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87화. >
너무 순식간에 여러 상황이 겹처서일까? 이제는 거의 해탈한 것 처럼 보이는 요시가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자, 여기 옆에서 단지 충성 맹세를 한 고키부리가 이 나라의 총리가 된다.”
“단지 충성 맹세? 총리?”
“뭐, 그런게 있고, 어떻게 가능 하겠나?”
“말도 안되는 소리오!”
“말이 안된다?”
“그렇소.”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얼마전에 네 놈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다지?”
흠치 놀라는 요시가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야.”
“무, 무엇을 말입니까?”
“대한민국이 이제 어떤 나라가 되었는지 말이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요시가와.
나는 놈을 무시하고 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전화를 연결 한 곳은 청와대.
“예, 할아버지.”
-왜, 또?
“미사일 발사 시험 좀 하려고요.”
-언제부터 일일이 보고했어? 국방부랑 같이 협조해서 진행하던 놈이.
“하하하, 이번에 시험해볼 곳은 일본 해엽이라서요.”
-··· 내가 잘못 들은 게야?
“아뇨, 옳게 들으셨습니다.”
수화기 너머 할아버지가 잠시 말이 없는 사이, 나는 고키부리를 보며 통역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인 고키부리가 통역을 시작했다.
-왜, 일본놈들을 위협하는 데?
“아직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한 것 같아서요? 극우파라는 놈들이 득세하고 있는 일본 아닙니까? 극우파는 혐한이 심하고요.”
-그래서?
“아직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공식적인 사과가 없잖습니까? 과거에 대한.”
-그래서 위협사격을 하겠다?
“제가 예전에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분쟁, 솔직히 뭐 일본의 일방적인 영토분쟁에서 러시아는 일본 열도 전체를 순회하는 전투기를 내보냈죠,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음, 기억나는 군.
“그 다음 일본은 어떻게 했을까요?”
-조용히 입을 닫았지, 더 이상 같은 말을 언급하지 않았고.
픽 웃으며 눈으로는 요시가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게, ICBM훈련이면 어떨까요?”
-하, 원폭에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은 기겁 잔치를 하겠지.
“엄청 효과적이지 않겠어요? 이제 대한민국과 일본, 두 국가간 우위에 누가 있는지.”
-파장이 클 텐데.
“어차피 동맹국가 아닙니까? 미국과 함께 말이죠.”
-쯧··· 국방부에서는 좋아 하더냐?
“오늘은 할아버지에게 먼저 연락드렸습니다.”
-그 치들은 어쩐지 좋아 할 것도 같구나, 네놈이랑 제대로 붙어먹어서 머리까지 전쟁이 절여진건지 원.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게요?”
-쯧, 이런저런 핑계를 댈려면 바쁘겠구나, 뜻대로 해 보거라.
“옙.”
전화를 끊고 힐끗 요시가와를 바라보았다.
“저, 정말 미사일 시험을 하겠다는 겁니까! 그것도 이 일본을 향해서!”
“왜? 못할 것 같나?”
“국제적인 비난이 있을 겁니다! 위협사격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을 겁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건 대한민국의 대통령께서 감내 할 문제지.”
“하··· 당신은 미친 겁니까?”
고키부리가 눈을 부릅 뜨며 제 손가락을 잘랐던 그 군용대검을 들어올렸다.
“감히, 천상께 예의를 갖춰라!”
“미친놈··· 미친놈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미친놈이지. 난 도쿄의 상공에서 미사일을 폭파 시킬 거거든.”
“뭐요?”
눈을 부릅 뜬 요시가와.
“걱정하지 마, 철저하게 계산해서, 파편은 모두 바다로 떨어지게 해 줄테니까.”
다시 전화를 들어 올렸다.
“발사 준비 되었습니까?”
-예, 회장님. 말씀하신 좌표, 도쿄··· 맞습니까?
“예, 정확하네요.”
-정말 괜찮은 것입니까?
“예, 어디까지나 훈련입니다. 훈련. 시험발사.”
-··· 국방부에서도 이번만큼은 살짝 피하더군요.
“그럴 수 있죠, 책임은 대통령께서 지실겁니다.”
-아, 대통령님께도 이미 얘기가 된 상황이군요.
“예, 시작하세요, 도쿄의 상공에서 미사일이 자동으로 터지도록.”
-예, 시뮬레이션은 끝났습니다. 98퍼센트의 확률로 모든 파편은 도쿄인근의 해역으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미국에게는 이미 통보를 했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뭐 제놈들 일 아니라고 신경쓰지 않겠죠.”
-예, 2시간후 발사 하겠습니다.
난 고개를 주억거리며 요시가와를 바라보았다.
“2시간 뒤, 도쿄 상공에서 일어나는 불꽃놀이. 그걸 보고 결정 하자고?”
“허···”
***
멍한 표정으로 집무실로 들어온 요시가와.
“대표님, 만나러 가셨던 약속에서 무슨일이 있었습니까?”
보좌관의 질문에 팍 인상을 찌푸린 요시가와가 죽일듯 보좌관을 노려보았다.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 그녀가 결례라도 범한 것입니까?”
“결례? 고작 결례라고?”
“예?”
“하··· 됐고··· 총리와 함께 당내 중진들··· 바로 모이라고 해.”
“하, 하잇.”
보좌관이 사라진 집무실, 요시가와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창 밖으로 도쿄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정말 저기에서 천우진이 얘기한 불꽃놀이가 시작될까 싶었다.
“하···”
만약 도쿄의 상공에서 ICBM미사일이 폭발 한다면, 거기에 핵탄두가 달려있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요시가와.
불꽃놀이가 끝나면 일본은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것임을 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제안을 받아 들였어야 했어···”
후회는 언제나 빨라도 늦은 법이었다.
오늘따라 끊었던 담배가 생각나던 요시가와는 집무실 책상 서랍장에서 오래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드르륵, 드르륵.
“제기랄.”
아무리 찾아도 라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되는게 없군.”
털썩, 창 밖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속속들이 당내 중진들과 일본의 총리가 그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당대표, 총리를 오라가라 하다니,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요시가와가 눈썹을 파르르 떨며 총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네 놈이 총리의 자리에 앉으니 눈에 뵈는 것이 없구나.”
“뭐요?”
“네 놈이 그런식이니 바깥에서 원숭이 소리나 듣는 것이다, 멍청한 놈.”
총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원숭이라니, 그건 정말 심각한 비하 발언이 아니던가.
“도대체 UN총회에서 뭘 하고 온 것이야? 어떻게 대한민국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걸 보고만 있어?”
총리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요시가와를 바라보았다.
“당대표께서는 어떻게 할 수 있으셨습니까? 이미 국제정세의 대세가 대한민국에게 손을 들고 있는데 이제와 어쩌라는 얘기입니까? 우리 일본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쯧쯧, 네 놈에게는 언제나 대일본제국의 패기가 부족하다 내가 그리 말했었지.”
“패기? 그게 패기로 될 일입니까?”
“헛소리 그만 하고 자리에나 앉아.”
“하.”
잔뜩 화가 난다는 듯 마른 세수를 하던 일본의 총리가 털썩 상석에 앉았다. 요시가와가 파르르 눈썹을 떨지만 이어서 들어온 보좌관에게 라이터를 받아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길게 말하지 않겠소.”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요시가와를 바라보고 있었고, 총리놈은 뚱한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우리 자민당은 이제부터, 대한민국에게 우호적인 정당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오.”
총리가 입에 물려던 담배를 부러뜨리고, 다른 당내 중진들 역시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니, 자민당이 혐한을 그만 한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허, 극우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당장 우리부터 테러를 할 겁니다!”
“어째서 그런 결정을 한단 말입니까?”
한숨을 크게 내뱉은 요시가와가 손가락으로 도쿄의 상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곧, 대한민국의 ICBM시험 사격이 있을 것이오.”
“ICBM?”
“상임이사국이 된 대한민국이 핵무장을 끝냈다는 건 여기있는 모두가 알 것이라고 봅니다.”
중진의원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실전배치 했다지만, 그게 우리 자민당이 여태까지의 이념을 저버리는 행위에 대한 이유가 될 순 없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를 우습게 만드는 태도가 될 것입니다!”
픽 웃음을 흘리는 요시가와.
“내가 왜, 도쿄의 하늘을 가리켰는지 아시겠소?”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
“바로 저곳에다가 ICBM을 터트리겠다 하더군.”
장내의 모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덜덜 손과 발을 떨었다.
“지, 지금··· 해, 핵폭탄이 도쿄로 날아온다는 얘깁니까?”
유난히 겁에 질려 보이는 총리놈을 힐끗 바라본 요시가와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한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진짜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쏘겠소? 후우··· 어디까지나 시험사격이요, 시험사격.”
“어째서 이곳 도쿄를 노리고?”
“우리 때문이지.”
“예?”
“멍청한 놈들.”
이제 요시가와는 노골적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정치적 이념, 그것 때문이라고!”
자민당의 아이덴티티, 아니 어쩌면 전 일본에 걸친 정치인들의 태도. 과거의 망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일본에게 보내는 경고와 같은 행동.
요시가와는 담배를 두개피쯤 입에 물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일본은 과거와 달라진게 전혀 없었다.
그저 상황에 따라 달라진 척 했을 뿐이었다.
아직도 2차 대전때의 영광에 취해서 미국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발 아래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기저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치 전통처럼 전해졌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 역시, 물어보면 ‘일본이 미국 다음 아닌가요?’따위의 헛소리를 뱉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가 되었든, 변하게 되겠지.”
“예?”
알 수 없는 요시가와의 혼잣말에 총리를 비롯한 중진들이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가 원해서이든, 원해서가 아니든,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 해야하지.”
방금의 얘기는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빠르게 성명문을 발표해, 총리.”
“어, 어떤 성명문 말입니까?”
“말이야 알아서 만들어 내고, 우리 일본은 앞으로 대한민국에게 다른 시선을 가져야 할 것이며, 지난 과오를 잊지 않았음을 명시하고, 사과를 해야 할 것이야.”
“뭐요?”
“전범국가인 것을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어째서 그것을 내가 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익!”
요시가와가 열이 받았는지 태우고 있던 담배를 총리의 면전에 던져 버렸다.
“이 멍청한 새끼야! 미사일이 터지기 전에 사과 방송을 하는게 그림이 더 예쁘다고! 꼭 이렇게 얘기해야 알아 듣겠어? 미사일이 도쿄의 상공에서 터지고 나서, 그 다음 사과 방송을 하면? 사람들이 ICBM때문에 일본이 잔뜩 쫄았구나, 그렇게 생각 할 거 아냐!”
“아···”
“아직도 정신 안 차려? 이제 대한민국은 우리 아래가 아니야··· 제발 일들 좀, 똑바로 하자. 똑바로.”
서릿발 날리는 요시가와의 모습에 모두가 침을 꼴깍 삼켰다.
“총리는 지금 바로 성명문 발표 준비하고, 급하니까 30분 안에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 놔. 나머지 중진들은 모든 당내 의원들 소집해, 도쿄의 하늘이 잘 보이는 곳으로.”
“하, 하잇.”
“움직여! 벌레 같은 새끼들.”
모두가 요시가와의 눈치를 살피는 때.
총리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대표님.”
“이제 대표님이야?”
“크흠··· 대한민국이 정말 ICBM시험발사를 할까요?”
요시가와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머릿속에 천우진의 그 흉폭한 기세가 떠올랐다.
“그래··· 그 놈은 반드시 뱉은 말은 지킨다더군.”
“예? 누구를 말씀하십니까?”
“됐고, 일이나 준비해···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 제 38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