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95화 (395/458)

< 제 395화. >

우주산업.

말만 들어도 돈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산업이었다. 맨땅에 헤딩을 하는 느낌이랄까? 아직 밝혀진 것도 적고 앞으로 얼마나 기술이 발전해야 할지도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역시 ‘로켓’기술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데슬라의 오너는 로켓 기술을 갈고 닦아 그걸로 다시 천문학적인 수입을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으니까 말이다.

로켓 기술이라는게 우주 산업에서 떼 놓을래야 떼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가장 선진된 로켓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역시 NASA였다.

물론 NASA의 모든 기술을 흡수하려는 것이지 NASA를 답습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샤락, 샤락.

PMC정보부가 3일만에 보내온 보고서류를 천천히 살폈다.

“괜찮네요, 아이디어.”

“그렇습니까?”

호석이 뿌듯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PMC정보부에서 제안한 방법.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곳에서 쓰는 더러운 방법이 아닌 아주아주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는 젠틀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돈을 주고 사와라. 아주 마음에 들어요.”

돈이 많은 내가 가장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물론 비용면에서 커다란 지출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젠틀한 방법임에는 틀림 없었다. 미국 조차 두손 두발을 들 만큼 말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정말 이상한 나라죠.”

“어떤부분에서 그렇습니까?”

“제 놈들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명분 하나면 뭔 짓거리를 해도 미국의 시민들도 동의를 표하거든요.”

“SKY가 제 놈들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포장하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또 웃깁니다.”

“예?”

“로비라는게 합법이니까, 적절한 로비를 해주면 미친 짓거리도 용인이 되는 법이거든요, 자본주의에 절여진 미국이기에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죠.”

고개를 주억거리는 호석.

“자, 헤드헌팅. 시작해봅시다.”

나는 PMC에서 주었던 NASA의 관계자들과 지금은 은퇴한 과학자들의 사진을 호석에게 내밀었다.

“뇌수까지 우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천재들을 주우러 가 봅시다.”

“예, 회장님.”

***

첫 시작은 지금은 은퇴한, NASA에서 평생을 몸받쳐 일하다 은퇴한 사람들이었다. 접근하기 쉽게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월에 1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티타임을 가지는 단체도 존재했다.

뇌수까지 우주에 절여진 우주덕후들은 그렇게라도 자신들의 덕심을 풀어놔야만 스트레스가 풀리는 모양이었다.

허름한 카페를 통째로 빌려서 진행되는 그들의 소소한 수다장소.

끼이익.

고급 차량이 들어오니 당연히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검은색 SUV에 대해서 별로 좋은 생각들을 품고 있지 않을테니, 그들의 눈에서는 얼핏 적대감도 읽히는 것 같았다.

PMC대원이 문을 열어주고 내가 내리니 사람들이 시선을 거둔다. 동양인에게는 볼 일이 없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난 픽 웃으며 그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반갑습니다. SKY그룹의 천우진 회장입니다.”

당당하게 내 소개를 하자 그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여러 핸드폰 중, SKY의 로고를 달고 있는 핸드폰이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날 모를래야 모를 수 없을 터.

“와우, 세계 최고의 부자 양반이 우리를 찾아왔군.”

머리가 희끗한 노인의 말에 주변의 노인들이 피식피식 거리며 웃었다.

세상에 더 원하는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 그럴까? 조금은 초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앉아도 됩니까?”

“당신의 목적은 우리였습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 목적은 달입니다.”

“풉.”

그들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흔쾌히 자리를 내어준다.

“자, 여기 계신 우주 덕후들의 지식을 좀 들어볼까요?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오, 우리가 누군줄 알고 오셨구만.”

“예, SKY는 우주에 아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미개척분야를 개척하는 것,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파헤치고 탐사하는 건 그 자체로 짜릿한 일이죠.”

노인들이 아주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역시 성공한 사람은 달라도 다르군, 우주에 대해서 허황되었다고 지껄이는 놈들이랑은 차원이 달라.”

“커험, 그렇지 우주야말로 진정한 모험가들의 혼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나이만 들었다 뿐이지, 이들은 아직도 대학의 새내기 같은 순수한 지식의 열정을 품고 있는 사내들이었다. 그런 그들과 섞이는 것은 아주아주 쉬운 일이었다. 몇마디 칭찬과 과한 리액션, 그리고 아주 지대한 관심 만으로도 충분 할 만큼.

고작 세 시간.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NASA의 은퇴한 자칭, 타칭, 우주 전문가들을 꼬시는데 걸린 시간은 말이다.

“브라더들, 미국에서 더 할 일이 없다면 나와 함께 한국으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음? 한국? 거기 가면 뭐 좋은게 있을까?”

“SKY가 이번에 우주탐험을 위해서 SKY항공우주국을 신설할건데, 거기서 브로들의 지식을 마음껏 뽐내는 게 어떻습니까? 우주 개발을 위해 후진 양성에 힘쓰시죠? 어차피 요즘은 강연이나 교수직도 떼려 치우신 분들이잖아요?”

그들의 눈에 갈등이 보였다.

안락한 생활에 방해가 될까 싶은 모양.

그러나 갈등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그들은 ‘일’을 하고 싶다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브로들을 아주 죽을때까지 굴려드릴테니까 어떠세요? 먼저 브로들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꿀꺽.

여기저기서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이든 남자가 가장 무서워 하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나이든 남자의 가장 큰 공포는 ‘직장’을 잃는 것이었다. 실제로 직장을 잃고 1~2년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내들도 많았다.

술과 담배, 마약같은데 찌들어서 말로를 쓸쓸히 홀로 보내는 미국의 노인들도 많은 편이었다. 그들은 은퇴하기 전까지 왕성하게 일을 하던 노인들이었다.

아직은 고령화 사회가 문제되지 않지만, 미래의 지구는 고령화 사회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미래에는 ‘인턴’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많은 노인들과 은퇴를 앞둔 사내들의 공감을 자아내 좋은 상을 수상하는 영화도 탄생하게 된다.

그만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브로들도 머리는 희끗하지만 마음까지 희끄무래하게 늙은 사람들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들의 뇌는 아직도 많은 포도당을 소모하며 우주에 대한 새로운 식견과 새로운 지식을 탐식하고 있을테다.

난 그들의 노하우를 신설될 SKY항공우주국이 그대로 빨아들이기를 바란다. 그 대가로 그들이 죽을때까지 일하고 싶다면 얼마든 일을 시켜줄 의향이 있었다.

“그거 아십니까?”

“어떤걸?”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최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의료서비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SKY그룹 역시 병원을 소유하고 있죠.”

덩치가 산만한 노인이 껄껄 거리며 호탕하게 웃으며 500cc맥주잔을 쾅 하고 내려놓는다.

“이거 우리를 죽지도 못하게 하고 부려먹겠다는 소리구만.”

“정답입니다.”

“좋아, 난 가겠어.”

덩치만큼이나 화끈한 대답을 뱉어내는 그.

아직 그들에게 임금조건이나 복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급여는 얼마일지, 일하는 환경은 어떨지, 그런건 안 물어보십니까?”

“세계 최고의 부자 기업이 알아서 챙겨주겠지, 설마 돼지우리같은 곳에 우리를 집어 넣지는 않을 거 아냐?”

화끈한 노인의 말을 이어받은 깡마른 노인의 말.

“그렇겠지, 그리고 SKY그룹의 직원복지야 이미 전 세계에 유명하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 입장에서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떼려치면 된다고, 아쉬울 게 뭐 있다고? 이 나이에?”

“맞는 얘기야, 어차피 자식새끼들이 자주 찾아와서 얼굴을 비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제 2의 은퇴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우주에서의 모험도 좋지만, 지구에서 모험도 제법 유쾌할테니까.”

난 피식 웃으며 짝짝, 박수를 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차량에서 내린 호석이 성큼성큼 다가와 노인 한명, 한명에게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근로계약서입니다. 브로들.”

서류를 받자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빠르게 서류를 읽어내려가는 그들.

“호오 숙식 제공에, 와우 여기 이 주택단지가 사실이야?”

“예, 브로들 같은 우주에 미친 작자들을 거기에 다 몰아 넣을 생각이에요, 후후. 아마도 아침마다 당신들은 숙취에 시달리겠죠?”

“오우 쉣, 미친 조건이군.”

“여기 임금란이 빈칸이네?”

“적어보세요, 브로들이 받고 싶은 금액을, 최대한 수용적으로 받아들이죠.”

“홀리 쉣, 백지 연봉이라고? 백지 수표는 들어봤어도 이런 월급은 처음 듣는 걸?”

“와우, 그래! 돈이 미친듯이 들어가는 우주국은 이 정도 깡은 있어야지!”

덩치가 유독 크고 화끈했던 노인이 가장먼저 만년필을 움직였다.

스슥, 슥.

그가 적은 금액은 30만 달러.

“음? 월급이 아니라 연봉입니다.”

“알아.”

“근데 30만 달러로 만족하시나요?”

“양심이 있어야지, 이 나이에 일을 시켜주는 것도 고마운데 미국의 대통령보다 많이 받을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의 말에 다른 노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스슥, 슥. 연봉란에 연봉을 적는다.

가장 많은 연봉을 적은 사람이 고작 35만 달러였다.

“제퍼슨! 왜 네 놈이 35만 달러야?”

“원래부터 우주국에서 일할때도 내가 네놈보다 많이 받았어!”

“이 미친놈이! 그건 네가 야근을 밥먹듯이해서 수당을 챙겨간거 아니야!”

“어쨌든!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잖아?”

“이친구 고작 5만달러 때문에 이럴건가?”

나는 웃으며 말다툼을 하는 그들을 만류했다.

그리고 노인들의 서류를 내 쪽으로 가져와 그들이 적은 연봉란을 스윽, 슥 지웠다.

“미국의 대통령의 연봉이 얼마나 됩니까?”

덩치 큰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했다.

“40만 달러쯤 되지?”

난 고개를 주억거리며 일괄적으로 그들의 연봉을 수정했다.

45만 달러.

내가 적은 금액을 본 노인들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우리 SKY항공우주국에서는 브로들을 대통령보다 더 귀하게 모실겁니다.”

“파하하하하하, 이거 돈 많은 사람이라더니 립서비스가 장난 아니군, 역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달라.”

“이 사람, 미스터 천이 하는 프레젠테이션 못 봤나? 그걸 보게 되면 이, SKY가 만든 요물은 안 사고는 못배긴다고.”

“그래? 프레젠테이션?”

“악마의 혓바닥이야 악마의 혓바닥. 내가 이 나이에도 SKY의 신제품이 나오면 매번 구입하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그들의 말에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거기 복지 칸 보셨죠? SKY그룹의 임직원은 SKY의 모든 제품을 원가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100개든 200개든.”

“홀리 쉿, 그것만 사서 중고로 팔아도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겠는데?”

“하하하, 리셀은 참아주세요, 함께하는 SKY가족들의 이미지가 똥이 되니까.”

“규제가 없다고?”

“나는 SKY가족들을 믿거든요.”

“홀리··· 엄청난 자유성을 부여했구만··· 인간은 생각보다 악한 존재들인데.”

“생각보다 선하기도 하죠, 믿을 만 하고요.”

“와우, 도대체 미스터 천 당신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답이었어.”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좋거든요? 내 앞에 있는 브로들을 내 회사에 스카웃 한 것 처럼.”

덩치 큰 노인이 껄껄 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크하하하, 이거 제퍼슨 자네가 한방 먹었군, 인정하지 않으면 제퍼슨 자네가 못난 놈이라고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렸어.”

“봤지? 악마의 혓바닥이라니까?”

나는 씨익 웃으며 근로계약서를 툭툭 두들겼다.

“어차피 브로들은 이미 계약서에 싸인을 했습니다. 잠도 못자고 우주에 대해서 연구할 생각이나 하세요.”

“와우,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군.”

“빌어먹을 NASA놈들, 우릴 버린걸 후회하게 될 걸? SKY항공우주국을 세계 최고의 우주국으로 만들어버리겠어.”

마냥 늙지만은 않은 노인들이 의지를 불태울 때,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자, 브로들 질문이 있습니다.”

“뭔가?”

“로켓 기술의 일인자가 누굽니까? 일인자부터 한 십인자까지 권위 있는 사람들 명단을 좀 알려주십쇼.”

노인들이 서로 눈을 빛내며 토론을 이어나갔다.

그 토론에서 나오는 이름들을 나는 까먹지 않고, 조용히 구름폰에 메모를 해 두었다.

역시나 이 바닥에서 구른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의 수다스러운 대화안에 정보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가장 먼저, 은퇴한 과학자들을 찾아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점점 과열되는 노인들의 토론을 만류하면서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로켓 기술의 일인자 자리를 세 명이 경쟁을 하고 있다는 소리네요?”

“쩝,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한명은 NASA소속이고, 또 한명은 MIT소속이고, 한명은 놀랍게도 러시아 사람이고?”

노인들이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머지 전문가들도 다들 그들 산하에 있는 사람들이고요?”

역시나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그 세명만 스카웃하면 문제 없다는 소리네요.”

“오우··· 이거 우리 고용주 정말 화끈하구만 그래··· 그런데 문제가 있어, 세명 모두 괴짜지만 러시아의 그 놈은 아마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걸? 뇌속까지 공산주의에 절여진 놈일 테니까.”

“그건 실제로 봐야 알겠죠. 어쨌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정보랄것도 없지, 이쪽에 관심 있으면 누구나 알만한 정보들이니까.”

노인들은 가볍게 얘기했지만 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PMC정보부에서도 중요도 높은 인물들로 특정했던 사람들이지만 역시나 로켓기술의 권위자들이라고는 기술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 추천하고 싶은 인물들은 없습니까? 브로들의 동료가 될 사람들이요.”

“우리의 동료가 될 사람들?”

노인들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저마다의 휴대폰을 바쁘게 만지기 시작했다.

“뭐해? 전화 돌리지 않고? 다 불러 모으라고, 우주덕후 새끼들 집에서 TV나 보고 있을 놈들을 말이야.”

“오케이, 그런 놈들이라면 널리고 널렸지.”

순식간에 SKY항공우주국이 완성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제 39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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