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89화 (389/458)

< 제 389화. >

콰과과광!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도쿄의 하늘을 수 놓는 불꽃.

다행이 파편은 시민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닌, 도쿄만 인근의 바다로 터져 나갔기 때문에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는 거의 전무했다.

순간 패닉에 빠졌던 사람들이 바닥에 잔뜩 웅크리거나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등의 소란은 발생했지만 크게 다친 사람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겁에 잔뜩 질린 사람들을 단상에 고고하게 서서 바라보던 고키부리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여러분의 목숨과 일본의 그 헛된 욕망과 명예.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어느곳에 무게추를 놓으시겠습니까? 저는 일본의 발전은, 과거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그게 제가 역사바로알기 재단의 일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이유이며, 일왕을 일왕이라 부르는 이유이며, 자민당을 욕하는 이유입니다. 이상 고키부리였습니다.”

고키부리는 유유히 단상을 내려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아 있던 일본인과 취재진들은 한동안 멍하니 도쿄의 상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폭발은 사라지고 어느새 깜깜한 어둠이 가득한 하늘에, 어째서인지 그들의 눈에는 계속해서 태양처럼 밝게 빛나던 폭발 장면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

순식간.

SKY 항공우주기술의 로켓 발사 시험은 아주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 말 그대로 순식간이라는 시간에 말이다.

“피해상황은?”

“없습니다.”

“됐네요, 비난을 피해갈 명분은 확실하게 챙겼어요.”

“전화 왔습니다 회장님.”

호석이 내미는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요시가와?”

“예.”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받았다.

“그래.”

-정말··· 발사 했군요.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얘기 했을 텐데?”

-··· 그대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픽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제와서 대세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장 내일부터 일본의 여론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군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대세는 바꿀 수 없는 것이군요.

“그래. 그러니 그냥, 정여사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그랬어?”

-내가 멍청했군요···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야.”

-인정합니다. 지금 자민당 전체 의원들의 도게자가 준비되었습니다. 부디··· 노여움이라도 풀어주시기를.

“글쎄, 그딴건 솔직히 관심사 밖이라.”

-천상께서 원하시던 총리자리, 그 자리는 반드시 고키부리가 얻어 갈 것입니다.

또 다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멍청 할 수가.

“고키부리의 성명발표 못 봤나?”

-똑똑히 봤습니다.

“이미 여론은 고키부리의 것이야, 네 놈들이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일본의 우파들은 생각보다 외골수입니다.

“글쎄 목숨줄의 위협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부디 살려주십시오.

“하는 거 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탁.

전화를 끊고 호석을 바라보았다.

“······”

“왜 그러십니까 회장님.”

“일이 너무 금방 끝났네요.”

내 얼굴이 씁쓸해 보였을까? 호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세상은 모르지 않습니까? 회장님 일이 끝났는지.”

“세상은 몰라도, 와이프들은 알던데요.”

“크읍.”

“웃기세요?”

“크흠, 아닙니다.”

“그러는 정 대표님도 일이 끝난 겁니다만?”

호석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흐음···”

도쿄의 하늘이 훤히 보이는 발코니에 앉아 나와 호석은 씁쓸하게, 시가를 입에 물었다.

어찌나 퇴근이 싫은지.

***

이시다와 요시가와.

현 자민당의 당대표이자 일본 정권의 실세.

그를 필두로 모인 모든 자민당의 정치인들이 잔뜩 긴장하고 겁먹은 얼굴로 요시가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꼭··· 이렇게 해야 합니까?”

모두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요시가와를 바라보고 있었고, 요시가와 역시 그들의 말 뜻을 이해 못할 게 아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 고키부리를 바라보았다.

척.

고키부리가 자신의 붕대가 감긴 왼손을 들어올리더니 돌돌, 붕대를 풀어 헤친다.

“당신들이 어떻게 증명 할 것인가? 과거 내가 총리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에게 할복을 강요하던 사람들이 맞나?”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고키부리의 태도에도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는 모양.

“그것에 비하면 손가락 하나 자르는게 뭐가 대수라고? 지금 공포에 떨고 있는 국민들에게 뭔가 달라졌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하는 게 어때?”

요시가와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당내 의원들의 얼굴을 면면히 살폈다.

“정치계의 꿈을 접고 싶다면 지금 떠나도 좋다. 지금 이 순간 떠난다면 다시는 이쪽에 얼씬도 하지마.”

통보.

단지 충성 맹세에 동의하지 않을 놈들은 꺼지라는 통보였다. 몇몇의 신진 의원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는 게 보였으나 그들은 차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나서길 좋아하고 관심 받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정치인’이라는 직업도 가질 수 있었지만, 일본의 사회상이, 그리고 사회생활이 조용조용히 묻어가고 단체를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그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평생 그렇게 교육받아온 그들에게 단체의 결정을 무마시킬 용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동의 한 것으로 알지. 지금 우리 대일본제국의 신민···”

“스읍.”

고키부리가 눈을 부라리며 요시가와를 째려보았다.

“크음··· 일본의 국민들에게 자민당의 각오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니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훗날 새끼 손가락이 절단된 우리는 역사에 길이 남을테니까, 일종의 훈장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고키부리가 ‘그럼그럼’하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아주 흡족하게.

“자, 그럼 시작하지.”

““하잇!””

고키부리의 명령에 마치 각오를 다진 군인들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정치인들. 그들의 손에는 각각 작은 기름통과 라이터등이 들려 있었다.

30분 뒤.

온통 휘발성 액체 냄새로 눈쌀이 찌푸려지는 곳에 모인 자민당의 정치인들.

그들의 뒤로는 기름에 절여진 야스쿠니 신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 앞 대로에 차량을 통제하고 전통복장을 입은 정치인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고, 언론의 카메라 역시 등장하였다.

“우리 자민당은! 과오를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바입니다.”

쿵! 쿵!

요시가와의 선창에 뒤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정치인들이 땅 바닥에 머리를 찧는다.

“전범국가임을 인정하고! 피해를 받은 모든 세계인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쿵! 쿵!

“앞으로 우리 자민당은! 일본의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본의 발전에 앞장 설 것을 다짐합니다.”

쿵! 쿵!

“말로만 하는 맹세는 지금 핵폭탄의 공포에 빠진 우리에게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채챙!

모두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각자의 앞에 준비된 나무 도마 위에 왼손을 척 올린다.

화르르륵.

때마침 그들의 뒤쪽, 지난번 천우진에 의해 전복되었다가 다시 복구된 야스쿠니 신사가 화마에 휩싸인다.

“우리는 이제! 군국주의, 제국주의! ‘하나의 주인!’이라는 망상에서 빠져나와 대일본제국이라 칭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 평화에 진심으로 이바지하는 일본이 되고자 노력해 나갈 것임을 ‘신민’이 아닌, 일본의 ‘국민’들께 약속드립니다.”

요시가와가 가장 먼저 도마위에 있던 왼손 새끼손가락을 향해 단도를 내리쳤다.

콱.

“끄으으읍.”

콱! 콱! 콱!

이어서 다른 정치인들 모두 도마위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친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언론사의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그들은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새끼 손가락이 없는 손을 카메라 앞에 잘 보이라고 들어 올리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

-허! 단지충성맹세? 무슨 제 놈들이 독립투사라도 된다더냐?

할아버지의 뿔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헌데 어째서인지 그 안에 일종의 희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마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사실 일 것이다. 일제를 기억하는 할아버지에게, 일본인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것은 통쾌한 장면일지도 모르니까.

“그러게요··· 고키부리가 일을 이상하게 진행하네요?”

-쯧쯧, 제 놈 혼자 손가락이 잘린게 억울했던 모양이구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한국 여론은 어때요?”

-길거리 곳곳에서 천혁수, 이 석자를 외치면서 칭송이 자자하구나, 커험.

본인 입으로 자랑을 하시니 쑥스러우신 모양.

“대단한 위업이죠, 역대 대통령중 그 누구도 일본을 무릎 꿇리지 못했잖아요?”

-쯧··· 마냥 내가 한 일이 아니니 좋아하기도 애매하구나.

“하여간 참, 칭찬을 이상하게 하신다니까?”

-시끄럽고, 해서. 이제 일본놈들은 어떻게 하겠다더냐?

“지금 하는 꼬라지로 봐서는 아마 국민 여론의 뭇매를 맞을 적당한 놈을 고를 것 같습니다. 은근히 잔인한 놈들이라 누구 하나 책임을 지고 죽어줘야 분노사 사그라들 것 같네요.”

-쯧쯧, 보나마나 일왕 놈을 처리하겠군.

“2차 세계대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허수아비니까요.”

본래 일본의 주권은 ‘천황’이라 칭해지던 일본의 왕 ‘일왕’에게 있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당시 항복선언을 하게된 당시의 일왕 때문에 주권이 일본의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일왕은 어떻게든 살고자 한 선택이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일본은 항복 할 생각이 없었다고 보는게 옳았다. 당시 복잡한 일본의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거의 삼파전으로 일본은 갈라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어쨌든, 영속패전주의따위의 말이 나온 것 역시 그것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미국에게 졌지만, 아시아에는 안 졌어, 인정못해. 응 우리 패전국가 아니야. 우린 안 졌어.’

하면서 정신승리를 아직까지 해 오던 일본이었다. 덕분에 계속해서 동북아를 넘어 아시아의 패권이 제놈들의 손에 있는 것 처럼 여기던 일본 놈들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그딴식으로 역사 교육을 받기도 했고 말이다.

자민당이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우며 손가락을 자른 행위는 그 썩어빠진 정신승리를 정면으로 깨부수는 행위나 마찬가지었다. 그리고 그 끝은 분명 일본의 일왕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으로 귀결 될 것이다.

“이제 진짜 주권을 국민들에게 주는 척, 하겠죠.”

-그럴 게다.

“미국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일본인데, 이제는 대한민국한테도 속국인걸 인정할지 궁금하네요.”

-네 놈이 반쯤은 그리 만들었으니, 죽이되든 밥이 되든 결국은 그럴 수 밖에 없을테지.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하세요.”

-그래 이놈아, 좋으다! 아주 좋아!

“그럼 됐습니다.”

-쯧, 썩을놈. 그래, 한국에는 언제 올 것이냐?

“곧 신제품 발표회 있거든요, 그거 때문에라도 가야죠.”

-또 신제품이야?

또 신제품이라니, 서운한 말씀을 하신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인터넷이라는 정보화시대가 와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는 10년에 강산이 변하는게 아니라 5년, 3년이면 변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SKY는 항상 한걸음, 두걸음 앞장 서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테니까.

“이번 신제품부터는 다를겁니다.”

-뭐가 다르더냐?

“이제 진짜 잠자고 있던 SKY의 용이, 승천 할 시기거든요.”

-승천?

“세상이 바뀔겁니다. SKY라는 존재로 인해서.”

-허허, 그 신제품이라는 놈 기대가 되는구나.

“세상은 이번 SKY의 신제품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겁니다.”

-아주 자신만만하구나.

“예, 무조건 성공 할 아이템이거든요.”

-오냐 두고보마.

“아마 놀라실걸요? 어마어마한 파급력에.”

< 제 389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