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73화. >
모하메드 압디르.
놈에 관련한 서류를 보기 위해 서류를 꺼내자 마자 다시 집어 넣어야 했다.
“도로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하하, 아무래도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니 그런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류를 다시 호석에게 넘겼다.
“이동하는데 얼마나 걸려요?”
“도로에 차가 없어서 10분이면 충분 할 것 같습니다.”
“오케이, 그럼 10분 참아야죠.”
“예.”
“압디르 놈의 정보는 입을 통해서 듣는 걸로.”
말을 끝내고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스쳐가는 소말리아의 풍경은 역사시간에 공부했던 한국전 직후의 대한민국과 제법 닮아있었다.
힐끗 호석을 바라보니 호석은 창 밖에는 관심이 없는지 계속해서 작게 무전을 나누고 있었다. 아마 우리를 호위하는 차량과 먼저 앞서나간 차들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는 모양.
“한국전 좀 아세요?”
불쑥 던진 질문에 호석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 제 나이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힐끗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 호석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회장님이 그렇게 느끼실 만한 풍경입니다.”
“그렇죠?”
“그래도 제가 70년대는 제법 기억합니다.”
“오, 그래요?”
“그때와 이곳은 많이 닮아 있네요, 저는 그나마 서울을 살아서 이것보다는 좀 더 발전된 생활을 했습니다만, 당시에는 경기도 외곽만 나가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죠.”
“낙후되긴 했다는 뜻이네요.”
“예, 회장님.”
오랫동안 소말리아는 정부가 제 기능을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정부는 제 기능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과거의 미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소말리아가 될 것이다.
“여기 입지가 제법 좋았죠?”
“예, 회장님이 원하시는 수력, 풍력, 태양광. 모두 적합하다고 보여집니다.”
“운하로 향하는 길목까지 잡고 있으니까 쏠쏠 하겠어요.”
호석이 힐끗 날 바라본다.
“소말리아를 아이티처럼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두고 볼 일이죠.”
“세네갈에서 좋아할지 모르겠습니다.”
“명분은 충분하니까 괜찮을 겁니다.”
짧은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호석이 바쁘게 무전을 나누고는 조금 전의 여유있던 얼굴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무표정으로 주위를 살핀다.
이내 호석이 탑승한 쪽의 문이 열리고 그가 내려 내가 탑승하고 있는 상석의 문을 열어준다.
“여기에요?”
“예, 회장님.”
“허, 참.”
슬쩍 목적지를 살피는데 이건 뭐, 궁전이 따로 없었다.
과거 식민지배를 받았던 당시 제법 끝발 날리는 귀족이 살던 저택인 모양. 반정부 세력의 수장이라는 놈이 이런곳에 살고 있으니 과면 소말리아 인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을까 싶었다.
“제 놈은 배 불리고 살고 있나 봅니다.”
호석은 씁쓸하게 웃으며 보고를 잇는다.
“소총을 무장한 30여명의 경호원들이 저택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차량이 주차된 방향의 경호원들은 이미 제압이 끝난 상태입니다.”
“저들의 지원은 없습니까?”
“아직은 없으나, 5분 이내에 적들이 눈치 챌 것이라 판단됩니다.”
길게 시간을 끌 것도 없었다.
우리 대원들의 숫자가 저들보다 적다고 해서 걱정되지도 않는다.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은 놈들을 상대하는 일도 아니고 단순하게 소총을 든 성인을 상대하는 일이니까.
“쉽다고 방심은 하지 말라고 전달하세요.”
“예, 회장님.”
고개를 끄덕여주니 주변에 있던 대원들이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가시죠 회장님.”
뜨거운 햇살아래 방탄조끼를 입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으레 그렇듯 천천히, 천천히. 대원들이 모든 적들을 처치할 시간까지 나는 걸어가면 될 일이었다.
탕! 탕!
두두두, 두두두.
곳곳에서 난전이 벌어진 듯 시끄러운 총탄소리가 빗발친다. 은밀하게 작전을 진행해도 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대놓고 선전포고까지 한 상황이고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놈들에게 무력시위도 보여줄 참이었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비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반대로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악’이 되거나 ‘절대악’이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악이고 누군가에게는 선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여론은 크게 걱정할 것이 못 된다.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귀가를 때리던 총탄의 격발음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때 쯤, 커다란 철제 정문이 나를 반긴다.
끼이이익.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SKY PMC의 대원 하나가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고 나는 유유히 대문 안을 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별 것 아니라는 듯, 그냥 문을 열었다는 듯 대답하는 대원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고는 조경에 신경을 썼는지 제법 고풍스러운 정원을 지나 저택의 내부로 향했다.
멀리서도 몇 놈이 누워 있는게 보였는데 저택의 앞 까지 오니 놈들은 다리나 어깨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얼핏 보면 죽었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바닥에 흐른 피의 양이나 상처의 자리가 ‘즉사’할 부분은 아니었다.
총으로 제압을 하고 기절을 시킴으로서 무고한 살생은 피한 듯 보이는 광경. 굳이 피에 절은 살인마로 보일 필요는 없으니 호석이 알아서 강도를 조절한 것으로 보였다.
“잘 하셨네요.”
“예, 최대한 희생은 피했습니다.”
“예, 나중에 여론전을 할 때도 좋게 작용 할 겁니다. 물론, 압디르라는 놈은 살 수 없습니다.”
“예, 회장님.”
모두에게 자비를 보여준다는 그것은 강자의 자비가 아닌 호구의 당연한 짓으로 보일 우려가 있었다. 처리 할 놈들은 확실하게 처리를 해야한다.
양쪽으로 열리는 나무문이 열리고 엔틱한 실내 인테리어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것이 복도를 통해 커다란 홀이 있었고, 그 홀에는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있었다. 곳곳에 튀어있는 붉은 혈흔이 옥에 티라면 옥에 티.
“압디르는?”
호석이 먼저 다가온 대원에게 묻자 대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2층 서재에 있습니다.”
“안내 해.”
“예.”
그를 따라 삐그덕 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 2층 서재의 문을 여니 잔뜩 산발한 머리를 하고는 날 바라보고 있는 모하메드 압디르라는 놈을 볼 수 있었다.
주변에 있는 총기를 무장한 대원들이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하니, 내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이리저리 눈알을 바쁘게 굴리는 놈.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오른손으로 꼬나쥐고는 놈에게 다가가 그대로 목 언저리에 지졌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아악.”
의자에 묶인채 발버둥 치지만 내 손아귀에서 놈은 벗어날 수 없었다.
시가를 떼고 다시 뻐끔뻐끔 몇 모금 태우는데 원래의 향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별로네.”
놈의 와이셔츠 속으로 시가를 던져 툭 하니 던져 넣으니 놈이 배를 튕기며 시가를 털어내려 애쓴다.
“크윽, 으아아악!”
“얘기 할 준비는 됐나?”
“무, 무슨 이것 좀 꺼내줘!”
영어로 물어보니 영어로 대답을 한다.
“글쎄, 네 놈 대답이 어떻냐에 따라서 그 시가를 꺼내줄지 말지 결정 될 것 같은데?”
“크으으윽, 아아아아악!”
“그러길래 평소에 운동좀 하지 그랬나? 뱃살이 볼록한게 탈 게 많겠군.”
“미친놈.”
픽 웃으며 어느새 대원이 가져온 적당한 의자에 앉아 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는가, 아니면 운 좋게 시가의 불똥이 다른 부분으로 옮겨졌을까? 놈이 신음을 멈추고는 날 똑바로 바라본다.
“넌 누구냐! 아자르가 보냈나? 아니면 핫산? 이 미친새끼들이 대한민국이 선전포고를 했다고는 잔뜩 쫄아서는!”
두 명의 이름.
그들은 정부세력의 수장 노릇을 하는 놈과 무장단체의 수장노릇을 하는 놈의 이름이었다.
“어디에서 온 용병인지는 모르지만 두배를 주겠다! 이, 이걸 꺼내 줘!”
“오, 돈 많나봐?”
“200만! 200만 달러를 주겠다!”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놈이 말한 200만 달러 역시, 아마도 내 주머니에서 나갔던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입고있던 재킷의 상의를 열어 방탄조끼에 그려진 SKY의 로고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이걸 보면 좀 생각이 나나?”
“SKY?”
“빙고.”
“서, 설마, 너는?”
콰직!
내 옆에서 공손히 서 있던 호석이 순식간에 놈에게 달려들어 손등에 대검을 꽃아 넣었다. 어찌나 빠른지 눈을 감았다 뜨니 호석의 대검이 놈의 손등과 의자 팔 걸이를 뚫고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회장님의 정체를 알았다면 예의를 갖춰라.”
“끄으읍.”
덜덜덜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도 제대로 터뜨리지 못하는 놈. 이어서 꼬릿한 탄내가 방 전체에 퍼진다. 슬쩍 보니 놈의 푸른색 와이셔츠가 검게 그을리고 있었다.
그을린 모양을 보니 반원 모양, 나머지 반원 모양의 시가 불똥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대충 상상이 되었다.
“후욱···”
크게 숨을 들이켠 놈이 나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해적, 해적놈들은 제가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 나라를 좀 먹는 그들에게 철퇴를 내리겠습니다!”
호석을 힐끗 바라보니 그가 눈치껏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서류의 한 부분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모하메드 압디르, 소말리아 출생, 현 반정부 세력의 순교자 행세를 하고 있으며 정부세력과 무장단체와 모종의 결탁을 한 것으로 추정 됨. 또한, 현 소말리아의 가장 유명한 바레 해적단의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로 보여짐.”
서류에서 눈을 떼고 다시 놈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네 놈도 해적으로 보이는데, 나라를 좀 먹는다는 해적들에게 철퇴를 내리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주변을 살폈다.
놈을 바라보지 않고 있지만 놈이 머리를 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보자, 철퇴는 없고. 오, 이거 괜찮네.”
방 한 켠에 있던 의미모를 화병 하나를 들어올리며 호석에게 말했다.
“저 놈 남은 한 손, 풀어주세요.”
“예, 회장님.”
호석이 빠르게 움직여 대검이 박히지 않은 손을 풀어주자 놈은 미친듯이 손으로 제 배를 때려 시가를 부숴버렸다.
“이런, 그거 비싼 건데.”
“크윽···”
원망 가득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놈에게 불쑥 화병을 건냈다.
“뭐, 뭡니까?”
“해적 놈들에게 철퇴를 휘두르겠다며?”
“예?”
“여기에 철퇴는 없고, 이것부터 휘둘러 봐, 네 대가리에. 내가 볼 땐, 너도 해적이거든.”
“······”
놈은 동공을 파르르 떨 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잔뜩 궁리를 하는 모양.
“왜, 못하겠어?”
호석이 번개처럼 손을 움직여 놈의 손등에 박힌 대검을 뽑았다가 이번에는 발등을 찍었다.
“끄아악!”
고개를 내려 제 발을 바라보려는 놈의 턱주가리를 움켜쥐고 화병을 들어 올렸다.
“내가 직접 한다?”
“크윽··· 하, 하겠습니다.”
침을 꿀꺽 삼킨 놈이 내 손에서 가져간 화병을 향해 박치기를 날렸다.
콰직, 쨍그랑.
화병이 깨져서 여기저기 비산하고 놈의 이마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 내렸다.
“돼, 됐습니까?”
“에이, 철퇴를 내린댔지, 철퇴에 박치기 한다고는 안 했잖아?”
“······”
“보자.”
나는 다시 방을 둘러 보았다. 이번에는 작은 금고가 하나 보였다. 겉보기에도 제법 튼튼해 보이는 금고를 들어 올렸는데 묵직한게 한 30kg은 너끈히 나갈 것 같았다.
“오, 이거 좋네.”
“사, 살려주십시오!”
“살고 싶어?”
“예,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럼 친구 좀 불러 봐.”
“예?”
“네 친구 있잖아, 핫산인가 뭔가 하는 새끼.”
< 제 37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