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03화. >
흑룡강성 일대와 길림성 일대의 넓은 영토에 경제력을 키워내는 일. 그건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단 경제활동이겠죠?”
내 질문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게 문제의 ㄱ부터 ㅎ까지라고 볼 수 있지.”
굳이 a부터 z라는 말을 대신해서 한글로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그러니까 해결책은 매우 간단한겁니다.”
“그러니까 그 해결책이나 말해보라고 인석아.”
할아버지의 대꾸에 고개를 주억거릴뻔 했던 후진다오가 흠칫 놀란다. 내눈을 살짝 피하는게 느껴질 정도.
난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SKY그룹의 몇개의 제조업 공장을 차리면 되겠네요.”
“뭐?”
“어차피 현재도 구름폰 생산량이 수요를 못따라가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렇지.”
“유라시아 횡단철도까지 만들어진 마당입니다. 원래 중국에 진출했던 SKY는 뱃길로 원활하게 생산된 물건을 유통하기 위해 서해와 인접한 곳에 공장을 설립했었죠.”
할아버지가 ‘허!’하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이제 굳이 뱃길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내륙에다가 공장을 내도 상관이 없다?”
“예, 거기에 더해서 빈 부지에 여러가지 사업을 진행하면 되겠군요.”
후진다오가 끼어들었다.
“척박한 환경에 SKY에너지의 발전시설들이 들어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천자시어.”
“그렇지, 노는 땅들이 많을 테니까. 땅덩이에 비해서 인구도 적은 편이고.”
이번엔 김은정이 끼어들었다.
“대규모 산업이 진행되믄, 일자리가 크게 늘테니 확실히 문제가 사라지는 것 처럼 보입네다.”
“거기에 더해 SKY도 이득이겠지··· 싼 값의 노동력을 확보 할 수 있으니까.”
“영향력 역시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곳의 학교도 짓는거죠, 새롭게 말이죠.”
“허, 묘책이군··· 묘책이야.”
할아버지가 감탄을 하며 차를 한 모금 마신다.
김은정과 후진다오 역시 존경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공장의 건설부터 중국의 노동력을 동원해서 짓는다면 지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겁니다. 완공된 공장에서는 또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게 되겠죠.”
“유통망은 이미 확보가 되었으니 공장만 늘어서면 되겠구나.”
“예, 게다가 유라시아횡단철도로 유동인구가 크게 늘어날 겁니다. 거기에 SKY의 공장이 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 한인타운과 같은 것들이 생성될겁니다.”
“기성세대들까지 빠르게 대한민국의 문화같은 것들을 흡수하겠군.”
후진다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생각할수록, 단점이 없는 방법입니다··· 장점들만 가득합니다. 역시 천자십니다! 이 모자란 놈이 천자의 혜안에 그저 감탄을 할 뿐입니다!”
슬쩍 고개를 돌려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호석을 바라보며 눈으로 말했다.
‘쟤 좀 말리세요, 손발 오그라들어.’
‘하하, 저도 광신도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 정말 완벽하게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게 될 겁니다. 중국에게 고토를 천천히 받아오고, 북한과 완벽한 흡수통일을 하게 된다면요.”
할아버지, 후진다오, 김은정이 진중하게 표정을 바꿨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닿게 된 대한민국의 상황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장은 아니지만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차차 해결을 해 나가야 할 것 같구나.”
“그래서 말인데 흥룡강성의 요지에 발사대 몇개를 설치할까 싶네요.”
“원초적인 위협이구나.”
“여차하면 러시아 어느곳이든, 중단거리 미사일로도 충분히 요격할 수 있다는 정도의 뉘앙스만 풍기는 거죠.”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구나, 시간이 좀 더 필요해.”
“예, 시기는 북한을 완전히 흡수통일 했을때로 가시죠.”
“오냐.”
나는 김은정을 바라보았다.
“이제 북한에 대해서 얘기해야겠지?”
“말씀하시라요, 동무. 귀 열고 듣갔습네다.”
북한에 대한 얘기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보고 말했다. 사실 북한의 동의가 필요하다기 보다는 할아버지의 동의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흡수통일 발표는 북한인들의 평균임금 수준이 우리나라의 80퍼센트가 달성되었을 때가 적당해 보입니다.”
“기존 계획은 100퍼센트가 아니었더냐?”
“점진적인 적응이 필요하니까요, 미리 언질을 해 둬야 반발이 적을겁니다.”
“그렇지.”
“그리고 북한 자체를 특별 자치구의 형태로 한동안 북한의 고위관료들이 그대로 통치하게끔 유도를 해야 합니다. 그 안에 서서히 대한민국이 개입해야겠죠.”
할아버지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구나.”
“그리고 지금의 김은정을 그대로 특별자치구장 정도로 임명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은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무, 내레 기런 자리를 바란 적 없습네다. 고저 인민들이···”
“헛소리 말고, 눈에 욕심이 가득한데.”
“커험.”
“특별자치구장 자리 오래 안간다. 길어야 10년이야. 그거 지나면 너도 똑같이 선거해서 뽑혀야 될 거야.”
“알갔습네다. 감사합네다 동무.”
할아버지가 날 바라보며 묻는다.
“10년?”
“그 정도면 완벽하게 흡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사이에 북한은 지워지고 완벽한 하나의 대한민국이 자리 잡겠죠.”
“흐음, 그렇게 예상한다라.”
“지금 대한민국처럼 똑같이 도단위로 나누고 시단위로 나누고, 그렇게 가면 될 것 같습니다. 10년 이후에는요.”
“나쁘지 않은 방법 같구나.”
“계속해서 전문가들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적용할테니까,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 나가야죠.”
“오냐, 알았다.”
사실상 통보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내 할아버지가 아닌가. 최대한 예의를 갖춘 것이었다.
김은정이 질문이 있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왜?”
“그것이··· SKY는 북한쪽에는 진출을 안 합네까?”
잔뜩 서운함과 아쉬움을 달고 조심스럽게 묻는 김은정의 말에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SKY가 다 해먹으면 나라 망하는거야.”
“어째서 그럽네까?”
“자유경쟁이 있어야 가격도 경쟁을 하고, 품질 좋은 제품도 나오는게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야. SKY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통일될 북한, 그리고 고토로 받아들일 중국땅까지 다 먹어버리면, 원래의 기업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단 얘기다.”
“으음.”
“그럼 SKY가 마구 횡포를 부릴 수도 있는 거지.”
김은정이 픽 웃으며 말한다.
“동무께서 그럴 사람이라고 보여지진 않습네다.”
할아버지가 혀를차며 말했다.
“네 놈이 뭘 모르는게다. 이 놈은 아귀도 씹어먹을 놈이야.”
북한정도의 작은 시장을 굳이 차지할 생각은 없었다. 대한민국의 땅에서 미래에 지어질 과거의 고토에서 운영되는 공장들로도 충분히 대한민국이란 거대한 나라의 내수시장을 먹을 자신도 있었다.
후진다오가 불쑥 김은정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저것이 천자의 아량이외다. 강자의 아량.”
할아버지가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고는 철웅에게 휙하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
“고키부리 그 놈은 언제 온다더냐?”
“지금쯤 남해 인근에 비행기게 도착했을 것입니다.”
“족히 30분은 넘게 걸린다는 얘기구나.”
“예, 대통령님.”
“알았다.”
짝.
분위기도 환기 시킬겸, 박수를 치고는 말했다.
“기다리기도 지루한데 술 한잔 하면서 카드게임이나 칠까요?”
“이 놈이 이제 할애비 돈을 뜯어가려고 작정을 했구나.”
“에이, 월급도 많이 받으시는 분이. 듣기로는 어디다 쓸데도 없으시다고.”
“커험.”
***
“올인!”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칩을 다 넣었다.
후진다오 역시 모든 칩을 밀어 넣었다.
김은정은 진즉에 칩이 다 떨어졌기에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나의 결정.
헐레벌떡.
그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급하게 장내로 들어온 고키부리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호석이 손을 뻗어 그를 만류하는게 선명하게 보였다.
“음, 이제 끝낼때가 되었네요. 올인.”
내 입에서 올인 콜이 떨어지자마자 할아버지가 ‘에잉!’하면서 카드를 오픈했다.
클로버Q와 스페이드Q가 오픈된다.
후진다오의 패는 다이아몬드 A와 스페이드 J.
이어서 오픈된 나의 패는 다이아몬드K와 하트K.
흥미진진한 게임이었다. 물론 확률적으로 내 패가 가장 승률이 높았다.
착, 착, 착.
철웅의 손에 의해 보드가 열리고.
승리는 내가 차지했다.
“이거 원, 카드게임만 하면 이겨버려서 하하.”
“에잉, 어디가서 잘 지질 않는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할아버지.
‘과연!’하는 표정으로 날 존경해마지않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후진다오와 김은정.
“자, 오늘 술은 김은정이 사는걸로?”
김은정은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술 내기가 걸린 게임이었기에 패배한 김은정은 흔쾌히 승낙했다.
“하하, 사택으로 모시겠습니다.”
대충 테이블이 정리된 것 같으니 고키부리가 재차 인사를 해 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천상!”
그는 할아버지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하고는 내게도 90도로 고개를 조아리며 예를 표했다. 나머지 후진다오와 김은정은 신경도 쓰지 않는 태도였다. 그저 가벼운 인사만 오갈 뿐.
“늦었구만.”
카드게임에 져서인지 할아버지가 잔뜩 언짢은 표정으로 말하자 당황해보이는 고키부리가 고개를 푹 숙이며 자리에 앉는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려 했습니다만, 죄송합니다.”
이제 그는 한국인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거의완벽한 발음으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됐고, 일 얘기나 하지.”
할아버지의 말에 어울리지도 않게 눈을 똘망똘망하게 뜬 고키부리가 할아버지에게 집중한다.
“한, 중, 북, 일. 이 4개국이 합작해서 교과서를 발행하고, 같은 교육과정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교육하고, 앞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와 언어등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기 위한 일환이지.”
고키부리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자칫 그의 입장에서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처럼 비춰질 것이라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이내 믿기지 않는 얼굴이 되어서는 후진다오와 김은정을 바라본 그.
“중국과 북한이 동의한 사항입니까?”
“천자의 명이니 따를 뿐이외다.”
“어차피 우리 공화국은,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했소.”
순순히 동의했음을 표하는 후진다오와 김은정.
눈치가 빠른 고키부리는 눈알을 굴리다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동북아의 패권은 완벽하게 대한민국에게 넘어갔다는 것을 말이다.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는 고키부리.
그리고 그 패권의 뒤에는 실질적인 SKY, 그러니까 나의 지배가 있다는 걸 아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반발이 있을 겁니다.”
해결해 달라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고키부리.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꼴 아닌가.
“메이지유신.”
고키부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것처럼 그냥 한국을 받아들여, 그게 일본이 살 길이야. 이해가 어렵나?”
“으음.”
“지금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공포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맞습니다.”
“이런 시기에 몰아붙이자고, 그 대신 한국과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식의 선전을 해.”
“으음.”
생각해보니, 대한민국, 북한, 중국, 일본이 같은 교과서와 같은 교육과정을 갖는 일이었다. 뭐가 어떻게되던 공개적일 수 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할아버지, 우리도 NATO같은 기구나 하나 만들까요? 동북아 연합이라던지, 아시아 연합이라던지.”
“기구?”
“예, 그동안 동북아는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요, 나아가 아시아의 패권역시 우리에게 있다고 보니까요.”
“그거 나쁘지 않은 생각이구나. 그 기구에 우리 4개국이 포함되면서 자연스럽게 동북아의 평화가 찾아오고··· 호오.”
< 제 40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