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7화. >
조용히 CCTV영상과 대원들의 헤드캠, 몸캠으로 촬영된 영상을 감상한 보리스가 입을 열었다.
“흐음, 이 사람들이 러시아 정부가 보낸 요원들이 맞습니까? 모두 동양인인데?”
“정보국에서 비밀리에 키우던 고려인특전단이라고 하더군요.”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군요.”
보리스의 의심을 이해 못할 건 없었다.
의미가 없는 동영상을 치워 버리고 나는 보리스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애초에 내가 무슨말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군요?”
보리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사실 나는 러시아의 군사력, 특히나 정보국에서 운영하는 비밀리에 훈련받은 요원들의 악랄함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기에 미국의 제안도 여러번 거절했었죠.”
“SKY가 미국보다 모자라다?”
“표현이 그렇게 됩니까?”
부정은 하지 않는 보리스.
곁에서 함께 대화를 듣고 있던 호석의 얼굴이 별로 좋지 못했다. 아마도 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긴 모양.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만남에 응했습니까?”
“비공식 세계 최고의 부자 아닙니까? 그런 인물은 과연 날 왜 보자고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솔직한 대답이없다. 숨김이나 보탬역시 있어보이진 않았다.
“그랬군요.”
“뭐, 보기보다 평범했습니다. 앞으로 SKY는 우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생각인가봅니다. 이제 러시아는 한풀, 우주에 대한 관심을 끊었는데 말이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그.
그의 전문 분야가 로켓기술인데, 그 기술을 지금은 무기에만 사용하고 있을테니 그의 억울함이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러시아의 경제상황을 봤을때, 돈이 많이 들 우주 산업에 몰두하는 건 당연히 어렵겠죠.”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
“그렇습니다. 나날이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으니까요.”
인민이 아닌 서민이라는 표현을 하는 그.
단적으로 그가 공산주의에 뇌수까지 절여진 인물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증거였다.
“지금의 러시아가 체재를 언제까지 유지 할 수 있을거라고 보십니까?”
“갈수록 러시아의 국력은 쇄락할 수 밖에 없겠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디니까요, 기반사업 역시 문제가 되고 있죠, 원유와 천연가스같은 지하자원에 너무 크게 기대고 있어요, 단적으로 베네수엘라나 기타 국가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일이죠, 그나마 러시아라는 덩치가 있기에 버틴달까?”
비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아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는 보리스였다.
“그럼, 러시아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픽 웃음을 흘리는 보리스가 날 빤히 바라보고는 묻는다.
“지금 내게 경제 교육을 하는 것입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당신이 바라보는 러시아가 궁금할 뿐입니다.”
“원유 혹은 천연자원의 가치 폭락이 가장 위험하겠죠, 체재 기반 전체를 흔들 만큼.”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유값이 폭락한다.
그러면 가장 위험한 국가는 러시아였다.
물론, 전 세계 전체가 경제위기를 맞이 할 수 있었다. 원유값의 폭락은 연쇄적으로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될 테니까. 물론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손해를 보는 이가 있으면 이득을 보는 이가 있지만,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할 지구촌 사회에는 분명 큰 타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 얘기는 왜 꺼내십니까?”
스윽, 이번에는 다른 서류를 내밀었다.
“혹시, 친환경 재생 에너지라는 말을 아십니까?”
내가 내민 서류를 확인하며 입을 여는 보리스.
“예, 얘기는 들어봤습니다. 지하자원 고갈에 따른, 새로운 에너지 생성원을 얘기하는 것이겠죠, 러시아에서도 몇개의 원전을 추가로 짓고 있을 만큼 에너지는 앞으로···”
한창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입을 멈춘 보리스.
그의 시선은 내가 건네준 서류에 고정되어 있었다.
“전기생성··· 사실입니까?”
“거기 적힌 그대롭니다.”
보리스가 잠시 테이블을 툭툭 두들기다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현 러시아의 송유관 및, 가스배관 증설과 관계가 있겠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푸틴도 정확히 알고 있죠, 유럽에 향후 5년간 해당 기술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러시아에서 얻어온 게 좀 있거든요.”
노트북을 툭툭 두들기자 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고려인 특전단?”
“예, 난 그들을 얻어왔습니다.”
“어째서 이런 경제적 효과를 뒤로하고 사람을 얻어오셨습니까?”
“SKY는 돈이 부족하지 않거든요.”
“······”
“또한, 전쟁 억제의 개념도 있었다고 얘기하겠습니다.”
“전쟁억제?”
“당신의 입으로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현 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러시아는 최선을 다해, 원유의 가치와 천연자원, 지하자원의 가치를 사수 해야 할 것이라고. 아마 유럽에서 친환경 재생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러시아는 태풍의 눈이 되겠죠.”
“······”
보리스는 차마 부정할 수 없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SKY는 아직 러시아를 상대할 힘이 없거든요, 물리적으로 말이죠.”
“물리적으로라···”
“대인전은 모르겠지만 일개 기업이 하나의 국가와 전쟁을 벌일 순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 기간을 고작 5년으로 본 것입니까?”
눈치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일개 기업이 일개 국가와의 전쟁을 준비하는데 5년.
얼토당토 않는 소리라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SKY란 기업이 러시아와 당당히 1:1맞짱을 뜰 수 있는 시기를 5년으로 봤다는 얘기였다.
“부정하지 않으시는군요.”
“사실, 자신 있습니다. 정확히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아니라 푸틴과의 전쟁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보리스.
“러시아인 앞에서 대놓고 러시아의 대통령을 죽여버리겠다 얘기하다니 대단하군요.”
이제는 어처구니가 없어 보이는 표정을 짓는 보리스였다.
“러시아의 암살이 두렵진 않습니까?”
보리스의 이어진 질문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호석에게 닿았다.
“감히, 전세계 누구도, 회장님을 암살 하실 순 없습니다.”
보리스가 픽 웃으며 말했다.
“회장께서 탑승한 비행기를 요격한다면 어떻습니까? 막을 수 있습니까?”
“SKY항공우주기술의 기술력은 모자라지 않습니다. 회피기동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군요, 러시아가 미치지 않고서야 제놈들의 상공도 아닌 다른 상공에서 그런일을 벌일까요?”
호석의 논리적인 말에 보리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러시아 상공을 비행할때는 유독 조심하는게 좋을 겁니다. 푸틴은 생각보다 과격한 사람이니까.”
“명심하죠.”
명심하겠다고 얘기하는 호석에게서 강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내 전용기가 비행할 때, 주변을 호위하는 비행기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지만, 보리스가 그런것을 알리는 없었다.
또한, 새로운 암살 시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주니 나쁘지 않은 자극이라고 생각했다.
보리스의 말을 굳이 흘려들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다. 여객기를 호위하는 비행기라 해도, 어디까지나 비행기일 뿐이지 전투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죠.”
내 말에 보리스가 내게 집중한다.
“러시아의 체재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것 같습니까?”
“이 보고서가 사실이고··· 이런 기술이 계속 발전된다면, 글쎄요··· 20년?”
“호오, 디테일하군요?”
“단숨에 무너질 정도로 가벼운 체재는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비해 부족할지 모르지만, 나름 개선했고, 업그레이드 해 왔으니까요.”
“러시아 국민들의 반발은 걱정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가난한 러시압니다. 지금도 먹고살기위해 몰래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민들이 많죠.”
“그러니 당신도 나와 함께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고개를 젓는 보리스.
“러시아는 날 놔주지 않을겁니다. SKY와 한국이 로켓기술을 갖는걸 싫어 할 테니까.”
아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눈 한켠에 야망이 보였지만, 그는 현실이라는 벽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탐나는 사람이군요.”
“제가요? 이런, 사람에 대한 평가가 너무 후한 분이시군요.”
픽 웃음이 나왔다.
“나는 지금 여러번 재사용 가능한 로켓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발사한 로켓을 재사용 한다? 호오··· 확실히, 대단한 경제 효과를 지니겠습니다.”
그리고는 툭툭, 그가 바라보며 놀랐던 태양광발전시설을 두들겼다.
“나아가 연료충전이 필요 없는 로켓을 만들고 싶습니다.”
“전기 엔진은 궤도를 벗어날만큼의 출력을 내기 어려울겁니다.”
비관적인 그의 말에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구의 중력이 개입한 곳이 아니라, 우주 공간에서라면 어떻습니까?”
“호오··· 무중력 공간에서라면야···”
“달과 지구를 오가는 로켓, 혹은 우주선, 혹은 탐사선. 매혹적이지 않습니까?”
침을 꿀꺽 삼키는 보리스.
“말만 들었을 땐 분명 청사진이 분명하군요.”
“내가 그것을 성공시킨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러시아는 반드시 무너지겠군요.”
“정확합니다.”
보리스가 안타까운 얼굴로 자신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뒤쪽의 창밖 너머에는 분명,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방향이었다.
“러시아가 오래 남지 않았군요.”
“오, 내 이상향이 성공할거라 보시는 겁니까?”
“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SKY의 말이니까요, 믿음이 갑니다. 시간이야 오래걸리겠지만··· 분명 성공하게 되겠죠.”
“난 그 성공을 조금 더 앞당기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당신을 우리 SKY항공우주국에 스카웃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고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난 내 생명이 소중한 사람이라고.”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멀쩡한 얼굴에 멀쩡한 머리.
제법 준수한 돈벌이까지.
그는 분명 러시아에서 일등신랑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러시아의 수많은 적극적인 미녀들의 대쉬도 뿌리치고 다녔을 것이다.
“당신도 언제든 러시아를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고 결혼도 하지 않은게 아닙니까?”
“뭣같은 정보총국과 군부에서 내 가족을 데리고 협박하는 짓거리가 보기 싫어서 혼자일 뿐입니다.”
“오케이.”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가 오케이란 겁니까?”
“당당하게 푸틴에게, 당신의 귀화를 받아오겠습니다.”
“뭐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 SKY항공우주국에서 일해주시겠습니까?”
보리스가 제 귀를 의심하는 얼굴로 호석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 말한다.
“지금 푸틴에게 날 죽이라고 얘기하러 가겠다는 겁니까?”
“하하하, 아니요. 당당히 당신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할 생각입니다.”
“푸핫, 부쉬도 콧방귀를 낄 일을 푸틴에게 하시겠다?”
“예, 푸틴에게 당당히 당신의 귀화를 요구하겠습니다. 당연히 국적은 한국이고.”
“푸틴이 승낙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그는 내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가 내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거니까.”
보리스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이런식으로 사람을 홀리시는 분이시군요.”
“홀리셨습니까?”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요.”
“의사는 있습니까?”
보리스가 날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당신의 말 처럼··· 정말 푸틴이 날 놔준다면야, 당연히 답답한 러시아를 떠나서 내 뜻을 펼치고 싶습니다. 난 아직도 화성에 가보고 싶은 남자니까.”
“그거면 됐습니다. 당신이 죽기전에, 화성에 가볼 수 있도록 열심히 SKY항공우주국을 위해 돈을 쏟아부어 드리죠.”
“하, 듣기만 해도 설레는군요.”
“하고 싶은 얘기가 많고,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죠, 러시아인 보리스가 아니라, 한국인 보리스가 된 후에.”
픽 웃는 보리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대화는 평생 잊지 못할 대화가 되겠군요, 즐거웠습니다.”
그는 아직도 내 말을 믿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
“푹 쉬고 있으세요, 앞으로 SKY항공우주국에서 미친듯이 일만 해야 할테니까.”
“하, 당신의 말 처럼 된다면, SKY항공우주국의 노예가 되어서라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 말, 후회하게 될겁니다.”
어깨를 으쓱이는 보리스.
나는 떠나가는 그를 바라보며 히죽 웃음을 흘려주었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았다.
“푸틴, 얼굴 좀 봅시다.”
“예, 회장님. 연락 넣겠습니다.”
< 제 39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