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02화. >
SKY그룹, 정확히는 SKY LINE과 SKY 여객이 함께 주도한 사업이자. 사상 유례없을 만큼 기다란 철도이기도 한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개통식.
그런 행사에 내가 참여하는 게 이상할 일 없는 그런 행사였다. 문제는 북한의 김은정과 중국의 후진다오가 참석했다는 것.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외교관계자들과 대통령이신 할아버지가 참석해야 할 만큼 규모 있는 행사가 되었다.
세 국가의 기둥이 움직이니 해외 유수의 언론들은 물론이고 국내의 언론인들까지 행사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천자시어, 오랜만에 뵙습니다.”
후진다오의 격한 인사에 웃으며 그와 악수를 나눴다. 감개가 무량하다는 표정을 지은 후진다오는 정수리를 내 보이며 존경을 표한다.
반면, 할아버지와의 악수는 국가의 정상끼리의 정상적인 악수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드라이했다.
할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평상시라면 핀잔을 늘어 놓으셨겠지만, 지금은 언론의 카메라가 두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 별 다른 말 없이 그렇게 악수를 하고는 끝났다.
이어서 김은정이 내게 다가와 밝게 웃는다.
“천우진 동무, 말씀하신대로 6개월 안에 끝냈습니다.”
“고생했습니다.”
“하하하, 이제 우리 공화국에도 빛이 들겠디요?”
못본 새, 김은정의 얼굴은 매우 좋아보였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수행원들의 얼굴 역시 평소와 다르게 수척해보이는 모습이 아닌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모습이었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맛을 본 사람들이란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김은정은 할아버지에게 예를갖추어 인사했고, 그 모습에 할아버지는 흡족하게 웃으며 내 곁에 섰다.
할아버지의 오른쪽에는 김은정이, 내 왼쪽에는 후진다오가 서고, 나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섰다.
곧이어 준비된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띠를 가위로 자르고는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개통을 알렸다.
나는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마이크 앞에 섰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부산과 목포에서부터 열차로 북한과 중국, 나아가 중동아랍과 아프리카 대륙까지 연결 할, 역사상 유례없는 철도를 개통하게 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란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귓가를 먹먹하게 만든다. 웅웅 거리며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가득하지만 그 소리에 긍정적인 느낌이 담겨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유통혁신, 물가의 안정화. 그것을 위해 북한과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과 SKY가 합작하여 만든 이 철도는 국민여러분을 비롯해 전 세계인의 행복한 여행코스가 될 것이며 저렴해진 물가에 흡족한 사업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또한, 오늘로서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 완전 개방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짝짝짝짝.
사전부터 여러번 언론의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던 만큼, 가벼운 박수로 국경개방이라는 것에 화답하는 사람들.
제법 충격적인 소식일테지만 이미 수차례 보도된 만큼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았던 모양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출발해 북한, 중국을 넘는 국경은 간단한 입국심사만 걸쳐도 통과 될 것이다. 이미 북한과 대한민국은 서로 활발하게 왕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의 사람들의 인건비 역시, 대한민국을 기준해 40퍼센트 수준까지 올라온 상황이었다. 점진적으로 평균 인건비 수준을 계속 끌어올릴 생각이며 종래에는 같아졌을 때, 완전한 흡수통일을 발표 할 생각이었다.
얼른 열차를 타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니 나는 이만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며 단상을 내려왔다.
곧 축하 공연이 시작되고 나와 할아버지, 김은정과 후진다오는 조용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우리가 다시 모인 곳은 열차의 두 개의 시작점 중 하나인 부산에 위치한 역사의 꼭대기였다.
본래라면 관광객들을 위한 전망대와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같은 것들이 영업을 해야 할 곳이지만 오늘은 휴무이기에 텅비어 있는 곳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후진다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선물을 준비하셨다고요?”
후진다오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천자께 약속했던 땅을 반환하고 싶나이다.”
중국어가 약하신 할아버지는 조용히 차를 드시고 계셨다. 아마 할아버지가 말을 알아들으셨다면 당장 찻잔을 내려놓으셨을 터였다.
“흐음.”
나는 마냥 좋아하진 않았다.
아직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대한민국과 북한이 통일 된 것도 아니었다. 아직 흡수통일을 위해서는 바닥에서부터 주춧돌을 다져야 할 상황이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황이라고 해도, 북한의 모든 인구를 먹여 살릴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물론 그들이 대한민국의 3D산업에 종사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지금은 은혜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후진다오가 고구려의 땅을 주겠다고 하네요.”
“뭐?”
서둘라 찻잔을 내려놓은 할아버지.
“고구려의 땅? 고토를 반환하겠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할아버지가 후진다오를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내게 시선을 맞췄다.
“어디서부터 어디를?”
후진다오가 불쑥 끼어들어 조금은 어눌한 한국말로 말했다.
“흑룡성과 길림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으음, 만주땅은 북경이랑 너무 가까워서 뺀 모양이야.”
“공화국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벌써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에요, 아시죠?”
“그렇지··· 당장 차이나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닐테니까.”
북한을 천천히 흡수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제 북한의 평균 임금 수준은 중국을 뛰어 넘은 상태였다.
한 마디로, 중국에서 반환한다는 영토까지 받기에는 대한민국의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SKY는 물론이요, 대한금고와 록펠러 뱅크의 자금까지 끌어와야 가능할까 말까한 상황이었다.
물론 완벽하게 흡수만 해 놓는다면 인구수가 주는 메리트가 있으니 훗날에는 크게 성장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라는 것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방법이라는 게 필요한 법이었다.
다짜고짜 땅덩이와 인구수만 늘린다고 모든 게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일단 발표는 안 했겠지?”
내 물음에 후진다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디에 따로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천자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헌데, 제가 실수를 했나 싶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좋아. 아주 좋은 일이지. 그런데 시기가 아쉽네.”
“그렇습니까.”
기껏 준비한 선물인데 내가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으니 아쉬운 표정을 짓는 후진다오.
할아버지는 ‘저 새끼 왜 저래?’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신다. 차마, 천우진교 광신도에요 하고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입을 닫았다.
“천천히 흡수하는 방향으로 가죠, 일단 발표는 북한을 완벽하게 흡수했을 때로 하고.”
김은정과 후진다오, 그리고 할아버지도 그게 옳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단절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많은게 다를 겁니다. 아무리 흑룡강성과 길림성에 많은 조선족이 분포해 있다고 해도, 문화가 달라졌을 거에요. 교육도 마찬가지고.”
“그렇지.”
“대한민국의 진짜 역사를 설명하려면 시간도 오래걸릴 겁니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시간도 오래 걸릴거고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아는 것이다.
“유스부터 가시죠 할아버지.”
“어린아이들부터 새롭게 교육하자는 말이구나.”
“예, 지금의 세대는 변화가 어렵겠지만, 앞으로 나라의 기둥이 될 아이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니까요.”
“그렇지.”
“우선 중국의 교과서부터 만지는게 맞는 것 같네요.”
후진다오를 바라보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북한과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같은 교육과정을 진행시키고 같은 교과서를 사용해야 할 겁니다. 같은 역사를 배운다는 얘깁니다.”
할아버지가 불쑥 입을 여셨다.
“일본도 가져오지 그러느냐? 대한민국의 과거 삼국시대에 분명, 지금의 상하이는 물론이고 많은 부분이 백제의 영향권에 있었지, 일본은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의 양형을 받기도 했고.”
“그건 좀, 정확하지 않은 정보인데요 할아버지.”
“앞으로 교육을 바꿔가겠다며?”
소름돋도록 무감정하게 말씀하신 할아버지.
분명 현대 대한민국, 정확히 나는 일본과 북한 중국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다. 그들의 꿈나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얼마든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분명 국뽕에 심취한 역사학자들이 그린 과거의 한반도의 지도는 어마어마 했다. 고구려와 고조선까지 넘어간다면 그 규모는 더욱 어마어마했고.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은 물론 러시아 역시 우리의 고토에 해당할 정도였다. 중국도 서해와 맞닿아 있는 영토는 대부분 백제의 영토이고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할아버지의 말씀은 어마어마하게 무시무시한 말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에게 그렇게 교육을 하게 한다면, 마치 동북아 국가의 중심에 대한민국이 서게 되는 일이니까.
“천번이 넘는 침략을 이겨냈다는 대한민국 역사가 송두리째 바뀌겠는데요 할아버지.”
“중국과 일본이 과거의 복수를 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와우, 그렇게 가자고요?”
“커험, 어찌되었든 그렇게만 된다면야··· 지금의 국제정세 판도는 크게 바뀌겠구나.”
이미 대한민국은 전세계가 인정하는 초강대국의 반열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상임이사국이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몇년을 보세요?”
“개정된 교과서가 완벽하게 흡수되려면 최소한 30년은 있어야겠지?”
“영향력을 행사하려면요?”
“15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구나.”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고, 국가에서도 별 말 없이 인정을 해버린다.
그건 어느 순간 기정사실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얼마전에 고키부리가 총리가 되었죠?”
멀찍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호석이 나타나 그렇다고 대답을 해준다.
“고키부리 여기로 부르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회장님.”
“예, 최대한 빠르게 와달라고 해 주세요.”
“예, 회장님.”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와 후진다오, 그리고 김은정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고키부리가 올 때까지 잠시 교육 얘기는 뒤로 미루고, 이제 물질적인 얘기를 하죠.”
모두가 동의를 표했다.
“일단 흑룡강성과 길림성의 평균 임금은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얼마나 됩니까?”
두 성이 그렇게 경제적으로 대단한 곳들은 아니었다. 중국 내에서도 제법 먹고 살기 팍팍한 동네들이란 뜻이었다.
2020년이 넘어간 시기에도 중국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던 사회였다. 그런 사회가 현재는 어떨까? 북한과 비슷한 실정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사실··· 제대로 조사가 안됩니다.”
후진다오의 말에 할아버지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한족 외에는 관심이 없는게 아니고?”
날카로운 독설이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왔다.
후진다오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조선족 추정 인구는 얼마나 돼?”
“약 16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60만명.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는 소수민족일 뿐이었다.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는. ‘한족’이 아니라면 중앙정계는 물론이고 국가 요직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중국의 한계였다. 2020년이 넘어간 시기에도 체재 불안이라는 스트레스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던 중국이었다.
“허허, 난감하구나. 이거 마냥 영토가 넓어진다고 좋아 할 일은 아니야.”
할아버지의 한탄에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돈이 문제란 얘기잖아요?”
“그렇지, 언제나 세상만사가 돈이 문제구나.”
“그럼 돈만 있으면 해결이 되네요?”
“이 놈아, 밑빠진 독에 굳이 물을 부으려고?”
설마 그럴리가 있겠는가.
“에이, 저 그렇게 멍청한 놈 아닙니다.”
“오오, 천자시여 혜안이 있으십니까?”
“있지.”
할아버지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날 바라본다.
내겐 아주아주 쉬운 일이었다.
“말해보거라, 그 혜안.”
“궁금하세요?”
“이 놈이 또 의뭉을 떠는구나.”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매우 궁금하단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와 후진다오, 그리고 김은정을 바라보았다.
보이진 않지만 뒤쪽에서도 호석이 잔뜩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 제 40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