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72화 (372/458)

< 제 372화. >

제 발등에 찍힌 칼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해적놈의 우두머리. 아마 이 놈이 진정한 우두머리는 아닐 것이다. 이 놈을 조종하고 있는 또 다른 우두머리가 있을터. 나는 그 놈을 찾고 싶었다.

사실, 이 놈이 얘기해주지 않아도 결국 돈가방의 행적이 그곳으로 향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나와 나의 소중한 직원들을 괴롭힌 놈이니 곱게 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 가방 2개가 있더군, 그 가방은 주인이 따로 있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는 바레.

"가방에 뭔가 장치를 했구나!"

아직 GPS가 뭔지 잘 모르는 모양.

그리고 눈치도 없는 것 같았다.

놈의 왼발등에 꽃혀있던 대검을 뽑아 그대로 오른쪽 발등에 꽃았다.

"끄아아아악!"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질문은 사양하지."

"크으윽..."

다시 대검을 뽑으며 놈을 노려보았다.

"대답이 없네?"

대검을 높이 들어올리자 놈이 다급하게 말한다.

"없어! 없어! 그냥 내가 가지려고 그런거야."

"확실해?"

"확실해! 이미 돈은 다른 놈들이 다 가져갔다고, 내게 남은건 그게 전부야!"

다급한 놈의 대답에 거짓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차분히 삐그덕 거리는 낡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앉아 대검으로 손톱을 정리하며 물었다.

"돈을 가져간 놈들의 이름은?"

"......"

"흐음, 습득력이 부족한가?"

대검으로 놈을 가르키니 놈이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양발등을 쳐다보고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모하메드 압디르, 압드 엘 아지드, 하산 압디누르. 이 세명이야."

"뭐 하는 놈들이고?"

"반정부 단체의 수장과, 정부의 수장, 그리고 무장단체의 수장이야."

"좋아, 돈은 그들의 본거지로 향할까?"

"욕심이 많은 놈들이니까, 아마도."

"소말리아 정세에 대해서 자세하게 읊어봐."

침을 꿀꺽 삼킨 놈이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이리저리 얽히고 섥혀있지, 반정부 단체는 무력시위도 두려워 하지 않고 정부를 물어뜯고, 정부는 그런 무력시위 세력을 무장단체인 것 처럼 포장하고 있지, 무장단체는 이리붙었다 저리붙었다 하면서 박쥐짓을 하고 있고."

아주아주 간단하고 정확한 설명이라 할 수 있었다. 어젯밤 SKY PMC에서 준 정보와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좀 더 디테일한 설명이 필요한데?"

"말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지 대립은 가장한 공생관계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군, 무장단체는 때로는 정부에서, 혹흔 반정부 세력에서 돈을 뜯어내고 사람을 빌려주는 일을 하고 있고, 반정부 세력과 정부 세력은 해적질이나 각종 범죄, 세금들을 쉽게 포탈하고 있지."

"오케이, 그러니까 해적질을 나라에서 공인한다고 봐야겠네?"

"그렇다."

고개를 돌려 호석을 바라보니 그가 내게 서류를 한장 내밀었다. SKY PMC 정보부에서 만든 시아드 바레라는 내 앞에 있는 해적놈의 정보였다.

"이름 시아드 바레, 3남 4녀 중, 장남. 원래는 군인출신이었군."

놈이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저 돈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돈이었나?"

"아, 아니야! 내 가족들은 이 일과 관계 없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설마 내가 제 놈의 가족들을 건드리리라 생각 한 모양이다. 난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벌은 이 놈이 받는 것으로 충분했다.

"가족들은 원래 삶을 살 것이다."

"후우... 저 돈은... 내가 다시 복귀했을 때, 뇌물로 사용하려고 아껴둔 것이었다. 정당한 내 몫이기도 했고."

픽 웃음이 세어나온다.

"해적질로 벌어들인 돈이 정당한 몫이 될 수 있나?"

"난 원래 국가를 위해 싸우는 전사여야 했다. 혓바닥으로 싸우는 미친놈들에게 내 명예는 땅에 떨어진 것이지."

"글쎄, 네 말에 그다지 설득력을 느끼지 못하겠군, 애초에 명예라는 게 있긴 했을까?"

"평생을 국가에 헌신하며 살았다! 범죄자의 탈을 쓰고도 국가재건을 위해 외화를 벌어왔어! 그런데 정당한 내 몫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 아버지, 나의 형제들은 매일같이 배를 몰고 나가 저 바다에서 얼마 되지 않는 물고기를 잡아온다."

핏발선 눈으로 절규하듯 말을 뱉어내는 시아드 바레.

"언제나 만선을 꿈꾸며 바다로 나가던 어부였던 우리 가족은 이제, 하루 먹을 식량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할 지경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그렇다. 그리고 난 깨달았지, 이 썩어빠진 나라는 달라질 게 없다고, 내 헌신에 대한 보상은 없다고. 저 위에 있는 놈들에게 뭔가를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 한 일이었다고!"

뭐라고 떠드는 것인지 더 듣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일뿐이다.

세상 어떤 사람도 사연 없는 사람은 없었다.

"더 이상 궤변은 듣고 싶지 않군."

"하, 궤변..."

"너는 죽는다."

"그런가."

"소말리아, 너의 조국은 나로 인해 변하게 될 것이다."

"뭐?"

"네 놈 입에서 흘러나온 그 이름들, 나는 놈들을 용서 할 생각이 없다."

"그 놈들을 전부 죽여버리겠다고? 전쟁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필요하다면 더한 것도 해야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시아드 바레가 물었다.

"도대체 왜? 너에게 3천만 달러는 작은 돈이 아닌가? 설마 SKY의 선박과 선원들을 위해서는 아닐텐데?"

"언제나 한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쉬운 법이니까."

"뭐?"

"한번이라도 무시 당한 SKY는 두번, 세번도 무시 당할 수 있는 법이지. 감히 누구도 SKY를 무시해서는 안 돼, 무시 당해서도 안 되고. 이해가 좀 되나?"

묵묵부답.

어차피 이 놈과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피라미가 아니었으니까, 단지 이 놈을 찾아온 이유는 작은 복수와 함께 현 소말리아에대한 정확한 이해를 필요로 해서였다.

PMC정보부의 보고서와는 조금 다른 시각.

그 정도 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아드 바레가 내게 준 정보.

3개의 대립각이 사실은 공생관계라는 것.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 악이라는 것이고 결국은 그것들을 모두 쓸어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난 그렇게 할 것이고.

"처리하세요."

"예, 회장님."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스쳐가는 대원들이 시아드 바레를 처리 할 것이다.

"후우."

"고생하셨습니다 회장님."

"아닙니다. 이게 고생씩이나 되겠어요? 우리 대원들이 더 고생이지."

"보고는 계속 받고 있습니다. 어디부터 먼저 칠까요?"

"반정부 놈들을 먼저 건드려 봅시다."

"예, 회장님. 확보하고 다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

바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

세상의 관심은 잠시 대한민국에서 멀어져 있었을지도 모를 그때.

대한민국의 대통령 천혁수가 다시 한 번 성명문을 발표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성명문 발표에 앞서, 먼저 해당 영상에 집중해 주십시오."

미리 돌린 보도자료에 끼어져 있던 동영상이 각 뉴스채널별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SKY의 로고가 선명한 대형 화물선 주변을 모터보트를 탄 해적들이 총을 쏘며 위협한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살벌한지 다각도에서 찍힌 CCTV같은 화면에서도 흉흉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총구는 불을 뿜고, 그들은 허연이빨을 드러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아쉽게도 음성까지는 지원되지 않는 그림.

이어서 그들은 보트에서 투박한 알류미늄 사다리를 대형선박에 걸고는 마구 총을 쏘며 탑승하기 시작한다.

CCTV화면이 전환되고 선실과 기관실에서 양손을 올리고 고개를 푹 숙인 선원들이 아귀같은 해적들의 손에 이끌려 바깥으로 끌려나온다.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무릎을 꿇고 앉아 총기 앞에서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들.

다시 화면이 전환되고, CCTV에 헬기 한대가 내려 앉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리는 인물 천우진. 그의 얼굴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으니 모두가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이어서 천우진 인질 하나와 자리를 바꿔 스스로 인질이 되는 장면이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영상은 그것으로 끝나고 다시 대한민국 대통령, 천혁수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클로즈업된다.

"소말리아는 대한민국을 무시했으며, 무고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위협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총끝을 겨눴다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당장 소말리아 정부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해적들의 준동을 저지하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숨을 고른 천혁수가 말을 잇는다.

"다행히 SKY그룹의 천우진 회장은 무사히 해적들의 손을 빠져나왔습니다. 국민여러분이 걱정하시는 일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계속 이용해야 할 무역로를 가로막은 소말리아의 해적들을 소탕할 생각입니다. 이 성명문이 나가고 이틀 뒤부터 소말리아의 영해에서 군사작전을 펼칠 것이며, 현재 대기중인 이순신구축함을 비롯해 또 해군을 보낼 생각입니다."

조용히 천혁수의 말을 듣고만 있던 기자들이 크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말이 '아'다르고 '어'다르지만, 지금 천혁수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러시아가 일본에게 군사적인 시위를 하듯, 대한민국이 소말리아에 군사시위, 혹은 위력시위를 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

"대한민국의 해군은 물론, 아프간과 이라크에 파병을 나가 있던 대한민국 국군들 역시, 당분간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 적극참여 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소말리아 정부에 고합니다. 우리 국군의 군사작전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8시간 뒤에 시작되며, 그 안에 소말리아 정부는 적절한 사과와 대한민국의 무역로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48시간 안에 우리 국군을 달랠 보상을 내 놓으라는 협박이 천혁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48시간이란 짧은 시간동안 소말리아가 과연 대한민국이 만족할 만한 보상을 내놓을지도 의문이지만 무역로의 안전을 확보할 방안을 내놓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의 정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말리아.

그곳의 정부 힘이 얼마나 강하겠는가.

기자들은 깨달았다.

천혁수 대통령은 지금 소말리아에게 '해적'이라는 미끼를 통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을.

"국민여러분, 이제 대한민국은 그 어느 곳에서도 무시받지 아니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전을 최우선하며, 항상 발 빠른 대처로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부가 될 것임을 다짐드립니다. 부당한 대우에는 항의하고, 반드시 대가를 받아내는! 그런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십시오."

푹, 고개를 숙인 천혁수가 짧은 연설을 하고는 카메라 앞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전쟁이다!'

'아니다, 전쟁은 아니다! 일방적인 학살일것이다.'

'우리국군의 피해는 없겠느냐.'

'너무 과격한 것은 아니냐.'

갖가지 말들이 새어 나와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 우리나라 만큼이나 청와대의 전화기도 시끄러웠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물론, UN과 NATO등에서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었다.

"대, 대통령님."

잔뜩 당황한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을 쓱 둘러본 천혁수.

"그 누가 만류해도 강력하게 대응하세요, 이제 고개숙이는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천혁수의 말에도 내부 관계자들이 서로서로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 해야하나 판가름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팍 인상을 찌푸린 천혁수가 외쳤다.

"미국이 싫어해서! 일본이 지랄해서! 중국 눈치가 보여서! 러시아가 가만히 있지 않을까봐! 북한이 또 핵으로 염병을 떨까 봐! 두려워하고, 고개숙이고, 어깨를 움츠리던 대한민국은 더이상 없습니다. 모든 상황에 강경하게 대응하세요, 책임은 대통령인 내가 집니다. 움직이세요!"

단호한 천혁수의 명령에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과 외교부, 국방부 관계자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는 그들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기개가 넘쳐 흘렀다.

***

같은 시각.

"오우야, 할아버지 제대로 하시는데요?"

"하하하, 소말리아 놈들 똥줄 좀 타겠습니다 회장님."

"자자, 우리도 쉬지 말고 움직입시다. 반정부 머리, 따야죠?"

"예, 회장님. 준비 되었습니다."

나 역시 할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신 것 처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다시, 헬기에 몸을 실었다.

< 제 37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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