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88화. >
도쿄의 하늘이 아주 잘 보이는 곳.
작고 협소한 공간에 숙박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호텔 중 최상층 펜트하우스를 통째로 빌려 통유리를 활짝 열어 젖힌 나는 시원한 칵테일에, 시가를 입에 물었다.
“얼마나 남았죠?”
“땅거미가 내려 앉은 시각을 요청하셨기에, 지금부터 약 50여분정도 남았습니다 회장님.”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가를 몇 모금 뻐끔거리는데, PMC대원 중 한명이 호석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이내 날 바라본 호석이 TV 리모컨을 들어올리더니 말했다.
“일본의 총리가 성명문 발표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아무래도 요시가와가 움직인 게 아니겠습니까?”
난 고개를 주억거리며 고개를 돌려 TV를 바라보았다. 원숭이 같이 생긴 놈이 진중한 얼굴을 하고는 많은 기자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일본의 신민 여러분, 그리고 전 세계의 시민 여러분. 오늘 우리 일본은 앞으로 변해가는 국제정세와 빠르게 변화하는 전 세계적인 문화 트렌드에 대하여, 이제는 우리 일본도 더 이상 도태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임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이랑 다르네요?”
“흐음, 일본놈들 얘기는 아직 더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TV에 집중했다.
-우리 일본은 이제, 과거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진심을 다해 과거를 딛고 일어서려는 모습을 보여야 함이 마땅합니다. 우리 일본의 총리, 정치인들은 대대로 일본이 전범국가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현 총리인 저와, 저의 정치적 이념을 함께하는 자민당은 이제는 전과 같은 태도로 빠르게 발전해나가는 국제 사외에 편승할 수 없음을···
“어쭈? 사과를 하겠다?”
“하하, 미사일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입니다.”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요시가와 이 능구렁이 같은 새끼가 선빵을 날리고 있었다. 죽어도 미사일 때문에 쫄아서 사과를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데, 정말 미사일 쏠거야? 그런 질문과 의도도 함께 내포한 총리의 성명문이었다.
“새끼들, 그럼 단체로 도게자라도 박았어야지.”
“예?”
내 혼잣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호석에게 말했다.
“요시가와 연결 되죠?”
“바로 연결 하겠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현 총리의 사과 방송을 계속 지켜보았다. 요시가와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총리라는 직책의 인물이 공식석상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성명문을 읽기 시작했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게 숨길것도 감출 것도 없어야 하며, 일본을 대신하여 저 일본의 총리가 진심을 다해 사죄드립니다.
쿵, 쿵.
TV에서도 총리놈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는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쇼 한번 제대로 하네.”
분명 저 쇼에도, 대한민국의 어떤 국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과거가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쯧.”
씁쓸한 마음을 감추며 호석이 건네는 전화를 받아 들었다.
“어이, 재미있네, 방송.”
-제가 특별히 총리에게 부탁했습니다. 천 상.
“에헤이, 미사일 발사를 멈추고 싶었으면, 너희 당 전부가 도게자라도 박았어야지? 네 놈들이 자랑하는 전범을 모신 그 신사도 불태워 버렸어야 하고.”
-··· 그, 그렇게 까지 해야 합니까?
“어차피 하게 될 걸? 총리놈의 저 성명문이 진실이라는 걸 증명하려면, 뭔가 해야 할 거 아냐?”
-크··· 크흠.
“생각 잘 하라고, 이제 한 40분 남았나?”
-시, 시간이 부족합니다 시간이!
“그건 네 사정이고, 그러니까 바쁘게 움직였어야지.”
-처, 천상! 천상!
탁.
휴대폰을 대충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는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더 이상 총리놈의 성명문을 볼 필요도 없었다. 대충 죄송하다는 쇼나 하고 있을 테니까, 진심이라고는 1도 들어있지 않는 구라 쇼를 말이다.
“이래서 김일정이가 맨날 불바다, 불바다 큰 소리를 쳤나봐요?”
“예?”
“아니, 도쿄를 불바다 만든다니까 기겁해서 일본 총리가 사과도 하고 말이죠.”
“아아··· 대한민국은 김일정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만.”
“예, 놈들은 실제로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호석이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회장님은 실제로 실행 하시는 것이고요?”
“그렇죠? 입으로만 위협하는 것 보다 한번 보여주는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아마 한동안 난리가 날 겁니다. 일본은 핵폭탄에 특히나 예민하니까요.”
“그러라고 하는 겁니다. 기껏 핵무장을 끝냈는데, 효과적으로 사용 해 봐야죠?”
“하하하, 예. 맞습니다.”
호석과 가볍게 담소를 주고 받는 사이, 호석이 품에서 전화기를 꺼내 내게 건냈다.
“백부님이십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받아들었다.
“예.”
-허허, 총리가 머리를 조아리다니, 몇몇 국민들이 눈물을 훔치겠구나.
“이게 다, SKY의 기술력 아니겠습니까.”
-쯧, 겸손하거라.
“에헤이, 이제와서요?”
-쯧쯧··· 잠룡이라더니 이제 잠에서 깨어서는 이건 뭐, 망나니용이더냐?
“예? 망나뇽이요?”
-망나니용.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주머니몬스터는 모르시는 모양이다. 나는 절로 피식 하고 웃음이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국 놈들은 옛날부터 겸손을 몰랐죠.”
-우리가 미국인들이더냐.
“그리고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패권을 쥐고 있죠.”
-좋은것만 닮거라, 좋은 것만.
“뭐 어쨌든, 총리가 도게자를 했어도 시험발사는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도쿄의 상공에서 우리 미사일은 자동폭파 될 것입니다.”
-알았다. 이미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게는 통보를 해 놓았다. 어디 마음대로 놀아 보거라.
“예.”
전화를 끊고 호석에게 물었다.
“고키부리 준비 됐죠?”
“예, 회장님.”
“진행시키세요.”
“예.”
무려 로켓 발사대에서 로켓 미사일 하나를 발사 하는 짓이었다. 고작 일본 놈들의 사과 한마디 듣자고 그런 무리수를 띄우기에는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뜻.
난 어쩔 수 없는 짠돌이인 모양이다. 하나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율을 빼 먹어야 직성이 풀리니까.
***
일왕의 거주지 앞.
점심이 지난 시간부터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설치하고 있던 그곳에서 고키부리는 호석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스무니다.”
-시작하세요.
“예!”
고키부리가 전화를 끊으며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어느새 일왕궁을 배경으로 만들어낸 단상 위에 올라가 마이크 앞에 섰다.
어디서 몰려왔는지 어느새 기자들이 그 주변에 인산인해였다. 아마도 총리의 성명문 발표현장이 끝나자 마자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특이한것은, 총리의 갑작스러운 성명문, 정확히는 한국에 대한 사과의 말을 취재한 기자들을 대부분 일본기자들이었던 반면, 이곳에 모인 기자들은 외신기자들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도쿄도지사 고키부리입니다.”
길가던 행인들은 멈춰서고, 일왕궁을 보러왔던 관광객들 역시 고키부리를 바라보았다. 몇해 전, 천우진에 의해 불타올랐던 일왕궁은 어느새 삐까뻔쩍하게 고쳐져 있는 모습이었다.
“오늘 있었던 현 일본 총리의 사과 성명문, 여기계신 모두가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재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니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게 더 힘든 일이었다.
과거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트집을 잡아 비난하기 일색이던 일본이 난생 처음, 색다른 행보를 보였기에 더욱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아십니까?”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한 일본인 기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도지사께서는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현 일본의 총리가 진심으로 우러나온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일본은 이제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 그런 발표를 했다 생각하십니까?”
“그게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버럭 소리를 지른 고키부리.
어느새 단상 주변은 사람들로 붐볐다. 뭔가 커다란 비밀이라도 밝혀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현 일본의 총리가 한국에게 고개숙이고, 잘못을 빈 진짜 이유!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ICBM 로켓이 시험발사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
그들과 다르게 놀란 눈이 된 기자들은 빠르게, 빠르게 뭔가를 적어가기 바빴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ICBM이란, 대륙간 탄도 미사일, 즉 초장거리 미사일을 뜻합니다.”
“이시다 총리가 그것때문에 한국에게 사과를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실상은 미사일이 두려워 사과를 해 놓고, 겉보기에는 더 나아가는 일본이 되고자 하는 척,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로켓을 시험발사 하는 것과 총리가 겁을 먹는 게 어떤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한국의 로켓 시험발사 장소가 이곳, 도쿄이기 때문입니다.”
고요.
고키부리의 폭탄 발언에 순식간에 장내가 싸늘하게 변해버렸다.
이내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기자들이었다.
“지, 지금 도지사께서 하신 말씀은, 그러니까. 이곳 도쿄로 한국의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직 발사 하지 않았으나, 곧 발사 할 것입니다.”
“마, 맙소사.”
“참고로 대한민국은 핵무기 보유국가입니다.”
소란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해, 핵무기라고?”
“맙소사! 원자폭탄?”
“서, 설마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쏘겠어? 감히 우리에게?”
“이 미친놈아! 너같은 놈들때문에 열받은 대한민국이 핵폭탄을 쏘는 거라고!”
“일본인 주제에 한국을 무시하지 말라고! 핵폭탄 맞고 싶어?”
고키부리가 손을 들어올려 크게 소리쳤다.
“조용! 조용!”
모두가 입을 닫고 고키부리를 바라보았다.
“오늘 총리의 성명문에는 과거의 과오를 모두 인정하고 앞으로는 더 나아가겠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오늘의 사과 성명문 조차 사실은 대한민국의 핵 무기가 일본 본토에 떨어질까 두려워서 얘기 한 것이지요, 오늘의 시험발사를 알기 때문에 먼저 사과를 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대한민국이 시험발사를 멈춰줄까 해서죠.”
모두가 침착하게 고키부리에게 집중했다.
“일본은 우리 일본은! 그리고 현 총리와 현 총리가 소속된 자민당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일본의 우익들은 아직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을 우롱하고 어떻게든 감추려만 듭니다! 여러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총리의 사과 방송이 있었음에도 한국의 로켓미사일 시험 발사가 그대로 진행된다면 분명, 국민들에게 한국은 강자로서 자비를 베풀지 않는 나라이기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선동했을 것입니다!”
곳곳에서 고키부리의 그럴듯한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서 또 어떤 미친 짓거리를 하면서 대한민국과 세상을 화나게 만들지 모릅니다. 제 뒤를 보십시오! 이곳이 어디입니까?”
“천왕궁입니다!”
“천왕이 아니라 일왕입니다!”
고키부리의 말에 일본인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서 우리 일본은 아직도 전범들에 대한 처분이 없습니까? 여기 일왕궁 조차 전쟁범죄에 크게 가담했음인데! 아직도 전쟁범죄자들을 모시는 신사를 만들고 기도를 올린단 말입니까! 진정 일본이라는 나라가 멸망해야 그때가서 우리가 잘못했음을 깨닫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개 소리다! 저런 매국노같은 자식!”
“맞아, 감히 천황께 전쟁범죄자라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이곳저곳에서 고키부리를 비난하는 원성이 들려왔다.
고키부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이크에 말했다.
“이러니 우리 일본은··· 뿌리부터 잘못 된 것입니다. 교육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저기 나를 욕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30대, 40대가 대부분이지만 젊은 20대와 10대들도 보이는 것 같군요··· 어떻게 실제 2차세계대전을 모르는 저 나이의 사람들조차 저렇게 얘기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바로 일본에 뿌리깊게 박힌 주입식 가짜교육 때문입니다!”
“닥쳐라! 더 이상 대일본제국을 욕되게 하지 마라!”
“당신이나 닥쳐! 너 같은 놈은 우리 일본인이 아니야! 너 같은놈들이 득세하던 자민당 때문에 우리 일본이 망해가는 것이다! 우리 일본의 경제가 수십년동안 제자리에 있는 이유를 진정 모르겠는가!”
고키부리가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익···”
사내가 말을 잊고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진정 이 일본이 멸망 해야! 일본말을 쓰고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여러분! 역사를 바로알고, 과오를 제대로 알아야 하며, 깊이 반성해야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진실된 용서를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진실된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도 일본에도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일까.
반쯤은 고키부리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다른 반쪽은 손을 들어올리며 고키부리에게 욕을 쏟아내고 있었다.
“모두 하늘을 보십시오. 지금 대한민국의 로켓미사일이 도쿄 상공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화들짝 놀란 사람들과 취재진의 카메라가 도쿄의 상공을 비춘다.
정말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점점 커다랗게 변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얼마든지 이 발전따윈 잊어버리고 과오를 과거의 영광이라 믿는 일본을 언제든 멸망시켜버릴 수 있는 국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과거의 잘못을, 되려 과거의 영광이라 칭하며 아직도 답습하고 복습하고 있습니다 이런 멍청한 짓거리를 이 나라가, 내 뒤에 있는 저 일왕이라는 놈이! 국민들을 속이고 ‘신민’이라 칭하며 그런 우매한 놈이 국민들의 위에 있단 말입니다!”
피라도 토할 것 같은 고키부리의 연설이 마치 미사일이 날아오는 과정의 BGM처럼 들려왔다.
어느새 불빛은 태양처럼 밝게 느껴졌다.
“이대로 계속가면 결국, 일본은 멸망할 것입니다.”
콰과가강!
고키부리의 마지막 말과 함께, 도쿄의 상공을 대낮처럼 환히 밝히는 폭발이 일어났다.
“꺄아아아악”
“어헉, 도, 도망쳐!”
“사, 살려줘! 핵폭탄이다! 핵폭탄!”
시민들이 패닉에 빠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 제 38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