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84화. >
덩실덩실.
고키부리가 TV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잘 추는 춤은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지금 그가 아주 행복해하고 있음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춤이었다.
“기분이 좋으신가봐요?”
정인숙의 질문을 받은 고키부리가 우뚝 춤을 멈추고는 헤벌쭉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대한민국이 상임이사국이 된 게 도지사님께 좋은 소식인가봐요?”
“크크큭, 매번 대한민국을 손가락질하고 무시하고, 얕잡아보던 우익놈들이 이제는 누가봐도 대한민국을 상국으로 모셔야 할 판이니 내가 신이 안 나고 베기겠습니까?”
“그렇군요.”
“흐흐, 그게 끝이 아닙니다.”
“뭐가 더 있나요? 제가 국제정세같은 건 어두워서요.”
고키부리가 크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털썩 소파에 앉아서는 말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가가 된 것입니다.”
“네, 뉴스에서도 나왔으니까요.”
“그겁니다. 그거!”
“핵무기요?”
“예! 전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장 무서워 하는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일본?”
짝!
박수를 치며 히죽 웃는 고키부리.
“맞습니다. 바로 여기 일본이죠, 일본은 아직도 두 발의 원폭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아아, 도지사님 말씀은 일본에 득세하고 있는 우익들이 이제 기를 펴지 못한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그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시선은 누구에게 닿겠습니까?”
“연신 한국과 친해보이던 고키부리 도지사님?”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 고키부리가 소파에 거만하게 몸을 묻는다.
“그렇습니다. 이제 총리선거는 따 놓은 당상이라 이겁니다.”
“호호, 그렇다면 저도 회장님이 지시하신 일을 하기 더 편해지겠네요?”
고키부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회장님이 지시하신 일?”
정인숙이 지갑에서 1만엔짜리 지폐를 꺼내 흔들며 말했다.
“도지사님게 돈길을 깔아드리라고 하더군요, 일본의 총리 자리를 가져오기 위해서.”
“아아아!”
고키부리는 마치 절정을 맞이한 남자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희열에 찬 얼굴로 기분좋게 눈을 감았다.
***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대한민국은 연일 화제에 화제를 낳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이 안팎으로 시끄럽던 말던,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오늘은 어쩌면 전 세계에, 그리고 SKY와 대한민국에게 아주아주 중요한 회의가 열리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물론, 그것은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SKY전자 중역들과 SKY 전기, 화학, 반도체, 소재의 중역들 모두 모였습니다 회장님.”
본사 사옥의 최상층에서 물끄러미 세상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았다.
“가시죠.”
“예, 모시겠습니다.”
당당하게 걸음을 옮겨 최상층이 아닌, 그 아래층의 대 회의장으로 향했다.
다양한 계열사의 중역들이 모인 만큼, 회의장 내부는 SKY의 중역들로 꽉차서 인산인해였다. 다행이 앉을 자리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사전에 많은 준비를 했을테니까.
월 정기보고는 보통 지하의 강당에서 열리지만, 오늘은 정기보고가 아닌지라 중요 계열사의 중역들만 따로 불러 모았다.
약간은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내가 입장하니 쥐 죽은듯 고요하게 변했다.
“편히들 앉으세요.”
넓다란 상석에 내가 앉자 그제야 중역들이 자리에 앉는다.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스크린과 각 벽면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설치된 스크린에 똑같은 화면이 떠오른다.
“2007년, SKY의 미래산업 회의 진행을 맡은 황인철입니다. 그럼, 회의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회장님?”
“다들 급한일 없으면 진행하시죠?”
약간은 긴장을 한 것 같기에 툭 농담을 뱉어주었다.
중역들이 곳곳에서 피식 웃고, 기획조정실의 황인철 실장이 히죽 웃으며 회의 진행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배터리 부분에 대한 보고가 있겠습니다.”
황인철 실장의 말에 SKY 화학과 SKY 전기의 중역들이 바쁘게 움직여 회의 자료를 스크린에 연결한다.
딱 봐도 잘 모르겠는 설계도 따위가 한 켠에 보이고, 그 위로 실물 사진이 떠오른다.
“사이즈를 줄이고, 성능은 개선하면서 무게도 줄이는 것. 그것을 위해 지금의 수준에 올라왔고, 현재 제품의 스펙을 말씀드리자면 리튬이온 배터리이며 1800mAh용량을 가지고 있고, 휴대폰에 넣을 경우, 대기 24시간 연속통화 9시간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현재 기술력으로는 저 정도가 최대인가요?”
“예, 회장님.”
“좋습니다. 안전성 테스트는 거쳤습니까?”
“환경테스트를 진행중에 있으며 고온, 저온, 습기와 같은 다양한 환경에서 보다 진보한 배터리라 자신합니다. 물론 사이즈와 성능역시 더욱 진보했고요.”
“좋은 자신감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SKY전자와 밀접하게 협업을 진행하면서 제작 해 보세요.”
“예, 회장님.”
“또 하나, 배터리는 네모 반듯해야 한다는 그 선입견, 그걸 부쉈으면 좋겠는데요?”
“예?”
놀란 얼굴이 된 발표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쪽에 있던 화이트 보드에 검은색 마카로 그림을 그렸다.
“이런 모양, 또 이런 모양, 또 이런 모양. 결국은 전기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배터리’라는 물체의 아이덴티티일겁니다.”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만들어내는 배터리마다 다 네모 반듯하거나 둥그렇군요?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바깥에 보이는 부분이 아닌데 네모 반듯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조금더 용량을 늘릴 수 있다면 다양한 디자인 역시 필요 할 것입니다.”
“아아.”
SKY 화학과 전기의 중역들이 눈을 빛내며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개발할 새로운 휴대폰은 배터리 내장형이 될 겁니다. 더이상 배터리 탈 부착이 필요 없다는 얘기죠, 그러니 내부에 어떤 모양의 배터리가 심어질지는 고객들에게 중요한 사항이 아닙니다. 외부의 디자인으로 충분히 가려질테니까요.”
“며, 명심하겠습니다.”
“더 발전된 모습의 배터리를 기대해도 좋겠습니까?”
“SKY전자와 반도체, 소재와 함께 협업을 진행해 최적의 배터리 디자인을 뽑아내겠습니다.”
“좋은 자신감입니다.”
자랑스러운 얼굴이 되어서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SKY 전기와 화학의 중역들, 마치 ‘과연 회장님이야.’하는 얼굴들이었다.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다 이어서 올라온 SKY 전자와 소재, 반도체의 중역들을 바라보았다.
“시작하세요.”
“예, 회장님.”
다시 한 번 스크린이 바쁘게 움직이며 그들이 보고할 내용이 화면 가득 떠오른다.
역시나 이번에도 복잡한 설계도면들과 전문지식이 없다면 무슨말인지 모를 복잡한 용어들이 난무하는 화면이 등장했다.
“저런 보고서도 문제입니다.”
툭 튀어나온 내 말에 흠칫 놀라는 SKY 전자의 대표.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아 볼 수 있는 보고서를 다음부터는 준비하십시오, 프레젠테이션의 기본은 직관적인 통찰입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런 전문적인 설명은 부서내에서, 혹은 팀 내에서나 할 법한 얘기들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쉽게 말로 풀어주시죠, 설계도를 봐서는 전혀 모르겠으니까.”
“예.”
목을 가다듬는 듯 하던 그가 마이크게 대고 입을 열었다.
“기존 SKY폰의 가장 월등한 성능을 자랑하던 CPU는 500MHz의 처리속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번 SKY의 일명 ‘구름폰’에는 680MHz의 싱글코어가 탑재될 예정입니다.”
“처리속도가 상승했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예, 회장님. 현재 개발된 그 어떠한 모바일 CPU보다 압도적인 성능이라 자신합니다. 오직 SKY만이 가진 최적의 설계와 첨단 소재의 집약체입니다.”
“좋습니다. 저장용량은 어떻습니까?”
“저장장치 역시 기존 4GB였던 것을 월등히 뛰어넘는 최대 32GB의 용량의 메모리칩 삽입이 가능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이즈는 같은데 용량은 8배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힐끗 SKY전기와 화학의 중역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존과 월등하게 달라진 성능이라면 배터리 사용량이 증가 할 것 같은데, 아까 보고했던 대기 24시간, 통화 9시간은 정확한 데이터입니까?”
“SKY 전자와 사전 회의를 통해 예측한 데이터입니다 회장님, 오차범위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SKY전자의 중역을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남았군요.”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린 SKY전자의 중역이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입을 연다.
“예, 와이파이······”
“어려운 설명은 빼고, 직관적으로 짧고 쉽게.”
“예, 회장님. 최대 다운로드 속도는 7.2Mbps, 최대 업로드 속도는 386kbps이며, 전송속도는 72Mbps입니다. 회장님.”
“그래도 어렵군요, 데스크탑과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최신 데스크탑의 랜카드와 메인보드 등으로 비교를 하자면, 약 8분의 1의 속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데이터를 전송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벼운 메시지라면 어떻습니까?”
“전송 딜레이를 거의 체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보내는 즉시 받는다.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까?”
“예, 단순 텍스트로 이뤄진 데이터라면 그렇습니다.”
“좋아요.”
샤락, 샤락.
스크린에 떠올라 있는 보고내용들 말고, 현재 개발진행 단계를 체크 해 놓은 서류를 꼼꼼히 살폈다.
“상용화까지 3개월? 확실합니까?”
“장담합니다. 회장님.”
씨익 입꼬리가 들어올려진다.
“배터리 디자인이 바뀐다면 당연히 성능도 달라지겠죠?”
SKY 전기와 화학의 중역들이 ‘예!’하고는 크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SKY의 구름폰, 시제품이 나오는 순간부터 마케팅을 시작합니다.”
“예, 회장님.”
“다들 연구에 박차를 가 해 주세요, SF소설에서나 등장했던 휴대용 컴퓨터의 시작을 우리 SKY가 시작하는 겁니다.”
모두 흐뭇한 표정으로 붉게 상기된 얼굴이 된다.
“지금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과학 진보의 주역들이 될 것입니다. 세계는 더 빠르게, 정보화시대를 맞이 할 것이고, 그 과정의 선지자이자 선두두자는 우리 SKY가 될 것입니다. 역사에 기록될 날짜가 하루하루, 여러분들의 손에 의해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더 오랫동안 우리를 기억하게 만들어 줄 기술이 지금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얘기입니다.”
얘기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중역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구름폰. 세계 최초의 완성형 스마트폰, 그 타이틀은 우리 SKY의 것입니다.”
““예! 회장님!””
“자, 그럼 일들 하러 갑시다!”
휙 돌아서서는 그대로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흐뭇한 얼굴로 뒤를 따라오던 호석이 물었다.
“차량 준비 시킬까요?”
“예, 철수를 보러 가야겠습니다.”
“하하, 그 놈 오랜만에 보겠군요.”
“요즘 내가 좀 소홀했죠?”
“듣기로는 김대표도 정신없이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회장님이 유선상으로 업무를 내리셨으니까요.”
“그래야죠, 구름폰 출시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으니까요, 세계 최초의 완성형 스마트폰이라는 타이틀은 쉬운게 아니거든요.”
“스마트폰이라··· 참 적절한 용어입니다.”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철수가 얼만큼 잘 해줬느냐에 따라 또 달라질 겁니다.”
“그렇습니까?”
“예, 하드웨어의 성능만 좋다고 모두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호석이 툭툭 제 머리를 두들기며 말했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훌륭한 껍데기에 훌륭한 속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 속을 지금 철수가 만들고 있고요.”
“SKY가 또 한단계 진보하겠군요.”
난 고개를 저었다.
겨우 한단계의 진보가 아닐 것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더욱 빠르게 과학의 진보를 이끌어낼, 스마트폰의 등장.
“아니요, SKY가 지배할 세상의 첫발이라고 봅니다.”
호석이 눈을 부릅뜨고는 날 바라본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파급력을 지녔습니까?”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SKY의 구름폰을 들고 다니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만들거고요.”
< 제 38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