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80화. >
6개월.
그 시간은 내가 소말리아와 세네갈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해외 유수의 언론들은 물론 국제정세 역시 바쁘게 돌아갔다. 대한민국이라는 신흥 강국의 등장은 그들을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째서 신흥 강국이냐.
미국의 제재아닌 제재를 받고 있던 대한민국은 부쉬라는 인물을 통해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었고 자유로운 군사활동을 시작했다.
과거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말도 안되는 움직임을 보인 대한민국이지만 그 누구하나 제대로 반응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한민국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 원흉들은 가까운 북한, 중국, 일본에 있었다. 위로는 공산국가들이 방해를 하고, 아래로는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노리려는 일본이 있으니 대한민국의 움직임이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과 비공식적으로 친해진 대한민국은 더 이상 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공식적으로 ‘군대’가 없는 일본에게도 쫄 필요가 없었다.
아직까지 해군력은 일본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공군력과 육군력은 일본을 상회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또한, 일본역시 잃어버린 10년이네 30년이네 말이 많은 상황,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했고 고키부리 총리의 탄핵부터 시작해 내부에서 시끄러운 잡음이 많은 상태인지라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유가 이렇게 좋은 거네요.”
호로롭 청와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한 말에 할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또 해가 바뀌었구나.”
“세월은 유수와 같죠.”
“이 놈이 다 늙은 소리를 하고 자빠졌구나.”
“벌써 2007년이라··· 그러고보니 이제 할아버지도 대선 준비하셔야겠네요?”
할아버지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흥, 준비 할 게 있더냐? 지지율이 아직도 80퍼센트를 상회하는데.”
“우리나라 리서치는 믿을게 못 되죠.”
“아주 낙선을 하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러느냐?”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할아버지가 크게 걱정하지 않는 척 하시지만, 알게 모르게 신경을 쓰고 계신 것 같았다.
“이제 겨우 연초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할아버지.”
“애초에 걱정을 하지 않았어 이놈아.”
“그럼 다행이고요.”
“커험, 너무 눈에 띄게 봉사활동 할 수도 없고 이것 참.”
“어휴 이상한걸로 불안해 하신다니까.”
할아버지가 쓰게 웃으며 차를 한모금 마신다.
“민심은 갈대와 같지. 한순간에도 역전될 수 있는 것인게야.”
“그래서 지금 할아버지의 최대의 적이 누군데요?”
“서울에서 시장을 해 먹던 쥐새끼가 가장 위협적이더구나.”
“하하하.”
웃음이 튀어나왔다.
분명 과거에 그런 인물이 있긴 있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기도 했었다. 어마어마하게 크게 한탕을 해 먹긴 했지만 어쨌든.
“그럴 일 없게 하실거면서.”
할아버지가 픽 웃으며 툭, 서류를 내밀었다.
몇장 살펴보지 않아도 서울 시장이었다는 그 쥐새끼의 서류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우야, 이거 민간인 사찰, 이런걸로 걸리지 않나요?”
“쯧, 서울시장은 민간인 아니다 이놈아.”
“아하.”
“고위공직자 전담 팀을 신설했었다. 작년이었던가? 어쨌든.”
“그러셨군요.”
“어쨌든, 뭐 뒷구멍으로 많이도 해처먹었더구나.”
나는 고게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가키즈를 잔뜩 동원하면서 고위공직자들을 깨끗하게 만드려고 노력과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단순히 대한민국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의 전부는 아니었다.
당연히 대한민국 안에서 우리 천가, 그러니까 나와 할아버지의 영향력을 늘리는게 목적이었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청렴한 사람들이 고위공직자의 자리에 앉길 바라고 있었고.
“이놈의 부정부패는 도무지 뿌리가 뽑히지 않네요.”
“물레방아 같은 것이지, 어디서 흘러오는지 물이 자꾸 떨어져서 물레방아를 돌리는구나.”
“기생충 같은 새끼들.”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니 할애비 걱정은 하지 말고, 가정에 충실하거라. 요즘 바깥을 너무 나돌아다녔어.”
“세네갈이랑 소말리아, 아이티가 좀 먼가요? 어쩔 수 없었죠.”
“이놈아, 벌써 부부가 그렇게 내외하면 못써.”
“옙, 알겠습니다.”
100번 옳은 말이니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뭐, 대선은 할아버지가 알아서 하실테고, 북한이랑 슬슬 화해의 사인? 같은걸 보여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흐음, 쐐기탄이 되겠구나.”
“적절하게 한 8월, 9월쯤에 터트리는게 좋겠죠?”
“오냐, 그때쯤이면 대선에 흔들림이 없겠구나.”
“완벽하게 전쟁이 끝났다는 걸 세상에 알리자고요, 서비스로 유라시아 횡단철도가 북한을 오가는 것도 보여주고요.”
“오냐, 좋다.”
“국경을 개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니더냐?”
난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장인어른이 대통령이 되어 완벽하게 미국을 장악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대통령이 될지도 아직은 미지수인 일, 물론 내가 나서서라도 무조건 장인어른을 대통령으로 만들 생각이다.
현 시각에도 SKY PMC의 정보부는 바쁘게 미국의 정세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것은 다가오는 미국의 대선을 위해서였다.
“우리도 핵무장을 갖춰야죠.”
“하, 핵무장··· 듣기만 해도 좋은 소리구나.”
“이번년도에 있을 상임이사국 승격이 확정되면, 핵무장을 강력하게 주장하셔야 합니다 할아버지.”
“오냐, 목소리를 높여봐야지. 공식적인 핵무기는 상임이사국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것이니까.”
“예, 그러니까요, 국경개방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여차하면 북한에서 핵을 빌려온다?”
“그거죠.”
“ICBM기술은 이미 있으니, 탄두만 핵으로 바꾼다?”
“예.”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꼭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닌듯 싶은데?”
“그렇죠? 일단 결국 대한민국은, 그러니까 한반도는 하나의 대한민국이 될 겁니다. 더 먼 미래에는 중국에게 고토역시 반환받아 오겠죠.”
“계속 해 보거라.”
“그러려면 국민들의 반발심이 많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렇지.”
“그러니 자연스럽게 국경을 허물어서 왕래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인들 역시 대한민국인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고요.”
“조선족들과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는 것을 우려하는구나.”
“예, 비슷한 이치죠.”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무시할지도 모르겠구나.”
“예, 알게 모르게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특히나 대한민국은.”
“이미 유라시아 횡단철도로 DMZ는 개간이 끝났다고 봐도 좋겠지.”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DMZ라 불리던 곳에 SKY 항공우주기술의 발사대 3개소가 지어져 있는 상태였다. 대한민국은 이제 로켓 발사대가 총 9개가 위치해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SKY의 소유였다.
“새로 도로를 닦고 관광상품을 개발 하면 될 겁니다. 육로로가도 좋고, 비행기로 가도 좋고요.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면 더 좋겠죠.”
“아주 좋구나. 관광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겠어.”
“그건 다른 기업들과 SKY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북한의 김은정과 자주 만나서 찻잔을 기울이시면 될 겁니다.”
“오냐, 자연스러운 분위기. 이해했다.”
눈치가 귀신같은 분이시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알아서 하실 일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내가 지시를 내리는 상황도 이상하지 않은가?
“어디 아프신 곳은 없으시죠?”
할아버지가 콜록 거리며 사례가 들렸는지 찻잔을 급히 내려놓는다.
“이놈이 되도 않는 안부는 갑자기···”
“아니··· 할아버지 연세가 있으시니까.”
“이놈아 6개월마다 정기검진 받느라 죽을 맛이다. 1년에 한번으로 줄이자고 해도, 철웅이 놈이 절대 안 된다며 어찌나 성화인지, 에잉! 6개월에 하루를 꼴딱 굶어야 돼!”
나는 고개를 움직여 백 대표에게 엄지를 척 들어올려보였다. 철웅은 자랑스럽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잘 하고 계시네요.”
“쯧.”
“이제슬슬 일본도 완벽하게 정리 할 타이밍이 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일본?”
“예, 일본도 이제 총리 선거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벌써 그렇게 되었던가?”
“고키부리, 그 놈을 다시 총리 자리에 앉힐까 합니다.”
“허허, 극우파 놈들이 입에 개거품을 물겠구나.”
***
“역사를 알아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지금의 독일을 보십시오! 과거의 잘못을 늬우치고 세상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자신들의 과오를 사과하고 있잖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아아아아! 아직도 과오를 지우려고 애쓰고, 억지로 핑계를 둘러대며 회피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본의 80,90년대 영광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입니까!”
목이터져라 외치고 있는 사내.
그는 도쿄 도지사 고키부리였다. 그리고 그의 연설에 연신 그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흔들며 고키부리를 연호하는 사람들.
그들 중 대부분은 뒷돈을 찔러넣은 아르바이트생들이라는 걸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SKY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역사바로알기재단이 그렇다.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의 어마어마한 후원을 받고, SKY그룹 천우진 회장의 여동생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바로 그곳이 현 고키부리 도쿄 도지사를 후원하고 있었다.
이제 적어도 도쿄 내에서는 일본의 제대로 된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서적들과 어마어마하게 많은 교육 동영상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것이 고키부리의 노력과 SKY의 자금력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일본 전역에 역사바로알기재단의 운동이 급물살을 타며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더이상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칭하는 무식한 일본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극우파들도 어디가서 함부로 ‘다케시마’라고 떠들기 어려웠다. 그랬다가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이었다.
‘비열한 일본인.’
그것기 고키부리가 만든 극우파의 이미지였다.
과오를 또 다른 과오를 저질러서 덮어버리려는 우매한 세력, 일본 경제를 송두리째 부숴버린 원흉.
고키부리가 매일같이 선전하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해서, 극우파들은 원래도 집단 활동을 비밀리에 했지만 고키부리와 역사바로알기재단으로 비롯해 더욱 음지에서 생활해야 했다.
“후우.”
고키부리가 큰 한숨을 내쉬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요즘 어찌나 악을 쓰고 다녔는지 목이 성할 날이 없었다. 역사바로알기 재단에서 보내준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이 없었으면 성대가 결절 되었어도 진즉에 결절되었을 테다.
어지간한 가수나 연극을 하는 배우들보다 더 목을 많이 쓰니 참, 죽을 맛이었다. 물론 하루에 2시간씩 발성에 대한 레슨을 받는 것 역시 그의 스케쥴 중 하나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도지사님.”
“아, 인숙씨. 감사합니다.”
그의 곁에는 역사바로알기 재단의 부이사장 정인숙이 함께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거의 감시자라고 보는것이 좋았다.
그러나 고키부리는 그녀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돈이 끊임없이 나오고 거기에 더해 고혹적인 외모 역시 그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불쑥 SKY전자의 신형 휴대폰을 내미는 정인숙.
“회장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눈을 부릅뜬 고키부리가 방금까지 헐떡 거리며 힘들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각잡힌 군인과 같은 자세를 하고는 전화기를 공손히 양손으로 잡아 귓가로 가져간다.
“하잇! 고키부리 전화 받았스무니다!”
제법 유창한 한국어가 고키부리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정인숙이 작게 웃고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매우고 있던 SKY PMC의 1급 대원들에게 호위하라는 눈치를 보냈다.
1급 대원들이 빠르게 주변을 정리하고 누군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바리케이트를 만들었다. 고키부리와 천우진의 통화가 바깥으로 세어나가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
-요즘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모든것이 회장님의 은덕입니다.”
-하하, 그런 단어는 또 어디서 배웠데요?
“인숙씨가 매일 같이 한국어를 가르쳐 줍니다.”
-오, 정여사가 대단하네.
“그렇스무니다. 얼굴도 아름답스무니다.”
-하하, 유부남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팍 인상을 찌푸리는 고키부리.
그가 역사바로알기 재단의 일본 이사장을 역임하는 순간, 그의 장인이자 일본의 원로 정치인은 자신과 가족들을 갈라 놓았다.
더욱 충격적인것은 그의 와이프는 당연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가 아끼던 아이들 역시, 자신이 총리 자리에서 내려오고 할복을 거부하자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과연 그의 가족들은 그가 알던 가족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키부리는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
“이제는 싱글이무니다.”
-그랬죠, 참. 이번 일본 총리 선거 어때요?
“예? 잘 못 들었습니다?”
-일본 총리 선거, 관심있습니까?
눈을 부릅 뜬 고키부리!
“드, 드디어! 때가 된 것입니까?”
-하고 싶은걸로?
“하, 하~~~~~~~잇!”
-기백 좋네, 오케이. 그럼 그렇게 진행 해 보십시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자위대의 신입이 이러할까?
어마어마한 군기를 보여주는 고키부리였다.
< 제 38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