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1화. >
SKY의 구름폰.
여태까지의 휴대폰 시장의 판도를 뒤집어 놓을 그 아이템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다.
“서버 다운 직전입니다!”
“증설해! 증설! SKY STORE가 다운되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본사 사옥에 붙어 있는 SKY store의 직원들은 오늘도 이리뛰고 저리뛰고 있었다. 전 세계 동시접속자 3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트래픽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응원의 한마디라도 해줄까 싶었지만, 내가 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직원들을 보자니 괜스레 눈치가 보여 호석을 힐끗 바라보고는 조용히 회장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이잉, 지이잉.
제조번호 000000000.
가장 첫번째 구름폰이 품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음?”
일반적인 전화가 아니라 구름폰전용 영상통화였다.
“엘리베이터에서도 잘 터지네요.”
“하하, 기지국이 여기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호석과 짧게 대화를 나누며 전화를 받았다. 내 얼굴이 잘 보이도록 적당한 각도로.
“어, 왜.”
화면 가득 철수가 봉두난발을 한 머리를 휘날리며 죽일듯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왜라고요? 예? 형님! 왜라고요!
녀석의 서슬퍼런 반응에 나는 얼른 구름폰을 호석에게 넘겼다. 구름폰을 넘겨받은 호석이 와락 인상을 찌푸리고는 묵직한 저음으로 말했다.
“김대표, 회장님 업무중이십니다.”
-크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회장님좀 바꿔주시겠습니까?
잘 알아들은 것 같으니 다시 전화를 받은 내가 제법 근엄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김대표 무슨일입니까?”
-이렇게까지 잘될거라고 왜 얘기 안 해주셨어요?
“분명히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을 바꿀 거라고.”
-그럼 미리 증설하라고 얘기를 하셨어야죠! 아주 죽겠네, SKY STORE는 왜 서버를 안 빌려줍니까? 이러다가 구름앱스토어 터진다니까요?
“방금 스카이스토어 방문했는데, 거기도 서버 빌려줄 상황 아닙니다. 동시접속자수가 300만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다는 것 같던데.”
-아 젠장··· 그럼 구골 서버라도 좀 빌려주십시오 회장님, 이러다가 진짜 마비됩니다 마비! 서비스 3일만에 마비라니, 이 김철수 이름 석자가 쪽팔려서 얼굴이라도 들고 다니겠습니까?
“그건 김대표가 직접 래리나 세르게이랑 통화를 하세요.”
-그 컴퓨터에 미친놈들이 제 말을 안 들어준다고요!
“알아서 잘 조율 해 보세요.”
-회장님! 형님! 살려주······
난 전화를 끊었다.
“영상통화 기능이 아주 훌륭하군요, 약간의 렉은 있습니다만 이정도라면 뭐.”
확실히 놀랐다.
지금의 기술력으로 완전히 소화 못할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주아주 훌륭한 통화품질에 SKY에 대한 감탄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내가 만들었지만, 참 잘 만들었어.”
붉은색과 푸른색.
태극기의 심벌이 생각나는 그 디자인의 구름폰을 쓰다듬다가 문득, 제조번호 000000001의 두번째 구름폰의 소유자가 궁금해졌다.
따닥, 따닥.
능숙하게 다이얼을 누르고 구름폰 전용 영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우리는 이것을 페이스 타임이라 부르기로 했다. 미래에도 있던 이름이지만, 이름쯤이야 어떻게 쓰던 뭔 상관인가.
어차피 이제는 세계최초란 타이틀을 SKY가 가져왔는데.
-으아아아아아아앙!
전화를 받자마자 장군감 저리가라 할 아기 울음소리가 반겨준다. 보이는 화면은 새하얗고 예쁜 ‘귀’가 전부다.
“어, 루시. 이거 영상통화야.”
-아?
황급히 화면이 움직이며 루시의 당황한 얼굴이 잡힌다.
-이렇게 하는거야?
“응, 나 보이지?”
-응, 보이네? 자기도 나 보여?
“그럼, 잘 보이지. 우리 마누라 뭐 하고 있나 궁금해서 전화해봤어.”
-우와, 이거 좋다. 영상통화 앞으로 허니가 뭐 하고 있는지 내가 다 볼 수 있겠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두눈이 번들거린다는 착각이 들 만큼.
슬쩍 시선을 옮기니 호석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하다. 어느새 품에서 꺼낸 구름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어어, 뭐 그렇지··· 중요한 일을 처리할때 영상통화하기는 힘들겠지만.”
-음성제거 기능도 들어있는 것 같은데? 이거 누르면 이쪽에서 나는 소리가 그쪽에서 안 들리는 거 아니야?
“어, 맞아.”
-그럼 뭐 방해될 일도 없겠네.
잘도 무서운 소리를 내뱉는 루시.
“아하하··· SKY가 사용자 편의성에 집중하다보니, 아주 다양한 기술들이 들어가 있네.”
-역시 우리 허니, 어 그. 기똥차다? 기똥차다만들었따?
“하하하하, 기똥차게 만들었다고?”
-응! 맞다. 그렇게 표현하는 거였지.
“고마워 루시, 이제 나 일해야 해서 끊을게.”
-알았어~ 우리남편 오늘도 파이팅.
“그래~”
-별이도 인사해야지 아빠 힘내세요~
“오냐~ 아빠 오늘도 힘 낼게~”
톡.
전화를 끊고 품에 구름폰을 넣었다.
옆통수가 따가워 고개를 돌리니 호석이 뚫어지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기능을 넣으셨습니까?”
원망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호석에게 할 말이 없었다.
“어··· 그러게요,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군요.”
“이 구름폰은 대한민국 모든 아버지들의 공공의 적이 될겁니다.”
“······”
“하, 망할 과학기술은 뭐 한다고 계속 발전을 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호석에게 뭐라 해줄말이 없었다. 유부남들에게 일터는 또 다른 자유의 현장이었는데 이제 그 현장마저 빼앗기게 생겼으니 말이다.
“참··· 이럴 의도로 만든 기능은 아닌데 말이죠.”
“후우··· 와이프가 기계치인게 다행입니다. 문제는 우리 첫째놈과, 둘째놈인데··· 어제 제가 선물로 구름폰을 줬단 말입니다. 가족들에게.”
“오우야··· 악수를 두셨네요.”
“후회중입니다.”
“전 세계 어디든, 대부분 3일내로 구름폰을 보급 받을 수 있을겁니다··· 곧 엄청나게 활성화 될 거에요, 서버가 마비 될 정도라니까 지금도 급속도로 퍼지고 있고요.”
호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앉아 뉴스를 바라본다.
“저기 앵커도 신나게 떠들고 있습니다. 회장님.”
나 역시 시선을 TV로 옮겼다.
-SKY의 구름폰 출시가 겨우 4일만에 초도물량 완판은 물론이고 서버가 마비 될 정도로 전 세계에서 구매자가 몰리고 있습니다. 당초의 높은 가격때문에 소비자들의 구매의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틀렸음이······
“말 했잖아요? 세상은 구름폰 이전과, 이후로 바뀔 거라고.”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이제 정치인들도 구름폰에 익숙해져야 할 겁니다. SNS라는 소셜산업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할테니까요.”
“인터넷으로 국민들과 시민들과 소통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바로바로 피드백이 날아올겁니다. 사고 치기도 힘들거에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고.”
“확실히··· 유부남도 마찬가지고요.”
“커험.”
잔뜩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호석의 눈빛을 피해 시가 박스로 시선을 옮겼다.
“미국 일정 준비에 문제 없죠?”
“예, 회장님. 문제 없습니다. 내일 오전 10시에 출국수속까지 밟아 놨습니다.”
“좋아요, 이번에 미국 출장가면 제법 오래 있을 것 같으니까. 대표님은 어떻게 하실래요? 가족들이랑 같이 가실겁니까?”
“그래야죠, 안 그러면 죽일지도 모르니까.”
“요즘 장인어른은 어떠세요?”
호석이 빠르게 품에서 보고서를 내밀었다.
SKY PMC의 미국에 대한 정보동향서였다.
샤락, 샤락.
“오, 역시 이 사람인가?”
호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는 인물이십니까?”
“그럼요, 흑인으로서 성공한 정치인. 쉬운 타이틀은 아니지 않습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는 호석.
“그러게요, 백인우월주의가 팽배한 미국의 사교계에서 또 저런 특이점은 찾기가 힘들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자중 가장 유력한 인물은 역시나 버락 오머바였다. 원래의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는게 맞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개입한 이상, 안타깝게도 그에게 대통령자리가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나의 장인어른이신 데이비드 록펠러 2세께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약 9년 뒤 쯤이라면 모르겠다. 솔직히 그때도 SKY가 선택하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만만한 인물은 아니니까, 만만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예, 회장님. PMC 정보부에 따로 언질을 놓겠습니다.”
“좋아요, 오늘은 회식이나 하죠? 당분간 맛있는 한식이 그리울 것 같으니까, 제대로.”
“하하, 알겠습니다.”
***
전세기에서 내리자마자.
나와 루시, 그리고 우리 가족을 환대하는 또 다른 가족, 장인어른을 마주할 수 있었다.
“대디~”
루시가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도도도 달려가 장인어른의 품에 폭 안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빙그레 미소짓게 된다.
이어서 장모님와 장인어른과 내가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따로 갈까요 장인어른?”
“흠, 그러지.”
루시와 아이들, 그리고 장모님은 다른 차량을 탑승하고 나와 장인어른은 세단에 앉아 시가를 입에 물었다.
“어떠세요 요즘?”
“글쎄? 뭐 다를게 있나? 열심히 활동하는 것이지.”
“여론은 어떻고요?”
“이미 이번 대선은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게 자명해, 세상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확실히 공화당이 좀 부실하죠?”
“부쉬가 경제를 잘 끌고 온 건 아니니까, 게다가 최근 집값이슈때문에 말이 많거든.”
“모기지 말이죠?”
고개를 주억거리는 장인어른.
“로스차일드가 그대로 있었다면 어쩌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 앉았을지도 모르겠어.”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전세계 경제에 치명적으로 타격을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내가 막았다는걸 그는 알고 있을까?
단순히 예상이 아니라 장인어른의 말은 사실이 되었었을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큰 이득을 취했을테고.
그러나, 나와 록펠러 할아버지의 선택은 멀리 있는 큰 이득을 포기하고서라도 로스차일드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성공했고 말이다.
“대비가 좋았으니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래, 그래서 로스차일드 말고 우리 록펠러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많더군, 물론 아쉽게도 그건 전문가들 위주고,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
“그래도 그게 선전효과가 있어서 도움은 될텐데요?”
“확실히 그래, 도움은 되고 있어.”
고개를 주억거리며 슬쩍 장인어른을 바라보았다.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버락 오버마죠?”
“그렇지. 유색인종에대한 미국내 차별 문제에서, 나는 아쉽게도 백인이기에 그를 이기기 힘들거든. 지금 대두되는 사회 문제도 역시 그것이고.”
“인종차별이 문제라···”
“맞아.”
“그런 버락 오버마가 장인어른을 지지한다면 문제는 해결되겠군요?”
“글쎄, 그가 그의 꿈을 포기할까?”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려 장인어른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장인어른의 꿈은 얼마입니까?”
“뭐라?”
장인어른이 이놈 보게 하면서 날 빤히 바라보신다.
돈이라면 록펠러가도 질리도록 많은 편이었다. 어디가서 나 돈 좀 있어 얘기해도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인정해줄 만큼 있다는 얘기였다.
현 시대에 미국을 꽉 쥐고 있는 은행가의 자식에게 꿈이 얼마냐 물었으니 장인어른의 태도도 이상할 건 없었다.
“자네가 돈으로 사주기라도 할텐가?”
“못 사드릴 이유도 없지요.”
“글쎄, 내 꿈이라면 록펠러가의 전 재산을 들여도 모자람이 없지 싶은데.”
“그런가요? 그럼 오버마의 꿈은 얼마일까요?”
장인어른이 피식 웃으며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그를 돈으로 사겠다?”
“예부터 금력은, 권력을 다스렸죠.”
“글쎄, 그렇게 될 수 있을진 두고 봐야겠지?”
“하하하, 예. 오버마와 자리 한 번 마련해주시죠 장인어른.”
“어려울 것도 없지. 그 와는 봉사하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으니까.”
< 제 39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