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12화. >
천우진이 바쁘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
러시아의 푸틴은 공식적으로 OPEC의 정상들과 자리를 가졌다.
약칭 OPEC.
1960년, 이라크 정부의 초청으로 모인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레 5개국이 함께 만든 기구로서 전 세계 원유가격에 영향을 주는 석유수출기구라고 볼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야 우리 가격 이렇게 하자?’하고 협의하는 기구라는 뜻.
원유의 가격을 조절하고, 원유의 생산량을 조절하는 카르텔이 된 그들은 세계 경제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구로 발전했고, 현대에 들어서는 모든 국가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원유’라는 놈 때문에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카르텔로 발돋움 하였다.
본래 5개국 이외에 추가로 원유 생산국가가 되는 국가들도 속속 가입을 하는 등, 그 영향력은 점점더 커지고 있었다. 전 세계에 원유, 그러니까 남은 지하자원이 얼마 없는 상황 그들의 카르텔은 더욱 공고하게 굳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의 정상은 푸틴을 그리 좋은 얼굴로 맞이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친미국가를 표방하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
그러나 그들의 싸늘한 반응에도 푸틴은 아무렇지 않게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상석에 앉았다.
“크음.”
“험험.”
자연스럽게 장내의 OPEC의 수장들의 표정이 좋을리 없었다. 다들 자신들의 국가에서는 자신들이 최고 지도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대항해시대를 거쳐, 서구권의 영향력이 막강하던 시절, 원래 지하자원의 대부분을 미국, 혹은 영국 등. 당시 대항해시대를 풍미했던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OPEC의 탄생으로 인해, 원유 생산국 대부분이 석유산업을 국유화 시켰고, 2차 세계대전을 세계에 평화가 찾아오고 결국 본래의 원유를 저렴한 가격에 가져오던 영국과 미국등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들에게 높은 값을 지불하고 원유를 수입할 수 밖에 없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생산하는 국가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었다. 그리고 두번째가 러시아.
그러나,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생산하지만 가장 많은 원유를 사용하는 나라이기도 했다. 해서, 자체 생산으로 충당할 수 없는 원유를 어쩔 수 없이 해외에서 사와야만 하는 국가인 것.
세계의 패자 미국에게 원유란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지하자원이라는 뜻. 덕분에 전 세계 2위의 원유 생산국가인 러시아의 경제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놀랍게도 러시아는 광활한 영토에 비해 원유 사용량이 크게 적었다. 대량, 생산되는 원유의 70퍼센트 가량을 해외에 수출 할 정도.
“급하게 만남을 요청했는데, 수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법 겸손하게 말을 뱉는 푸틴이지만 장내의 누구도 그가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놀랍게도 OPEC내에서도 서로서로에게 불편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많았다.
대표로 ‘이란’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아랍권 국가들은 솔직히 이란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이란이란 국가의 특성 때문.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이란은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2위의 국가이면서도 천연가스 개발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미국에 의해 경제재재를 받아오고 있었다.
그나마 그들이 원유를 팔아먹는 나라가 아니었다면 여태까지 버텨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매우 사정이 열악한 국가라는 뜻.
지금 현재도 이란은 끊임없이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UN은 물론 미국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솔직히 이란의 입장에서는 러시아랑 붙어먹어야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는 뜻.
“반갑습니다. 대통령.”
역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푸틴에게 반감이 덜한 느낌을 주었다.
이란과 다른 중동아랍국가들이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는 이란의 근현대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그들의 국가이념과 관계가 있었다.
이란의 정확한 명칭, 스스로 자신들을 칭하는 명칭이 ‘이란 이슬람국’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종교, 그러니까 이슬람종교라는 종교가 곧 나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편할 것이다.
일종의 교황같은 존재가 곧 국가의 최고통치자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이란에는 대통령도 있는 등, 나름의 삼권분립을 이루었지만 종교적인 최고 지도자가 거의 독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었다.
다른 이슬람국가들은 아직도 왕정을 표방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란의 등장은 눈엣 가시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1979년. 미국과 영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여러 중동아랍 국가의 지원을 받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을 벌였고 8년 뒤에는 휴전을 선택한 전적이 있었다.
그런 이란은 다른 중동 아랍국가들은 물론, 미국과 친하게 지내는 모든 곳들이 눈엣가시 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최고지도자.”
“예.”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이자 정상 역할을 자처하는 왕자가 푸틴에게 노골적으로 물었다.
“우리를 이 자리에 모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OPEC의 정상들이 모인 이유, 별 게 있습니까? 원유값과 생산량을 논의하고자 함이죠.”
“사설 필요 없이, 그럼 빠르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푸틴이 픽 웃으며 자신의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론가 손짓하자, 러시아의 인물들이 빠르게 OPEC의 정상들에게 서류를 전달한다.
천천히 서류를 살피던 OPEC의 정상들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등, 지하자원이 아닌 새로운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다는 뉴스들은 모두들 접해 보았으리라 믿습니다.”
푸틴의 말에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OPEC의 각국 정상들.
“보고 계신 서류들과 같이, SKY라는 하이테크 기술을 가진 기업의 등장으로 점점더 신재생에너지라는 산업은 가속화 될 전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가 입을 열었다.
“지하자원, 원유와 천연가스등을 인간은 버릴 수 없습니다. 완전한 대체제가 등장하지 않았으니까요, 향후에 등장할 가능성도 미비하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가 아닙니까.”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푸틴.
“맞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것은 모두가 앞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 러시아는 SKY와 모종의 협의를 거쳐 서구권 국가들에게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늦추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OPEC가 해야 할 일을 우리 러시아가 했다는 얘기죠.”
모두가 금시초문이라는 얼굴이 되었다.
“해서, 지금이라도 원유값을 올리고 생산량을 조절해 앞으로의 신재생에너지 기술 발전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게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이라 생각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
그리고 놀랍게도 OPEC의 인물들은 그런 푸틴의 말에 설득당하고 있었다.
당장 자신들의 국가, 자신들의 ‘부’가 신재생에너지의 등장으로 흔들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단합을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미국의 손에 휘둘리겠습니까? 언제까지 경제재재가 두려워 싼 값에 원유를 판매하겠습니까?”
노골적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푸틴.
공식적인 자리지만 언론사들이 참석하지 못한 자리에서 숨길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맞습니다. 미국이라는 약탈자들에게 더이상 우리 신자들의 부를 빼앗길 수 없습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가 격한 리액션을 보이고 나머지 국가들은 애매한 모습을 보인다.
“미국과 친하든, 친하지 않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원유산업이 국가 기반산업인 우리 모두의 생명줄이 달린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이어진 푸틴의 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재생에너지, 새로운 에너지원들이 개발되면 원유값은 폭락할지도 몰랐다.
석유파동 당시 재미를 봤던 국가들이니 원유값의 폭등이 어떤 부를 거머쥐게 해주는지 익히 알고 있기도 했다.
“지금도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평화를 수호한다면서 여러 국가의 원유 생산공정의 증설을 바라고 있습니다.”
사우디와 쿠웨이트, 베네수엘라등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확실히 미국은 매년 조금더 생산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걸 그들은 결코 모르지 않았다.
석유라는게 정말 웃긴게, 생산량을 늘리기위해 시추를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다. 정확히는 멈출 수 있지만 그 공정을 멈추게 하는데 소모되는 천문학적 비용때문에 쉽게 증설하거나 감축할 수 없었다. 해서 미국의 요청에도 언제나 지지부진하게 미미한 생산량이 증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미국은 앞에서는 원유 생산을 독촉하지만 뒤에서는 SKY와 같은 하이테크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종용하고 지원하며 신재생에너지, 원유가 아닌 다른 대체 에너지원 개발에 몰두 하고 있습니다.”
푸틴의 말에 그게 정말이냐는 듯 묻는 각국의 정상들. 러시아의 수행원들이 빠르게 각국의 정상들에게 새로운 서류를 전달한다.
“NASA에서 하는 연구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하는 연구, 그리고 현 미국의 대통령인 데이비드 록펠러 2세의 사위라는 SKY그룹의 천우진이 하고 있는 연구들입니다.”
전혀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에너지원과 더불어, 기존의 원유 모터를 갈아치울 새로운 모터들을 연구개발하고 있다는 증거인 서류들.
어느새 그들은 푸틴의 말에 조금씩 설득을 당하고 있었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 필수적인 원유. 원유가 없이도 구동이되는 자동차, 나아가 선박까지. 새로운 구동기의 등장이 머지 않았음을 암시한다고 봅니다. 또, 그런 새로운 구동기의 등장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전기’등 새로운 에너지원의 생산시설에 더 이상 ‘원유’가 필요가 없다면?”
푸틴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이제 원유 생산공정의 증축은 당연히 없어야 하며, 앞으로 전 세계로 공급하는 원유의 양도 우리가 조절을 해야 한단 얘기입니다. 그 방법만이 새로운 대체 에너지 시대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는 방법이고, 우리가 새로운 국가기반산업을 준비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가타부타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외쳤다.
“적극 찬성하는 바입니다!”
다른 국가들의 정상은 그런 이란의 최고지도자를 이상한 놈 바라보듯 바라보았다.
미국의 경제재재 때문에 가난한 이란.
그 이란에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들, 그것을 개발하지 않기를 다른 국가들도 바라고 있었다. 이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개발해서 타국에 팔아먹어야 이득이 된다는 뜻.
그런 이란이 먼저 ‘증축’을 반대한다는 게 쉬이 이해될 순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가 눈매를 좁히고 이란의 최고지도자와 푸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둘의 관계가 어쩐지, 모종의 거래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
SKY에너지의 연구소장이 잔뜩 흥분해서는 말했다.
“그러니까 회장님 말씀대로라면, 이 새로운 전극체는 접히고, 휘고 찌그러져도 손상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그런 신소재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탄소나노섬유, 그쯤으로 보면 되겠군요.”
“예, 전극체의 역할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겠죠.”
“이건 혁명입니다 혁명! 정말 SF영화처럼 주머니속에 아주 작은 필름 형태의 새로운 반도체의 등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화면이 접히는 TV, 롤처럼 말리는 휴대폰. 그런것들의 등장이 머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죠.”
“맙소사! 맙소사!”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현재 태양광발전시설에 설치되는 전지는 효율이 30퍼센트 미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 예상이 맞다면 해당 신소재를 접목한 태양광 전지의 발전효율은 44퍼센트 이상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맙소사··· 크기는 줄어드는데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한다니.”
“어떻습니까?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죠?”
“이건 무조건 해야 합니다 회장님! 우리나라도 이제 산유국 못지 않은 지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럼 얼른 출발하세요, 연구하러.”
“예! 다음 보고에는 좋은 성과로 뵙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보내고 호석을 바라보았다.
“내일 오전에 SKY자동차 중역회의 소집하세요, 연구개발진 당연히 참석 시키고요.”
호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또 어떤 기술을 개발하시려고···”
“원유로 굴러가는 자동차 말고, 새로운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 어떻습니까?”
“하하··· 정말 SF영화가 따로 없습니다 회장님.”
“이제 정말 한 발짝 다가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호석.
차량에 오를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그가 내가 차량에 탑승하자 얼른 옆자리에 착석하며 말했다.
“푸틴이 OPEC의 수장들과 만남을 가졌다는 보고입니다.”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조용하다 했습니다. 조만간 벨브라도 잠그겠군요.”
“원유값 폭등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
“괜찮습니다. 바라는 바이니까요.”
호석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나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들은 결국 한정되어 있으니까.
< 제 41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