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405화 (405/458)

< 제 405화. >

모두가 예상했던 것 처럼.

미 대선은 민주당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물론, 공화당보다 압도적이었다고 말할 순 없었다. 미국에는 공화당 골수 지지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것 처럼,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축하드립니다 장인어른.”

“고맙네, 사실상 저번 TV토론에서 끝이 난 것이나 다름 없었지, 여태까지 과정은 그냥 확인을 하는 단계나 마찬가지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지난번 TV토론에서 오머바가 자신은 록펠러를 지지한다고 얘기했고, 자신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록펠러는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순간.

그 순간 이미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장인어른이 당선되었다. 이어서 벌어진 대통령 선거 역시 장인어른이 당선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미 부쉬라는 공화당의 걸출한 인재가 2번이나 대통령을 해 먹었으니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하, 미스터 천, 여기 현직 대통령도 있습니다만.”

부쉬가 툭, 농담을 뱉어냈다.

나는 밝게 웃으며 부쉬와 포옹을 나눴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에휴, 이제 미스터 천이 날 프레지던트라 부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쉬우십니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숨길 게 없다는 듯 솔직하게 얘기하는 부쉬.

장내의 누구도 그런 부쉬에게 불쾌하다는 이미지를 보이진 않았다. 그저 유쾌하게 그의 한탄을 받아 들일 뿐.

“고생하셨습니다. 8년간 너무 잘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그런 얘기를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듣다니, 아쉬운데요? 연방의 시민에게 들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난 픽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요.”

“하하하하, 맞습니다.”

루시가 푹, 내 옆구리를 찔렀다.

“허니, 농담이 지나쳐. 미스터 프레지던트, 그동안 우리 연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 공로에 감사드립니다.”

“오 감사합니다. 레이디, 당신이 내게 처음으로 공로를 인정해준 분입니다. 평생 기억하도록 하지요.”

공식적인 방문이 아닌 비공식적인 방문이기에 아직 언론에는 현직 미국의 대통령 부쉬와, 다음 대통령직에 오를 데이비드 록펠러 2세, 그러니까 나의 장인어른이 이곳 한국에 벌써 도착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미국의 현 대통령과 다음 대통령이 굳이 한국을 방문한 이유, 그것은 1윌 1일에 발표될 동북아연맹 때문이었다. 여태껏 많은 국가에서 대한민국, 중국, 일본과 같은 연합, 연맹, 조약기구등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UN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볼 수 있었다.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의 이유로,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의 이유로, 또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의 이유로 화합하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했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고 깔보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등 복잡한 국민정서가 서로 부딪혔기 때문. 그러니 이번 동북아연맹이라는 새로운 조약기구가 탄생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이슈라 할 수 있었고, 아시아, 정확히는 대한민국과 그 주변국들의 세계적인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는 일이었다.

자연히, 국제정세는 또 바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약기구의 출범을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발표 하기로 결정이나고, 현재 비공식, 혹은 공식적으로 전 세계의 정상 혹은 외교정상들이 참석하고 있는 중이었다.

“드디어 미스터 천의 집에 가보겠군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우리집이 불편할 수 있는데요?”

“세계적인 대부호의 집이 불편할리가 있겠습니까?”

미국의 부호들과 한국의 부호들은 조금 다른데, 그 부분을 아직 부쉬는 모르는 모양이다.

“흠, 벌써 실망하신 눈초리가 보이는 듯 한데요.”

픽 웃는 부쉬가 내 곁에 서서 걸으며 말했다.

“록펠러씨가 말하기를, 미스터 천의 가정식이 전 세계의 어떤 요리보다 훌륭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아아, 아산댁 아주머니의 음식솜씨가 일품이죠.”

“게다가 미스터 천의 할아버지이시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신 천 씨와도 오랜만에 술 한잔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거절하기는 어려울 듯 싶었다. 뭐 이미 집에서는 부쉬를 맞이할 준비가 한창일테다. 끈 떨어진 연이나 마찬가지지만 굳이 그를 홀대할 이유는 없었다. 여태껏 대한민국, 그리고 SKY와 제법 호의적인 관계를 맺어왔으니까.

“자, 가시죠.”

나와 부쉬, 그리고 장인어른이 한 차에 오르고 다른 사람들은 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짧은 적막이 흐르고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두분이 동시에 방문하시는 걸 미국의 시민들이 좋아할까 의문이군요.”

부쉬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장인어른이 대답하길 바라는 듯 고개를 돌렸고, 장인어른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과 의회에서도 별말이 없더군, 민주당의 공약에 대한 실천이기도 하고, 미스터 프레지던트께서 양해를 해주시기도 했으니, 연방의 시민들도 이해해주겠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 당분간 이슈가 되겠네요.”

부쉬가 픽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어떻게 좀 이용해서 이슈 좀 키워 볼까요?”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제 쉬셔도 됩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그간 고생 많이 하셨어요.”

“일 중독이라 글쎄요··· 쉴 수 있을지.”

“그래서 내가 준비한게 있습니다.”

“준비요?”

“예, 프레지던트.”

기대된다는 듯 날 바라보는 부쉬.

그리고 장인어른 역시 궁금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팜플렛을 꺼내 부쉬와 잔뜩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부쉬에게 내밀었다.

“흐음, SKY 아일랜드1 파라다이스?”

부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팜플렛을 펼처 읽기 시작한다.

“호오, 정말 파라다이스 같은 풍경들이군요.”

“이번에 SKY가 직접 아름다운 섬들을 몇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오, 역시 부호의 취미는 남다릅니다. 섬을 통째로 구입해버리다니.”

“하하하, SKY의 오너 천우진의 소유가 아니라, SKY인베스트먼트의 소유입니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음흉하게 웃는 부쉬.

굳이 그의 말에 부정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조금 더 뒷장을 보시면, 건축물이 보이시죠?”

“음, 건축 계획도와 함께 현재 진행중이군요··· 오, 의료시설은 물론 도로와 작은 공항, 항구까지. 섬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군요?”

“계획도를 계속 보시겠습니까?”

“호오, 섬과 섬을 잇는 도로를 개통할 계획이라고요?”

“맞습니다. 심지어 내륙에서 섬으로 향할 도로까지 개통할 생각이죠, 굳이 헬기나 비행기, 선박이 아니어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게 말입니다.”

“교통은 들었습니다. 일종의 타운같은 느낌이군요, 마을이랄까요?”

“맞습니다. SKY 아일랜드1 파라다이스는 초호화 실버타운 계획도시입니다.”

부쉬도, 장인어른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 튀어나오니 이해가 어려운 모양.

“초호화 실버타운 계획도시?”

“예, 은퇴한 분들을 위한 계획도시이자, 부호들을 위한 계획도시이죠. 조금더 뒤로 넘겨보시겠습니까?”

부쉬와 장인어른이 동시에 샤락, 샤락 팜플렛을 뒤로 넘긴다.

“아, 확실히 룸 컨디션이 대단하군요.”

“방호 설비도 완벽하군요, 허허 섬 지하에 벙커까지?”

“섬 전체에 경찰은 물론 SKY PMC의 경비 인력들이 24시간 순찰을 진행하는군요.”

“애초에 섬 자체에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것도 있습니다.”

나는 웃으며 손가락으로 부쉬가 보고 있는 팜플렛의 중앙의 섬을 가리켰다.

“유일하게 이곳 만큼은 외부인이 출입가능하죠, 일종의 관광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아하, 외로운 노인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기위한 뭐, 그런 의미입니까?”

“정확합니다.”

“계획만 들으면 정말 좋은 곳이군요, 시설도 완벽하고 의료 서비스 역시 완벽해 보입니다. 그림같은 풍경과 더불어, 천해의 자연이 숨쉬는 자연이 곳곳에 있으니, 절로 힐링이 되겠어요.”

난 웃으며 부쉬에게 가입서류를 내밀었다.

“가입하시겠습니까?”

“예?”

“지금 가입하시면 첫번째 고객이 되십니다. 초호화 실버 타운의 첫번째 고객, 섬과 함께 방을 고르실 수 있는 절호의 찬스랄까요?”

“하하하하하, 미스터 천이 지금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까?”

“평생구매는 1억달러, 연단위 계약은 천만달러부터 시작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와우··· 어마어마한 금액이군요.”

“의식주, 모든것을 SKY가 책임집니다. 가끔 방문할 가족들이나 친구분들의 의식주 역시, 가급적 추가지출 없이 해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초호화라고 얘기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첫번째 고객님이시니 SKY가 프로모션을 준비했습니다.”

부쉬가 스륵, 내가 내밀었던 가입서류를 펼친다.

“5년 무료?”

“미스터 프레지던트가 미국에서 고생하셨던 공로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겠지만, 받아주시죠. SKY의 성의입니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의 성의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하하, 친구의 선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것도 좋죠.”

부쉬가 능글맞은 눈으로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고객들은 계속 늘어나겠죠?”

마치 부쉬는 대충 내가 바라는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눈치가 빠른 정치인답다고 해야할까? 나는 부쉬에게 굳이 5천만달러의 가치가 있는 5년 이용권을 주며 첫번째 고객으로 만들었다.

헛돈을 쓰는게 아니라, 미국의 전직 대통령. 그것도 제법 유명한 부쉬도 선택한 실버타운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기도 쉽고, 홍보효과로도 5천만 달러 이상의 효과를 내줄것이라 장담한다.

그러니 결코 헛돈을 쓰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난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예, 정계나 재계에 은퇴할 사람들이 제법 많지 않습니까?”

“하하하, 어째서 초호화 실버 타운이라고 했는지 이해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업가이군요, 미스터 천은.”

장인어른 역시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프레지던트께서 첫번째 고객이 되었으니, 이제 전 세계의 부호들이 달려들겠군요? 프레지던트와 친해질 절호의 찬스 아니겠습니까?”

장인어른의 입바른 소리가 싫지 않은지 부쉬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정계의 호랑이들, 재계의 봉황들이 모두 모이겠습니다. 군부의 독수리들도 모일지 모르겠군요. 벌써부터 전세계의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실 생각을 하니. 허허, 이거 이 나이에 나도 설렙니다.”

난 픽 웃으며 말했다.

“그게 전부겠습니까? 혼자가 되신 적적한 분들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지도 모르죠.”

“하하하, 그렇군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니겠습니까?”

***

1월 1일 광화문 광장.

수많은 국가의 정상들과 외교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단상위에 할아버지를 비롯해 김은정, 후진다로, 고키부리가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한국말로 ‘만세’를 외치는 진귀한 광경이 카메라에 잡힌다.

“어우야, 만세라니.”

손발이 오그라들것 같은 광경에 내 얼굴이 다 화끈한 느낌이다 이정도 국뽕이면 치사량이 아닐까 싶었다.

호석도 곁에서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하하, 회장님 각국의 정상들이 모두 연설을 하려면 제법 길어질 것 같은데, 우리는 모객을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영업뛸 직급은 아니지 않나요?”

“상대가 상대인지다 하하. 돈도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판다고, 마침 자리도 마련되어 있겠다. 난 곧 은퇴를 앞둔 사람들에게 웃어주며 부쉬가 서명했던 계약서를 디밀었다.

“오 미국의 부쉬 대통령이? 그럼 저도 해야지요!”

“이런!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

“무조건 하겠습니다 무조건!”

“저, 정말 새장가 갈 수 있는 겁니까?”

갖가지 이유들로 많은 정상들과 굵직한 정재계인사들을 모객하는데 성공한 나.

그쯤이 되자 할아버지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단상에 섰다.

할아버지가 마이크앞에 서자 절로 주변에 소란스럽던 반응이 정리되고 모두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만 봐도 현 대한민국 정상의 위치가 얼마나 국제적으로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 동북아연맹은 이제 같은 역사를 배우고, 서로의 문화를 흡수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유기적인 관계로 거듭나고자 서로 합의 했음을 이 자리를 빌어 선포합니다!”

호랑이의 포효같은 외침.

그 기백에 눌렸는지 곳곳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각국의 정부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통일된 언어의 중요성을 회의 한 바! 각국의 언어 중 4개국 모두가 어느정도 사용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글, 자랑스러운 한국어를 동북아연맹의 공용어로 채택하였음을 선포합니다!”

“맙소사!”

“그래서 광화문에서 하는 거였어?”

어째서일까? 오늘따라 세종대왕 동상의 입꼬리가 들려 보이는 것은.

< 제 40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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