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0화. >
뉴스채널을 틀어놓은 집무실 TV에서 일본의 소식이 흘러나온다.
할아버지와 내가 예상했던 것 처럼.
일본인들은 겨우, 정치인들의 손가락 하나쯤으로 그들을 용서 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뿔난 관중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골’이 필요한 법, 결국 자민당은 그 ‘골’을 찾아냈다.
처음부터 있는 듯 없는 듯 있었던 존재.
국민들에게 주권을 돌려 줌으로써 필요가 없어진 존재. 일왕이었다.
사실상 명목만 왕이지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었지만, 어쨌든 그들의 사상에 가장 필요한 핵심 인물인 것 역이 맞았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달라지기로 결심 했으니, 고키부리가 총대를 메고 진두지휘하고 있으니 일사분란하게 일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전범국가로서 책임을 지며, 전쟁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죄인들은······
“미사일이 참 효과가 좋네요?”
호석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맛을 음미한다.
“저러려고 만드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건 맞죠?”
“그나저나, 어우야··· 전범들 무덤까지 파헤친다고 하니까 싫어할 사람도 제법 있겠다 싶은데요?”
“의외로 과격한걸 좋아합니다. 일본인들은 꽁꽁 감추고 다니니까요.”
“음, 그런가요.”
“왜 일본에 이상한 살인영화들도 많잖습니까?”
난 어깨를 으쓱이고는 흘러나오는 뉴스를 마저 시청하였다.
“오늘따라 커피맛이 좋네요?”
“하하, 루시 아가씨가 직접 챙겨보낸 원두랍니다.”
“오, 어쩐지.”
“듣기로는 남자한테 그렇게 좋다고?”
입맛이 뚝 떨어졌다.
TV속에 일왕이 살려달라며 울고불고 애원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거기에 좋은 거 아니죠?”
“아마 맞을겁니다.”
“설마 넷째를?”
“아가씨가 부쩍, 아이 키우는데 재미가 들리신 모양이에요.”
절레절레.
“어우, 무서운 말씀 하시네.”
어깨를 움직여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털어내고는 시가를 입에 물었다.
서울의 가장 땅값 드높다는 곳이 내려다 보이는 뷰.
별건 아니지만,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을 때면, 벌써 세상을 발 아래 둔 것 같아 목적을 달성했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오늘.
오늘부터 진짜 SKY의 지배가 시작된다는 걸, 세상은 알 수 있을까? 아마 짐작도 하지 못하겠지 싶다.
“오늘따라 시가도 맛이 좋네요.”
“그것도 루시 아가씨가···”
호석을 날카롭게 쏘아보자 그가 실실 웃는다.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하하, 예. 농담입니다. 회장님.”
“오늘 기분 좋아보이시네요?”
“진짜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라고 하시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자꾸만 좋습니다.”
나와 호석은 말 없이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함께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창 앞에 서서는 말 없이 시가를 태우기도 한참.
철컥.
아리따운 외모의 비서가 들어와 공손하게 말한다.
“신제품 발표회, 준비가 끝났습니다. 회장님.”
“가볼까요?”
“예.”
드디어 기다리던.
세상을 지배할 첫 아이템의 등장을 세상에 고 할 시기가 도래하였다.
그 어느때 보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 과거 사과사의 신제품 발표회가 언제나 인산인해였던 것과 비슷한 광경이 현재의 SKY 사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지하의 커다란 강당에는 취재진과 전 세계 유수의 기업의 헤드 오너들이 참석해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를 개의치 않으며 당당하 보폭을 옮겨 단상위로 올라갔다.
“SKY는 항상, 사용자의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브랜드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유용할까?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할까? 어떻게 하면 더 쉬울까? 어떻게 하면 더 실용적일까? 더, 더, 더, 더.”
팍.
강당의 조명이 꺼지며, 저 멀리 고해상도 SKY 빔프로젝트가 빛을 뿜어내며 나의 등 뒤 스크린에 커다란 화면이 떠오른다.
탁.
딱. 딱. 딱. 딱.
따라란~!
한국의 전통 악기가 조합되며 아름다운 선율이 강당 전체를 감싼다. 실제 연주자들을 섭외했고, 그들 모두 한 악기에 통달한 명인분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연주와 함께, 아주 한국적인 전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SKY의 구름폰의 심플한 디자인이 스크린 가득 떠오른다.
“이제 세상은, 누구나가 다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웅성웅성.
모두가 나의 말을 의심하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며 구름폰의 상세 스펙이 나열되기 시작한다. 그에 맞춰 가야금 연주자의 현란한 손놀림과 웅장해 지는 음악.
“사용자와 사용자가 원거리에서, 근거리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고.”
스크린 가득, 구름폰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을 주고 받고.”
빠른 속도로 사진이 업로드되고 다운로드 되는 모습이 보인다.
“동영상을 주고 받고.”
빠른 속도로 사진이 업로드되고 다운로드 되는 모습이 보인다.
“마이튜브 방송을 보고.”
슥슥, 화면을 옆으로 넘겨 마이튜브 어플리케이션을 ‘딸깍’하는 클릭 효과음과 함께 실행시킨다.
“인터넷 포털 검색을 하고.”
완벽한 모바일 버젼의 구골 포털이 등장했다.
간단하게 검색어를 치고, 검색한 포털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확대와 축소 화면이 자유로운 모습.
이어서 굳이.
이번 구름폰의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SKY soft가 직접 개발한 풀3D 모바일 게임이 실행된다.
“게임을 하며.”
화면 가득 즐겁게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던 와중, 갑작스럽게 전화가 걸려오는 구름폰.
게임을 하던 사용자가 전화를 받자. 구름폰의 화면에 한 여성의 얼굴이 떠오른다.
“실시간 영상통화를 하고.”
-엄마~
-우리 아들, 공부 잘 하고 있지?
-어어, 그, 그럼.
-그래 엄마는 아들 믿는다?
-으응.
팟.
다시 불이 켜지고, 사람들의 놀란 얼굴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질문 받습니다.”
기자들이 미친듯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곳에 참석한 모든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예, 거기 기자분, 말씀하세요.”
“영어로 하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정말 작은 사이즈의 컴퓨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앞서 보였던 스펙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저 게임을 연속 플레이 했을 때, 배터리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게임을 계속 플레이 했을 때. 배터리가 얼마나 닳까요? 이론상 우리 구름폰은 해당 게임의 가장 많은 트래픽이 발생하는 ‘맵’에서 약 6시간의 연속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흐음, 배터리 용량이 너무 적은 것은 아닙니까?”
“같은 게임을 노트북으로 실행했을 경우, 노트북마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 10시간에서 13시간을 플레이 할 수 있었습니다.”
웅성웅성.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지고 다니는 컴퓨터라고 부를만큼, 배터리 성능이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새, 생각보다 고사양의 게임이었군요.”
“자 또 다른 질문 있습니까?”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실물을 볼 수 있습니까?”
나는 웃으며 품에서 가지고 있던 구름폰을 꺼냈다. 어떻게 보면 붉은빛을 띄고, 어떻게 보면 푸른빛을 띄는 독특한 색감의 구름폰.
빛의 각도와 사람의 시야각에 따라 다른 색상을 보여주는 디자인이었다.
붉은빛과 푸른빛이 적절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의 시그니처 컬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태극기 처럼 말이다. 물론 각 국마다 그들의 시그니처 컬러를 만들어 줄 의향도 있었다. 아쉽게도 이번 모델은 아니지만.
그 유려한 디자인에 사람들이 ‘오오’하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저 멀리 카메라가 내 손에 들린 구름폰을 줌인한다.
스크린 가득 아름답고 유려하며 심플한 디자인의 구름폰이 잡힌다.
나는 화면에 잘 보이도록 액정부분을 돌려 화면을 이리저리 넘겨 게임을 실행하였다.
실제 게임에 접속되는 모습.
“이제 사용자들은 전 세계 어느곳이든, 무선 인터넷만 가능하다면 이 구름폰의 성능 100퍼센트를 사용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몇해 전.
노트북의 보급량이 크게 급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무선 인터넷이 공급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인터넷 문제는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SKY.
작은 문제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만약 당신에게 무선 인터넷 단말기가 필요하다면.”
나는 품에서 작은 단말기 하나를 꺼냈다. 아주작은 사이즈의 단말기는 무선 인터넷을 지원해주는 기계였다.
“여기, 무선 인터넷을 직접 지원하는 단말기를 연결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통신사는 SKY군요?”
-하하하하.
“만약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통신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일반 휴대폰 처럼,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인터넷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은 구름폰 만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들입니다.”
구름폰을 조작해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켰다.
“SKY soft에서 직접 제작한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입니다. 이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한다면 그 어떤 메시지나 사진, 동영상등을 다른 사용자와 공유한다고 해도, 요금이 부과되지 않죠. 당신은 그냥 인터넷 사용비용만 지불하면 될 것입니다.”
딱.
핑거스냅으로 신호를 주자, 스크린 가득 평균 문자 1회 전송에 소모되는 비용과,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의 메시지 전송에 소모되는 비용이 떠올랐다.
“문자 메시지 1회에야 적게는 8원, 비싸게는 21원. 그러나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1회에 0.007원, 간단한 사진의 경우 0.018원이라는 결과값이 나오는군요.”
-와아아아!
“거의 무료라고 생각해도 좋을 겁니다. 이제 통신사들은 우리 구름폰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에게 ‘인터넷 용량’에 대한 돈을 받게 될 테니까요. 통화료와, 문자메시지 비용이 아닌. 심지어, 이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전화도 가능하며, 영상통화도 가능하죠.”
아직도 궁금한 것들이 많은지 기자들의 손을 다시 내려갈줄을 모른다.
좋은 신호였다. 세상이 궁금해 하는 아이템이라는 것은 언제나 잘 팔릴 수 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SKY의 전자제품은 신제품은 언제나 연일 품절 사태가 벌어졌었다.
이번 구름폰은 줄을 서서 사게 될지도 몰랐다.
“가격! 가격이 얼마입니까?”
한 기자가 내가 질문 할 기회를 주지도 않았는데 가격부터 먼저 물어본다. 그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금하다는 듯 날 바라보고 있을 뿐, 불편해 하지는 않았다.
“이번 모델부터는 디스플레이 크기와 배토리 용량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당연이 내장되어 있는 메모리 용량 역시 달라지죠.”
“그럼 모델마다 가격이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당연히 사양이 높으면 더 비싸겠죠?”
“으음, 그렇군요.”
“출시가는 한화 13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최대 스펙의 구름폰을 주문하면 약 188만원의 비용이 소모되죠.”
모두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너무 비싼 것 아닙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정합니다.”
“어째서 그런 비싼 가격이 책정 된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이 구름폰을 구할 수 있는 곳은 SKY뿐입니다.”
“소비자들이 높은 가격에 등을 돌릴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현대의 모든 기술력이 녹아 있는 제품입니다. 지금 책정한 가격이 최선입니다.”
“더 떨어질 가능성은 없습니까?”
“예, 없습니다.”
“이번 구름폰은··· 판매실적이 저조할지도 모르겠군요.”
픽 웃음이 흘러나온다.
과연 그럴까?
과연 비싸다고 사람들이 사지 않을까? 확실히 아직까지는 휴대폰에 100만원이 넘는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내가 알고있는 미래에는 200만원이 넘는 휴대폰도 잘만 팔렸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고객들의 니즈를 채울 수 있다면 가격이 문제일까.
“나는 성공을 확신합니다. 한번 지켜보시죠 기자님, 과연 SKY의 구름폰이 잘 팔리는지 아닌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우려속에 전 세계를 지배할 SKY의 구름폰이 첫 발을 내딛었다.
< 제 39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