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69화 (369/458)

< 제 369화. >

탁.

전화를 끊은 해적들의 우두머리 바레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전화를 내려다보았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왜 그래 대장?”

“후우··· 아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이 선박의 책임자인 선장과 그 아랫사람 한명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들 회장이라는 사람 제 정신이 맞는건가?”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이던 선장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외쳤다.

“회장님을 모욕하지 마라!”

버럭 소리를 지른 선장.

뒷 일은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는 시아드 바레.

갑자기 소리를 지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있던 해적들이 깜짝 놀랐고 그 중 한명의 해적이 앞으로 튀어나가 소총의 개머리판 부분을 위협적으로 들어올린다.

“그만!”

바레가 크게 명령하자 멈추는 해적.

“왜? 대장? 이 새끼들 이렇게 두면 우릴 무시할 거라고.”

“됐다. 저 놈들의 회장이라는 자가 털 끝 만큼도 건드리지 말라는 부탁을 했어. 우리는 돈만 얻고 여길 떠나면 돼, 안 그래?”

“쯧,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해적이 손을 들어 툭툭 선장의 뺨을 두들기고는 물러났다. 그러자 선장의 수하가 얼른 선장을 뒤로 끌고 간다.

“왜 그러세요 선장님, 저 놈들 들고 있는거 진짜 총이라고요 총!”

“자네는 회장님을 모욕하는 언사에도 아무렇지 않은가!”

“어휴, 알겠어요, 알겠어. 그러니까 제발 자극하지 말자고요.”

한국어로 조용하게 떠드는 둘을 무시한 바레는 홀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상한 회장에 이상한 선장이었다.

선장놈도 그렇고 회장놈도 그렇고 도무지 자신들의 처지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듯한 모습이었다. 아 물론 선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벌벌 떨면서도 회장을 모욕하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기 때문.

“후우, 돈만 받으면 돼, 돈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바레가 휙하니 고개를 돌려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저 놈들 한데 모아놓고, 잘 감시해 허튼수작 부리지 못하게.”

“오케이 대장, 이런일 뭐 하루이틀인가.”

“선원들 다치게 하지마, 명령이다.”

“에휴, 알았다니까?”

“쯧···”

***

정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소말리아와 원만한 대화가 오갈리가 없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케냐였다. 덕분에 내 전용기는 아프리카 상공을 날아 팔자에 없는 케냐에 도착했다.

“후우, 짜증나는군.”

나 역시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잘 진행되고 있던 일에 파리새끼들이 날아와 훼방을 놓고 있으니 당연했다. 어쩐지 근 1년 별일 없이 지나간다 싶더라니 러시아가 지나가고 나니 소말리아라는 국가가 내 발목을 잡는다.

러시아라면 처리하는데 오래 걸릴 일들이 산더미지만 소말리아라면 나 역시 거리낄게 없었다. 그들은 SKY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에게 어떠한 제재도 불가능한 약소국이었으니까.

“후우, 시아파인지 수니파인지··· 싹 쓸어버렸어야 했는데.”

그저 분풀이일지 몰랐다.

오사마 빈 라덴을 죽일 때, 알 카에다 세력의 주축을 모두 처리했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휘관급 인물들만 비밀리에 처리했다. 나머지 인물들이야 워낙 능력이 없고 힘이 없으니 그냥 나뒀다.

미친 살인귀도 아니고 굳이 피에 젖은 미친 짓을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한국에게 피해를 끼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런데 어제, 놀랍게도 PMC의 보고에 의하면 알 카에다의 잔존세력이 소말리아로 도피를 선택했던 모양이다. 미국이 빈 라덴을 죽였다는 걸 대대적으로 선전했기 때문에 공포심을 느낀 알 카에다 잔존 세력들이 중국을 벗어나고,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도망 가 여러 국가들로 숨어 들었고, 그 중 가장 많은 수의 도망자들이 소말리아를 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미친놈들이 늘어났다는 소리를 듣고는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비효과···”

점점 나비효과가 두려웠다.

바쁘게 움직이는 세계 정세가 어떻게 돌변할 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더 빨리, 미국을 처리하는게 맞아.”

돌아오는 대선, 반드시 장인어른을 대통령의 자리에 앉히는게 옳다는 걸 난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십니다.”

차문을 열어주며 묻는 호석.

“아, 그래보였나요?”

“하나하나 처리하시다 보면, 결국 목표에 닿아있지 않겠습니까?”

차분한 조언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맙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고는 차량에 올랐다.

“헬기는 준비가 되었나요?”

“예, 회장님. 놈들에게 전화가 오면 적당한 장소를 고르면 될 것 같습니다.”

“소말리아 시각으로 지금은 몇시입니까?”

“현재 시각은 오후 2시입니다.”

“슬슬 전화가 올 시간이군요.”

“예, 오후 3시를 얘기했으니 곧 연락이 닿을 겁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몸바사 공항에서 착륙해 선착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어젯밤 분노로 인해 한숨도 이루지 못했기에 피곤했는데 아직 쉴 시간은 아닌가보다.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금방이네요.”

“항구 근처의 공항을 선택해서 그렇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냥 투정이에요.”

“하하.”

나보다는 앞으로 고생할 대원들이 더 피곤할테다.

내가 탈 헬기가 보이는 작은 사무실, 그곳에서 잠시 더위를 피해있는 사이, 드디어 기다리던 전화가 울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전화를 건네는 호석.

“어디지?”

-하, 급하군.

“난 지금 케냐의 몸바사다.”

-제법 거리가 있군.

“네 놈도 이쪽으로 이동하고, 이쪽에서도 네놈이 올 뱃길을 따라 움직이면 적절한 시간에 만나지 않겠나? 어차피 소말리아 영해의 한 곳 아닌가?”

-좋아 CH 112,123,118 위치로 이동하지, 북쪽에서 남쪽 방향이다.

“좋아 그럼 곧 보자고, 헬기에는 내가 직접 탑승해서 돈을 전달하도록 하지.”

-직접오겠다고?

“그래, 내 경호원들을 보고 긴장이나 하지마, 고속선 얘기 했었지? 그곳에도 경호원들이 탑승 해 있을 것이다.”

잠시간 수화기 너머 말이 없었다.

-개수작 부릴 생각은 아니겠지?

“잊었나? 이깟 돈 3100만 달러가 아닌, 난 내 선원들과 선박을 먼저 찾고 싶다.”

-후우··· 경호원은 몇 명이 올 것이냐?

“권총으로 무장한 1명.”

-그정도라면야.

“네 놈들은 어떻게 움직일 생각이지?”

-돈 가방을 챙겨서 우리 배로 옮겨 탄다. 그때까지 선장은 우리가 데리고 간다.

“장난하나? 약속과 다르군.”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하고 싶군, 나도 솔직하게 말하는 거라고? 유혈사태를 바라지 않으니까.

“그래서 계획이 뭐지?”

-너희들의 고속선과 선박과 거리를 벌리면 우리 배에서 선장을 던지겠다.

“망망대해에 말인가?”

-헬기가 쫓는 것 까지는 말리지 않겠다.

“좋아,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픽 전화기 너머에서 얼핏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이 정도는 문제 없다.

“약속은 지키길 바라지.”

-그럼 좌표에서 보자고.

“그래.”

전화를 끊은 난 다시 전화기를 호석에게 건네며 말했다.

“좌표를 불러주더군요, CH 112,123,118라고. 그리고 그쪽 방향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움직이겠답니다.”

“예, 회장님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회장님도 바로 헬기에 오르시죠.”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나가니 작은 헬기의 프로펠러가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헬기에 대원들이 돈가방을 싣고 있는게 보였다.

아마 저 가방 어딘가 비밀스러운 곳에 GPS장치가 심어져 있을 것이다.

내가 주문했던 것 처럼, 작은 가방 수십개가 보였다. 대충 가방 하나당 약 20kg정도가 나가지 않을까 싶었다.

“갑시다.”

***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망망대해 위, 저 멀리 드디어 우리 SKY LINE의 대형 화물선이 보였다.

저 커다란 배를 고작 몇명의 해적이 납치했다니 과연 현대 무기의 무서움을 얼핏 드려다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안전수칙에 의거해 선원들은 크게 반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는 피해를 굳이 인명사고를 낼 필요는 없었다.

뭣보다 SKY는 모든 업무에서 안전규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규정을 어긴다면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긴 힘들었다.

덕분에 어떤 기업들보다 사고가 가장 적었다.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

우리 선박의 위를 빙글 빙글 도는 헬기,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해적들이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선장으로 보이는 인물의 머리통에는 권총의 총구가 닿아져 있었다.

“고속선이 올 때까지 잠시 선회하겠습니다. 방송으로도 얘기 하겠습니다.”

헤드셋 사이로 들어온 호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헬기의 커다란 스피커에서 같은 내용의 방송이 이어지자 해적들은 소총으로 우리 헬기를 겨누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대치하기를 약 5분.

드디어 우리 대원들이 탑승해 있는 고속선 6대가 대형선박의 뱃머리와 옆구리를 포위하듯 섰다.

두두두두두두.

헬기가 화물선의 착륙하고, 해적들이 소총을 앞세우며 헬기를 포위한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나는 양손을 들어 올리고는 헬기에서 내렸다. 약속했던 대로 호석 역시 권총을 든 손을 들어 올리고는 총이 잘 보이게 만들어서는 내렸다.

못 먹어서인지 볼이 홀쭉한 사내가 내게 다가왔고, 그의 뒤로 소총을 겨눈 사내가 다가온다.

“네가 바레인가?”

“그래, 내가 바레다. 네가 천우진이겠군.”

“맞다.”

“돈은 어디있지?”

슬쩍 헬기를 가리키자 우리에게 소총을 겨눈 해적놈 말고 다른 해적놈이 빠르게 튀어나와 헬기 내부를 확인한다. 조종사 역시 맨손인 양팔을 들어올리고 있으니 안심하는 모양.

“선장에게 말을 해도 되나?”

“그 정도는 봐주지.”

나름 인심이라도 쓰듯이 말하는 바레를 지나처 관자놀이에 총구가 닿아있는 선장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개수작 부리면 이 새끼 대가리 날아가는거야.”

둔탁한 발음의 영어가 비수처럼 나아오는 것 같았다. 선장의 몸이 더욱 굳어가는게 보였다. 더위 때문이 아니라 상황때문에 선장의 몸은 이미 땀에 절여지듯 젖어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김성태 선장님, 내가 반드시 선장님을 구출 해 낼것입니다. 돈이 얼마든 상관 없습니다. 선장님은 우리의 가족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회, 회장님.”

“선장님의 가족들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선장님은 반드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하셨습니다. 예, 돌아가야죠··· 돌아가야죠.”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그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어가는 걸 확인했다.

머릿속에 짧은 고민이 스쳐갔다.

슥, 뒤를 돌아 호석을 겨누고 있는 바레를 바라보았다.

“이봐 시아드 바레.”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는 시아드 바레.

“선장 말고, 날 데려가라.”

호석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안 됩니다 회장님!”

선장 역시 뒤통수에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러실 순 없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회장님! 무리하지 마십시오!”

난 고개를 저었다.

시아드 바레가 요상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안전을 신께 맹세할 수 있나 바레?”

“굳이 그런 도박수를 건다고?”

호석이 절대 안 된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회장님, 전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회장님을 믿습니다!”

뒤를 돌아 보았다.

그는 정말 괜찮다는 듯 절실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시아드 바레라는 해적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를 인질로 잡아서 바다에 던져라, 네가 더 안전해지겠지. 아닌가?”

“하, 정말 이상한 놈이군.”

“싫은가? 네 놈의 부하들의 안전 역시 보장되는 일이다.”

“네 놈을 헤치지 않는다고 맹세하면 되나?”

“그렇다. 그래야 내 경호원이 안심을 할 거 같으니까.”

“겨우 그 정도로 안심하지 않습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는 호석.

나는 픽 웃으며 순순히 바레의 곁으로 다가갔다.

“맹세하지, 당신의 보스를 난 절대 헤치지 않겠다.”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호석이 까드득 이를 짓씹는다.

“회장님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지구 끝까지 네놈들을 쫓아가 찢어죽여주마.”

살벌한 호석의 기세에 바레가 움찔 뒷걸음질 쳤다. 바레와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던 호석의 진면목이 보이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호석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나,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에 색다르게 느껴질 만큼 그가 뿜어내는 기세가 압도적이라 할 만 했다.

어느새 바레의 권총의 총구가 내 머리 근처에 올라왔다.

“꼭 이러셔야겠습니까?”

“내 가족이 잡혀 있어도, 난 이랬을 겁니다. 삼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후우···”

힐끗 풀려난 선장이 복잡한 감정으로 날 바라본다.

난 그 눈에서 존경과 선망,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충성심을 보았다.

어떤 사내가 진심으로 충성하고 존경을 한다는 거.

이 정도면 꽤나 좋은 아버지 상이 아닐까 싶었다.

“금방 구출해드리겠습니다 회장님.”

호석이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해적들의 기름냄새 나는 배에 승선했다.

< 제 36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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