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68화. >
전에도 얘기했던 것 같지만 내 주변에, 그러니까 내 지근거리에는 항상 코드 넘버를 부여 받은 대원들 20여명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장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아이티의 PMC훈련소에는 특급 대원들과 1급,2급 대원들이 즐비했다.
해적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을 소탕하는 일 따위는 누워서 떡 먹는 것 만큼 쉬운 일이라는 얘기였다.
그들의 무장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어디서 구해온 싸구려 소총 따위가 전부일테니까.
테이블을 두들기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바깥이 소란스럽다 싶더라니 어느새 장내에는 코드 대원들과 호석, 빅토르와 고려인 특전단의 인물 몇이 보였다.
"다 모였습니까?"
"예! 회장님."
아까 전, 기운 없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이제는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호석.
픽, 웃음이 터져버릴 것 같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GPS기기는 있습니까?"
"아이티에서 대원들과 함께 빠르게 비행기로 이동중에 있습니다."
"좋습니다. 몇 시간 뒤면 준비가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장내에 있는 대원들을 쭉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나는 우선 우리 선원들과 선박을 아주 안전하게 되찾아올 생각입니다. 돈을 주고, 선박과 선원들을 되찾는다. 첫 임무는 아주 간단할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해적들을 굳이 자극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전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는 피해 없고, 그들은 피해를 입겠지만, 그것은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 아닙니다."
""예! 회장님!""
우렁찬 대답에 더 마음이 놓인다.
내가 무슨 작전을 지시해도 이들은 성실하게, 완벽하게 이행해줄 것 같다는 믿음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GPS는 현금이 든 가방마다 설치 합니다. 당연히 해적놈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위치에 숨겨야겠죠."
"최대한 많은 가방에 나눠 담겠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부러 해적놈들의 편의를 봐주겠다는 뜻이다.
돈.
그것이 지폐라면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액수가 3100만 달러나 된다면 그 무게만 해도 쉽게 생각할 양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100만달러의 현금뭉치의 무게는 약 10kg정도가 나간다. 그럼 얼추 계산해도 3100만달러의 무게는 300kg이 넘을 것이다. 해적이 몇 놈인지는 모르지만, 소총을 들고 현금 가방을 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테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여러군데에 나눠서 지급한다면 놈들은 기분이 좋을지 모른다. 알아서 가볍게 나눠주니 이동수단까지 편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적들이 돈을 받아 저 먼 바다로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작전은 시작됩니다."
""예! 회장님.""
"나는 그들이 단순한 어부 출신의 해적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법 어업 때문에 시달리던 소말리아의 해적들은 대부분 어부 출신이라고 하죠, 그러나 그들을 컨트롤 하는 컨트롤 타워는 분명히 정부 관계자들과 연관이 되어 있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호석이 날 바라보며 물었다.
"소말리아 정부 문제까지 개입하실 생각이십니까?"
"복수를 위해 필요하다면, 소말리아 전체를 날려버려도 난 개의치 않습니다. 감히 SKY를 건드렸다면, 그 대가가 무엇인지 충분한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호석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크게 주억거린다.
해적 놈들에게 협상비를 지급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분명, SKY를 만만하게 생각할까 우려 했기 때문이리라. 허나 이런 방식이라면 세상 그 누구도 SKY를 함부로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건드린 해적'단'자체를 몰살시켜버릴 것이다. 그들이 억울한 사연을 가진 어부들이라고 해서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해적질을 할 그 열정을 다른데 쏟았어야 했다.
가진바 사연이 안타깝다고 해서 현대사회에서 도적질이 정당화 될 순 없었다. 현재 존재하는 해적들을 해체 시키고 소멸 시켜버리고, 다시는 그런 존재들이 나오지 않게 하는 일까지.
제법 고생을 각오해야 할 일일 것이다.
"언론의 발표는 있었습니까?"
"예, 회장님."
호석이 리모콘을 만지더니 TV를 켰다.
개발도상국이라고 하지만 나름 갖춰진 호텔의 최상층 펜트하우스는 한국 못지 않은 서비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 전원이 켜진 TV역시 SKY전자의 제품이었다.
-우리 한국은 SKY LINE의 화물선을 무단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단에게 고합니다. 당장 선원들을 풀어주고 화물선을 돌려주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당장 선원들을 풀어주고 화물선을 돌려주기를 바랍니다.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할아버지의 음성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배우를 해도 될 정도로 연기력이 대단해지셨다.
물론, 실제로도 분노 하고 계실 것이다. 한국의 선박을 납치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을 무시하는 처사일 수 있으니까.
"좋아요, 저 정도 발표가 나왔다면 해적 놈들도 듣는 귀가 있을테니 긴장 할 겁니다.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하고.”
“놈들을 혼란스럽게 만드실 생각이군요.”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하지 못하고, 신났다고 돈가방을 들고 도망가기를 바라니까요.”
***
소말리아에서 많이 떨어진 바다.
운하를 통과하기 위한 많은 화물선들이 이동하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해적질을 해 왔던 시아드 바레는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듣고 있었다.
영어를 제법 할 줄 아는 그.
해적질을 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영어였다. 일단 소통이 되어야 놈들을 협박하고 겁박해 돈을 뜯어낼 수 있잖은가.
-소말리아의 해적들에게 경고한다. 당장 한국의 선박과 선원들을 풀어주어라.
픽 웃음을 흘리는 몇몇 해적들, 그리고 시아드 바레.
이어지는 한국 대통령의 연설을 통역하는 통역사의 더빙음.
-우리는 해군 전함을 출항시킬 것이다. 한국 선박과 선원들의 안위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소말리아 정부가 책임저야 할 것이다.
“크크큭, 정부 같은 것도 없는 거지같은 나라에서 저런 말이 통할거라 생각하는 건가?”
“흥! 우리나라에 와서 불법 어업이나 하는 놈들이 말이 많군!”
부하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대화에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 줄 몰랐기에 의아했다.
여태껏 대한민국의 어선이나 화물선을 상대로 해적질은 처음 하는 건 아니었다. 보통은 작은 돈을 받으면서 마무리 지었지만, 이번에는 이 화물선의 선원들이 격렬하게 반항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부하 하나가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흥분했던 그 순간은 떠올리던 바레가 쓰게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이미 방아쇠는 당겼어.”
이제 와 다시 아무렇지 않은 것 처럼 돌아가기는 글렀다. SKY라는 로고를 보는 순간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고 달려들었다.
또, 이 배의 선장은 상부와 연락을 했고, 상부는 요구조건을 적극수용하겠다는 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태도가 상당히 고압적이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해군을 투입시켜 자신들을 다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
꿀꺽 침을 삼키는 바레.
“후우.”
“대장, 왜 그래?”
“아니야, 저 대통령이 정말 저렇게 얘기했다면 제법 귀찮겠구나 싶어서.”
아니나 다를까 그의 품에서 전화기가 열심히 몸을 떤다.
“쯧.”
혀를 차며 전화를 받는 바레.
-바레.
“예.”
-한국 대통령의 발표에 겁을 집어 먹은 건 아니겠지?
“흥, 한국의 전함이 이곳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우리는 내일 SKY에게 3100만 달러를 받으면 되는 거고요.”
-좋아, 다행이군.
“그러는 장군께서야 말로, 한국 대통령의 경고에 긴장하셨나봅니다.”
-시아드 바레. 많이 컸군.
“해적질을 하며 국제적 범죄자가 되다보니 말입니다.”
-그 해적질 한 돈으로 타국으로 망명이라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평범한 노동자로 위장하는 것 쯤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전화기 너머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세상 어디에도, 알라를 믿는 사람들은 많지.
“협박하는 겁니까? 당신 밑에서 개처럼 범죄자로 사는 내게? 오직 알라께 이로운 일이기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거면 돼. 알잖은가? 우리에게는 돈이 필요하다는 걸.
“SKY가 그 오사마 빈라덴 사도를 사로잡았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잘 알지, 덕분에 우리의 세력이 막강해지지 않았나?
“알 카에다가 우리에게 흡수되었다는 걸 안다면··· 분노의 칼이 우리에게 닿을지도 모릅니다.”
-신의 전사들에게 두려움은 없지. 알 카에다와 탈레반, 두곳 모두 핵심 사도들을 잃었어 힘이 없지, 머리가 없다는 뜻이야, 자네가 제일의 신의 전사가 될 자격 역시 충분하다는 뜻이고.
달콤했다.
더러운 해적질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3100만 달러면 그럴 수 있단 얘깁니까?”
-그 어떠한 신의 전사들도 성전에서 그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알지 않는가?
“믿겠습니다.”
-신이 함께하기를.
“신이 함께하기를.”
통화를 끝낸 바레의 표정이 애매했다.
긴장이 풀리고 각오가 서는 것 같기도 하나, 완전하지는 않았다. 성전이고 전사고 개소리보다는 당장의 생존 문제가 그에게는 더 컸기 때문이었다.
“안 되겠어.”
“대장 뭐라고?”
“다시 SKY책임자에게 전화 연결 하라고 해.”
“대장이 직접 통화할거야?”
“그래, 한국 해군이 올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으니까 속전속결로 끝내자.”
“오케이, 우리야 돈 빨리 받아가면 편하지.”
***
이러쿵, 저러쿵.
호석이 특급대원들과 코드 대원들에게 바쁘게 작전을 설명했다. 수 많은 가정들을 세우고 그 가정에 직면했을 때, 최우선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등을 미리 정하는 행위였다.
정말 많은 변수들이 있지만 그 변수를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기 위함이었다.
“음?”
호석이 품에서 위성전화기를 꺼냈다.
“예, 하! 알겠습니다.”
이내 내게 다가와 위성전화기를 건네는 호석.
“회장님, 해적놈들이 회장님과의 전화를 원합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건네받았다.
이때 쯤 올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성명문이 전 세계에 송출되었을테고, 세계 각국의 언론이 그 내용을 통역해서 내보냈을테니 분명 해적들도 그것을 들었을 터.
그러니 지금 정도가 적절한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전화받았습니다.”
-바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회장님.
“그러세요.”
짧은 통화 연결음이 지나고.
투박한 발음의 영어가 들려왔다.
-당신이 SKY그룹의 책임자인가?
“그렇다.”
-우리의 요구조건을 들어 줄 거란 말, 확실한가?
“이미 돈은 준비 되었다. 우리 선원들과 선박의 확실한 안전만 보장해라. 그럼 너희들에게 돈가방을 줄테니까.”
-내일 오는 건 확실하겠지?
“왜? 내가 시간을 끌까 봐 겁나나?”
-개소리! 네 놈의 선원들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렸다는 걸 잊지 말라고.
“네 놈이야말로 잊지마라, 내 선원들과 선박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네 놈을 반드시 죽여버릴테니까.”
-··· 미친건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나?
“누구보다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그따위로 말을 한다고?
해적놈이 어처구니 없어하는 게 느껴졌고, 다급한 마음 역시 느껴졌다.
분명 할아버지의 경고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일테다.
“난 네 놈들의 목숨 따위는 관심이 없다. 3100만달러도 관심이 없어, 내가 바라는 건 내 직원의 안전이야.”
-흥, 그깟 돈은 푼돈이라 이건가?
“왜, 이제와서 요구조건을 바꾸고 싶어? 그렇다면 준비하는데 더 시간이 걸리는데?”
-······
“닥치고 내 직원들의 안전이나 최대한 보장하고 있어, 손 끝 만큼이라도 내 직원들에게 문제가 없길 바라지.”
-후우, 미친놈. 걱정하지 마라, 우리 역시 멍청하게 돈 줄에 손을 대는 취미는 없으니까.
“그거 다행이군.”
-그래서, 정확히 내일 몇시지?
“적어도 대한민국의 해군보다는 먼저 도착 할 것이다.”
-뭐? 해군?
“몰랐나? 대한민국에서 해군 구축함이 네 놈이 있는 해협으로 출발했다.”
나도 사실 잘 모른다.
그냥 던져본 말이었다. 아마 지금 쯤 출발 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히는 연기에 가깝겠지만. 그리고 구축함이 출발했다고 해서 그 먼거리를 고작 하루만에 올 수도 없다.
-내일 몇시쯤, 당신이 오지?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해가 질 시간쯤이다. 이곳과 그곳은 거리가 머니까.”
-세네갈에 있다고 들었는데?
“현금이 오는데 시간이 걸려, 이해가 안 되나?”
-그렇군.
“내일 보자고, 위치를 알려주면 그 위치까지 고속선이 접근할테니까, 헬기도 물론이고. 우리 화물선의 헬기 착륙장에 헬기가 착륙할거야, 무장은 없을테니 경계나 하지 마.”
-허튼 수작은 부리지 않는게 좋을거야, 피를 보기 싫다면.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너야말로 허튼 짓거리 하지마. 네 손길, 발길이 닿는 모든걸 찢어버릴테니까, 얌전히 돈만 가지고 꺼져.”
< 제 36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