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62화 (362/458)

< 제 362화. >

처음 이곳 레스토랑에 나와 장인어른이 들어왔을 때. 그때도 부쉬와 국무부장관 파월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자리를 파 할 시간.

그들은 레스토랑 입구에서 우리가 가는 걸 지켜보겠다는 듯 차량에 오르지 않고 기다린다.

"오늘도 참 즐거웠습니다. 미스터 록펠러, 미스터 천."

부쉬의 인사에 마주 악수를 하고는 그의 팔뚝을 툭툭 두들겼다. 미국식 인사이니 예의범절에 어긋난 행동은 아니었다.

"하하, 미스터 천의 기운이 이리 넘치니, 내 노후는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다?"

2년이 지나고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섰을 때를 벌써부터 논하는 것이었다. 눈치도 빠르고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대통령급 인사가 내 영향권 안에서 뭔가를 해준다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서 SKY의 사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얘기니까.

이빨 빠진 호랑이도 호랑이다.

감히 토끼 따위는 얼씬 거릴 수 없을 것이다.

"못해도 80년은 거뜬하지 않겠습니까?"

내 농담에 파월과 부쉬가 크게 웃는다.

장인어른도 피식 웃으며 내 손을 놓은 부쉬의 손을 맞잡는다.

"좋은 소식 있을 겁니다. 미스터 록펠러. 내가 그대의 뒤에서 좋은 입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예, 얼른 들어가십시오, 손자, 손녀들이 기다리겠습니다."

장인어른이 웃으며 손을 놓자 부쉬가 손을 들어올리더니 어디론가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정장을 입은 백인 사내가 내게 인형을 세개 건넨다.

"한정판입니다. 돈이 있다면야 구하기는 쉽겠지만, 아이들에게 무해한 소재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오, 그렇습니까?"

"애착인형으로 훌륭할겁니다."

"마음 담은 선물이네요, 감사합니다."

"들어가십시오."

"대통령님도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힐끗 파월 국무부장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직원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너무 많이 훔쳐갈까 두렵습니다."

"에이~ 설마요."

"뭐 앞으로 80년은 거뜬하시다고 하니,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픽 웃으며 차량에 올랐다.

이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 할 수 있었다.

"읏차."

장인어른이 중년 사내 특유의 소리와 함께 특수제작된 캐딜락 차량에 오르셨다.

쿠션이 조금 딱딱한 느낌이 들어서 승차감이 좋다 할 순 없지만, 어마어마한 공차중량을 가진 전방위 방탄 차량이었다.

차량 유리도 소총의 철갑탄도 방어 할 정도로 방탄력이 아주 뛰어난 놈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면, 여기서. 그러니까 차량내부에서 우리가 크게 소리를 질러도 바깥에서는 들리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고생했네, 사위. 이빨빠진 호랑이가 자네에게 아양이 심하더군. 비위 맞춰주느라 고생했어."

"아닙니다. 장인어른도 억지로 웃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나야 이제 이게 직업이 아닌가?"

"하하, 즐기시는 것 같으니 다행이네요. 저 때문에 너무 억지로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오늘 같은 일이라면 난 충분히 즐겼어."

차량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등받이는 몰라도 그래도 목받이는 제법 푹신한게 피로가 몰려왔다.

"대한민국 국방력 상승에 무척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구나."

"일본과 대한민국의 영토분쟁에 관련해서 알고 계십니까?"

"독도 문제를 말하는 가?"

"그 이전에는 대마도도 그랬었죠."

"그렇군."

그 얘기가 왜 나오냐는 듯 날 바라보는 장인어른.

"영토분쟁이 전쟁으로 넘어갈까 준비를 하는 건가?"

"아니요, 일본은 바보가 아닙니다. 제 놈들이 현 국방력으로 우리를 이긴다고 해도 전쟁을 걸어오진 못합니다. 가소로운 도발 짓이나 하는 거죠."

"그렇다면 그 얘기는 왜 꺼냈나?"

"일본과 러시아도 영토분쟁이 있었다는 걸 아십니까?"

"아아, 쿠릴 열도였나? 오오츠크해와 태평양에 걸쳐있는 섬이었지?"

역시 장인어른도 국제정세에 관심이 많은지 잘 알고 계셨다. 아니, 어쩌면 관심없는 사람도 알 수 있을만큼 유명한 일인지도 몰랐다.

"일본은 계속해서 쿠릴 열도를 반환하라며 난리를 쳤죠, 러시아가 마치 무단 점거 한 것 처럼."

"그렇군."

"러시아 뿐만 아니라 일본은 제 놈들과 인접한 국가에는 때마다 영토 분쟁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내륙 진출의 야욕을 버리지 못한 것이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분쟁에 대하여 러시아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아, 전투기였던가? 일본의 상공을 날았다지?"

"예, 처음엔 훗카이도와 도쿄 주변까지를 날았다가 선회했고, 그 다음에는 공증급유 퍼포먼스까지 선 보이며, 일본의 모든 상공을 휘젓고 다녔죠."

"그 후에 일본 놈들은 입을 닫았겠구만."

"맞습니다."

픽 웃는 장인어른.

"자네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네."

"예, 국방력이란 그런 것입니다. 감히 짖어대는 개새끼들을 짖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죠, 물지도 못할 거면 짖지를 말아야 할 버릇없는 개들을 말이죠."

"그렇군, 여차하면 찢어발길 만큼."

"예. 그때 러시아가 참 부러웠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아직도 얘기하죠, 물론. 몇 해전 전 총리 고키부리가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완벽하게 인정했습니다만, 오히려 그런 고키부리가 총리 자리에서 강제로 밀려났죠."

"놈들은 어떻게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고 싶겠지, 그래야만 놈들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그런 것들이 힘을 받으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던, 그런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한반도가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방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위로는 공산당의 거두 러시아가 있고, 아래로는 비열한 일본이 있으니까요."

"국방령이 높아서 나쁠 것은 없지."

"종국에는 미국도 뛰어넘을 겁니다."

장인어른이 마치 진심이냐는 듯 날 바라본다.

"장인어른께서 애국자이시듯, 저 역시 애국자입니다."

흐뭇하게 웃는 장인어른.

"그렇지, 사내라면 무릇 조국을 위할 줄 알아야지."

"그렇죠."

"하지만 미국을 뛰어 넘는다니, 그건 시기상조야."

굳이 장인어른과 대척점에 설 필요는 없었다.

난 눈을 찡긋 거리며 답했다.

"하하, 아까 말씀드렸죠? 적어도 80년은 거뜬하다고."

"흠, 80년이라... 제법 그럴 듯 하고만."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세세한 기술, 정교한 정보가 내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의 중요한 기술들, 첨단산업들에 대한 기본 정보는 머릿속에 선명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대단히 성공할 기업들 큰 특허를 가지게 될 기업들을 미리 선점한다면, 80년이 아니라 8년 뒤에도 미국을 이길 수 있을테다.

"내기 하시겠습니까?"

"무슨 내기?"

"대한민국이 미국을 이기는지, 못 이기는지요."

"호오, 자신만만 하군. 대한민국의 선봉장은 자네인가?"

"예, SKY가 선봉입니다."

"그럼 아쉽게도 미국은 내가 수성을 하도록 하지."

"예, 대통령이 되실 장인어른이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으시죠. 10년."

내가 말한 시간은 장인어른이 대통령 임기를 모두 끝냈을 시기였다. 물론 돌아올 대선과 그 다음 대선에서 모두 승리했을 때를 가정해서다.

"하, 겨우 10년이면 충분하다?"

"내기, 하시겠습니까?"

장인어른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답했다.

"좋아, 보상은?"

"소원 들어주기로 하실까요?"

"하하, 감당할 수 없는 소원일지 모르니, 부지런하게 벌어두시게."

"장인어른이야 말로 대통령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드실지 모릅니다?"

"그럼 뭐, 아빠찬스라도 쓰겠네."

"하하하하.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루시가 하는 말을 훔쳐 들었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나와 장인어른은 기다리는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

3개월 뒤.

SKY항공우주기술이 바쁘게 미 국방성과 국무부 휘하의 산하 연구소로 출근도장을 찍느라 바쁠 때.

나는 두만강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올라 서 있었다.

"DMZ 지뢰 제거 작업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회장님. 오래되어 차고로 밀려냈던 전차들을 동원해서 빠르게 제거하고 있습니다."

"아, 일일히 사람 손으로 제거 할 필요 없이 그냥 터뜨리겠다?"

"사실 유실된 지뢰의 대부분은 불발탄입니다."

"위험요소만 먼저 제거해도 나머지는 편하다?"

"예, 사람 목숨이 제일 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어쩐일로 대한민국 국방부가 옳게 움직이고 있네요."

"하하, 백부님이 힘을 쓰셔서죠."

호석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때.

전망대 아래가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라니, 마이바흐 한대가 떡 하니 멈춰선다.

그곳에서 내리는 인물은 김은정.

돈이 없어 인민들을 굶겨 죽였던 북한의 수장이 특수제작된 마이바흐를 타고 다닌다니 아이러니다.

"쯧쯧."

차량에서 내렸던 김은정이 슥 위를 올려다 보았다가 다기 걸음을 옮기며 전망대 건물 안으로 자취를 감추고, 그 사이 또 다른 고급 세단 하나가 전망대 앞에 멈춰서며 소란을 일으킨다.

"오, SKY LORD네요?"

내 말에 호석이 픽 웃는다.

"후진다오 주석이 광신도잖습니까?"

"SKY LORD는 특수제작을 하지 않는데 주석이 저런거 타고 다녀도 되나 모르겠네요."

"따로 SKY 항공우주기술에서 방탄 시공을 했습니다. 중국의 무력부에서도 따로 시공을 했을겁니다."

"그렇군요. 더 고급 라인 개발을 서두르라고 자동차에 얘기해야겠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디자인이 아주 유려하네요."

"예, 회장님 다음 월례 회의때 잊지 않도록 전달 해 놓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돌았다.

이때쯤 전망대에 도착할 김은정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은정이 빠른 걸음으로 전망대의 문을 열고 내게 다가왔다.

깊이 허리를 숙이지 않았으나, 바깥에서는 단 한번도 숙이지 않았을 그 빳빳한 허리가 내 앞에서 꾸벅 숙여진다.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아입네다. 바로 앞이 아입네까?"

"그럼 다행이고요."

한반도에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아랫쪽은 더웠었는데 이곳에 오니 그리 덥지가 않았다. 잘만 개발하면 여름철 피서지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남쪽에는 후덥지근한 열기가 불어 닥쳤는데, 이곳은 아직 괜찮군요."

"기래도 위쪽이라고 선선합네다."

고개를 끄덕이며 김은정의 어깨를 두어번 두들겨 주고는 다시 전망대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철조망을 걷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민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김은정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삼시세끼, 쌀밥만 먹어도 감지덕지 합네다. 요즘 살 맛 난다는 소리가 이 귀에도 들립네다."

"좋아졌다는 얘기네요."

"그렇습네다. SKY가 하는 사업에는 참이 하루에 12번이 나온다지요?"

"4교대라서 삼시세끼 챙겨주고, 2번 간식주고. 8시간 기준이니까 24시간이면 그렇게 되네요, 중간에 중복되는 시간이 있으니까."

"기렇습네까? 고저... 그."

김은정이 말을 망설이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으로 나오는 것 중에, 달달한 밀가루과자가 있습네까?"

"밀가루 과자?"

슥 뒤를 돌아보는 김은정.

처음보는 얼굴이지만 김은정의 뒤를 따라온 어여쁜 여인이 말했다.

"남조선에서는 초코소라빵이라고 부릅네다."

"겉에부터 시커먼 것은 뭐라 부르네?"

"그것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초코파이라 부르고, 또 하나는 몽쉘이라고 합네다. 아, 작은 것도 있는데 그것은 작은파이가 아니고 빅파이라 부릅네다."

슥 내게 다시 시선을 돌린 김은정.

툭 튀어나온 뱃살이 민망한지, 배를 슥 쓰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맛이 참 좋더라고... 그럽네다."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주석궁으로 보내드리리다."

"커험, 감사합네다."

"너무 많이 먹으면 이에도 안 좋고, 속에도 안 좋고, 혈당에도 안 좋으니 운동 하면서 드세요."

나를 위 아래로 살펴본 김은정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천우진 회장동무를 보니, 그래야겠습네다. 이거이거, 동년배인데 내 몸둥이는 영..."

"한 두개 먹고 운동하면 효율이 좋아 질 겁니다. 힘 내기에 단 것, 탄수화물 만큼 좋은게 없으니까."

"참고하갔시요."

사담을 나누는 사이, 드디어 후진다오가 위로 올라왔다. 김은정과는 다르게 그는 빠른 걸음을 옮겨 내 앞에 다가왔다.

스윽.

흰색 정통의상을 입은 그가 서서히 무릎을 꿇으려는 듯 아래로 내려갔다.

"하하, 됐습니다."

억지로 그의 양 어깨를 잡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절을 하지 못한게 아쉽다는 듯 포권을 취하며 한국말로 말하는 후진다오.

"주군을 뵙습니다."

그의 말에 김은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쯧, 앞으로 인사는 포권만 하세요."

"예, 주군."

"다른 사람이 있을때는 호칭도 주의 하시고."

"천자의 말씀 뼈에 새기겠습니다."

툭툭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주석의 자리에 오른지도 한참인데 아직도 깡마른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슥 호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에다가도 잔뜩 보내세요, 이건 뭐 피죽도 못얻어 먹은 꼴이니."

"예, 회장님."

다시 둘을 한번씩 번갈아 쳐다보고, 입에 시가를 물며 말했다.

"이제 SKY가 여기, 유라시아 횡단철도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4년 안에 완공, 가능하겠습니까?"

김은정과 후진다오가 안광을 번뜩이며 답했다.

"무조건 가능합네다!"

"천자의 명을 받듭니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앞으로 4년.

4년 안에 대한민국은 써도써도 마르지 않는 외화를 얻게 될 것이었다. 유라시아 횡단철도는 그마만큼 파급력이 어마어마한 사업이었으니까.

과거 실크로드를 훨씬 상회하는 파괴력을 드러낼 것이다. 증기기관을 넘어선 인간의 이동수단은 어마어마 하니까.

"자, 그럼 세세한 내용을 협의 해 봅시다."

"예, 주군."

"알갔습네다."

< 제 36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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