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8화. >
푸틴의 보좌관 세르게이가 빠르게 푸틴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걸이에서 그가 현재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똑똑.
-들어 와.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 빠르게 푸틴의 앞에 선 보좌관이 발을 구르며 경례를 올린다.
“왜?”
“SKY그룹 천우진 회장의 연락이 왔습니다.”
“천우진?”
“예, 각하.”
와락 인상을 구기는 푸틴.
“정보총국장 소환 해.”
“이미 소환 했습니다.”
“잘했어. 내게 전화를 건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안 물어봤나?”
“각하와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전해왔습니다.”
“흐음···”
푸틴이 고민하는 이유.
그것은 정보총국장에게 한국의 천우진을 감시하라고 명령하고 바로 다음날이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도, 감시원과 첩보원을 여럿 잡아 낸 천우진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문제가 있을까 하고 지레짐작 하는 것이었다.
“후, 고작 장사치 전화에 내가 이런다고?”
와락 인상을 구기던 푸틴이 화가 난 것처럼 거칠게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어올리고는 말했다.
“연결해.”
-예!
뚜~ 뚜~
두번의 수화음이 지나고.
“전화받았소.”
푸틴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튀어나왔다.
-오랜만입니다. 대통령님.
“글쎄, 우리가 안부를 물을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푸틴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게, 그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갔을 때, 상대는 어련히 알아서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었지만 천우진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지금도 반응을 보라.
‘네 기분이 나빠? 오케이 그럼 할말만 할게?’
하고 통보를 하는 것 같잖은가.
“그러지.”
-만납시다.
“뭐?”
-만나자고요, 긴히 할 말도 있고.
“내가 당신이 만나자고 하면 아무때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던가?”
-날 만나서 러시아에 손해가 된 적 있습니까?
“······”
분명 손해는 아니었다.
더러운 기분과는 반대로 분명 러시아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갔었다. 고려인 특전단을 포기하는 대가로, 유럽에 최소한 5년 정도는 안정적으로 원유등의 지하자원을 계속해서 팔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현 체재의 불안함을 더 빠르게 체감할 수 있었고, 변화를 모색하고 새로운 송유관과 가스배관을 증설하면서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기분은 별게의 문제였다.
어째서인지 천우진과 만남을 가지고 나면 꼭, 기분이 더러웠던 것이다.
그렇기에 YES or NO.
그 대답이 어려운 푸틴이었다.
“이번엔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러시아인 한명을 원합니다. 아 정확히는 그가 원하는 사람들을 원한다고 해야되나?
“러시아인 하나?”
천우진은 한 명이라 표현했고, 푸틴은 하나라고 표현했다. 단적으로 현 상황만 보더라도 푸틴은 러시아인을 중요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이었다.
천우진과 푸틴.
둘의 사상부터 차이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방증.
-그를 한국으로 귀화시키는 조건, 정확히는 그의 팀 정도가 되겠네요.
“그 조건을 가지고 나와 거래를 하겠다?”
-예, 어떻습니까?
푸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과연 지금 천우진이 원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누구를 원하기에 자신에게 만남을 요청할 정도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얼마나 천우진에게 중요한 인물인가 하는 계산으로 바쁘게 머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제기랄.”
푸틴의 입에서 러시아 욕이 튀어나왔다.
머리를 바쁘게 돌려보지만 천우진에대한 밀착 감시를 지시한지 고작 하루 전이었다.
아직은 천우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뜻.
수화기너머 천우진은 푸틴의 욕설따위는 신경쓰지도 않는지 제 할말을 토해냈다.
-말 나온김에 바로 처리하시죠? 피차 바쁜 일정 아닙니까? 언제가 편하십니까? 나는 오늘도 나쁘지 않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의 일정이 그렇게 번갯불의 콩 구워 먹듯 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오?”
-그러니 묻는 것 아닙니까?
“그대는 정말 목숨이 여러개인 사람 같아.”
서슬퍼런 협박과 같은 푸틴의 말.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는 피식 웃는 천우진의 여유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하, 그런말 자주 듣습니다. 다행히 멀쩡하게 살아있네요?
“약속장소는?”
-어디가 편하시겠습니까? 되도록이면 내가 탄 비행기가 러시아 상공을 날아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래도 목숨 귀한줄은 아시는군.”
-내가 추위를 많이 타서 말이죠.
“하, 되도 않는 유머를 던지고 있군.”
-어디보자··· 벨라루스, 여기 좋겠네요 어떻습니까?
“벨라루스라···”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니까, 대통령께서도 어렵지 않은 곳이리라 봅니다.
“괜찮은 중립국이 되겠군.”
철컥.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보총국장.
푸틴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째려보자 그가 각잡힌 모습으로 발을 구르며 목소리 없이 경례를 올린다.
푸틴이 빠르게 손짓으로 그에게 다가오라고 하고는 입을 열었다.
“관계자들과 상의를 하고 일정을 통보하지.”
-편하실대로, 오늘부터 벨라루스에서 좀 쉬고 있겠습니다.
“알아서 하시오.”
-그럼 연락 기다리죠.
전화가 끝나고 수화기를 부술듯 내려놓은 푸틴이 정보총국장을 쏘아보았다.
“천우진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그렇습니까.”
“현재 천우진의 위치는?”
“중국과 북한의 경계라 할 수 있는 백두산 부근에 있는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백두산 인근?”
“예, 정확한 위치는 더 파악하고 있습니다.”
“최근, 천우진이 접촉한 우리 러시아의 인민이 있나?”
정보총국장의 얼굴에서 당황이 읽힌다.
그가 알지 못하는 정보인 모양.
“쯧쯧.”
“죄송합니다. 각하.”
“천우진이 내게 거래를 요구해왔다.”
“감히!”
“됐어, 실익을 따졌을때 그 놈과 거래를 하면 내게 손해는 아니었으니까.”
“천우진의 요구사항이 무엇입니까?”
“러시아인의 귀화를 요청하더군.”
“그자가 누구입니까?”
푸틴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걸 알아오는게 네 역할 아니야?”
“아···”
“날짜는 언제가 좋겠어? 위치는 벨라루스. 천우진과 직접 만남을 갖는다.”
품에서 수첩을 꺼낸 정보총국장이 빠르게 날짜를 살핀다.
“이틀뒤 오후 2시. 그때가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
정보총국장의 뒤쪽 보좌관을 바라보는 푸틴.
“SKY에 연락해, 이틀뒤 오후 2시에 보자고, 적당한 약속장소는 정보총국장과 상의하도록.”
“예, 각하.”
다시 시선을 정보총국장에게 옮긴 푸틴.
“놈을 만나기 전에, 놈의 요구조건이 무엇일지 가져와. 그걸 알아야 제대로 된 거래를 하지.”
“명심하겠습니다.”
“움직여!”
정보총국장과 보좌관이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지고, 푸틴은 집무실 의자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후우··· 기막힌 타이밍에 거래를 요청한다라··· 이러니 기분이 좋을 수 있나?”
조용하게 지내던 푸틴이 앞으로 바쁘게 움직이려는 계획을 세우는 찰나에 연락이 왔다.
타이밍이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앞으로 러시아와 공생 관계에 있는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넓히려던 푸틴.
그 이유조차 SKY때문이기에 그는 SKY그룹 천우진의 연락이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어쩌면 러시아에게는 원수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SKY이기 때문이었다.
“장사치에게 뭐하는 짓인지 원···”
그리고 그는 심히 자존심이 상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과거 미국과의 자존심 문제로, 러시아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어 우주경쟁에 나섰던 순간이 있었다. 미국 역시 그런 러시아에게 지지 않으려고 더 많은 자본을 쏟아부었던 우주경쟁.
그 끝은 결국 러시아의 패배였다. 1차 산업에 매진하던 러시아의 말로가 보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 러시아는 작은 이득을 취했었다.
바로 우주산업에 관련된 원유와 같은 기반 연료들을 판매하면서 말이다.
미국은 참 웃기게도 세계 최고의 원유 생산국가지만, 그들은 원유를 수입해야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원유의 양보다 생산되는 원유의 양이 더 적기 때문이었다. 사실 러시아에게 미국은 아주 좋은 호갱님이라는 뜻.
그 호갱님들이 열심히 우주개발을 한다고 나서주니 절로 ‘부유’해졌던 순간이었다. 물론, 그 이후 우주경쟁이 끝나고 일시적으로 유가가 하락해 다시 피해를 입었지만 말이다.
“일개 기업을 국가처럼 대할수도 없고, 미치겠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푸틴이었다.
***
벨라루스.
미녀수출금지법이라는 허무맹랑한 법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이 나라는 희한할 정도로 미녀가 많았다.
그냥 가만히 호텔의 발코니에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될 만큼.
“약속장소의 선택은 탁월하셨습니다 회장님.”
흐뭇한 얼굴의 호석이 내뱉은 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가를 뻑뻑 태웠다.
“오늘이 이틀째죠?”
“예, 회장님. 약속장소에 이미 대원들을 보냈습니다.”
“철저하네요.”
“저격이 가능한 위치까지 모두 사수했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이 가시면 됩니다.”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차량으로 5분정도 이동하게 됩니다.”
“걸어가면요?”
호석이 으음. 하고 낮게 신음했다.
“도보로 10분정도 거리입니다.”
“오랜만에 좀 걸을까요?”
“운동이 부족하신 건 아니신데 말입니다.”
“그냥 걷고 싶네요, 풍경이 좋잖아요?”
아이돌, 연예인 저리가라 할 미녀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비중이 여자가 훨씬 높은 도시였다.
뭐 꼭, 그게 풍경이 좋다는 건 아니고.
“커험, 그러시죠, 준비하겠습니다.”
준비는 순식간에 끝났고, 걷다보니 어느새 배가 출출하다는 걸 느낄 때 쯤.
나는 푸틴과의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안 온 모양이네요.”
“러시아쪽 경호원들이 온것으로 보아 곧 도착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식당의 정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사전에 미리 어떤 언질이 있었는지 식당에는 러시아의 경호원들과 우리 PMC의 대원들 뿐이었다.
곧.
오른손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 특유의 걸음걸이로 푸틴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걸음걸이가 특이한것은 오랜 훈련을 통해 몸에 각인된 버릇같은 것이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최단거리, 최단시간으로 허리춤에있는 권총을 뽑기위한 최적의 자세.
이제는 권총을 소지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그 버릇을 버리진 못했나 보다.
단적으로 그의 걸음걸이만 봐도, 그가 얼마나 철저한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것과 같았다. 역시 만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
“오랜만입니다.”
“글쎄, 우리가 반가운 사이일지는 모르겠군요.”
“반갑다고는 안 했는데 말이죠.”
나는 굳이 그를 반기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앉아있는 상태 그대로 인사를 했을 뿐이다.
뭐가 못마땅한지 잔뜩 눈에 쌍심지를 켠 그의 보좌관이 날 째려본다. 그에 질세라 호석 역시 보좌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쓸 데 없는 신경전을 접어두고, 본론이나 합시다. 피차 고기나 썰면서 웃을 사이는 아닌 것 같으니.”
전적으로 푸틴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툭툭, 해양 태양광 발전시설에 대한 개발 완료 보고서를 들이밀었다.
“하, 또 태양광이군.”
짜증난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푸틴에게 나는 여유롭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5년추가. 해양 태양광기술까지. 유럽에 보급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기술이전은 없단 소리죠.”
“5년··· 5년이라.”
얼굴 한 가득 탐탁치 않음을 표현하는 푸틴.
그러나 그는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러시아는 1차 산업 기반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2차, 3차, 4차 산업 시대에 접어든 세계.
아직 러시아는 매우 낙후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그 잘난 친환경 재생 에너지로 날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으르렁 거리는 북극곰 같은 푸틴의 얼굴.
“난 5년을 추가하겠다고 했을 뿐입니다만, 친환경 재생 에너지가 무서우신 모양입니다?”
“하, 그대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이오?”
나는 보리스의 프로필을 툭 하니 개발서 위에 얹었다.
“으음··· 보리스군.”
“SKY가 이번에 항공우주국을 새롭게 신설하려고 합니다.”
“로켓기술이 필요하다?”
“SKY는 이제 우주를 개발하고 싶거든요.”
“SKY가 아니라 당신이겠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SKY가 내것이니.”
“우주라··· 피식.”
푸틴이 아주 흡족하게 비웃는 걸 놓치지 않았다.
“겨우 보리스면 충분합니까? 5년 추가 동결?”
“충분합니다.”
“그에게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군.”
“내가 볼 땐,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푸틴이 흡족해 하는 이유.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우주 개발이라는 명목은 돈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사업이었다. 거의 깨진 독에 물을 붇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
그러나, 나는 헬륨-3의 가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단 1g의 물질이 석탄 40t의 에너지 효율을 보인다는 것 역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 세계가 달에 집중하는 이유 역시 미래의 일이지만 잘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우주에 별 관심이 없을 때, 선두두자의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 세계 에너지원의 판도를 뒤 엎을 헬륨-3를 위해서.
“승낙하지. 앞으로도 친환경 재생 에너지로 러시아를 휘두르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림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군.”
“두번이나 써먹었으면 나도 만족합니다. 애초에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기술도 아니고.”
“흥.”
푸틴이 묘하게 콧방귀를 끼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가 속으로 기뻐하고 있음을 난 놓치지 않고 캐치할 수 있었다.
“실컷 비웃어 둬, 나중엔 경악 할 테니까.”
“뭐라고?”
내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 푸틴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영어로 말했다.
“또 봅시다.”
“흥.”
< 제 39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