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3화. >
멋쩍게 웃음을 흘리던 그가 돌연 강인한 얼굴이 되어서는 날 똑바로 바라본다.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앞서서 얘기했습니다. 당신이 대의를 갖춘 자리를 바라는 것은, 억울한 사람이 없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그랬죠.”
“당신 홀로 싸우는 것은 한계가 명확할겁니다.”
“나는 혼자가 아닐겁니다. 그 자리에 오른다면 수많은 미국의 시민들이 내 곁에 서 줄 것입니다.”
아주 멋진 대사를 읊는다.
“그렇겠죠, 하지만 그들 중 기득권들은 몇이나 될까요?”
오머바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그 역시 그의 곁에 기득권들 보다는 힘 없는 시민들이 더 많이 서 있을 거라는 걸 아는 것이다.
“우리가 선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오머바가 천천히 자신의 주변에 앉은 데비 할아버지와 장인어른,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음, 확실히 힘 있는 세분이 앉아 계시는군요.”
“권력은 금력에서 나오죠.”
“하, 너무 노골적이라 이거 반박할 수 없군요.”
“본래의 권력은 시민과 국민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기형적으로 변했죠, 민주주의라고 쓰고, 자본주의라 읽습니다. 그리고 그 자본주의의 꽃, 절정이라는 국가는 미국입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 미국의 자본주의 시장의 꼭대기에 여기 있는 록펠러 뱅크와, 내가 가진 대한금고, SKY가 서 있습니다.”
“그 역시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명확하지 않습니까?”
오머바가 짧은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린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뭡니까?”
장인어른을 쓱 쳐다보고, 다시 데비 할아버지를 살짝 쳐다보았던 오머바가 내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어째서 대통령이 되려 하는 것입니까?”
이부분은 내가 대답할 게 아니었다.
나는 오머바의 시선을 받아, 장인어른을 바라보았다.
“오머바, 그대는 우리 록펠러가문의 역사를 알고 있소?”
“물론입니다. 골드러시와 석유전쟁을 석권했던 가문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 석유전쟁에서 끝내는 패했었죠.”
“음, 확실히.”
“간사한 혓바닥으로 독과점이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말이오.”
“예,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금력이 권력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편협한 정치인 놈들의 수작이었지, 결국은 제 놈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다른 기업들을 살려주기 위함이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오머바.
“그대는 그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합니까?”
애매했다.
아주아주 애매한 문제였다.
“이제 우리 록펠러는 기름을 만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은행이 되었죠.”
“으음.”
“공평합니까? 우리가 가진것을 간사한 혀를 굴리던 정치인들이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우리것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눔을 받은 놈들이 이제는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공평합니까?”
“······”
“대답하기 어렵겠죠?”
“그렇습니다. 뭐가 더 미국에 이득이었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록펠러 재단은 한 해에 적게는 수억 달러, 많게는 십억 달러에 이르기까지 많은 돈을 세상에 쓰고 있습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록펠러 가문을 칭송하죠.”
장인어른이 또렷하게 오머바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힘을 키워 왔습니다. 시민들이 보내는 환호와 함성이 금력에 버금가는 권력이란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한번의 침략으로 깨달은 것이죠.”
“으음.”
“그리고 그 권력은 ‘금력’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역시 이제는 완벽하게 배웠습니다.”
“허.”
“그리고 이제는 때가 되었습니다. 다시는 불공평하게 노력의 산물을 빼앗기지 않을 때가 말이죠.”
“지금 그 말은, 미스터 록펠러씨가 대통령이 되어서 록펠러가문을 이롭게 만들겠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부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롭게 만들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민들이 보내는 환호와 함성이 끊이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그게 록펠러 가문의 힘이 되어줄테니까요, 금력에 버금가는.”
둥그스름한 대답.
그러나 그 안에 록펠러 가문을 위하겠다는 솔직한 속내를 감추지 않은 대답이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끼어들어도 되겠습니까?”
오머바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장인어른 역시 ‘얼마든지’라는 얼굴로 의자에 등을 기대신다.
“당신이 바라는 것에 부의 재분배도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오머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없는자의 설움을 조금이나마 희석시켜주기를 바랐으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어떤 공약도 부자만 손해를 보고 없는자만 이득을 보게 만드는 공약은 없습니다. 부자라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더 많은 금력을 지닌 사람이라 할 지라도, 상대적으로는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법이니까요.”
“이해했습니다.”
“나의 장인어른의 가문. 록펠러 가문의 위한 정책들도 분명 생기게 될 겁니다. 그러나, 록펠러 가문의 반대 세력들을 힘들게 만들 정책들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겠죠, 자본주의는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니까.”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신이 바라던 부의 재분배, 그것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오머바가 고개를 저었다.
“억지입니다.”
“억지입니까?”
“예, 억지입니다. 그때가 되어서 덩치가 커진 록펠러 가문을 어떻게 막는단 말입니까?”
나는 오머바를 똑바로 바라보고는 물었다.
“지금의 당신은, 록펠러 가문을 막을 수 있습니까?”
“······”
“지금의 당신은, SKY그룹을 막을 수 있습니까?”
“··· 지금은 힘들지만,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록펠러 가문과 SKY그룹의 합공을 막을 수 있습니까?”
“······”
그는 뭐라 얘기하지 못했다.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금력이라는 아주 무서운 힘을.
높은 자리, 권력의 정점이란 곳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금력이 가진 무서움을 체감 할 수 있었다. 아주 쉽게 얘기하자면 오머바라는 대단한 인물의 양 미간 사이에 총알을 박아 넣는 것 쯤은 아주 쉬운 일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신문 1면에 오머바를 죽인 자에게 1억 달러를 주겠다 라고 광고를 낸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그는 제대로 활동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극단적인 일이 일어날 일은 없었다. 어떤 돈 많은 미친놈도 그런식으로 일을 처리하지는 않지만. 단순히 예가 그렇다는 뜻이다.
“하, 태어나 들었던 협박 중 가장 무서운 협박이었습니다.”
오머바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뻑뻑, 시가를 태운다.
“우리는 당장 당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억울한 문제 하나를 해결하겠습니다. 미국의 시민들, 정확히는 서민들을 위해서.”
그게 무엇이냐는 듯 날 바라보는 오머바.
대답은 내가 아닌 데비 할아버지가 먼저였다.
“정부와 협력해서 대출규제를 완화 할 생각이오.”
“대출규제?”
“정확히는 부동산 대출 규제지.”
“아, 모기지론.”
“그렇소, 미국 시민들의 주거지 문제에 아주 큰 도움이 될거라 확신합니다.”
“겨우 대출 규제가 완화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려는 오머바의 입을 틀어막는 데비 할아버지의 말.
“500억 달러.”
“예?”
“총 예산 500억 달러를 예상하고 있소.”
꿀꺽 침을 삼키는 오머바.
그로서는 500억 달러라는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데비 할아버지가 나를 힐끗 바라보다 쐐기를 박았다.
“1년에 500억 달러.”
“1, 1년···”
“그 정도면 지금 서민들의 주거지 문제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소?”
“록펠러 은행은 그만큼 손해를 보겠군요.”
“아주 멀리,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큰 손해는 아닐지도 모르지, 우리 기업의 이미지와 내 아들놈의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 역시 손해일수 없고.”
데비 할아버지의 말이 끝난 것 같으니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확실히 금력으로, 당신이 바라던 목표, 이상향을 보여주겠습니다.”
오머바가 스윽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그러니 양보를 해라?”
“그렇습니다. 당신은 아직 젊죠.”
오머바가 픽 웃으며 말했다.
“미스터 천이 내게 할 말은 아니군요.”
“확실히, 그저 장인어른께서 먼저, 그 자리에 앉겠다는 얘깁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2번이면 될 것 같군요.”
“8년을 기다려라?”
“맞습니다. 그 기간동안 보여드리죠, 금력으로 없는자들의 설움을 없애가는 모습을.”
“부동산 문제를 해결했던 것 처럼?”
“단순히 부동상 문제만 얘기 해 줬군요, 정확히는 정부와 협력한다는 해결책 역시 제안하셨습니다.”
“아, 그렇죠.”
“정부와 협력하면서 새로운 부서가 창설되고, 그 부서에는 인력이 필요 할 겁니다. 록펠러 뱅크에서도 새로운 부서가 필요하고 그만큼 또 인력이 필요하겠죠, 어쩌면 하위의 새로운 업체들이 생겨날 수 있죠.”
“일자리 창출?”
“바로 맞췄습니다. 매해 500억 달러 예산에 맞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 될 것입니다.”
오머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료보험 문제는 어떻게 해결 할 것입니까?”
“세수를 더 확보하면 간단한 문제입니다.”
“시민들이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잘 해야겠지요, 그리고 그 반발 역시 당신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겠죠? 오히려 미래의 라이벌이 민심을 잃는다면 당신에게 이로운 일 아닙니까?”
“하, 억지같은데 묘하게 논리가 완벽하군요.”
“그게 가진바 배경이라는 엿같은 금력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픽 웃은 오머바가 말했다.
“미스터 천은 과거에 억울한 일이 있었나 봅니다.”
“예, 없는자의 설움이 어떤 것인지 몹시, 아주 제대로 경험해보았죠.”
“대한민국은 사실상 SKY의 지배 아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미국도 그렇게 만들 생각인 겁니까?”
갑자기 훅 들어온 날카로운 스트레트에 어질어질 했다. 그러나 피식 웃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하하하, 대한민국이 SKY의 지배 아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까? 모든 전문가와 데이터가 그렇게 말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국민들 중, SKY를 욕하는 사람이 없다죠?”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아직까지 SKY를 욕하는 한국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칭송하기 바빴지.
“아뇨, 내 말은 대한민국만 SKY의 지배아래 있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이었습니다.”
“뭐라고요?”
“왜 미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내 질문에 오머바는 물론, 데비 할아버지와 장인어른 역시 놀란 눈이 되었다.
“미스터 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까?”
나는 웃으며 오머바의 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는 불쾌하다는 듯 날 째려보았지만 개의치 않고, 품속에서 그의 휴대폰을 꺼냈다.
툭.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그에게 손짓으로 보라고 가리켰다.
“이곳에도 선명하게 로고가 반짝이고 있군요.”
“이런, 내 휴대폰이 SKY의 제품이었군요.”
이어서 아까 전, 오머바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건네주었던 명함을 품속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툭툭.
“여기 적힌 메일 주소가 보입니까?”
“이런··· 구골 메일이군요.”
“그 구골은 SKY의 검색 포털 사이트죠.”
“하하··· 설마 더 있는 겁니까?”
나는 웃으며 품속에서 구름폰을 꺼내 마이튜브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그곳의 버락 오머바의 공식 채널 화면을 띄우고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당신의 공식 홍보 채널 역시, SKY의 마이튜브를 이용하고 있군요.”
“맙소사···”
“오, 구독자 수가 300만명이 넘었군요? 최소한 300만명의 미국인은 이미 SKY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머바?”
“부정하지 않겠소.”
이쯤 되어서야 장인어른과 데비 할아버지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설득당한 모습을 보였다.
“이미 SKY는, 전세계를 지배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오머바.”
“하··· 미스터 천은 참 신기한 재주를 가졌습니다. 어째서 부정할 수 없는 거죠? 억지 같은데 말입니다.”
“나는 미국을 완벽하게 지배하기 위해 대통령의 자리를 원합니다.”
“정말 올해 들었던 소리 중, 가장 미친 소리요.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느낄테지.”
“그러나 당신은 승낙하게 될 겁니다.”
“어째서 그렇죠?”
“SKY의 이념이 무엇인지 압니까?”
고개를 젓는 오머바.
나는 구름폰을 이용해 이번에 새롭게 단장한 SKY의 메인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화면 가득 떠오른 SKY의 메인 로고 화면을 오머바에게 내밀었다.
“로고를 지워보시겠습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액정위에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보는 오머바.
그러자 구름 모양의 로고가 지워지고, 그 속에 있던 텍스트가 떠오른다.
“한글이라서 읽을 수 없군요.”
“대신 읽어드리죠.”
“예.”
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다.”
“허.”
“내가 지배하는 세상은, 악한자들이 제대로 처벌받는 세상일겁니다. 욕심을 부려 남의 것을 빼앗았다면, 다시 토해내야 할 겁니다. 세상 그 어떤 곳보다 악한 자들에게 아주 공포스러운 세상이 될 겁니다. 난 그걸 바라니까요.”
“미쳤군··· 당신은 미쳤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맞습니다. 미쳤습니다. 당신은 미친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습니까?”
“알지··· 아주 잘 알고 있소, 미스터 천.”
“미친놈은 상종해서는 안 되는 법이죠, 그러니 그 자리. 미국의 대통령. 양보하시죠.”
오머바가 잘게 떨리는 눈으로 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제 39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