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64화 (364/458)

< 제 364화. >

할아버지와 함께 돌아온 집.

오랜만에 할아버지도 집을 방문해서인지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품 안에 한아름 안고있는 저 장난감들을 보라.

"어머~! 젠틀 천!"

어느새 유창한 한국어를 하고 있는 루시의 반김에 할아버지가 헤벌쭉 입꼬리를 들어 올리신다.

"우리 손주녀석들 장난감 좀 사 봤다."

"어머어머, 이런거 아직 못쓸텐데."

"허허, 더 크면 쓰면 되지 않으냐?"

픽 웃으면서 할아버지의 팔장을 끼는 루시.

셋째 아이를 출산하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녀는 완벽하게 회복 된 상태였다.

"증손주라니까 자꾸 손주라고 하시네, 그럼 제가 할아버지 아들이에요?"

어느새 나타난 우희가 내 엉덩이를 걷어 찼다.

"오빠, 쉿."

할아버지와 루시, 그리고 우희의 따가운 눈총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내 새끼들이나 보기 위해 유모들이 보고 있을 아이들의 방에 들어갔다.

"와우."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이제 걷다 못해 뛰어다니는 태양이와 별이 때문에 유모들이 정신이 없어 보인다.

루나는 오빠와 언니가 하고 있는 장난이 뭐가 그리 웃긴지 꺄르륵, 꺄르륵 거리면서 웃고 있다.

"하하."

쿵.

다시 방문을 닫았다.

저 곳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내가 뭔갈 하지 않아도 알아서 집은 잘 돌아가고 있으니 안심이었다. 또 장기 출장을 가야하나 고려하고 있었으니까.

방에서 나와 거실쪽으로 가니 주방쪽이 분주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슬쩍 보니 어느새 식탁에는 아산댁 아주머니의 화려한 음식솜씨를 볼 수 있는 음식들이 가득가득 들어 차 있었다.

"식사하세요~"

같이 상을 차리던 우희의 외침에 소파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식탁으로 향하신다.

다 같이 둘러 앉은 식탁 위.

"내일부터 프랑스에 들렸다가 아이티에서 아프리카로 갈 겁니다."

사전에 먼저 할아버지에게는 통보를 했으니 할아버지는 별 말없이 젓가락을 움직이신다.

"프랑스? 아이티? 아프리카?"

루시가 금시 초문이라는 듯 날 바라본다.

"응, 일을 좀 봐야 돼."

"아이티는 어때요 젠틀 천?"

할아버지가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이제는 반 한국이나 마찬가지지. 한국령이 되었으니까 당연한 얘기인가?"

"그래요? 피해복구는 완벽하게 되었나요?"

"지진피해 복구는 진즉에 끝났고, 이제는 내진설계가 완벽하게 된 집들에 하나 둘 사람들이 입주하고 있지, 정확하게 대한민국에서 이주해온 사람 반, 아이티인 반. 공평하게 말이야."

아이티는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집이었다.

그래서 SKY건설은 아주 특이한 구조의 집을 지었다. 단층 집이지만 계단을 올라서 현관을 열어야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집을 지탱하는 기둥들이 빼곡한 바닥이 등장한다. 그 기둥들에는 강도 7의 지진도 버틸 것으로 예상되는 설계가 들어가 있었다.

SKY의 내진 설계는 지난번 아이티의 지진을 경험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요즘에는 일본에서도 자주 외주를 받아 설계를 하고 있으니 세계적으로도 그 명성을 알리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슥, 날 돌아본 루시.

"우진."

"응, 왜?"

"우리가 지내던 곳 아직 그대로 있겠네?"

"그럼, 거긴 우리 소유의 별장이니까."

"나도 아이티로 갈까?"

"가고 싶어?"

"응, 우리가 다른 집 처럼 의료시설을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니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SKY PMC의 메인 의료팀이 우리와 함께한다. 내가 가는 어떤 곳이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루시는 아이티라는 낙후된 시설이 존재하는 도시에서도 걱정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 편안하게 카리브해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차피 여기나 거기나 덥기는 매 한가지일테니까."

"이제 곧 추워지지 않을까? 벌써 여름이 지나고 있잖아."

"그래, 가자. 그런데 나는 자주 바깥에 있을거야, 아프리카로 가면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고."

"응, 괜찮아. 이제 익숙해졌어."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

처음엔 붙잡고, 엉겨붙던 루시지만 정말 익숙해졌다는 저 말처럼 이제는 장기 출장을 가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을 외로움을 어쩌면 우리의 아이들이 매꿔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몇년만 더 고생하면 돼 루시."

"글쎄,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좋은 아빠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 명심할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나는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팔자인 모양이다.

***

전용기가 아닌 SKY AIR의 점보 여객기의 퍼스트 클래스 좌석에 오른 나와 호석.

아쉽게도 전용기는 루시와 우희, 그리고 내 새끼들에게 양보를 해야 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하는 여행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티에 도착한 나의 전용기는, 아이티에서 내 가족을 내려주고 바로 프랑스로 날아올테다.

그 전에, 나는 프랑스에서 만나야 할 인물이 있었다.

"피곤하네요."

"하하, 비행이 불편하셨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내 한 마디면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했던 SKY AIR의 승무원들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니까.

"원래 이동시간이 긴 건 참 불편하니까요."

"여객기라서 더 오래걸렸습니다. 회장님."

"그럴 수 있죠."

"약속은 됐겠죠?"

"물론입니다. 거절 할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전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강한 인물 5위 안에 내가 랭크되었다.

그러니 굳이 나의 만남 요청을 거절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또, 내가 만날 사람은 프랑스의 대통령.

정치와 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갈까요?"

"예, 회장님."

프랑스 역시 국토 면적이 그리 큰 나라가 아니다 보니, 공항에서 출발한 우리는 금방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딱 봐도 제법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 안.

"무슈 천, 처음 뵙습니다."

"무슈 사르코지, 처음뵙습니다."

"앉으시죠."

유창한 영어에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보여주고는 자리에 앉았다.

코스 요리가 유명한 프랑스 답게, 입을 즐겁게 만드는 코스 요리들이 속속 등장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고, 디저트와 가벼운 와인을 즐기며 드디어 본격적인 대화가 오갔다.

"무슈 천, 굳이 바쁜 시간을 뺀 것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이유를 들어볼까요?"

"그러죠, 피차 바쁘니 본론만 얘기하겠습니다."

"예,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프랑스의 영향력이 짙은 아프리카 국가에 SKY가 진출해볼까 합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르코지.

"자세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단순한 무역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SKY는 몇몇 아프리카 국가에 대규모 단지의 에너지 발전시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흐음, 환경적인 문제가 있어서 굳이 타 국을 선택한 겁니까?"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친환경적인 발전시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흐음, 그게 전부입니까?"

"중앙 아프리카 일부에 대규모 농장지대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하, 그것 때문에 절 찾아오셨군요."

"겸사겸사라고 해두죠."

"중앙아프리카는 지금도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프리카 국가들이 치안적으로 좋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우리 SKY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었다.

먼저 굳이 프랑스에 얘기하는 이유.

SKY가 아프리카 어느곳에 진입하던지, 나는 그 영향력이 프랑스를 넘어설 것이라는 가능성까지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가능성이 아니라 팩트라고 하고 싶다.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에 SKY라는 거대 자본이 투입되면 당연히 영향력이 커다랗게 변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안정되지 않은 정권을 가진 나라, 치안력이 부족한 나라라면 더욱 더 SKY의 영향력이 커다랗게 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부분에서의 견제.

게다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랑스. SKY의 영향력이 증가함에 따라 프랑스가 견제를 해 올 것으로 예상하기에, 먼저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부탁을 가장하여.

"SKY가 중앙 아프리카까지 진출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초원과 사막이 걸쳐 있는 북서부 아프리카부터 먼저 진입을 하지 않을까 싶군요. 중앙 아프리카는 차후의 문제입니다."

"지형특성상 발전시설에 부적합하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흠, 해서 필요하신 것은?"

"지원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가 우리에게 적대감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아하."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다 슬쩍 날 바라본다.

"대가로 생각한 게 있습니까?"

난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러시아의 에너지 제재에서 SKY가 한번, 유럽의 어느국가보다 프랑스를 먼저 도와드리겠습니다."

눈썹을 찌푸리는 사르코지 대통령.

"글쎄요, 별로 와 닿는 대가라고 보이지 않는군요."

나와 사르코지 대통령의 옆 자리에 앉아있는 호석을 슬쩍 바라보았다.

스푼을 내려놓은 호석이 얼른 서류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넨다.

그것은 SKY의 위성이 촬영한 위성사진이었다.

"뭐죠 이게? 하나는 사막이고, 하나는 초원이군요."

"사막의 그림은 사막위에 세운 SKY 에너지의 태양광 발전시설입니다. 초원의 그림은 사막에 세운 태양광 발전시설의 1년 뒤 모습이죠."

다시 사진을 바라보는 사르코지.

"음, 확실히 같아 보이는 군요."

"그리고 그 사막은 타클라마칸 사막입니다."

"타클라마칸... 타클라마칸?"

놀란 얼굴이 된 그.

타클라마칸 사막.

하등 쓸모 없는 땅이라고 이름 붙은 그곳, 고비사막과 더불어 유럽에서도 제법 명망이 두텁다. 옛 실크로드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

"맙소사, 그 황무지를 이렇게? 도대체 타클라마칸 사막에 어떻게 초원이 형성된겁니까?"

"전기를 팔아 물을 샀습니다."

"물? 사막에 물을 뿌렸다는 얘깁니까?"

"예, 태양광에 대한 안 좋은 인식들이 많죠, 미관을 해친다 자연을 해친다는 낭설들. 나는 그런 낭설들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세계적인 글로벌 SKY가 하는 일이니까요."

"허."

놀란 얼굴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르코지.

놀란 그에게 몇 장의 서류를 더 건넸다.

좀 전과는 다르게 빠르게 서류를 낚아채 정독하는 그. 영어로 만들어도 되지만, 그를 위해 굳이 불어로 만들어오는 서비스를 진행했다.

"허, 태양광 발전시설이 이 정도 전기를 생산한다는 얘깁니까?"

"계속해서 기술은 진보되고 있습니다. SKY에너지는 전 세계 그 어떤 태양광 패널보다 배터리 저축 기술보다 한 단계, 두 단계 진보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죠."

"그래 보입니다... 태양광 발전시설에 관심이 갈 만큼."

그의 눈이 욕심으로 빛났다.

유럽은 언제나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항상 에너지로 유럽연합에게 강짜를 부릴 수 있는 이유. 그것 역시 '에너지'에 있었다.

혀를 날름거리는 사르코지.

"향후 5년 안에 보급할 계획은 없습니다. 아직 SKY의 기술은 완성되지 않았으니까요."

"5년 뒤에, 프랑스가 우선협상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까?"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SKY는 기업이죠."

사르코지가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돈이군요."

"그럼, 아프리카 진출은?"

"어느곳이든 편안하게 오십시오, 에너지 발전기술 진보에 아주 중요한 일일테니까."

< 제 364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