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85화. >
헐레벌떡.
그 단어가 이런뜻인가 싶을 정도로 철수는 반갑게 날 맞이했다. 버선발로 나온다고 하더니, 내가 은인이라도 되는양 아주 귀빈대접을 한다.
“으아아악! 형님!”
헐레벌떡 뛰어와 한다는 소리가 ‘형님’이었다.
호석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철수의 앞을 막아섰다.
“김 대표, 공적인 자리에서는 말을 가려하세요.”
뚝뚝 끊어지는 날이선 호석의 언사에 흠칫 놀란 철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푹 숙여보인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반가운 마음에 결례를 범했습니다.”
“아닙니다. 대표실로 가시죠?”
“예, 모시겠습니다.”
호석과 철수, 그리고 내가 철수가 머물고 있는 SKY soft의 대표실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구골, 마이튜브, 마이홈피등에 대한 일을 처리하는 철수였다. 물론 구골 파트는 어디까지나 구골 아시아만을 관장하고 있었다. 유럽쪽과 서구권의 구골은 아직도 구골의 환상의 듀오 세르게이와 래리가 담당하고 있었다.
아무런 문제없이 승승장구 하고 있으며 이제는 전 세계 검색 포털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구골.
나는 그런 구골을 아직도 상장하지 않았다. 상장 할 필요도 없었고.
매년 초나 말이 되면 사람들은 SKY의 기업가치에 대한 저마다의 견해를 내 놓는다. 그들이 얘기하는 SKY그룹의 가치는 전세계 1위의 시가총액을 가진 거대한 공룡이었다.
물론, 나는 ‘돈’때문에 SKY의 많은 계열사들을 상장시킬 생각이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오는 SKY에게 굳이 상장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얼마든 비상장으로도 충분히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해서, 비공식적으로 SKY는 전세계 1위 그룹사가 되었다. 철수와 구골, 마이튜브와 마이홈피의 공이 결코 적다 할 순 없었다. 여태까지는 다른 제조업 계열사들과 조금은 동 떨어진 느낌을 주는 계열사였지만, 이제는 아니리라.
“요즘 바쁘다며?”
털석 대표실 상석에 몸을 묻으며 철수에게 물었다.
힐끗 호석의 눈치를 살피는 철수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말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편하게 해, 우리 밖에 없으니까.”
“예, 형님.”
“많이 바빴어?”
“아주 죽을 맛이었죠? 지금도 3일째 집엘 안 가고 있으니까, 대표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인데요?”
“전문경영인 불러 줘? 개발에만 몰두할래?”
“CFO뭐, 그런건가요?”
“그렇지.”
고개를 젓는 철수.
“이게 소프트웨어라는게, 그러니까 형님께서 바라시는 소프트웨어는 사용자 편의성이 우수해야 하는데, 경영과 인사, 그리고 개발단계와 운영단계가 아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렇겠지, 그래야 올바른 기업상이니까.”
“근데 전문경영인들이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잘 알지···”
한 마디로 프로그램과 구골, 마이튜브와 마이홈피등의 이해도가 부족한 사람이 경영자라는 자리에 앉는다면 곧 사내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은 곧, 사용자 편의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었다.
“힘들어 보이길래 물어 봤다.”
“그래도 해야죠, 저보다는 형님이 더 바쁘시니까.”
픽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호석을 바라보니 그가 얼른 챙겨온 서류가방에서 USB하나를 꺼내 철수에게 건냈다.
“이건 뭐죠?”
“봐봐.”
“예.”
얼른 제 자리에서 SKY전자의 로고가 선명한 최고가의 노트북을 가져와서는 USB를 연결하고 자료를 살핀다.
“와, 인터넷속도가? 헤엑? 아니 무슨 모바일 CPU가 이렇게 좋아요? 와, 진짜 몇년전이었다면 노트북이랑 싸워도 이겼겠네.”
감탄에 감탄을 하며 계속 자료를 살피던 철수.
“와, 확실히 어째서 형님이 우리한테 그런요구를 하셨는지 알 것 같네요.”
“소프트웨어 개발 단계는 어때? 완성단계야?”
“예, 사실 그, 프로그램스토어라는 개념이 만들기 어렵다기 보다는 관리하기가 까다로운 거죠.”
“프로그램 스토어는 개발이 끝났다고 들리네?”
“예, 완벽하게 끝냈습니다. 물론, 형님이 원하는 사용자 편의 역시 그 어떠한 프로그램보다 압도적이라고 자신하고요.”
“확실해?”
“그럼요? 미국, 싱가포르, 홍콩, 중국, 영국의 사장들이랑도 밀접하게 연계된 커뮤니케이션으로 확정지었다고요, 이름바 앱스토어 0.0.1ver.”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미래에 유명한 앱스토어란 이름을 난 언급한 적이 없는데, 어쩌다보니 우리가 만든 소프트웨어의 이름이 앱스토어가 되었다.
“좋은 이름이네 앱 스토어.”
“SKY 스토어로 할까도 고민했는데, 이미 SKY스토어가 있잖아요?”
“그렇지, SKY제품을 파는 인터넷 몰이지.”
“예, 그래서 결국 SKY 어플리케이션 스토어를 조금도 사용자 편의성에 맞춰 ‘줄임말’로 ‘앱 스토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제법 꼼꼼한 연구가 보이는 부분이니 특별히 태클을 걸 꺼리가 아니었다. 사실 이름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내부적인 기능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형님, 정말 첫 출시하는 제품에는 필수 어플리케이션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설치 안 해 주실거에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렇게 할 거야.”
“형님이 가장 바라는 사용자 편의성에 모순되는 행위 아니에요? SKY라면 충분히 모든 기능을 설치해도 될 텐데요.”
“지금단계의 구름폰은 그렇게 성능이 대단하지 않아, 네 말처럼 몇년 전이라면 노트북이랑 비벼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일부분의 성능일뿐이고 사실 아직 노트북이랑 비비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철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이유는 그것만 있는게 아니야, 나는 사람들이 네가 만든 앱스토어를 이용하는데 익숙해졌으면 싶어.”
“아아.”
“그래야지 다음부터 습관처럼,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지 않겠어?”
“사용자들이 알아서 튜토리얼을 진행하게 만든다는 말씀이군요.”
“그래, 그 과정에서 구름폰의 사용법 역시 익숙해지겠지.”
철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노트북 화면을 돌려 날 보여준다.
“형님이 말씀하신 메신져 어플리케이션. 여기에 혼을 담았습니다.”
혼까지 담았다니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호석 역시 무표정하던 얼굴에 실금이 가며 입술을 비죽인다.
“이것만 설치해서 나갈거야, 이게 이번 구름폰의 핵심이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는 철수.
“그런데 정말 이것도 괜찮을까요? 각국의 통신사들이 가만히 두고 볼까 싶은데.”
“왜?”
“아니 기존에 문자도 결국은 통신비를 받으면서 서비스해주던 기능이잖아요, 그게 완전 무료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저같으면 SKY가 원망스러울 것 같은데요?”
정답이었다.
분명 미국의 사과사가 가장 처음 스마트폰이라는 걸 세상에 내놓았을 때, 대한민국에는 그 보급이 늦어졌었다. 암암리에 대한민국의 삼대 이동통신사들이 그 진로를 막았다고 들었었다.
덕분에 삼현은 사과사의 스마트폰을 모방할 수 있었고 말이다. 물론 그들이 가진 자체 운영체제나 반도체 파운드리까지 알아내기는 힘들었지만, 삼현은 삼현 나름대로의 연구 개발 끝에 아주 훌륭한 스마트폰을 만들어 내었다.
종래에는 삼현과 사과사의 2파전이 되었을 정도로 스마트폰 시장을 꽉 잡았었으니 삼현의 패스트 팔로우 계획이 성공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글로벌 삼현이라는 명예도 얻었으며 나라의 기둥이라는 명예 역시 얻게 되었었다.
이제 그런 것들은 모두 SKY의 손에 들어왔지만 말이다. 그것도, 삼현은 패스트 팔로우라는 전략으로 성공을 시켰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SKY는 오직 독보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었다.
“메신져는 어때?”
“형님 말씀처럼 완벽하게 저용량의 사진과 동영상, 텍스트 같은 경우는 바로바로 전송될만큼 최적화가 끝났습니다. 인터넷 속도를 좀 우려했었는데, 아까 본 USB내용이라면 뭐, 걱정할 속도는 아니겠네요.”
“SKY통신에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인터넷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좋아.”
“결국은 국내 한정이겠죠?”
“그렇지, 원래의 한반도 땅은 물론, 아이티와 소말리아에서도 바쁘게 플랜트 사업이 진행중이야, 대규모로 기지국이 설치되고 있으니까, 인근 지역이라면 무리 없이 쓸 수 있겠지.”
“미국시장을 타겟 하는 것 아니셨어요?”
“미국이야 알아서 할테니까 인터넷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야, 어플리케이션, 이것만 확실하게 만들어 내라고.”
“옙, 알겠습니다.
***
끼이이익, 끼긱.
내 전용기가 안전하게 도쿄 나리타 공항에 착륙했다. 굳이 일본을 방문하지 않아도 정인숙 여사가 알아서 일본의 정치인들을 구워 삶을 테지만, 그래도 나는 방문을 해야했다.
“회장님,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불쑥 귓가에 내리 꽃히는 호석의 말에 가까스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렸다.
“그럴리가요?”
“하하, 얼굴에 육아지옥에서 빠져나와서 행복하다고 쓰여있습니다만.”
“커험, 글쎄 아니라니까요? 그러는 정 대표님이야 말로 세상 더 없이 행복해 보이십니다만?”
“크흠, 요즘은 미운 7살이 아니라 미운 4살인 것 같습니다.”
“크큭, 한창 귀여울 때 아닙니까?”
“하··· 늦둥이라고 마냥 귀여운 건 아닌가 봅니다.”
호석과 동변상련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모든절차를 끝낸 비행기의 출입구가 열렸다.
남들과는 다른 이미그레이션을 통해 나리타 공항 바깥의 땅을 밟았다.
“오셨스무니까!”
고키부리가 푹,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의 인사가 흡사 80년대 조직폭력배의 인사같아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예, 왔습니다. 나날이 한국어가 느시네요?”
표현이 실제로 많이 늘었다.
안녕하시무니까 정도의 인사에서 오셨스무니까라니 일취월장이었다.
“정 상에게 많이 배우고 있스무니다.”
“그래요, 갑시다.”
고키부리가 차량을 준비 해뒀는지 벤츠 마이바흐가 중후한 멋을 뽐내며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호석은 친절히 앞장서서 걷더니 마이바흐의 문을 사정없이 닫아버렸다.
“미안하지만, 회장님은 아무차량에 오르시지 않습니다.”
“아···”
이어서 도착하는 SKY자동차의 커다란 벤 차량.
특수제작된 차량으로 내 전용기에서 꺼내온 차량이었다. 대전차 지뢰를 밟아도 내부의 피해는 거의 전무하도록 설계된 어마어마한 놈이었다.
“하잇.”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고키부리와 함께 벤에 올랐다.
“정인숙 여사는 바쁜가봅니다?”
“그렇스무니다. 지금 요시가와와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시가와?”
힐끗 호석을 바라보니 얼른 서류 하나를 건네는 그.
“이시다와 요시가와. 현 자민당의 실세.”
어째서 정 여사가 이 놈을 만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뭐, 정여사의 일은 그녀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서류를 다시 호석에게 건네며 고키부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고키부리.”
“하잇! 말씀하십시오.”
“당신은 우리 사람입니까?”
그가 완벽하게 이해하기 쉽도록 친히 일본말로 물어봐주었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쉴새없이 흔들렸다. 연신 녹색 아우라를 뿜어내던 몸뚱이에서 노란색 아우라와 녹색 아우라가 잔뜩 뒤죽박죽 솓아 올랐다.
놈이 실제로도 갈등하고 있다는 뜻.
“제가 천가의 하수인이 된다면 총리가 될 수 있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저 놈이 굳이 내 하수인이 되지 않더라도 총리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미 놈은 내게서 발을 빼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SKY가 만들어준 모래성은 언제든 SKY가 허물어뜨릴수도 있는 법이었다.
“아뇨,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던, 당신은 일본의 총리가 될 겁니다.”
눈을 부릅 뜬 고키부리.
그렇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굳이 SKY와 나, 그리고 할아버지의 하수인이 될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모양.
“하지만, 내 사람이 되었을 때의 총리의 자리와, 내 사람이 아닐때의 총리의 자리는 차이가 클 겁니다.”
“예?”
“천가에 복종한다면 일본의 법이 허락하는 이상 당신이 총리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그 자리에 올라있는 순간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 테지.”
“아니라면···”
“허수아비인 총리가 되겠지, 자유도 극히 제한 당한.”
“······”
놈의 몸뚱이에서 나오던 노란색 아우라가 차츰차츰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고 다시 녹색 아우라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복종, 하겠습니다.”
픽 웃으며 힐끗 호석을 바라보았다.
내가 손을 내밀자 호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품에서 군용대검을 꺼냈다.
“옛날에 말이야, 그러니까 대한민국에 너희 일본이 쳐들어와 강제로 우리를 지배했던 때.”
“크흠.”
“그때 우리나라의 독립투사들은 왼손 새끼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이라는 결사대를 만들었었지.”
눈을 부릅 뜬 고키부리.
툭, 놈에게 군용대검을 던졌다.
“왼손 약지, 그렇다면 널 믿어주지.”
침을 꼴깍 삼킨 고키부리가 천천히 손을 뻗어 군용대검을 쥐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놈의 손.
놈은 분명 할복이 싫어서 내게 의탁했던 놈이었다 과연 왼손 약지를 자를 수 있을까? 내게 충성을 다할 마음가짐이 있을까? 난 그것을 시험하고 싶었다.
호석 역시 흥미롭다는 듯 고키부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툭.
검집에서 군용대검이 빠져 나오고, 잘 벼려진 칼날을 바라보며 꼴깍 침을 삼킨 고키부리가 천천히 대검을 들어 올리더니 제 약지를 차량의 손잡이에 척 올려 놓는다.
< 제 38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