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410화 (410/458)

< 제 410화. >

고키부리의 연설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 일본은, 과거부터 이해하는 자세가 가장먼저 필요합니다. 현재 바뀐 교과서를 보고 교사들은 물론, 대학생들 마저도 과거의 역사에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어떻겠습니까?”

“혼란스럽습니다!”

“맞습니다.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여태까지 우리 일본이 얼마나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행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과거, 일왕이 통치하던 시절, 실질적인 통치는 영주가 했고, 메이지유신 시작하며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일왕이라는 존재는 빈껍데기에 불과 했으나, ‘군대’가 창설되며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고키부리는 지금 일본의 근현대사를 짧게 축약하고 있는 것이었다. 핵심만 얘기한다고 보는게 옳았다.

“군부의 힘이 점점 커지며 일본의 내각과 일왕, 그리고 군부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우리 일본이 미국에게 원자폭탄 공격을 받아야 했던 이유, 그것은 군부 내부의 권력다툼과 연관이 있습니다. 결국 일본은 항복했고, 미국에 의해 정신적지주라는 이유로 ‘일왕’이라는 존재는 신격화 되었고, 입헌군주제가 다시 시작되었죠.”

몇몇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몇몇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현 일본의 역사의식과 역사지식에 대한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럼 당시, 항복을 방해하고, 끝끝내 원자폭탄 투하를 받아야 했던 일본의 군부 세력에 대한 제대로 된 재판과 상벌이 일본에서 있었을까요?”

아무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쾅!

단상을 내려친 고키부리가 붉어진 얼굴로 열변을 토한다.

“바로 그 권력자들이 끝끝내 자신들은 살고자 역사를 변질시키고, 그 역사를 후대에게 알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권력이라는 달콤한 꿀을 훔쳐먹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아아!”

“그렇게 우리는 거짓된 역사를 배우고, 하등 쓸모 없다는 듯 잊어갔습니다. 그것이 독일과 우리 일본이 다른 점입니다. 독일은 나날이 국력이 상승해가고, 일본은 나날히 쇄락의 길을 접어들었음에도, 기득권들은 바뀌는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우리 일본에게 거짓된 뉴스와 거짓된 정보를 퍼뜨려 러시아를 혐오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을 혐오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그렇게 된거구나.’하는 표정이 떠올라 있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저 고키부리는! 천황이라 부르며 신격화 된 인간을 퇴위시키고, 앞으로는 다시 부활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전쟁범죄자들을 처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미 죽어 사라졌다면 후손들 역시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일본의 발전은 없고, 동북아평화에 앞장서는 대한민국과 결코 같이 할 수 없음입니다!”

“옳소!”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최정상에 우뚝 솟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그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과 우리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

“그들은 올바른 교육을 받고 ‘창의력’을 키워가지만, 우리 일본은 기득권들의 강압과 언론탄압을 통해 주입식으로 교육만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 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현 일본의 기득권들이 저질러온 잘못들입니다!”

“다 죽여버려라!”

어느새 장내에는 광기가 물든 느낌을 받았다.

일본의 국민성은 참 신기했다. 보기보다 순진하다고 해야할까? 생각보다 정치인들의 선동이 잘 먹히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참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과거 조상들이 메이지유신, 즉 서구열강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발전했던 것 처럼, 이제 우리 일본은 동북아의 최정상이며, 전 세계의 정상으로 우뚝 솟은 대한민국의 문화와 교육,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창의력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일본이 살 길입니다! 잃어버린 20년, 그것은 우리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청년실업은 말도 못하고 임금은 수십년째 제자리 걸음입니다!”

“고키부리! 고키부리!”

일본의 국민들이 고키부리의 이름을 연호한다.

“제가 아닙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믿고 따라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의 조상들처럼,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을 따라하고 배워야 합니다! 자존심이 상할 일이 아닙니다! 과거 조상들이 말도 못한 폐해를 저질렀던 저 대한민국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어떤 국민성을 지니고 있는지 배워야 할 때입니다! 과거의 폐해를 기억하지만 우리 일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대한민국의 대통령 천혁수님을 모시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천혁수! 천혁수!”

발음도 잘 되지 않는 이름을 연호하는 일본인들.

이건 뭐 거의 국뽕의 한도치까지 차오른게 아닐까 싶었다.

한일 해저터널 착공식이 전 세계에 생중계 되는 만큼, 아마도 우리나라에도 생중계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름을 연호하는 일본인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이러다 할아버지 신이라도 되시는 거 아니에요?”

호석이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근번년도, 세계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고 계십니다··· 이 정도면 거의 수상은 확실시 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하하, 할아버지 또 부끄러우면서 좋아하시겠네요.”

어느새 고키부리에게 마이크를 넘겨 받은 할아버지가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을 하고는 양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일본인들을 만류한다.

“반갑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천혁수입니다.”

공손하며 절도있게 인사를 한 할아버지가 연설을 시작했다.

“앞서 고키부리 총리가 짧게나마 근현대사에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조금 더 과거의 이야기를 할까 싶습니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본인 동시 통역사가 빠르게 통역을 하고 있음은 안 비밀이다.

“과거 대한민국의 삼국시절, 정확히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 백제는 현재의 전라도와 중국, 일본, 신라는 현재의 경상도와 일본, 고구려는 현재의 중국과 일본, 북한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실질적인 지배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본인들.

“여태껏, 고키부리 총리가 욕을 했던 일본의 기득권들이 그 역사절 사실을 부인하고 있었죠, 심지어 오키나와 원주민들이 수렵생활을 하던 시절, ‘삼별초’라는 대한민국의 과거 군부대가 ‘큐슈왕국’을 세웠다는 증거가 많은데도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금시초문인 듯 놀랍다는 얼굴이 된 일본인들.

“이렇듯, 과거부터 우리 대한민국과 일본은 함께 해왔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조상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동북아연맹이란 조약기구의 탄생과정 역시, 과거부터 우리가 하나와 같이 서로 협력하고 돕고, 승승장구 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아직은 제대로 동조하기 힘들어 보이는 일본인들.

“원래 우리가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를 가졌다고 보는 역사학자들도 제법 많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의 뿌리는 같다고, 우리는 결국 하나가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이 한일 해저터널은! 동북아연맹을 더욱 공고히, 그리고 단단하게 묶는 역할을 할 것이며, 우리 대한민국은 일본의 경제발전을 위해, 동북아연맹의 패자답게!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며 동맹국인 일본을 돕기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과거 조상들의 안 좋은 방식은 잊어버리고, 늘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던 대한민국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동북아의 패자로 거듭났다지만, 우리는 과거의 강대국이 저지른 폐해를 익히 알고 있으며 겪어보았습니다. 행여나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아픈 역사를 만들어 낼 이유가 전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앞으로 쭉 모았다.

할아버지는 지금 부드럽게, 아직 남아있는 ‘극우’세력의 잔재를 꼬집고 있었다.

저런식의 발언이라면 훗날, 할아버지의 발언을 해설하는 전문가들이 ‘극우’라는 세력을 꼬집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일본인들 사이에서 그들은 배척받을 수 밖에 없을 터.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칠 고키부리가 아니니, 앞으로 일본에 남은 ‘극우’ 혹은 ‘반한국’세력은 깔끔하게 잘려나가게 될 것이다.

“자랑스러운 한일 해저터널이 첫 삽을 뜨는 순간입니다. 전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앞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의 동맹이 탄탄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모두 축복과 함께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할아버지의 연설은 짧고 간략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많은 사람들은 패자의 관용으로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정말 할아버지 이제 완벽한 정치인이세요.”

“경험이 오래된 대통령이시잖습니까?”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벌써 6년째 대통령을 하고 계시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평화적인 사람이다.’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연설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염두하신 걸 지도?”

“하하, 그러실분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나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일본은 정말 특이한 게,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SKY의 전자제품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보다 한끗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미국의 사과폰은 쓰지만 구름폰은 쓰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국 것은 나쁜 것. 혹은 일본의 것이 최고라는 생각과 개념이 머리에 자리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일본의 정부가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동북아의 패자 대한민국에서 만든 SKY의 제품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일본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난 확신했다.

해저터널 역시, 그 과정에서 발생된 ‘유통비용’을 감축 시키기 위한 일환이었고.

“이제 슬슬, 서구권 눈치 볼 필요가 없게 되네요.”

호석이 잠시 날 빤히 바라본다.

“하하, 드디어 용이 활개를 칠 순간이 된 모양입니다. 회장님.”

“예, 슬슬 승천을 할까 싶습니다.”

“기대가 되네요.”

“그럴려면 일단은, 유럽놈들이 혹할 아이템이 필요하겠죠?”

“오, 그런 게 있습니까?”

“일본의 고품질 부품들과 기술력을 더한다면 조금 더 쉬울지도 모르죠.”

“현재 기술력은 대한민국이 최고가 아니었습니까?”

“SKY가 최고죠.”

“하하, 맞습니다. SKY가 최고입니다.”

고키부리와 할아버지가 삽을 들고 누군가를 찾는다.

“저 찾으시네요, 얼른 한 삽 푸고, 다시 얘기하는 걸로.”

“예, 회장님.”

***

러시아 모스크바의 대통령 관저.

쾅!

푸틴이 넓은 회의실 탁자를 내려치며 성을 낸다.

“그래서 방법이 없다는거야? 벌써 이틀째 회의를 했다는 놈들이 이것밖에 없어? 네 놈들이 우리 러시아 경제를 위해 일하는 전문가 놈들이 맞긴 해?”

신랄한 비판이 푸틴의 입에서 터져나오지만, 이렇다할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경제 전문가들.

“이미 원유사업과 천연가스 사업에 익숙한 러시아인들에게 제조업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 다 죽으라는 거야 뭐야! 이 개새끼들이!”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는다.

누구하나 입술을 움찔 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푸틴이 크게 한숨을 들이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SKY와 계약을 하면서 10년이란 시간을 벌었다. 그것도 이제 8년이 남았지··· 8년이내에 우리 러시아에 혁신이 없다면 네 놈들은 무사 할 것 같나?”

SKY와 대한민국의 빠른 발전 때문에,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벌써 이틀째 긴 회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렇다 할 해결책도 없지만, 푸틴은 알고 있을까? 언제나 SKY, 그리고 천우진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 제 41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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