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414화 (414/458)

< 제 414화. >

아직 OPEC와 푸틴간의 협의 내용같은 것들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 전 세계를 상대로 공개하는 순간부터 석유값의 변동이 생길 것이기에 발표하는 날짜와 시간 역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이었다.

“이렇게 따로 만나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와 푸틴의 비공식적인 만남이 성사되었다.

OPEC와 러시아간 아직 협의가 진행되는 상황, 정확히는 ‘언제 어떻게 얘기하고 언제 시작할래?’정도만 남은 상태이기에 그들의 생산량 담합은 이미 기정사실화 된 상태였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로메이니.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오랜만입니다.”

“하하, 여전히 딱딱하시군요, 남자답고 좋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는 로메이니.

“이슬람국은 평안합니까?”

굳이 ‘이슬람국’이라는 표현을 푸틴이 해줌으로서 최고지도자인 로메이니를 추켜세워준다. 자연스럽게 표정이 부드럽게 바뀐 로메이니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서방국가의 경제재재가 계속되고 있으니··· 평안하기가 어렵군요.”

“쯧쯧, 미국 그 쫌생이 같은 놈들이야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 쫌생이라.”

“여객기를 폭파시키고 사과도 한 마디 않던 놈들 아닙니까?”

로메이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최대의 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사건을 굳이 입에 올리는 푸틴.

“후우··· 덕분에 민심이 흉흉하지요, 미국은··· 쯧.”

로메이니는 말을 아꼈다.

굳이 계속 이 사건을 거론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은 미국도 알고, 이란도 알고 있었다. 경제재재의 시기만 더 길게 늘어뜨리는 결과나 마찬가지였다.

술을 하지 않는 로메이니라는 것을 아는 푸틴은 저 혼자 독한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말했다.

“현 이슬람국이 경제재재 때문에 새로운 지하자원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우···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러시아가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떤?”

“가스 하면 러시아가 아니겠습니까? 배관 기술 역시 세계 최고라 자부합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로메이니.

“20년간 수익금의 50퍼센트. 혹은, 10년간 수익금의 75퍼센트. 두개의 선택지를 제시하고 싶군요.”

로메이니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우리 이슬람국의 지하자원을 개발해주고 그 대가로 수익금을 가져가겠다 얘기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설비와 기술, 두가지를 넘겨 주겠다?”

“공짜는 아닙니다.”

“수익금을 가져가니 당연하겠죠.”

“아니요, 수익금과 더불어 100년에 걸친 상환식으로 설비 대금만큼은 받아야겠습니다.”

“적어도 기술은 그냥 주겠다는 말이군요.”

“그정도는 서비스라고 하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로메이니.

얼핏 듣기로는 이란에게 불리한 계약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푸틴이 사전에 말했던 것 처럼, 쫌생이 미국이라는 놈들 때문에 이란은 가스 매장량 전 세계2위의 국가이면서도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지하자원이 이란의 땅 속에 있지만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미국은 경제재재를 풀 생각이 없었고, 이란인들은 미국을 지독히도 경멸하고 싫어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최고지도자라고 해도, ‘우리 이제 미국이랑 친하게 지낼까?’하고 얘기한다면, ‘하, 위대한 분도 노망이 드셨군.’, ‘신은 아니었던 거지, 더 위대한 분이 있을거야!’ 하며 쿠데타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에게 휘둘리고 러시아에게 휘둘리고 세계 각국에게 휘둘리던 이란이었다. 외세라면 혐오의 감정부터 먼저 드는 것은 비단 로메이니뿐만이 아니리라.

“듣기에는 무척 달콤하군요.”

로메이니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푸틴이 이런 달콤한 제안을 할 놈이 아니라는 것은 저 스스로도 알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푸틴의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경제재재를 당하고 있는 이란을 굳이 돕는다? 이건 공식적으로도 미국과 등을 돌리는 강수를 두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미국은 현재 러시아의 원유를 사들이는 국가였다. 그런 그들이 당장 ‘원유 안 사.’라고 선언 해 버리면 러시아 역시 경제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OPEC가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푸틴의 뻔뻔스러운 말.

일리 있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의문이 해소 된 것은 아니었다.

천연가스 매장량, 판매량이 압도적으로 높은 러시아. 굳이 경쟁자를 더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현재도 충분히 러시아를 통해 유럽국가들과 여러 국가들이 가스를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시장을 굳이 이란과 나눠먹자고 얘기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러시아가 가스를 통제한다면, 가스 가격은 러시아의 손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나 마찬가지었다. 굳이 이란의 가스 따위는 탐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푸틴의 제안은 ‘이란아 네들 도와줄게.’하고 손을 내미는 꼴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점이 로메이니를 헛갈리게 만들고 있었다.

로메이니는 푸틴이라는 인물이 이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니란걸 몹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어째서 우릴 돕습니까?”

가타부타 숨길 게 없다는 듯 그냥 직진하는 로메이니.

“내가 꼭 필요한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도움을 받는다 생각하지 마시죠, 그냥 서로 이해관계가 맞았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좋겠습니다.”

“그럴리가.”

로메이니는 의심의 끈을 놓지 못했다.

푸틴은 자신도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솔직하게 밝혔다. 그러나 커다란 이득인지 아닌지 분간할 순 없었다. 어쩌면 이란에게 커다란 손해가 될지도 모를 행동이 아닌가.

지하자원이라는게 웃긴 것이, 한번 파내기 시작하면 멈출수가 없었다. 멈추는 것 자체만으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었고 멈춘 곳을 재가동시키는 것 역시 손해가 막심한 행동이었다.

여차하면 그냥 태워버리는 게 ‘이득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하자원 개발’은 아주 짜증나는 일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그것이 로메이니를 망설이게 만드는 큰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푸틴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로메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잖아?’하고 묻는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로메이니는 일단 한발자국 물러나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으음, 오늘 대통령의 제안은 깊이 새기겠습니다.”

푸틴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안은 오늘 뿐입니다.”

로메이니가 팍 인상을 찌푸렸다.

전후사정따위 알아볼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강요였다. 그리고 그런 강요가 로메이니의 생각에 어떤 확신을 더해준다.

“흠, 그렇다면 거절하는 것으로 하죠.”

푸틴은 여유롭게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답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단, 나는 러시아가 이런 제안을 했고, 이슬람국의 최고 지도자가 반대했다고 언론에 공개하겠습니다.”

언론플레이 따위, 로메이니 정확히는 이란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을 푸틴.

푸틴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로메이니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편할대로 하시오.”

푸틴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

장인어른과 한창 통화중인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휙 고개를 돌리니 루시아 하늘하늘한 잠옷을 입고는 발코니 밖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웃어 보이며 손짓으로 나오라고 했다.

드르륵.

‘무슨 전화야?’

입만 벙긋 거리며 말하는 루시.

‘장인어른.’

‘우리 아빠?’

‘응, 일 때문에.’

‘미국 일?’

‘응, 공적인 거야.’

나는 잠시 구름폰의 액정을 루시에게 보여주었다.

벌써 1시간이 넘어가는 통화시간에 루시가 혀를 삐쭉 내밀며 놀람을 금치 못한다.

‘뜨겁겠다 휴대폰.’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발열이 제법이었다. 뜨거워지고 난 뒤, 배터리 사용량도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 같기도 했고.

‘이 부분도 따로 얘기를 해봐야겠군.’

나는 구름폰을 스피커 모드로 전환을 하고는 발코니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푹신한 발코니 전동 라클라이너에 앉으니 어느새 내 옆자리를 파고드는 루시.

이곳에서 자기라도 하려는 듯 날 꼭 껴안은 루시의 등을 어루만저 주고는 시가를 입에 물었다.

이 시간 이후로 아이들을 보러 갈 일이 없다는 걸 아는 루시 역시 만류하지 않았다.

-오래기다리게 했습니다. 천우진 회장.

“아닙니다. 후우, 별을 보며 시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한국은 늦은 밤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이거 실례가 많군요.

“전화거신분이 미국의 대통령이시니 제가 참아야지요.”

장인어른이니 이해한다는 말을 돌려 얘기 한 것이었다.

-우선, SKY의 얘기는 잘 알아 들었습니다. 확실히 급한불을 끄는데 SKY 에너지의 전기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걸 여기 있는 모두가 확신했습니다. 적절한 가격이 얼마이고, 얼마만큼의 전기를 사올 것이며, 또한 미 연방의 어느곳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야 할지 등의 회의가 필요 할 것으로 보이는군요.

장인어른의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 루시를 내려다 보았다. 루시가 코를 찡긋 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스윽 나를 올려다본 루시가 입을 벙긋 거린다.

‘좋아? 출장가게 생겨서?’

나는 전혀 아니라는 듯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그럴리가? 루시가 없는 하루는 내게 지옥과도 같다고.’

‘말은 청산유수지.’

‘진짜 루시 한국인 다 됐다.’

‘흥, 칭찬도 소용 없네요.’

잔뜩 삐친 루시.

그도 그럴게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기본으로 출장을 가니 루시가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 못할 것은 없었다. 때로는 일주, 이주 단위의 출장도 있고, 달 단위의 출장도 있으니 ‘출장’얘기가 나오면 루시가 예민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안되겠다 불안해서.’

‘뭐가 루시?’

‘이러다 우리 허니가 바람이라도 날거 같아,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거래, 드라마에서 그러더라.’

쯧, K막장 드라마가 루시를 망쳤나 싶었다.

물론 루시의 눈을 보니 진담이 아닌 장난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내일 오전에 워싱턴으로 가죠.”

-오, 그래줄 수 있겠습니까?

“예, 대통령님.”

-그럼, 이틀 뒤. 다시 회의를 소집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피곤할텐데 밤늦게 실례가 많았습니다. 편한 밤이 되시길.

“예, 장인어른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허허, 그러세 쯧, 굿 나잇.

루시가 얼른 구름폰 쪽으로 몸을 일으키고는 외쳤다.

“아빠도 굿나잇.”

-음? 루시가 있었구나. 지금은 자리가 자리니 인사는 이정도로 하자구나.

“자랑스러운 미 연방정부, 파이팅!”

루시의 제법 귀여운 응원에 곳곳에서 피식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으니 루시가 언제 귀여웠냐는 듯.

스르륵.

하늘하늘하고 위험해보이던 잠옷을 훌러덩 벗어 던졌다.

“바람은 절대 안되지.”

오늘 잠을 자기는 틀린 것 같았다. 오전부터 비행기를 타야 할테니,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자야 할 모양이다.

< 제 414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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