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76화. >
청와대의 대회의장.
평소라면 텅텅 비워져 있어야 할 그곳은 현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람들이 꽉꽉 들어 차 있었다. 그 어떤 나라에서도 먼저 군사행동을 한 적 없는 대한민국이 최초로 우리 영해를 벗어난 곳에서 군사행동을 해야 할 타이밍이 거의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소말리아 정부에서는 별 말 없습니까?”
천혁수의 물음에 외교부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대통령님. 현재 소말리아 정부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23시간 전, 마지막으로 사과의 뜻을 전해오기는 했습니다만.”
“입에 바른 얘기나 듣자고 구축함을 거기까지 보낸게 아닙니다. 기름은 땅을 파면 나온답니까?”
“예, 그렇죠.”
천혁수가 날카롭게 합참의장을 바라본다.
“미군쪽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지원은 불가능하나, 우리 군사행동을 묵인하겠다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SKY 천우진 회장의 납치 장면이 그들에게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타국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북한이나 중국은 유라시아 횡단철도 사업으로 바쁘고 여섯시간 전, 일본 해상자위대가 바쁘게 움직인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팍 인상을 찌푸리는 천혁수.
“일본 자위대가 바쁘게 움직인다?”
“구축함 하나가 빠졌다고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기는 무리입니다 대통령님,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놈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아마도 소말리아와 대한민국간의 전투가 발발하면,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떤 행동? 구체적으로 말씀하세요.”
합참의장이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차하면 소말리아를 도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본의 자위대가 소말리아 영해로 출발했습니까?”
“아직까지는 평시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에 정확하게 말씀드리기 모호합니다만, 방향 자체는 소말리아 영해로 향하는 방향이 맞습니다.”
“구축함 하나로는 모자랄 수 있다는 얘기군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천혁수가 턱을 매만지다 비서실장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SKY의 천우진 회장 연결하세요.”
“예, 대통령님.”
“모두 들을 수 있게 연결해도 좋습니다.”
“예.”
대한민국에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천우진과의 통화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쨌든 연결이 되었고 천우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받았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천혁수입니다.”
평소라면 ‘그래, 나다.’정도로 말했을 대통령이지만 공적인 자리이기에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예, 대통령님. 말씀하시죠.
“SKY그룹의 ICBM기술, 당장 상용화가 가능합니까?”
천혁수의 입에서 떨어진 말에 주변의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오히려 합참의장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고, 그의 주변에 포진한 다른 장성들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대, 대통령님 ICBM이라니요?”
외교부 장관의 놀란 목소리에 천혁수가 휙 고개를 돌려 말했다.
“합참의장의 말 못들었습니까? 일본 해상 자위대가 소말리아 영해로 출발했다는 얘기를 말입니다. 그들이 우리 구축함을 타격할지 아닐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 바다에서 이순신구축함을 돕기 위해 출발 해도 늦습니다.”
합참의장이 격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 우리는 여차하면 일본의 전함을 미사일로 요격합니다. 이의 있습니까?”
입을 떡 벌리는 외교부 장관.
그리고 그를 비롯한 장내의 모두가 놀란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너무 과격하게 느껴졌기 때문.
“여태까지 대한민국은 얻어 맞는 것에 익숙했지만, 내 대한민국은 다릅니다. 내가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있고, 국민들이 나를 믿어주는 그때까지 대한민국은 먼저 때릴줄도 아는 나라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계신 모두가 준비 하세요.”
어째서인지 계급장에 별을 달고 있는 장군들은 희열에 찬 얼굴을 보였고, 행정부의 인사들은 똥씹은 얼굴이 되었다. 전쟁이라는게, 교전이라는게 말로나 쉽지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아는 것이었다.
북한과의 작은 교전들이 몹시 많았으나 유야무야 넘어간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말씀들 끝나셨습니까?
천우진의 나른한 반응에 천혁수가 슬쩍 입꼬리를 들어올리고는 대답했다.
“예, 질문에 대답해주시겠습니까? 천우진 회장.”
-우선 ICBM기술은 상용화를 계획하고 만들었기에 언제든 발사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몇달전, SKY 인공위성 5호기를 발사하면서 증명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군요.”
-또한, 비밀리에 국방부와 합작한 중거리,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이미 SKY항공우주기술센터의 보안격납고에 보관중에 있습니다.
“언제든 발사가 가능하다고 믿으면 되겠습니까?”
-예, 대통령님.
“발사 대기 부탁하겠습니다.”
-계산은 후불인걸로 알겠습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천우진의 농담에 곳곳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물론 천우진은 농담이 아닌 진담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도는 어떻습니까?”
-맞춰야 할 목표물의 크기가 중요합니다. 이순신구축함으로 비교한다면 80퍼센트 확률로 적중 할 것이고 98퍼센트 확률로 침몰합니다.
“빗맞아도 침몰한다는 얘기입니까?”
-예, 아쉽게 빗나가도 바로옆 해수면을 타격할테니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전함은 침몰 할 겁니다. 편대를 이루고 있는 함대라면 더욱 타격이 클 겁니다.
“연속 발사도 가능합니까?”
-SKY항공우주기술은 총 3개의 발사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도 4개째 증축공사중에 있고요.
“3연발이 가능하다는 얘기로 이해해도 됩니까?”
-예.
천혁수가 잔뜩 뿌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봤느냐?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사일 기술이다.’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내 보인 것, 물론 그 안에는 손자를 자랑하려는 의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좋습니다. 일본군의 문제는 이제 처리가 되었죠?”
합참의장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시 외교부장관에게 고개를 돌린 천혁수.
“일본 외교부에 연락해서 소말리아 영해로 출발한 일본군 해상 자위대의 뱃머리를 다시 돌리라고 하세요, 물고기 밥이 되고 싶지 않다면.”
입을 떡 벌린 외교부 장관.
“지, 진심이십니까? 대통령님?”
팍 인상을 찌푸린 천혁수가 언성을 높였다.
“도대체 외교부장관께서는 아이티에서 무엇을 보고 오셨습니까? 이 대한민국은 내가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이상 이변의 연속일겁니다. 우리가 일본보다 약소국입니까!”
버럭 소리를 지른 천혁수의 대호같은 기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 아니다’와 같은 두가지 대답을 모두 하지 못한 것은, 사실상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이 국사력, 경제력으로 일본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곧 SKY로 말미암아 역전이 가능 할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더이상 일본따위의 눈치를 볼 만큼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자부심들을 가지세요! 우리 국민들을 납치했던 나라를 공격하는 일입니다. 그 누가 우리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습니까!”
“······”
“설령, 타국의 사람들이 우리를 욕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우리들은 능히 그것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국민들의 세금으로 밥벌이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욕하던 말던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 국민들이 우리를 칭송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닙니까?”
외교부 장관이 굳은 표정으로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바로 일본측에 연락하겠습니다. 뱃머리를 돌리지 않는다면 해상 자위대 모두가 물고기 밥이 될 것이라고.”
“예, 연락하세요.”
다시 고개를 돌린 천혁수가 전화기에 얘기했다.
“준비해주세요 천우진 회장.”
-예, 대통령님.
“현재 소말리아 상황은 어떻습니까?”
-곧, 내전이 시작 될 겁니다.
“그렇습니까?”
-예, 이미 언론에도 퍼졌지만 반정부세력과 무장단체가 결탁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또 연락하시죠.
“그러죠.”
전화를 끊은 천혁수가 외교부 장관을 바라보았다. 외교부 장관은 천혁수의 대호같은 눈빛에 침을 꼴깍 삼키며 집중했다. 방금 전, 일본에게 대놓고 경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대통령이다. 이번에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절로 긴장이 되었다.
“소말리아 정부의 연락은 당분간 무시합니다.”
“예?”
“들은 그대로 무시합니다. 그들의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 하세요.”
“도, 도대체.”
“인생에 있어서 타이밍, 시기라는게 있습니다. 지금 소말리아의 아자르라는 인물은 그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해적들을 소탕하겠다는 계획을 어필했다면 참아줬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입장에서 소말리아 정부 자체가 해적처럼 비춰지네요, 안 그렇습니까?”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드럽게 얘기하는 듯 보이는 천혁수지만, 그의 눈을 보자면 ‘강요’를 담고 있다는 걸 눈치 빠른 고위 인사들이 모를리 없었다.
“맞습니다. 대통령님.”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국민 지지율 81퍼센트의 대통령이었다.
감히 그의 말에 반대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고위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칼춤을 추기로 한다면 능히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그 사람 일을 제대로 하지 않기에, 국민들을 대신해 제가 훈계하겠습니다.’하면 다음날이면 그 인사의 집은 풍비박산이 나 있을 것이었다. 재계를 꽉 움켜쥐고 있는 SKY의 천우진조차 현 대통령 천혁수의 손자가 아니던가.
“내전 상황을 지켜봅시다. 우리가 끼어들 틈, 그리고 내가 조금 전 말했던 그 타이밍이 우리에게 있을지, 이순신 구축함에 전달하세요, 언제든 포격할 수 있게 ‘준비’만 해 놓으라고.”
“예, 대통령님.”
***
할아버지와 통화를 끝내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TV에 집중했다. 당연히 나는 소말리아가 아닌 케냐에 있었다.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는 언제 벌집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니 더욱 당연한 것이었다. SKY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모하메드와 하산이 있는 저택을 감시하고 있었다. 또한, 억지로 그들의 피부를 벌려 심어놓은 GPS역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상태였다.
케냐는 소말리아와 인접해 있기 때문인지 그들의 소식을 매우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중이었다. 소말리아 내전이 그들에게 어떤 피해를 줄지 모르니 당연하다면 당연 한 일.
안전에 안전을 기하여.
사실 루시의 2시간여동안 이어진 잔소리 덕분에, 케냐의 기린이 숨쉬는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회장님.”
“예, 대표님.”
호석의 부름에 고개를 슬쩍 돌렸다.
“뉴스에는 아직인 것 같군요, 방금 하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내전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모가디슈를 수비하는 수도방위군 같은 단체에게 공격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곧 뉴스에서도 볼 수 있겠네요.”
“예, 회장님.”
“하산과 모하메드는요?”
“아직 저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오케이, 잘 감시하라고 전해주시고요.”
“예, 회장님.”
남은 맥주를 단숨에 비우고는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이제 반군과 정부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니, 슬슬 나도 움직일 차례였다.
“이번에는 아자르인가 하는 그 놈 얼굴을 좀 보러갈까요? 지금쯤 아마 애가 타겠죠?”
“예, 그럴겁니다. 자신들의 전력으로는 급작스럽게 쳐들어온 반군을 상대하기 무리일테니까요.”
“전화 연결 하세요.”
“예, 회장님 저쪽에 준비하겠습니다.”
호석이 가리킨 방향으로 나가니 발코니였다. 시가를 입에 물고, 열심히 관광객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있는 기린들이 보였다. 참 특이한 광경이구나 생각하며 어느새 호석이 건넨 위성전화기를 들었다.
-누구십니까?
“SKY그룹 천우진 회장.”
-부스럭, 부스럭.
전화를 받은 상대방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작은 소음이 연이어 들려오는 상황, 아무래도 전투가 시작되었으니 바쁜 것은 당연지사.
PMC 정보부 보고에 따르면 현 소말리아 정부는 반정부 세력과 무장단체가 협심했을 때, 상대적인 전력이 밀린다.
비등비등 하다고 해도 서로 붙는다면 결국은 양패구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태라는 얘기.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이이제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얇은 거미줄로 묶여 있던 둘을 갈라놓는 일은 내 역할이고, 갈라진 그들이 피터지게 싸우도록 지켜보는 것 역시 내 역할이다.
그리고 최후의 웃음짓는 역할 역시, 나의 것이다.
-엘 아자르 압디르···
“됐고, SKY그룹 천우진 회장이다.”
-아, 알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가?”
-도와주십시오!
다급한 아자르 놈의 음성.
“일단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지, 우리 얘기는 그 다음에 계속 해보자고?”
-나, 나를 구출 해줄 수 있소?
“헬기를 보내지.”
-헬기?
“미국이 자랑한다던 블랙호크를 SKY항공우주기술이 한국의 입맛에 맞게 개량한 놈이지.”
-살려만주십시오!
“오케이.”
호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더니 호석이 어디론가 바쁘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럼 곧 보자고.”
-가, 감사합······
놈의 인사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것보다는 내 앞에 다가와 제 먹이가 있나 하고 혀를 날름거리는 기린의 콧잔등을 만지는 일이 더 흥미를 끌었다.
“옳지, 착하다.”
씨익, 나도 모르게 부드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 제 37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