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67화. >
세네갈 대통령에게 내기에 대한 보상을 받았을 때.
나는 대충이나마 세네갈의 현 정부의 대립양상을 알 수 있었다.
반 대통령 파와 대통령 파,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 있을테고, 약간이나마 대통령 파가 우세한 힘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렇지 않다면 벌써 이곳저곳에서 견제가 들어왔어야 하건만 SKY가 진행하는 어떤 사업에도 제동이 걸리는 일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업은 착착 진행 되는 것 같았다. 아마, 내게서 가져간 세네갈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더러운 면모가 담긴 그 서류들이 제법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현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되어줄 서류였던 것 같다.
"좋아, 부지 선정은 끝났고 이제 중장비와 함께 한국에서 들어올 각종 장비들이 필요하겠군요."
"예, 회장님."
부지 선정과 더불어 우리가 원하는 환경을 찾기 위한 답사가 끝나는데 이주일이 소요되었다.
프랑스로 출발 할 때, 미얀마에서 생산된 태양광 패널들이 실린 대규모 화물선이 출발했을 테니, 지금쯤은 인도양에서 맹렬하게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테다.
"아이티에서 중장비를 빼기는 어렵겠죠?"
SKY건설쪽과 중공업 쪽에서 나온 중역들이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예, 현재 아이티에도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는 만큼, 그 부분은 어렵습니다. 미얀마에서 출발한 화물선에 중장비가 실려있는 만큼 세네갈의 장비들과 함께 공사를 진행한다면, 다음 중장비가 들어올 때까지 충분한 성과를 만들 수 있을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군요, 미얀마에서 출발한 화물선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아프리카의 특성상 육로연결이 어렵기 때문에 뱃길을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최악의 기상상태를 고려 했을 때, 늦어도 내달 20일에는 도착 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은 딱 맞았다.
결정되지 않은 아프리카 행을 나는 확신하고 있었기에 미리 출발 시켰던 화물선이 신의 한수였다.
물론, 그런 결정을 했을때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SKY의 아프리카 진출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SKY가 여태껏 하고자 하는 일은 모두 달성했기 때문.
"오케이, 우선 설계가 먼저 나와야죠? 장비들이 들어와도 기반 다지기 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 설계 역시, 세네갈의 토양 환경을 생각해 미리 진행하고 있었던 만큼, 지반을 제대로 다져놓았을 12월에는 무리 없이 뽑힐 것으로 보입니다."
"태양광 발전 시설은 그렇고, 다른 시설들은 어떻습니까?"
SKY 식품의 중역이 말을 받았다.
"같은 스케쥴로 무리 없이 운영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곡 가공 공장의 경우 이번에 도착할 화물선에 실린 중장비로도 충분하고,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없으니 회장님이 만족하실 만한 공기 내에 완공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장이 중요한 게 아니죠, 농장이 중요하죠."
"예, 회장님."
"우선 토양 연구를 계속 진행해야 확답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에서 진행했던 연구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곧, 유의미한 성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난 그에게 신뢰를 느꼈다. 분명 어느날, 내가 좋아 할 만한 소식을 전해 줄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아프리카도 대충 정리가 되는 것 같네요."
"예, 우려했던 것 보다 세네갈의 치안이 안정되어 있어서 다행입니다."
호석의 말에 뒤쪽에 있던 빅토르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실전 경험'이라는 걸 만들기 위해서 혹시 모를 아프리카에 데려온 고려인 특전단의 정예들.
그들의 쓸모가 경비라니 하는 표정이었다.
"좋습니다. 다들 일들 보세요."
"예, 회장님."
각 계열사의 중역들이 나가고, 자리에 남은 호석과 빅토르.
"빅토르."
"예, 회장님."
"아쉽습니까?"
"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아이들이 안전한 것이 어째서 아쉬운 일이겠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이 안전하지 않을 이유는 없스습니다."
자신만만한 태도가 나쁘지 않았다.
그만큼 그가 고려인 특전단에게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세네갈은 운이 좋아 별 문제 없이 끝났지만, 저 내륙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 회장님."
"차분히 때를 기다리세요,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기도 좋은 법이니까."
"예."
빅토르가 한 걸음 물러나고, 호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경비 인원은 어떻게 필요 할 것 같습니까?"
"총원 800명 규모의 인력이 필요하고, 1급 대원 80여명이 투입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2,3급 대원들이면 되겠습니까?"
"치안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뭣보다 지근거리인 아이티에 우리 PMC의 훈련소가 있는 만큼, 최대한 빠른 지원이 가능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공중 격추 가능성은 배제해도 좋겠습니까?"
호석이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세네갈이 그런 기술력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대서양에 배치될 우리군을 생각한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음, 그렇겠군요."
"예, 회장님. 유사시에는 국군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을테니 아이티보다 면적은 작지만, 경비 인원 수는 더 적습니다."
"아이티에도 이제 인원 빼고 있지 않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이, 훈련소 인원들이 임무차원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아, 이해했습니다."
"예."
테이블 가득 펼쳐진 세계 위성지도.
정확히는 아프리가 북부 쪽에 지익, 빨간색으로 선 하나를 그었다.
그 선은 세네갈부터 시작해 중동을 지나 중국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연장시킬 겁니다."
내 계획을 알고 있던 호석은 덤덤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사상 유례없는 아주 긴, 철도가 되겠군요."
"헌데, 이 길이 완성 될지는 미지수죠."
"예, 곳곳에 장애물이 될 나라들이 눈에 띕니다."
"먼 미래의 목표일 뿐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호석의 믿음직스러운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의 일과는 이걸로 마쳐도 좋을 것 같으니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호석의 품속 위성전화기가 울렸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마냥 평탄하게 흐르는 아프리카에서 시간이 찜찜함을 자아내는지도 몰랐다.
"전화받았습니다."
나지막한 호석의 말.
와락 찌푸려지는 얼굴.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이었다.
이런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도 되는데 말이다.
"회장님."
"예, 주세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위성전화기를 내미는 호석.
-회장님이십니까?
"말씀하세요."
전화를 건 인물은 SKY LINE의 사장이었다.
-현재 소말리아 인근 해협에서 세네갈로 향하던 화물선이 납치 되었습니다.
"납치요?"
-소말리아 해적선의 소행입니다. 본래 화물선은 잘 건드리지 않는 놈들인데...
"하, 이 새끼들이."
해적.
이 단어를 내가 태어나 떠올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과거 어떤 영화에서나, 혹은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 심대한 타격을 준다는 게 참 웃픈 일이었다.
"납치된 선박의 선원들은 모두 SKY의 직원들입니까?"
-예, 회장님. 미얀마인들 다수에 한국...
"아뇨, 인종이 어떻든, 국가가 어떻든. 그들이 내 직원들이면 인원 수만 얘기하세요."
-아, 죄송합니다. SKY 직원들 31명이 탑승했습니다.
많았다.
내가 알기로 화물선의 인원은 보통 15명 내외인 것으로 아는데 어째서 저렇게 많은 인원이 타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엄청 많군요."
-예, 회장님... SKY LINE의 최대크기 선박이라 그렇습니다.
"쯧, 알겠습니다. 해적들과 연락은 됐나요?"
-3시간 안에, 인당 100만달러의 돈을 가져오라는 연락이었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불가능 한데요?"
-예, 이쪽에서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적들 전화는 내쪽으로 돌릴 수 있게 준비하세요."
-...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장님이 죄송 할 일은 아니죠."
전화를 끊고 호석을 바라보았다.
"청와대 연결 해 주세요."
"예, 회장님."
바로 다이얼 몇개를 누르고는 전화를 거는 호석.
연결되었는지 바로 전화를 넘긴다.
-무슨 일이냐.
"SKY LINE의 대형 화물선이 소말리아 인근의 해협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선원 31명이 타고 있고요."
-해적?
"예."
-허허, 해군을 보내주랴?
"구축함 출발만 시켜주시고 언론에 노출좀 시켜주시겠어요?"
-허, 발칵 뒤집어 엎을 셈이더냐?
"실제 작전은 PMC가 진행 할 겁니다."
-오냐, 국민들을 위해서 그 정도 쇼는 해 줘야지.
"감사합니다."
-단 한명의 직원도 피해입게 하지 말거라, 뭣하면 요구조건을 들어 줘.
"예, 명심하겠습니다."
다시 전화를 건네 받은 호석이 날 빤히 바라보았다.
"미화 3100만 달러, 현찰로 준비 해 주세요."
"회장님! 놈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줘서는 안 됩니다. 한번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쉽다고 하신 것은 회장님이 아니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헌데 어째서?"
감히.
감히 SKY를 건드렸다.
분노가 머리를 지나 하늘까지 뻗어나갈 것 같지만, 참아야 했다.
아직은 참아야했다.
우선은 내 선원들의 목숨이 먼저였다. SKY는 가족같은 회사고, 가족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저버리지 않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런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장담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미적지근한 대응으로, 혹은 강경대응으로 해적에게 잡혀간 우리 직원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앞으로 SKY LINE의 배를타고 항해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두렵지 않을까요?"
"으음."
호석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가 말하는 의중을 잘 알고 있기 때문.
물론 나라고 쌩돈 3100만 달러를 그냥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줄 생각도 없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대원들 집결 시키시고요."
"예... 바로 돈을 주실 생각이십니까?"
"준비되는대로 그럴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잔뜩 아쉬운 표정의 호석.
빅토르 역시 아쉬운 표정을 드러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려인 특전단 아이들의 실전경험을 키워줄 생각을 하고 있었을 사람이었다.
해적을 소탕하는 일, 그것은 분명 괜찮은 실전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얼굴에 드러난 아쉬움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두분, 많이 아쉽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똑같은 대답. 딱딱한 대답.
전형적인 군인들의 대답 같았다.
"나는 해적들에게 돈을 줄 겁니다. 그리고 내 소중한 SKY의 직원들과 SKY LINE의 화물선을 되찾아 올 겁니다."
"예, 그렇게 될 겁니다 회장님."
"예."
"그리고 내가 해적들에게 줄 돈 가방에는 GPS가 동봉되어 갈 겁니다."
호석이 눈을 부릅떴다.
이어서 빅토르도 마찬가지.
"안전하게 선원들과 화물선을 되찾아오면, 그때부터 두분이 아주 바쁘게 움직여야 할테니, 준비하세요."
호석과 빅토르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그들의 존재가치가 증명 될 일이 생길테니까.
< 제 36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