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75화. >
날강도.
보통 품은 하나도 들이지 않고 이득만 채 가는 얌생이들에게 쓰는 어른들의 표현 같은 것이었다.
“에헤이, 날강도라뇨?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뚫고 얻어낸 성과인데요.”
-이 놈이 판떼기를 전부 깔아 놓고, 재미는 저 혼자 보는구나.
“회사는 사익을 최우선 하죠, 저는 그런 회사의 오너고요.”
-쯧··· 얼마더냐.
“2억 달러요.”
-날강도가 틀림 없구나.
“에헤이, 우리가 얻을 이익도 생각하셔야죠?”
-정확한 비용은 내가 전문가들과 함께 상의하마, 구두계약도 계약이니 진행시켜 보거라.
“옙, 그럼 할아버지 신용 믿고, 진행시키는 것으로. 아시죠? 제 몸에 사채의 피가 흐르는거? 떼 먹으시면 후회하십니다.”
-껄껄껄.
할아버지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놈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
“할아버지 기분 좋아지신 것 같으니까 됐습니다. 그럼 진행시키겠습니다.”
-오냐, 뜻대로 해 보거라. 책임은 할애비가 지마.
“옙!”
할아버지에게도 말씀 드렸지만, 굳이 손해 나는 일에 손을 뻗을 만큼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단순히 복수를 위해서만 움직이기에는 시간이라는 것은 매우 소중하기에 나는 이익이 되는 방향을 떠올렸다.
그리고 SKY의 위신을 헤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이 자연스럽게 소말리아를 지배하는 그림을 바랐다.
현 소말리아의 집권 세력들의 알력다툼이 이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정확하게는 그들이 촘촘하지 않은 거미줄로 얽혀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라 할 수 있었다.
하산을 거짓으로 끌어들이고 모하메드와 손을 잡게 만든다. 그렇다면 놈들의 촘촘했던 거미줄에는 자연스럽게 금이 갈 것이고, 그 때 대한민국 정부가 슬그머니 개입한다.
기세 등등 할 반정부 세력과 무장단체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자신들의 끝이 다가왔을까 벌벌 떨고 있을 정부세력이라는 놈들에게 말이다. 특히 그들의 머리역할을 하고 있는 아자르라는 놈에게.
그럼 그 놈은 어떻게 할까?
타국의 개입은 범의 아가리에 나라를 통째로 가져다 바치는 것이라는걸 알기에 거절할까? 나는 여태껏 욕심 많은 놈들중에 자기 것이라 생각한 것을 양보하는 놈을 본 적 없었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기득권들의 기본 성향 같은 것이었다.
평소에는 젠틀하고, 경우 바르고, 예의 바르던 사람도 어느순간 자신의 영역,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양보해야 하는 순간에는 흉신악살로 변해 처참하게 상대를 무너뜨리려하는 습관 같은 것.
끝끝내 회사가 무너져 직원들이 길바닥에 나 앉아도 제 놈은 지분을 처분하고, 몰래 빼 돌린 비자금으로 떵떵 거리며 3대가 지나도록 호의호식 하는 그런 놈들.
심지어 게중에는 부채를 갚기 싫어 일부러 부도를 내기도 한다. 직원들이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던 말던 그딴 것은 제 알바가 아니라는 태도로 말이다.
그런게 기득권이다.
내가 보고 배운 기득권은 죄다 그런 놈들이었다. 그런데 소말리아라고 해서 다를까? 정부의 꼭대기에 앉아 호의호식하던 놈이 이제와 모든걸 내려놓고 떠날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포기 하지 않고 달려들까?
“보면 알겠지.”
단언컨데, 난 예상한다.
놈은 옳다구나 하고 제 나라를 팔아서라도 호의호식하던 생활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지금 저 방송, 아자르인지 뭔지 하는 놈도 보고 있겠죠?”
“예, 지금쯤 격분을 하고 있을 겁니다. 회장님.”
“자, 그럼 반응 좀 볼까요?”
“예, 마킹을 더 늘리겠습니다.”
“그러세요.”
***
“저! 저! 미친놈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TV를 보고 있던 아자르가 소스라치게 일어나 TV에 삿대질을 하며 자신의 보좌관을 바라본다.
보좌관 역시 사색이 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 각하 속히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산이라면 분명, 이번 기회를 성전의 기회로 볼 것입니다!”
“성전이라니! 성전이라니! 감히 내 나라에서 성전이라니! 그게 어떻게 성전인가! 그런 것이 어떻게 성전이야! 내 나라를 빼앗아 가는게 성전이라니, 성서에는 그렇게 적혀있지 않네!”
“저 미친놈들은 그런것을 모릅니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아자르가 이맛살을 문질렀다.
“도대체 모하메드와 하산이 왜 눈이 맞아서는?”
“얼마전 SKY의 선박 납치가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겠습니까?”
“모하메드는 제 놈이 싼 똥을 왜 내게 덮어씌운단 말이냐!”
보좌관이 슬쩍 주변의 눈치를 보다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실제로 모하메드에게 돈 가방을 받으셨잖습니까?”
“겨우 200만이었어! 그런데 5천만이라고? 내가? 어처구니가 없군.”
“지금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각하! 절대 어디가서도 돈가방 얘기는 꺼내시면 안 됩니다.”
아자르가 신경질적인 눈으로 보좌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 짓을 일, 이년 해먹어?”
“죄, 죄송합니다.”
“후우··· 성전이라니 저 미친새끼들··· 그 시기가 언제일 것 같아?”
“각하, 그것보다는 당장 27시간 남은 대한민국과의 관계개선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아휴, 뭐 어떻게 하자고? 해적질 하던 새끼들 다 잡아 죽여버릴까?”
“······”
“우선 공식적인 사과라도 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자르가 크리스탈 재떨이를 보좌관의 이마에 던져버렸다.
퍽.
어찌나 단단한지 재떨이는 보좌관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깨지지 않았다.
깨진 것은 보좌관의 이마였다.
“크윽.”
“멍청한 새끼야, 내가 사과를 하지 못하도록 지금 모하메드랑 하산이랑 붙어먹은 거 아냐!”
“그, 그렇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고개숙이며 어부였던 해적들을 잡아 들이면? 민심 그거 순식간이야 지금도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던 민심 그거 순식간이라고!”
“그, 그럼 대체.”
아자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찾아아아아아아아! 방법을 찾으라고! 그게 네 놈들이 몇 푼 안되는 세금으로 밥을 처먹는 이유 아니었어?”
“······”
“각부처 장들 다 불러 와! 진즉에 불러모았었어야 했는데, 쯧.”
“예, 연락하겠습니다.”
“무조건 불러오고, 참석하지 않으면 반란이다. 죽여.”
“예, 정부군을 움직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아자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한산한 모가디슈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엿 같이 꼬였군.”
***
모하메드와 하산이 내, 외신 기자들과 일별하고 모하메드의 서재로 들어 왔을 때.
“어, 왔어?”
난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하산 어쩌구 하는 무장단체의 수장놈이 날 바라보고는 토끼눈을 뜨며 당황한다.
“다, 당신은! 검은머리 학살자들의?”
누가 무장단체 아니랄까봐 우리 PMC의 명성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나보다. 하긴, 저 놈의 수하들중에 알카에다와 탈레반 놈들도 있다고 하니 날 아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알 카에다의 조무래기들이 쓰던 그 별명을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대부분의 알카에다 간부급 인사들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다른 누구의 손도 아닌 우리 SKY의 손에 붕괴되었으니 말이다.
모하메드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제법 한국의 예법을 배운 모습이다. 아마 PMC대원들이 내게 보이던 예를 따라하는 것이리라. 아니면 이슬람에도 저런 고개 숙이는 문화가 있던가.
하산이 이내 속았다는 듯 모하메드를 죽일듯 노려본다.
탕! 탕! 탕!
하지만 서재 바깥은 이미 총탄 소리가 요란했다. 조심스럽게 은신하고 있었을 PMC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테니까.
“앉아.”
턱짓으로 낡은 의자를 가리켰다.
모하메드는 공손히 앉고, 하산도 못이기는 척 그 옆자리에 앉는다.
모하메드놈이 말하기를 하산이란 놈은 겁쟁이라고 설명하더니, 정말인지 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인터뷰 좋았어.”
“감사합니다.”
모하메드의 감사 인사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 된 하산.
“이봐, 하산?”
“마, 말하시오.”
“총 소리 들었으면 알겠지만, 바깥의 상황이 대충 어떤지 알겠지?”
“이, 이해했소.”
“그럼 뭐 대화가 쉽겠네.”
모하메드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놈들이 바라던 그 1500만 달러는 내가 책임지고 줄테니까, 그냥 원래 계획대로 움직이면 돼, 나는 그냥 구경꾼이야 구경꾼.”
의심의 눈초리로 날 바라보는 하산.
“정말이라니까? 내가 너희들 인터뷰를 CNN에 내보낸 사람이야, 이건 몰랐지?”
모하메드도 하산도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인터뷰에 외신들이 섞여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게 중에 CNN방송국에서 생중계를 해줬는지는 까마득하게 모르는 모양.
“명색이 전사라는 놈이 한 입으로 두말 했다가는 당장 순교자인지 순례자인지 그 지휘부터 박살나지 않을까?”
“크음.”
“그러니까 그 성전 일으키라고. 본래 네놈들 계획대로 진행시켜, 난 빠져줄테니까.”
눈알을 또르르 굴린 하산이 날 바라본다.
“왜···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
“아~ 모하메드가 하산은 겁쟁이라며 성을 내더라고, 혹시라도 우리 겁쟁이 하산이 성전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니까?”
“서, 설마··· 성전이 일어날 때까지, 날 이곳에 감금이라도 하시겠다는 거요?”
“어 맞았어, 고문도 할 건데?”
“고, 고문?”
“알 카에다 애들한테 우리 PMC에 대해서 제대로 못 들었나? 우리는 수니파의 악마들에게 서슴없이 고문과 살생을 한다. 수니파는 우리에게 사람이 아니라 악마니까.”
“미친···”
“괜히 우리 별명이 검은머리 학살자인 게 아니야, 생각 잘 해. 어차피 일어날 성전 네가 지독한 고문을 당하고 명령하나, 지금 명령하나 똑같으니까.”
선택지는 두개지만 결과는 같다.
“대한민국의 전함이 직접 타격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이곳 좌표를 알려줄 생각이야.”
모하메드와 하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포, 포격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모하메드를 바라보았다.
“네놈들이 정부세력을 몰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비정부 무장 세력인 너희들이 해적들의 주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잖아?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너희들의 정부는 주기적으로 대한민국에 사과를 하고 있다고?”
확인되지 않았지만, 내가 소말리아의 대가리라 해도 일단 대한민국에 사과부터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쯤 아자르라는 놈도 열심히 사과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예측일 뿐이었다.
내 생각과 하산과 모하메드의 생각이 일치했는지 놈들은 일말의 의심없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하산, 그냥 하자고! 아자르를 몰아내지 않으면 어차피 우리가 죽어!”
하산이 잔뜩 고민스러운 눈을 이리저리 굴릴 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오는 PMC대원들, PMC의 메인 홈페이지에 사진으로 나오는 그 복장 그대로를 하고 있는 대원 몇이 질질 하산의 수하를 끌고 들어왔다.
“지라드!”
하산이 수하의 이름을 불렀다.
“연락해, 저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하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 성전을 준비하겠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구축함이 포를 쏘기 까지 20시간 남은 상태야. 잘 해보자고?”
“예!”
호석에게 눈을 돌리자 그가 하산에게 다가와 전화를 내밀었다. 바로 전화를 하라는 소리였다.
수화기를 들어올려 바쁘게 다이얼을 누른 하산이 아랍어를 씨부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랍어를 알아 들을 수 없으니 옆에서 모하메드가 작게 통역을 시작했다.
“성전 준비는 끝났겠지? 그래, 모가디슈로 진격해. 가로막는 것은 그 누구든 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이다. 신경쓰지말고 밀어 붙여! 우리는 신의 대리자를 사칭하는 아자르를 밀어내고 진정한 신의 전사로 거듭난다!”
히죽, 입꼬리가 올라가려했다. 슬그머니 시끄럽게 통화를 하고 있는 하산을 피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방을 벗어나 기지개를 켜는데 호석이 물었다.
“회장님, 그럼 무장단체와 손을 잡는 것입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하산이나 모하메드, 두 세력 모두 대한민국이나 SKY와 손을 잡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반정부 세력을 옹호하는 것 만큼 멍청한 짓이 없거든요.”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나면 아자르에게 손을 뻗을 겁니다. 아마 그 부분은 할아버지가 알아서 하시겠죠.”
“아하, 그 핑계로 명분을 갖춘 군사작전을 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빙고.”
< 제 37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