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70화. >
괴에에에에에엥.
굉음을 내며 바다를 달리는 해적놈들의 배.
좋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바닷물은 계속 몸에 튀었고 부딪혀오는 맞바람은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였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놈들이 전속을 다해 도주하고 있으니 어쩌면 그탓인지도 모르겠다.
두두두두두.
하늘에서는 나를 데리고 가기위한 헬기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어이, 바레. 이 쯤이면 된 것 같은데?"
내 물음에 시아드 바레가 짧게 고민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과한 욕심은 화를 불러."
싸늘한 경고를 그의 면전에 쏘아줬다.
"흥,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나?"
"네가 약속을 지켜야 할 상황?"
"하, 대단하군 정말... 네놈은 여태껏 내가 봤던 돈 많은 놈들과는 정말 달라."
"칭찬으로 듣지."
"대충 뛰어 내려, 우린 멈출 생각이 없으니까."
난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내 어깨춤을 붙잡고 있는 해적놈을 힐끗 쳐다보고는 거칠게 어깨를 뜯어냈다.
"대장! 이 놈을 데리고 가면 돈을 더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저기 저 헬기가 안 보이나?"
"이놈한테 총을 겨누면 지들이 어쩔건데?"
"멍청한,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러는거야?"
"그냥 돈 많은 기업 회장 아니야?"
바레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를 납치한다면... 한국군과 미군이 움직일거다."
"뭐?"
"소말리아는 지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르지."
뭐라고 떠드는지 모르겠으나 대충 짐작 할 순 있었다. 벙찐 표정을 짓고 스르륵 총구를 내린 해적놈을 보고는 바레를 한 번 바라보았다.
맞은편에서 돈가방 위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바레.
“현명한 선택이었다.”
내 말에 픽 웃음을 보이는 놈.
“너도 다 예상하고 이 배에 오른 거 아냐?”
“글쎄, 나로서도 꽤 도박이었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네 놈을 납치해서 돈을 더 뜯을까 하는?”
“그래, 아마 그랬다면···”
내 말의 끝맺음은 바레가 대신 지었다.
“우린 죽었겠지.”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인사를 하고, 저 차가운 바다로 몸을 던져야 할 때다. 인당수에 몸을 던지던 심청이의 심정일까? 아니 조금은 다르다.
나는 확실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다만 리스크를 내 직원인 선장을 대신해 짊어 지는 것 뿐이었다.
"그럼 또 보지."
내 인사에 바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가 볼 일이 있나?"
“두고 보면 알겠지.”
와락 인상을 구기는 바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날 듯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빠르게 달리는 보트에서 뛰어내린다는 게, 생각보다 제법 따가운 일이구나를 깨달으며 망망대해에 떠 있기를 몇 분, 금새 다가온 헬기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온 호석의 손에 이끌려 나는 푹 젖은 꼴로 헬기 위에 앉을 수 있었다.
"너무 위험하신 수를 두셨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것 같은 선장의 얼굴을 보니 차마."
"후우... 다음에는 언질이라도 주십시오 회장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호석이 고생했다는 듯 얼른 내 몸에 담요 하나를 덮어준다. 그러고는 작은 PDA같은 기계를 내게 내밀어 동그란 점들이 움직이는 걸 보여준다.
GPS.
"놈들은 분명 돈 가방을 뿌릴 겁니다."
"확신하십니까?"
"소말리아라는 저 거지같은 땅에 3100만달러를 제대로 소화 할 수 있는 해적은 없을겁니다. 마피아나 카르텔과는 다르니까요."
"정부관계자의 손에 넘겨질 거라 확신하시는군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놈들에게 뿌려지게 되겠죠."
고개를 끄덕이는 호석.
"하루, 하루 뒤에 움직입니다."
"예, 위성도 한대 동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좋고요."
"피곤하네요, 정신적으로."
"케냐에 좋은 숙소를 얻어놨습니다."
"예, 하루 푹 쉬죠."
***
다 쓰러저 가는 나무집.
시아드 바레와 그 부하들이 싱글벙글 웃으며 돈가방을 옮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와, 진짜 3100만 달러를 딱 맞춰서 왔는데?"
"한 가방에 200만 달러씩이야, 다른 한 가방은 100만 달러고 대장."
바레 역시 기분이 좋은지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누르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100만 달러짜리, 그걸 먼저 너희들이 챙겨, 나머지는 나중에 다시 분배해주지."
부하들이 불만이 많은 표정으로 바레를 바라본다.
마치 진심이냐는 듯 묻는 얼굴들이었다.
"후우, 나중에 따로 더 챙겨준다고, 3000만 달러야 3000만 달러, 이 큰 돈을 우리가 그냥 챙길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저기에 뿌려야 할 돈이 많다고! 당장 여기에 반군들이라도 처들어오면 막을 자신을 있어?"
바레의 혀가 길어졌다.
그래도 부하들은 못마땅한 듯한 얼굴들이었다.
"전사들이 처들어오면 우리는 무조건 죽어, 우리 가족들이라고 무사 할 것 같아? 마을 전체를 몰살시켜도 3000만 달러만 챙겨가면 그 놈들은 좋아할 걸?"
"크흠,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이걸 우리가 최대한 많이 챙길 수 있도록 할 테니까. 너희들은 잠깐 기다려. 100만 달러면 몇달은 풍족하게 지낼 수 있잖아?"
"알았어, 대장. 대장만 믿지."
"그래."
잠시 못마땅해 하던 부하들이 이내 싱글벙글 한 표정으로 100만달러가 들었다는 가방에서 달러뭉치를 꺼내 지들끼리 옥신각신 돈을 나눠 갖는다.
바레는 돌아서서는 바깥으로 나가 담배를 입에 물고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기다렸다. 바레.
"일은 잘 끝났습니다."
-크으... 드디어!
"놈들이 약속한 돈을 주었습니다. 전부 현찰로."
-좋아, 사람을 보내지.
"예,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2시간.
"이 지긋지긋한 해적질 이제 때려치고 싶습니다."
-이틀, 이틀만 기다려.
"후우,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돈을 다 나눴는지 작은 짐들을 둘러매고 있는 부하들이 보였다.
"대장, 이건 대장 몫, 20만 달러."
뭉치 하나를 툭툭 건드리는 부하.
"아, 모하메드... 그 돈 말이야."
"왜? 별로야? 공평하게 나눴다고."
"아니, 그거 우리집에 보내줘."
"음?"
"지금 가, 좀 있으면 놈들이 올테니까."
"그 장군이라는 놈 믿을 수 있는거야? 순교자인 척만 하는 놈 아니냐고."
"후, 우리는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잖아, 그러니 빨리들 가. 그리고 당분간은 돈을 아껴야 할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알겠어."
멀어지는 모하메드를 바라보던 시아드 바레.
"모하메드! 잘 부탁한다."
"걱정마 대장, 이 곳에서 우릴 건드릴 사람은 없다고."
"후우, 그래."
부하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시아드 바레는 태우던 담배를 바닥에 대충 비벼 끄고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달러가 든 가방을 바쁘게 움직여 나무로 된 집의 한 쪽 비밀 공간에 2개의 가방을 숨겼다.
티가 나지 않도록 비밀스러웠던 공간에 다시 흙먼지를 슥슥 쓸어서 매꾸고는 털석 다른 돈가방들 위에 앉아 다시 담배를 태운다.
***
케냐.
크게 유명한게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린?’하고 의문을 가질 그곳에서 내가 하고 있을 일이란 건 딱히 없었다. 그저 위성 GPS를 통해 돈가방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젯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추적을 시작했어도 되지만 그러지 않았다. 돈 가방은 분명 여기저기 뿌려질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
고작 해적놈들 몇이 모두 소화하기에는 몹시 큰 돈이었다. 그 돈은 분명 소말리아 정부 혹은 소말리아의 어떤 무장단체, 혹은 소말리아 정부의 일과 관련된 제3국가들에게 흘러 갈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은 현 소말리아의 해적이 들끓게 만든 원흉들일테다.
물론, 하나의 사건 하나의 결과가 하나의 원인 때문에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러가지 일이 복합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작용했을 때 비로소 하나의 결과값이 나오기 마련이다. 소말리아에 해적들이 준동하는 이유는 꼭 소말리아의 정부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정세도 영향을 끼쳤으며 분명히 SKY역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불법 어업을 하는 선박들도 무시 할 순 없었다. 중국, 대한민국, 일본, 해외여러국가들 역시 소말리아 인근의 공해에서 분명 불법 어업을 했을 것이고, 소말리아의 원주민 어부들은 더 이상 돈 벌 길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그들이 가엽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할 것은 해야 했다. 다시는 SKY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어야했다.
“회장님 말씀처럼, 하루가 지나니 GPS이동이 잠잠합니다. 이제 추적을 붙일까요?”
“소말리아 내부에서 활동해도 괜찮겠습니까?”
빅토르가 눈을 부라리며 차렷자세를 취하고는 발을 구르며 대답했다.
“문제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고려인 특전단 아이들을 썼으면 싶은가보다.
“위험한 임무입니다. 빅토르.”
“전사의 사명을 다할 명예로운 기회라 생각합니다 회장님.”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회장님조차 선장을 대신에 리스크를 짊어지셨습니다. 전사들은 그런 회장님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빅토르의 말에 지휘부 안에 있던 코드를 부여 받은 대원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전혀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좋구나 하고는 차가운 물에 몸 한번 담근 것으로 더 큰 가치의 신뢰를 얻은 것 같아 뿌듯했다.
“코드 대원들.”
““예! 회장님!””
“다 같은 대원이고 훈련병이지만, 편의상 고려인 특전단 이라 불리는 아이들과 팀을 이루세요.”
명령을 조심히 내린 이유는 나는 고려인 특전단을 특별하게 생각하거나 트별하게 취급한다는 생각을 지우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이제 우리의 품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SKY PMC의 대원으로서 활동하는 이상 내게는 모두가 같은 SKY PMC의 대원들이었다.
빅토르는 오히려 그 점이 기쁜지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후임들을 위해 선임들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후임들의 안전을 책임져주세요.”
““예! 회장님!””
코드 대원들의 우렁찬 대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코드제로.”
“예, 회장님.”
“대원들끼리의 궁합과 능력을 고려해서 팀을 짜세요, 팀이 꾸려지는데로 바로 위성 GPS를 지급하고 작전을 시작합니다.”
“예, 회장님. 작전명은 무엇으로 할까요?”
타다닥.
모두가 내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집중한다.
작전명이라.
불현듯 몇해 전 과거의 일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 같았다.
‘불바다 어떻습니까?’
‘큽···’
‘왜요?’
‘아, 아닙니다.’
슬쩍 호석의 눈치를 보니 나를 놀리려는 의도는 분명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작전명이 따로 없으니 정해주십사 하고 말을 건 것 같았다.
내 작명센스를 알면서도 굳이 내게 작전명을 요청한 이유는 아마 과거의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째서인지 선명한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떤 작전명이 적당할까?
대원들이 내게 모두 집중하고 있으니 더욱 부담이 된다. 호석만 따로 있었으면 약간의 상의를 했을텐데 말이다.
나는 일단,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척 테이블에 올려진 시가 상자를 열어 시가 칼로 끄트머리를 자르고 입에 물었다.
뒤퐁~!
그러고는 라이터를 들어 시가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뻐끔, 뻐끔.
“숨바꼭질, 피의 숨바꼭질.”
“예?”
호석의 반문에 나도 모르게 도끼눈을 뜨고 그를 째려보았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억지로 무표정을 유지하는 호석.
“바퀴벌레 소탕작전 따위를 생각했는데··· 참았습니다.”
여기저기 코드 대원들이 고개를 돌린다.
빅토르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으음, 둘다 좋은 작전명이군요, 하··· 이것이 회장님의 감각입니까?”
모두의 시선이 빅토르에게 닿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바퀴벌레 소탕작전, 피의 숨바꼭질. 와 이건 정말, 확실히 피의 숨바꼭질이 조금 더 좋은 작전명 같습니다. 회장님이 선택하신 이유가 와닿는다 할까요?”
“그렇습니까?”
“예! 회장님, 저는 돈가방 탈취작전이나 소말리아 해적이라고 했으니 원피스 탈취작전, 혹은 원피스 뭐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쿵!
심장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심장이 미친듯이 진자운동을 시작했다.
찐이다.
빅토르는 찐이었다.
나와 같은 작명 고자였다.
빅토르를 크게 기용해도 될 것 같았다.
“원피스라, 그것도 나쁘지 않군요.”
내 말에 호석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다른 대원들은 듣지 못한척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역시 피의 숨바꼭질이 적절해보입니다 회장님.”
“예, 원피스, 그 작전명은 곧 사용할 곳이 정해질겁니다.”
씨익 내가 입꼬리를 들어올리자 빅토르가 눈을 크게 뜨고는 묻는다.
“아, 이후에 다른 작전이 더 있을 예정이군요!”
내가 직접 움직였고, 소말리아에 힘을 썼다.
이대로 썩은 놈들만 도려내는데 그치는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인풋이 있었다면 압도적인 아웃풋이 있어야 하는 것이 SKY의 방식이다.
“예, 그렇게 될 겁니다.”
대원들을 쓱 둘러보며 외쳤다.
“피의 숨바꼭질, 시작하세요.”
““예! 회장님!””
< 제 37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