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08화. >
동북아연맹이란 조약기구가 출범하고 며칠이 지난 시점.
딱. 딱. 딱. 딱.
푸틴이 정보총국장이 내민 서류를 바라보며 뭔가 깊이 고심을 하고 있었다.
“중국과 북한, 일본이 사실상 대한민국에게 먹혔다? 이 정보 신뢰 할 수 있는 거야?”
푸틴의 말에 정보총국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아니라면 그 중국놈들이, 일본놈들이 대한민국의 언어를 공용어로 하기로 협의 했겠습니까? 게다가 동북아연맹이란 조약기구에서 대한민국이 의장의 역할도 하지만, 표 행사력 역시 타국에 비해 33퍼센트라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게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예측이지 실제로는 모른다 소리 아니야?”
정보총국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푸틴은 진즉에 알아들었어야 했다. 그는 결코 모자라거나 멍청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믿을수가 있어야지···”
푸틴의 작은 혼잣말에 움찔 몸을 떠는 정보총국장.
그의 말은 상당히 중의적이라고 느껴졌는데 정보총국장인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이 동북아의 지배자가 된걸 믿지 못하는 것인지 헷갈렸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두가지 다 일지도 모를 일.
“정보원들 더 풀어봐 전투적으로 파악해.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태도도 달라저야 하니까··· 후진다오와 만남 약속은 언제지?”
“모레 오후 2시입니다.”
“후우··· 유라시아 횡단철도인지 뭔지 하는 놈도 짜증나는데 동북아연맹이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푸틴.
그는 조금씩 조금씩, 천우진. 그리고 대한민국이 자신의 러시아를 조여오고 있다는걸 슬슬 체감할 수 있었다.
“배관은 얼마나 공사됐어?”
현재 러시아는 SKY의 신재생에너지발전시설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해서, 더욱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신규 천연가스 배관들을 설치 하는 중이었다. 최소 30년, 그 기간은 무조건 지하자원을 팔아서 기존의 기반산업인 1차 산업을 유지 할 수 있을거란 러시아 전문가들의 예측을 믿는 것.
“대부분의 공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늦어도 2009년에는 완공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용화는 같은해에 진행될 것입니다.”
“서둘러, 조금이라도 빨리 많이, 팔아먹어야 할 테니까.”
“예, 각하.”
“제기랄, 일본이랑 접촉을 좀 해볼까 했더니··· 쿠릴열도를 주더라도 부품 제조업을 좀 가져왔어야 했는데···”
일본도 경제 위기를 오랫동안 겪고 있지만 러시아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만만한 일본을 조금 꼬셔볼 생각이었던 푸틴의 계획이 동북아연맹이라는 것 때문에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천우진이 계획을 했든 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이 푸틴을 엿먹이는 행동이 된 것.
“아주 기가 막히게 또 나를 엿 먹이는군.”
쾅.
천우진의 사진 위에 재떨이를 올려놓고 시가에 불을 붙이는 푸틴.
“경제 전문가들 불러 들여, 해결책을 제시 하기 전까지, 회의는 끝나지 않을테니까 집에 연락들 돌리라고 하고.”
“예, 각하.”
“이번에는 반드시 성과가 있어야 할 거야,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해.”
“예!”
***
청와대 안.
대한민국 내에서는 거의 신격화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천혁수 대통령의 집무실.
그런 집무실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그의 핏줄인 나 손자 천우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철컥.
“이 놈아 노크라도 하고 다녀라.”
서류에서 시선을 뗀 할아버지의 핀잔에 픽 웃으며 고급스러운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어우, 오래된 소파인데도 편하네요.”
“아주 제 집 안방이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연스럽게 상석으로 다가와 앉으신다.
“이번에는 또 뭘로 이 몸을 피곤하게 하려고 왔더냐?”
슬쩍 시계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이제 곧 ‘공무원’들의 퇴근시간인 6시에 가까워지는 시각이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할아버지랑 피맛골에서 막걸리나 한잔 할까 했죠?”
“호오, 피맛골?”
흥미가 돋으시는지 표정이 좋아지셨다.
“예, 어떠세요?”
고개를 돌려 집무실 창 밖을 살핀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리신다.
“확실히 비도 오고 하니, 두부전도 나쁘지 않겠구나. 그집 김치가 참 좋았지.”
“아산댁 아주머니 김치만 하려고요.”
“노포는 노포만에 매력이 있는 법이야.”
“그럼 가시는걸로?”
“오냐, 나쁘지 않구나.”
할아버지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칼퇴근을 위해 밀린 업무를 처리하실 모양.
집무실 책상에 앉으시면서 만년필을 들어올리던 할아버지가 덜컥 멈춰서는 날 바라보신다.
“그냥 손주와 할애비의 술자리냐, 아니면 또 사업얘기냐?”
“겸사겸사죠, 겸사겸사.”
“끌끌, 벌써 피곤하구만.”
쏴아아아아.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어째서인지 고즈넉하게 들리는 피맛골의 허름한 노포.
딱.
쨍그랑 소리가 아닌, 나무잔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마저 기분좋게 만들기 충분했다.
꿀꺽, 꿀꺽.
“캬~ 이 맛이지. 이집 동동주는 진짜 끝내준다니까요?”
“네가 벌써 동동주 맛을 알아?”
“할아버지 때문 아니겠습니까?”
픽 웃은 할아버지가 굴전을 스윽 내 앞접시에 놓아주신다.
“감사합니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굴이 귀하지, 많이 먹어두거라. 남자에게 그렇게 좋으니.”
“하하, 그럼 할아버지가 더 드셔야죠?”
“이놈아 아직 쓸만 해.”
“저도 벌써 애가 셋입니다만.”
“할아버지! 하고 부르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비가 와서일까 할아버지가 새삼스럽게 그윽한 눈을 하고 계신다.
“에이, 우리랑 안 어울리는 분위깁니다. 할아버지.”
“쯔쯧, 요즘 것들은 낭만이 없어, 낭만이.”
다시 술이 몇 순배 돌고, 할아버지가 본론을 꺼내보라는 듯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신다.
“해서, 용건은?”
나 역시 자세를 바로 잡고 입을 열었다.
“지난날의 대한민국과 현재의 대한민국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 전부가 아는 사실이지, 이제 전세계도 알게 되었고.”
“동북아연맹이라는 조약기구의 수장 자리를 대한민국이 차지 한 만큼, 실질적인 동북아의 패자가 대한민국이 되었잖습니까?”
“사설이 길구나.”
픽 웃으며 동동주로 목을 축이고는 말했다.
“혹시, 예전부터 거론되던 해저터널 계획 아십니까?”
팍 인상을 찌푸리는 할아버지.
“알다마다, 일제시절부터 왜놈들이 신나게 외치던 것이지, 섬이라는 악조건에서 벗어나기위한 발버둥이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한일간 해저터널도 있지만, 한중간 해저터널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본래 일본의 목표는 한일간 해저터널을 뚫고, 철도를 이용해 러시아를 넘어 유럽가지 도달 하는 것이었다.
다, 군국주의 제국주의와 같은 썩어빠지고 낡아빠진 일본의 헛된 희망이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할아버지.”
“예전에는 일본의 국력이 우리를 상회해서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수작이었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국력이 크게 올라서 일본에게 먹히지 않을테니, 시행해보자?”
단밖에 이해를 하시는 할아버지.
“예, 지금 일본 상황은 아시죠?”
“알다마다. 그것때문에 내 지지율이 크게 오르고 있잖으냐? 어디까지 올라갈지 감도 잡히지 않는구나.”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동북아연맹이란 조약기구가 출범하고, 실제로 일본의 많은 언론들이 한국에게 우호적인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일본이라고는 믿기 힘들 행보들이었다. 그들 역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는 경제난 때문에 국뽕에 취해버린 미친 언론들이 즐비했는데, 고키부리가 아예 싹을 잘라버린 것이었다.
살고 싶다면 팩트만 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왕이면 한국에게 우호적인 소식을 전달하는 게 목적인 것 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현재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지도 알고 계신가요?”
“듣기로는 우호적이라고 하더구나, 실제로 통계자료도 그렇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거기에 더해, 공포심도 품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SKY에게 공포심을 품고 있죠.”
“그래?”
“예, 일본인들에게 원자폭탄, 그러니까 핵폭탄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겁니다.”
“음, 작년에 SKY의 미사일 발사 시험을 얘기하는 구나.”
“예. 오랫동안 권좌를 지키던 자민당 놈들의 태도가 바뀐것도 한몫 하고 있죠.”
“끌끌, 약지동맹이라니 미친놈들.”
현 정권의 수장인 고키부리를 비롯해, 다수좌석을 보유한 다수당 자민당의 모두가 새끼손가락 하나씩이 없는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그 점을 나무라고 계신 것이었다.
“그런 원초적인 것에 국민들이 동요한다니, 그것도 참.”
“그만큼 변화가 필요하다는 거겠죠, 일본도. 이제 그걸 뼈조리게 깨달은 거고요.”
“어쨌든 그래서? 그 해저터널 계획을 부활시키자?”
“예, 당연히 일본에게 이득이 되는 만큼 비용은 일본이 전부 투자하는 방향으로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본이 제조 강국이고 부품부분에서는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걸 부정하지는 않으마, 헌데 SKY역시 만만찮은 걸로 알고 있는데. 굳이 해저터널을 연결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완벽하게 손에 넣고 싶습니다. 일본은 아직 가치가 있으니까요.”
“손에 넣고 싶다?”
“예, 섬 나라의 특성, 장단을 생각했을 때, 육로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해저터널이 연결되어 있어야 조금 더 대한민국이 영향력을 떨치기 쉬울 겁니다.”
픽 웃는 할아버지.
“입에 침이나 바르거라, 대한민국의 영향력은 무슨, SKY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싶은 거겠지.”
“에헤이, 그게 그거죠.”
“어째서 그게 그거야! 이놈아?”
“대한민국이 SKY거니까요?”
“미친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지만 크게 부정하지는 못하시는 할아버지.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신 할아버지도 SKY의 대한민국 내에서 영향력을 익히 알고 계신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SKY의 영향력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내에서 나는 SKY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가시적으로 보이는게 없으니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 뿐, 이미 전경련을 비롯한 모든 대한민국의 국가기반산업에 SKY는 한발 이상을 걸쳐있는 상태였다.
지금당장 SKY가 다른 나라로 뿌리를 옮기겠다고 하면 대한민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보다 더한 경제적 충격을 떠안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으로서는 SKY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제 슬슬, 나도 굳이 대통령 자리에 앉지 않아도 될 시기가 되었구나.”
“에헤이, 무슨 그런 말씀을 조금만 참으세요 한 5년만? 그리고 지지율 때문에라도 할아버지가 낙선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겠지, 이제 이 할애비가 80을 앞에 두고 있어 이놈아.”
“누가 할아버지보고 80이래요? 거울 안 보세요? 60이라고 해도 믿겠구만.”
“고약한 놈.”
쪼르륵.
할아버지의 잔에 동동주를 따르며 말했다.
“그래서 해저터널, 진행시킬까요?”
“이미 확정을 지어 놓고, 굳이 통보를 하느냐 썩을놈아.”
“하하하, 지금은 우리 자랑스러운 천혁수 대통령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는 국민들 아닙니까. 좋은 말씀 해달라는 얘기죠.”
“당연히 비용은 일본이 책임지는 것이겠죠?”
“당연하죠? 일본도 잃어버린 20년을 타파하려면 무조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테니까요.”
“오냐, 해저터널이라. 고키부리놈을 부르고 연구를 좀 해보마.”
“옙!”
꿀꺽, 꿀꺽.
할아버지가 시원하게 동동주를 들이켜고는 날 빤히 바라보신다.
“그래서, 해저터널로 이득을 보는 건 정확히 무엇이냐?”
“그냥 영향력 확대죠. 선박이나 항공기가 아닌 새로운 유통 창구가 생기는 만큼, 원활하게 SKY의 제품들이 일본시장을 점령할 수 있게 되겠죠?”
“이놈이 정말 일본을 식민지배라도 할 기세구나.”
픽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일본 뿐일까요.”
“정말 세계라도 먹어버릴 작정이더냐.”
“이미 계획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할아버지.”
“무서운 놈.”
“할아버지 손자라서 참 다행이죠?”
“끌끌, 그래. 참 다행이다 이놈아.”
< 제 40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