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6화. >
미국의 MIT, 그리고 나사의 로켓기술자에게는 내가 직접 갈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찰리 박 대표가 요즘 일감이 없다고 툴툴 되었으니 그를 보내면 될 일.
나는 과감하게 러시아 행을 결정했다.
무턱대고 러시아로 넘어갈 순 없는 상황, 그래서 협의를 한 것이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지역에서 약속을 잡았다.
인터넷이라는 요물이 이래서 중요한 것 같았다. 인터넷 메일로 대화를 주고 받는 것으로 러시아의 유명한 로켓 기술자와 만남이 성사되었으니까.
“푸틴쪽 움직임은 없나요?”
전용기로 향하면서 한 말에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회장님. 현재까지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흠, 그 놈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는데 말이죠··· 요즘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네요.”
“요즘들어 부쩍 현대화라는 말을 공식석상에서 자주 뱉어내고 있습니다.”
“현대화라···”
러시아의 현대화.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화와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러시아의 경제 상황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러시아의 제조업은 사실상 국내에서만 돌고 외국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는 상태라고 보는게 옳았다. 온전히 내수시장용 제조업이라는 뜻.
과거, 소련연방일때는 그 연합국가들을 비롯해서 주변국가들 역시 소련의 물건을 구입하거나 사용했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소련이 해체되고 새롭게 러시아가 되었을 시기에는 이미 다른나라들 역시 러시아의 기술력을 뛰어넘은 상황이었다. 정확하게는 선택지가 여러가지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굳이 구소련, 현 러시아가 생산한 제품이 아니라 다른 타국에서 생산한 제품, 혹은 자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들이 생겨났다는 뜻이었다. 품질이라던지 디자인, 가격과 같은 경쟁이 생겼고 끝내 러시아는 제조업에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못했고 점점 사장의 길로 향하게 되었다.
“빠르네요.”
“예?”
“아닙니다. 예상했던 것 보다 빠르다는 얘깁니다.”
호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도 그럴게 본래 ‘현대화’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던 러시아의 시기는 2010년도 이후였다. 전 세계가 정보화 시대에 빠르게 녹아들면서 과거와는 다른 국제정세가 펼쳐진다는 걸 그제야 느꼈을 푸틴.
헌데 ‘나’라는 존재 때문에 벌써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러시아의 체재 전반이 불완전했기에 그것을 유지하는 것 역시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공산주의 국가의 특성상 체재를 지키기위해 암약하고 있는 더러운 짓거리들이 많을 터.
어쨌든, 본래의 역사와는 조금 더 빠르게 러시아의 진도가 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그 일의 결정적인 단서 역시 내가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가 아직까지 ‘친환경 재생 에너지’에 관심이 없을 시기, 이제 막 관심을 보이는 국가들이 하나 둘 생겨날 시기. 그리고 본격적으로 친환경 재생 에너지가 각광받는 시기는 분명, 미래에 있을 파리 기후협약 이후였고,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10년도 이후여야 했다.
그러나 푸틴은 이미 친환경 재생 에너지를 경험한 상태였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SKY 에너지, SKY 화학, SKY 전기쪽에서 정보를 수집했을 것이다.
왜 에너지 얘기가 나오느냐?
“러시아의 가스관 공사들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아, 그 부분에서는 조금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일단 그 설치에 집중하겠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돌아와서 러시아의 산업 전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정확히는 그것이 러시아의 경제 상태를 이해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러시아의 경제의 가장 큰 축은 당연히 에너지 산업이다. 지하자원이라는 얘기.
그 지하자원을 판매하는 1차 산업이 러시아의 주춧돌이며 기둥이다. 1차 산업이 폭망하면 러시아라는 국가 자체가 폭망하는 것이었다.
미래에는 점점 ‘군사력’이 높은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고 영향력을 떨치는 세상이 아니었다. ‘기술력’이 필요하고 ‘경제력’이 필요하며 군사력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춰야만 전 세계에 영향력을 제대로 떨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는 얘기였다.
1차산업이 주가 되면 가장 큰 문제가 생긴다.
바로 ‘원유’산업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 국가기반 전체가 흔들린다는 얘기였다.
물론 미국이라는 든든한 판매처가 있기에 원유산업이 벌써부터 흔들일 일은 없었다. 내가 살던 미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친환경 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낮기도 했으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우기며 ‘원전! 원전!’하고 외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니까, 그만큼 기술력이 모두를 설득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소리였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친환경 재생 에너지가 국가 기반 에너지원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 어쨌든 지하자원은 한정적이고 그 지하자원을 쥐고 있는 국가들에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친환경 재생 에너지를 개발해 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지금 푸틴은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지금은 조용한 이유, 이것은 태풍의 눈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PMC정보부에 러시아에 대한 채널, 증축하라고 전달하세요.”
“음, 러시아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보십니까?”
“미친놈들이 발작을 일으킬 때가 되었습니다. 내가 볼 때.”
“예, 회장님.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마침 러시아에 김장원 사장이랑 독거미가 가 있지 않나요?”
“예, 맞습니다. 독거미 역시 앞으로 러시아가 국제정세에 가장 중요한 키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PMC 정보부의 수장 자리를 폼으로 차지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정확한 예측입니다. 지원을 아끼지 마세요.”
“예.”
“안전에도 유의하시고, 곧, 놈들은 동양인을 배척할지도 모르니까, 정확히는 안테나를 좀 많이 꽃겠죠.”
“김장원 사장이 있으니 안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총기 사용국가임을 명심하세요.”
“그러니까 더 김장원 사장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요?”
놀란 얼굴로 호석을 바라보았다.
호석이 내 옆 자리에 앉으며 흐뭇하게 웃는다.
“약장사 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약들은 대부분 총기를 쓰는 놈들이 가져오죠.”
“전쟁터랑은 또 다른 전쟁터인모양이네요.”
“원래 음지에 있던 사람들이 더 더러운 법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다면야.”
“게다가 코드 대원들도 곁에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방심은 금물이에요, 러시아 놈들은 언제든 또라이로 변할 수 있는 종자들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
촤라락.
푸틴의 손에 의해서 흰색 종이들이 그의 집무실 가득 나부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푹 숙이는 인물.
그는 현 러시아의 정보총국장이었다.
“이따위 보고서를 들이밀어?”
“죄송합니다. 각하.”
“제기랄··· 결국에 천우진 그 개같은 놈이 일을 냈군.”
“후우··· 해상 태양광 발전 시설이라니, 이것은 연구소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제기랄, 아무리 낮게 잡아도 발전률이 83퍼센트나 된다고?”
떨어진 서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푸틴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러시아가 흔들리는구나··· 이 러시아가.”
정보총국장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암살이라도 준비해야 할까요?”
푸틴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정보총국장을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차라리 전쟁을 하자고 하지 왜? SKY 본사에 직접 타격하는 핵 미사일을 발사하는 건 어때?”
푸틴이 자신을 잔뜩 비꼬고 있다는 걸 깨달은 정보총국장이 다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쯧쯧, 무슨 재주로 암살을 할 거지? 고작 1급 요원도 되찾아오지 못한 마당에.”
“고작 고려인들과 우리 정예요원들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의 전력이 분명, 정예요원 한개 소대급은 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
“정신차려, 네 앞에 있는 내가 어디 출신인지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나도 충분히 훈련 받았다. 지금도 몸에 깊이 각인 된 것 처럼, 당장 걸어갈때도 허리춤에 있지도 않은 권총을 꺼내기 위해 오른손을 거의 움직이지 않으니까. 습관 같은 것이지.”
“예, 각하.”
푸틴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털썩 소파에 앉았다.
“송유관과 가스배관 설치는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고?”
“예, 그렇습니다.”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주변 국가들의 동태는 살피고 있어?”
“예, 그렇습니다.”
“어때?”
아주 가벼운 질문이지만 실상을 파고든다면 매우 무서운 질문이었다. 제대로 관리하고 있었냐는 질타가 포함되어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
자연스럽게 정보총국장의 고개는 더욱 숙여지고 말았다.
세상에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
그것은 현 러시아의 영향력이 주변국가들에게서 조금씩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정보총국장은 ‘인터넷’을 조심해야 한다고 누누히 푸틴에게 외쳤던 것이었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제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주변국가까지 제재하기에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였고, 러시아는 끝내, 주변국들에 대한 인터넷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자본주의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기랄, 엿같은 소리를 또 듣는군.”
푸틴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가 SKY의 태양광 발전 시설에대한 서류를 받아 읽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새로운 자원의 이동 통로였다. 원래는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가스관의 90퍼센트 이상이 우크라이나를 통해서 움직였었지만, 푸틴은 보험을 든다는 느낌으로 현재 여러곳에 송유관과 가스관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신경쓰라고 했는데, 거기는 어떻지?”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거기는 우리의 곡식창고야, 꿀과 기름이 흐르고 있는 곳이라는 뜻이지.”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이제 다시 바쁘게 움직여야 겠어, 중국과 인도를 비롯해서 각국의 정상들에게 회담 요청 해. 바쁘게 움직여야 해 바쁘게.”
“예, 각하.”
푸틴이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다가 다시 눈을 뜨고는 나가려는 정보총국장에게 말했다.
“아, SKY그룹의 천우진. 그 놈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마, 뭘 하는지 뭘 먹는지, 다음 스케쥴은 뭔지,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마.”
“예, 각하.”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북한을 방문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예, 미국 워싱턴에서 그의 전용기가 항로이용을 요청했고, 그 목적지는 중국의 연변, 혹은 북한으로 이동 가능한 경로입니다.”
“쯧, 북한은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보는게 맞겠군.”
“예, 더이상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동지가 아닙니다.”
“나가 봐.”
“예, 각하.”
***
푸른눈의 금발.
전형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인의 외모를 한 사내. 군데군데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돋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를 대충이나마 짐작 할 수 있었다.
분명한건, 그는 얼마전 내가 직접 스카웃 했던 NASA의 은퇴한 우주 괴짜들과는 다르게 조금 더 젊다는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영어 괜찮죠?”
“물론이지요.”
그는 생각과 다르게 굉장히 차분한 인물이었다.
보리스 토스키예프.
권총의 이름이 생각나는 듯한 그의 얼굴은 괴팍한 과학자라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고작 권총이라는 약한 총기로 그를 비유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각자가 누구인지는 이미 이메일을 통해 잘 알 것 같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좋습니다. 여기 이 냉면이라는 좋은 음식도 대접받았으니, 당신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들어보죠.”
그도 좋다고 하니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나는 당신을 스카웃 하고 싶습니다.”
“크크크큭, 나를 죽이고 싶었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아직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만?”
“당신을 스카웃 하는게 어떻게 당신을 죽이는 일입니까?”
“러시아에서 나를 놔줄거라 생각하다니,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군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겁니까?”
“당신이 한국으로 귀화를 한다면?”
“크크큭, 재미있는 농담은 됐습니다. 이제 재미가 없어질 것 같으니까.”
“왜 불가능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러시아의 암살 위협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내게 이 사람을 알려준 NASA의 과학자들의 생각과 다르게, 눈 앞에 보리스란 인물은 아주아주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공산당에 눈이 먼 러시아인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당신에게 가해질 모든 암살위기를 우리 SKY는 막아줄 자신이 있습니다.”
“글쎄요, 난 당신이 푸틴을 죽여버리지 않는이상 믿을 수 없겠는데요?”
“확고하군요.”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당신의 목숨 만큼이나 날 소중하게 생각해줄거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푸틴은 당신을 죽이긴 어려울겁니다. 그러나 나 하나쯤은 손쉽게 죽여버리겠죠.”
그의 뜻은 잘 알았다.
죽고 싶지 않으니 날 따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난 호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지금의 보리스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이다. 자그마치 러시아의 인물을 포섭하는 일이었다. 그런 그가 공산당의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거란 생각은 금물이다.
러시아라는 국가에서 권위있는 과학자가 된 인물이니까, 그만큼 똑똑하다는 얘기고, 똑똑한 인물이 독재의 폐해를 모를리 없으니까.
“뭡니까?”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는 보리스.
“SKY에게 침투했던 러시아의 스파이를, 러시아의 정예병사들이 암살하려는 시도를 하더군요, 당연히 SKY는 그것을 막았고. 살펴보시죠, 내가 러시아로부터 당신을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 제 39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