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78화. >
아자르의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나는 호석을 바라보았다.
“국경수비대와 반군의 교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국경수비대의 병력이 더 많기 때문에 반군이 아슬아슬하게 막고있는 상태입니다.”
“원래는 반군 세력이 더 많다고 하지 않았나요?”
“전력은 확실히 반군 세력이 우세 한 것으로 보였으니 그들이 가진 무기가 너무 구식이었습니다.”
“화력에서 밀렸다는 얘기군요.”
“예, 수성전과 공성전의 차이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양상은요?”
“반군의 패배로 갈 것입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상을 살짝 빗나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승과 패는 상관 없었다.
어차피 승리는 SKY의 것이었으니까.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 아자르는 정확한 사리분별을 못하고 있었다.
처음 내가 아프간에 갔을 때처럼.
비명과 총탄이 난무하고 여기저기 혈흔과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이 보이는 풍경은 보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하니까.
그 공포와 흥분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공포감이 높아지다 보면 어느 순간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며 공포를 이겨내려 몸뚱이는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정확한 사리분별이 되지 않는다. 마치 내 사고는 평소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내 시간만 빠르게 흐르는 것 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니까.
어디까지나 기분탓인 일이겠지만 현재의 아자르 역시 대한민국의 정식으로 구원요청을 한 상황 더 이상 어떠한 변수도 작용할 수 없었다.
이제 소말리아는 대한민국의 구축함이, 그리고 SKY의 코드대원들과 특급대원들이 접수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재발 방지가 과해보이나요?”
내 질문에 호석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꼭 해적놈들 때문에 이러시는 게 아니라는 걸 압니다 회장님.”
맞다.
단순히 해적의 준동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 것은 아니다. 소말리아도 내가 바라는 부지에 적합했으며 그리고 나는 넓은 바다를 보았다.
새로운 가능성이랄까?
또한, 굶주린 소말리아 인들 역시 보았다.
그들에게는 돈과 식량이 필요하고 나에겐 넉넉한 돈과 그들을 배불리 먹일 식량을 소유하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것은 값싼 노동력이었고, 그것들을 이곳 소말리아 역시 충족하고 있었다.
단, 전제가 필요하다.
그 어떤 단체도 감히 SKY의 일을 방해할 생각을 할 수 없도록 한다는 전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여기서 갈등, 저기서 갈등이 빚어지는 법이다. 나는 애초에 그런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었고 소말리아는 내게 명분을 주었다.
해적소탕이라는 대의명분.
SKY의 기업적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 소말리아를 꿀꺽 삼킬 수 있게 만들어준다.
“저 망망대해 말입니다.”
“예, 회장님.”
“소말리아는 전통적으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죠?”
“그렇습니다. 해적들의 준동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해상자원의 무차별적인 채취가 있었으니까요.”
“예, 불법 어선들이요.”
“맞습니다.”
“저 망망대해 위에 지어지는 태양광 플랜트 사업,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 바라보았다.
“바다위에 발전소를 지으시겠다고요?”
“태양광 패널은 크게 무거운 놈이 아니죠, 약간의 연구만 통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으음, 그 부분은 제가 뭐라 답변드리기 어렵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호석이 전문가도 아니고 분명 뭐라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과거, 그러니까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태양광발전 시스템을 알고 있었다.
수상 태양광 발전 시설은 분명히 혁신 적이었다. 그러나 비용과 공사 문제로 거의 사장되다 시피 했던 기술이었다.
가끔 삼현의 일로 출장을 다닐때 국도를 이용하면 꼭 호수나 저수지, 댐등을 지나치다보면 물 위에 설치되어 있는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나에겐 과거이자 현재에겐 미래인 그 일을 SKY가 먼저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
“또, 이곳에 대규모 양식장을 꾸려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류자원을 직접 공급 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예, 바다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일테니까요.”
“그 부분은 가능할 것 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제가 전문가가 아니기에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예, 회장님. 청와대 연결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시가를 입에 물고는 위성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천우진 회장? 여기는 청와대입니다.
“예, 대통령님. 전화 받으셨군요.”
-말 하세요.
“SKY PMC의 군용헬기 2대가 대피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는 반군과 정부군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피해상황은 어떻습니까?
“총탄이 난무하고 있기에 민간인 피해는 파악이 어렵습니다. 또, 정부군은 건물 안에서 수성하고 있고 반군은 건물 바깥 시가지에서 전투에 돌입한 상황이라 민간인과 군인들의 구분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려야 잠잠해지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렇군요.
“대피방송을 들은 군인들과 민간인들 모두 모가디슈를 벗어나려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잠시 수화기 너머가 시끄럽게 변했다.
아마 구축함의 포사격을 진행하냐 마냐를 토론하는 듯 보였다.
“SKY PMC가 제대로 된 상륙작전을 펼치기 위해서 포격지원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들이, 청와대가 무슨 결정을 내리던 내 요구사항은 변함이 없었다.
-외교부장관 정창수입니다! 천우진회장님, 무차별적인 포격이라니요··· 국가적인 이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UN역시 가만히 있지 않을거에요.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지금 모가디슈에 해적질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 거 같습니까?”
-······
“여자와 아이, 노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내들은 해적질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을겁니다. 게다가 여자와 아이, 노인들 역시 제외하기는 어렵겠죠.”
-그렇다고 무차별적인 학살을 가하자는 얘기입니까? 베트남 등의 학살사건과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 대한민국은 일제의 억울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충분히 대피 할 시간을 줬습니다. 압도적인 화력과 공포를 심어줘야 합니다. 대를위해 소를 희생하자는 개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대한민국에게 개기지 말자는 생각 정도는 심어줘야 합니다.”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았다.
“2시간 후, 포격했을 때. 예상 피해현황 보고하세요.”
“예, 정보부에 바로 분석 맡기겠습니다.”
-천우진 회장님! 우리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만!
할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나 역시,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 하기를 바랍니다. 천우진 회장. 이점 양해 부탁합니다.
“포격 사실을 들은 군인들 역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모가디슈만 불바다로 만든다면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겁니다.”
-후우··· 피해상황보고 우리에게도 전달 부탁드립니다. 소말리아 영해에 있는 우리 해군에게 함포발사 준비 명령을 내렸으니.
“예,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SKY의 직원들 역시, 우리나라의 국민이오. 나는 대한민국 국민 1명이 타국의 사람 천명, 만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SKY PMC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일이라면, 포격을 고려해보겠습니다.
-대통령님! 이것은 자칫 국제적인 비난의 소재가 될 수 있습ㄴ······
-그 정도는 압니다! 국제적인 비난의 화살은 내가 맞겠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는 칭송의 화살을 받아 낼 것이오!
캬. 이제는 정말 참 대통령이 다 되셨다.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있는 호석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외교부 장관이 얘기하는 것은 아주 원론적인 얘기였다. 저 인물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사람을 제대로 뽑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할아버지와 내가 하는일에 잔뜩 딴지를 걸고 있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라는 걸 알고 있으니 밉게만 보이지 않았다.
“외교부장관님이 걱정하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회장님.
“아닙니다. 국가적 이미지 기업적 이미지 역시 중요합니다. 추후 피해가 있더라도 SKY가 앞장서서 적절한 보상을 약속하겠습니다. 물론, 진심어린 사과 역시 병행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성의를 표하고 사과를 했는데 상대방이 만족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의가 부족해서였다. 그리고 그 성의는 때로는 ‘돈’으로 매꿀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호석을 바라보았다.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중공업에 해양 대규모 플랜트 사업 전문가들 소집하시고, 에너지와 화학, 건설에서 발전시설 전문가들, 양식시설 전문가들 섭외해서 모가디슈로 오라고 해 주세요.”
“예, 회장님.”
“3시간 뒤에 출발 하라고 하시면 되겠네요, 그때쯤이면 모가디슈는 우리 것이 되어 있을테니까.”
“예, 준비하겠습니다.”
다음 스텝 역시 정해져 있었다.
“모하메드와 하산, 뭐 하고 있습니까?”
“저택에서 술을 퍼붓고 있는 모양입니다.”
“거기 좌표, 청와대에 보내세요.”
호석이 픽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먼저 저격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대원들은 안전 한 겁니까?”
“포격을 받지 않을 위치를 선정할 겁니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함포는 정확도가 뛰어나니까요.”
***
모하메드와 하산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호석이 맡는다고 얘기했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가 있는 한 놈들이 두 발로 걸어다닐 일은 없을 테니까, 또한, 함포 사격 역시 이루어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두두두두두두.
헬기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모가디슈는 대한민국의 포 사격이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 이곳에서 내전이 발발했을때, 대피하기 위해 노력하던 한국 대사관 직원들 역시, 지금 이 것과 비슷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것은 과시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온 소말리아 인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말이다.
도심을 약간 벗어나니 적당한 공터가 보였고 그곳에 다가가니 사람들이 헬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총을 조준하고 있는 군인들 역시 보였다.
그들이 반군인지 정부군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
“방송부터 하세요, 무장해제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예, 회장님.”
헬기에서 시끄럽게 방송을 하니 총을 들고 있던 군인들이 우왕좌왕 하는 게 보였다.
“위협사격 한다고 얘기하고, 일점 사격 하세요.”
“예, 회장님.”
투두두두두두두두.
아름드리 나무가 우리 헬기가 뿜어내는 총탄에 우후죽순 쓰러진다. 한 두 그루가 아니라 총탄이 길게 뻗어나간 자리 그대로 일자로 쭈욱, 새로운 길이 생겼다.
그제야 총을 바닥에 내리고 손을 번쩍 드는 사람들, 애초에 총도 들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더욱 많았었다. 아마도 그들이 민간인이 아닐까 싶었다.
헬기가 착륙하고, 내 주변으로 대원들이 먼저 빠르게 산개해 나가 그들을 경계하며 섰다.
“책임자가 누굽니까?”
책임자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의 한 노인이 쭈뼛쭈뼛 내게 다가왔다.
“책임자는 아닌데··· 여기서 제일 연장자라 나왔습니다.”
“나는 한국 SKY그룹의 천우진회장입니다.”
“아, 그렇군요.”
“현재 모가디슈는 대한민국의 정식 의뢰를 받은 SKY PMC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반군의 쿠데타를 막아달라는 소말리아 정부의 구원요청에 의한 것이죠.”
“그, 그렇습니까?”
“소말리아의 대통령은 살아있고, 며칠 안에 모가디슈에 다시 그가 돌아올겁니다.”
노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좋은일인지 나쁜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모양.
“SKY그룹이 최대한 빠르게, 모가디슈에 임시 막사와 재난민 임시 수용시설을 만들 것입니다. 며칠 안에 해결 될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당장 오늘밤 비를 막아줄 곳이 없습니다.”
“그 정도는 오늘 안에 반드시 SKY가 모가디슈에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나는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반드시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SKY는 재난민들에게 식사 역시 제공하겠습니다. 추후, 다른 일들은 정부와 상의 후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반군 토벌은 계속 진행되니 SKY의 호위를 벗어나지 않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
노인이 뒤 돌아서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눈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몇몇 군인들은 불안하게 동공을 떠는 게 보였다. 아마 그들은 반군쪽 세력에 가담한 군인들이 아닐까 싶었다.
“무장을 해제하고 SKY PMC에게 따로 확인받은 반군은 더이상 반군 대우를 하지 않겠다고 전하세요, 민간인처럼 대우하겠다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내 노인이 다시 한 번 크게 외치자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곁에 서서 권총을 파지하고 있는 호석에게 말했다.
“반군들 인적사항 제대로 파악하고, 주변에 은거지가 있는지 캐보세요.”
“예, 회장님.”
“헬기로 지속적으로 지금과 같은 방송을 이어나가라고 해 주세요.”
“예.”
“그럼 우리는 빠르게 모가디슈에 임시막사를 꾸립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 제 37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