미국이 이라크에서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었던 것도 요인중 하나겠죠.”
“으음.”
“압도적인 화력을 지녔지만 그 화력을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제대로 보여주진 못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경제재재 역시 가혹하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느정도 살 길은 주고 그냥 힘만들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인구 반절쯤은 줄여버릴 수 있게 만들 수 있는게 미국 아니었습니까?”
국무부 장관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 역시 익히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아프간에서부터 나와 관계가 형성된 파월 장관.
그가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군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 언제나 뭔가를 하지만 미비했다.
여러 국제적인 비난, 국제정치 때문에 그랬겠지만 초강대국, 세계의 패자라는 이름에 걸맞는 단호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911테러 이후 빠르게 아프간을 침공했을땐 확실히 카리스마가 대단하게 느껴지긴 했었다. 그때는 전 세계 그 누구도 감히 미국에게 딴지를 걸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바로 이어진 걸프전의 복수라 할 수 있는 이라크전쟁에서는 어땠는가? 세계 여기저기서 미국을 욕하는 소리들이 들려왔었다. 물론 명분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아프간에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인게 가장 큰 영향이라 할 수 있었다.
“빈 라덴 역시, 미국이 아닌 SKY가 체포했었죠.”
나의 따끔한 말에 국무부장관 파월이 ‘쩝’하며 입맛을 다셨다. 미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기에 그들 역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일 터, 숨길 게 없었다.
장내의 짧은 침묵을 깨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펼쳐진 세계 지도로 다가가며 말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SKY와 미국의 거래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볼까요?”
완벽하게 대화의 주도권을 내것으로 만든 상황이었다. 모두가 별다른 반대 없이 동의를 표하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SKY는, 아이티, 아프리카 등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판매하는 것으로 본래 미국이 수입해오던 전기만큼의 값을 받겠습니다.”
재무부 장관이 잠시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저렴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터.
나를 잘 알고 계실 장인어른이 불쑥 말했다.
“다른 걸 원하는 게 있습니까?”
“예, 대통령님.”
“뭡니까?”
“여기계신 모두가, 현재 운행되고 있든 대한민국의 유라시아 횡단철도에 대해서 알고 계실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이어지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솔직히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기도 했다.
“우리 SKY는, 이곳 아프간에서 영향력이 막대한 기업입니다.”
“아프간까지는 중국을 넘어서 이어지기가 쉽다?”
“맞습니다.”
“그 다음, 이란과 과거 대한민국은 그렇게 나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이란에는 서울로가 있고, 한국에는 테헤란로가 있을 만큼 서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는 뜻이죠.”
“미국과 이란이 다시 사이가 좋아진다면, 아프간을 넘어서 이란까지 철도를 연결하겠다는 뜻이군요.”
“예, 미국의 긴밀한 협조가 있어야겠죠.”
재무부장관이 계산기를 두들기는 듯 눈을 이리저리 바쁘게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어서 이곳 터키. 터키 역시 대한민국과 사이가 그렇게 나쁜 국가가 아닙니다. 이란을 넘어 터키, 그리고 터키를 넘어 다른 유럽국가들로 연결 될 수 있다는 얘기죠.”
장인어른이 박수를 짝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유럽까지 유통망이 생기는 것이군! 이건 미국이 돕지 않을 이유가 없어!”
“정확합니다. 거기에 더해, 철도의 아래. 가스배관이 지나간다면? 이란에서 서유럽으로 흐르는 가스배관이 말입니다.”
“맙소사!”
“이란과의 관계가 개선 된다면 서유럽국가들과 미국, 대한민국의 동맹은 더욱 끈끈하게 이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 줄어들겠군.”
재무부 장관은 계산을 멈추고는 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겁 먹은 얼굴을 숨기지 못한 그.
꿀꺽 침을 삼키고는 물었다.
“어, 얼마를 투자하라는 것입니까.”
난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아프간에서 터키까지의 구간은 미국이 전액 투자를 해주셔야겠습니다. 물론 가스배관에 대한 지분은 미국이 가져가고, 철도에대한 지분은 우리 SKY가 가져가야겠죠.”
“맙소사.”
비용을 얘기 하지 않았지만 그 비용이 어마어마 할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을 터였다.
“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SKY에서 직접 시공하는 철도와 가스배관입니다. 아주 튼튼하고 신뢰할 수 있는 놈이겠죠.”
장인어른이 휙 고개를 돌려 재무부장관을 나무랐다.
“지금 비용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재무부 장관! 유럽에 공급하는 천연가스에 대한 영향력을 우리 미국이 가져오는 것이에요!”
외무부장관 역시 침을 튀기며 재무부장관에게 말했다.
“그 동안 아쉬운 소리를 하던 서유럽 국가들이 앞으로는 더욱 끈끈하게 우리를 따라준다 이 말입니다. 여태까지 UN때문에 피를 본 게 한 두번 입니까? 이건 무조건 이득입니다. 무조건! 돈이 얼마가 들어도 미래에는 무조건 이득이라는 소리에요!”
재무부 장관이 힐끗 날 바라본다.
‘완벽하게 당했습니다.’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SKY는 인건비가 비쌉니다.’
‘후우··· 나만 욕을 먹겠군요.’
‘많은 도움 감사합니다.’
결국 재무부 장관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의 표시였다.
< 제 41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