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66화. >
하겠다고 얘기하고는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레오폴드 대통령. 그 웃음에는 선의만 가득 걸려있었다.
"오, 의외인데요?"
"부디, 우리 세네갈에도 아이티 처럼, 웃음꽃이 피길 바랍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될 겁니다."
"예, 내기는 제가 졌으면 좋겠군요."
"그것도 그렇게 될 거고요."
"하하, 예 그러길 바랍니다."
무한 긍정.
지금 세네갈 대통령은 내게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 뿐만 아니라 나를 처음만는 사람임에도, 그의 몸에서는 초록색 아우라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에 거짓이 없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믿을 수 있다는 뜻.
끼이익.
차량이 멈추고 PMC의 대원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오."
프랑스 양식의 제법 멋들어진 건물이 나를 반겼다.
"미스터 천, 불편하시겠지만 사업 설명회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프레젠테이션은 또 자신있죠."
"허허, 그럼 됐군요."
아마 저 건물 안에는 세네갈에서 제법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정치인들이나 행정관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 앞에서 SKY가 세네갈에서 어떤 사업을 진행 할 것인지를 보여줘야 할 테고.
그렇지 않으면 자칫, 아이티처럼 독립의 역사가 짧은 세네갈이 다시 식민지배를 당한다는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있다면 프랑스와 대한민국의 관계를 의식해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걸 알겠지만, 이들에게는 다른가보다. 어쩌면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이미 프랑스를 넘어 섰거나 같은 선상의 국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어느새 대한민국의 저력이 상승한 것 같아 뿌듯함이 올라온다.
대한민국 국력 상승 최전방에 SKY가 서 있고, 그리고 SKY의 가장 높은곳에 내가 서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시죠."
레오폴드 대통령이 앞장서고 그 뒤를 내가 따라갔다. 마치 대통령이 날 안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제법 너른 강당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꼭 약소국이 강대국을 접대하는 것 처럼 비춰질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그리고 나도.
이런 대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테니까.
앞으로는 어느 나라를 가도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내 목표로 가는 중간 단계일테다.
톡톡.
단상위에 있던 마이크를 건드려보았다.
저쪽 어디선가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마이크 아래부분에 붉은색 불이 들어온게 보였다.
"반갑습니다. SKY그룹의 천우진 회장입니다."
불어를 싫어 한다니 굳이 영어를 사용했다.
알아 듣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다.
짝짝짝.
레오폴드 대통령이 힘차게 박수를 치니, 다른 인물들도 못이기는 척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 자리를 위해서 준비한 자료들은 아니지만, SKY에너지와 SKY건설, SKY화학의 복합적인 사업계획을 위해 만들어진 자료가 있었다.
호석이 눈치껏 움직이는 걸 확인하고는 마이크에 물었다.
"준비 됐나요?"
한국말로 한 질문에 호석이 저쪽 멀리서 크게 준비 되었단 사인을 보낸다.
"자, 그럼 이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준비 한 만큼,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멀리서 쏘아진 빛이 내 등 뒤에 있는 스크린에 투사되어 하나의 사진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보여줬던 그 사막의 사진이었다.
"우리 SKY는 황량하기로 소문난 타클라마칸 사막, 그리고 고비 사막에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화면 보시죠."
뒤쪽 스크린에 알아서 처음의 황무지였던 사막이 타임랩스화면처럼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중장비가 들어서고, 땅을 다지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지는 태양광 패널.
화면이 줌인 되며 태양괄 패널이 다각도로 화면에 비춰진다. 마치, 휴대폰 광고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스펙들이 나열되기 시작하는 화면.
호석이 눈치껏 빠르게 화면을 스킵하고 다시 나타난 황량한 사막의 항공 화면, 어느새 제법 구색을 갖춘 태양광 발전시설이 건설되어 있었다.
다시 카메라가 줌인 되며 태양광 패널과 패널 사이 좁은 틈안으로 들어간다. 황량한 황토색 모래위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꿈틀거리며 머리를 드러내는 새싹.
새싹은 어느새 자라 줄기를 가진 식물이 되고, 다시 줌 아웃이 되며 태양광 패널 사이르 빠져나간 카메라는 항공 화면을 보여준다.
"아아."
"오!"
"허허!"
다양한 반응들을 보이는 사람들.
황량하던 사막에 새싹이 돋고, 어느새 초원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런 태양광 발전시설 주변으로 뛰어다니는 말과 낙타.
"이야!"
"사막의 기적이군."
쓸모 없는 땅이 쓸모가 있어지는 순간이었다.
카메라가 다시 줌인을 한다.
태양광 패널을 들어올려 기둥에 고정하는 작업자들, 이어서 전기선을 꺼내고 복잡한 작업을 시작하는 사람들. 다시 줌 아웃 된 화면에는 까마득하게 많은 작업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아아! 일거리!"
"벌어들일 외화가 제법이겠군."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다 생각 했다.
바쁘게 스쳐가는 화면 앞으로 나는 한걸음 내딛어 입을 열었다.
"SKY는, 쓸모 없는 땅에 생명을 불어 넣고, 세네갈의 실업자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장담합니다. 우리 SKY는 이곳에서 대규모 농장과 대규모 친환경 에너지 발전시설 건설 사업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레오폴드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짝짝짝.
그의 지지자, 혹은 그와 같은 길을 걷는 관료들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수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앉아있는 이들과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 역시 보였다.
이곳도 여느나라와 다름 없이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아닌 제 살길만 모색하는 모양이다.
선진국도 그럴진데, 후진국이야 뭐, 말 할 필요도 없겠지.
"세네갈의 적합한 부지를 먼저 모색해야겠으나, SKY가 세네갈에 투자할 금액은 최소 미화 10억달러,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부지를 먼저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웅성웅성.
내 입에서 금액이 나오니 장내가 술렁였다.
"어, 얼마라고? 10억달러?"
"U.S 10억 달러라고? 그게 도대체 얼마야?"
"맙소사! SKY가 공룡은 공룡이군!"
"글로벌 기업이라더니... 미쳤군."
엉덩이 무겁게 자리를 지키던 정치인들의 얼굴에 욕심이 스쳐지나간다. 10억 달러라는 달달한 미끼에 마음이 동한 모양.
"그로인해 불러올 경제효과는 공사 착수 후, 1년은 15억 달러, 5년은 40억 달러에 육박합니다. 10년이 됐을 땐, 100억 달러 이상의 경제효과를 불러왔으리라 장담합니다."
돈은 가만히 있다면 그 가치를 다 한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돈은 움직여야했다. 살아 숨쉬어야 했다. 그래야만 진정한 돈이라는 물질의 가치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돈은 참 신기한 놈이라서 움직일수록, 살아 숨쉴수록 제 친구놈들을 불러온다.
돈이 일을 해야 돈을 번다는 뜻이다.
단순 10억의 투자비용은 세네갈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줄 것이고, 월급을 얻어낸 세네갈 사람들이 소비를 할 것이고, 그 소비는 또 다른 생산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 생산을 위해서는 또 다른 일자리가 필요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가속도를 붙여 나가며 움직일 것이다. 단순히 1년 15억달러, 5년 40억달러라고 했지만 정말 10년뒤에는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최소 100억달러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전제가 하나 있었다.
"당신들이 일을 제대로 한다면, 100억달러가 아니라 그 이상도 무리가 아닐겁니다."
행정관료들이.
정치인들이.
똑바로 일 해야 했다. 그래야만 돈이 제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엉덩이 무겁던 몇몇 정치인들과 행정관료들이 벌떡 일어나 내게 손가락질 하며 프랑스어로 욕을 해댄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뭐라 욕하는 지 알 수 없으나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저런 놈들이 꼭 문제가 있었다.
어느새 단상 바로 앞에 다가온 호석이 무섭게 그들을 노려본다.
멀리서 손가락질 하며 욕설이나 내뱉지 차마 내 근처로 접근하는 인물들은 없었다. 레오폴드 대통령이 인상을 찌푸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를 향한 질타의 얼굴이 아니라, 제 나라의 고위관료들이 하는 행태가 몹시 창피한 모양이다.
"뭐라고 떠드는 거죠? 저 사람들. 누가 통역좀 해주시겠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PMC소속의 통역가가 내게 저들의 말을 통역해준다.
대충 설명하자면, '망발이다.', '함부로 지껄인다.'와 같은 맥락의 얘기들이었다. 욕과 안부는 덤이고.
픽 웃으며 한 명을 지목해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무스타파 나세다."
가장 크게 언성을 높혔던 노 정치인의 이름을 들은 난 호석을 바라보았다.
단상위로 올라온 호석이 서류를 전달한다.
아프리카에 SKY가 첫 발을 내딛기로 세네갈을 선택했다. 나는 아이티에서 7일간의 휴가를 보냈지만 PMC정보부는 그 사이 세네갈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했다. 내가 보고 있는 서류가 그것이었다.
"보자, 무스타파, 무스타파. 아 여기있네."
서류를 들어 펄럭여 보이며 그 정치인에게 얘기했다.
"이 서류에 당신의 일생이 적혀있지, 어렸을때부터 현재까지. 어렸을때는 대충 스킵하고, 당신이 고위공직자가 된 순간부터 확인 해 볼까?"
내말에 비웃는 표정을 짓는 무스타파.
슥 서류를 훑는데,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뭐 뇌물 수수는 기본이고 이건 뭐 범죄까지, 대단한 사람이시네. 강간, 성희롱이 기본에 박쥐처럼 여기저기 달라붙기까지, 도대체 무스타파 당신은 어떻게 그 자리를 유지하는 거지?"
"모, 모함이야!"
픽 웃으며 단상을 내려가 레오폴드 대통령에게 내가 보고 있던 서류를 건넸다.
레오폴드 대통령이 천천히 서류를 확인하더니 씁쓸하게 웃는다.
"알긴 했지만, 이렇게 서류로 확인하니 참."
착잡한 심경이 느껴지는 멘트였다.
세네갈이 어떤곳인지.
현재 세네갈의 대통령 레오폴드가 얼마나 국민들을 위해 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 같이 더러워도 조금이나마 깨끗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세네갈의 정부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난 내 이득을 취하면 될 일이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이 서류를 레오폴드 대통령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내게 이득이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했을 뿐.
"미스터 천."
"예, 대통령님."
"이 서류들은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SKY가 어떤일을 하던 그 누구도 방해 할 수 없게."
목적을 이루었다.
난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역시 내기는 내가 이긴 것 같네요."
씁쓸하게 웃는 레오폴드.
"그런 것 같습니다."
"서류만으로 충분하겠습니까?"
"레임덕을 겪고 있어도 대통령은 대통령입니다."
세네갈에서 대통령이 가진 힘이 어느정도인지를 얼추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민간인 사찰, 불법 사찰.
우리나라였으면 그런 소리가 나왔을 서류였지만 세네갈에서는 아닌 모양이다.
"이 서류와 실제 계좌를 조사해보면 될 일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필요하시다면 쓰십시오."
"감사합니다. 미스터 천, 당신은 세네갈의 영웅이 될 것입니다."
"그런 허례허식은 필요 없습니다. 그나저나 내기에 이겼으니 보상을 가져가야겠죠?"
< 제 36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