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61화 (361/458)

< 제 361화. >

처음 내가 데비 할아버지와 함께 부쉬를 만났던 그 식당의 프라이빗 룸.

나와 장인어른이 입장을 하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는지 부쉬와 파월 국무부장관이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오, 미스터 천. 오랜만입니다.”

부쉬가 반갑게 내게 인사해왔다.

“주지사 록펠러, 오랜만이에요.”

장인어른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물론 국무부장관과도 짧게 포옹을 나누며 반가움을 나눴다.

부쉬가 샴페인 잔을 작은 티스푼으로 통통 두들기고는 집중을 모은 뒤 말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한잔 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파월장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업무적인 내용이겠군요, 서운합니다.”

가벼운 농담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하게 풀렸다. 역시 대통령 자리에 앉은 짬바를 무시 할 수 없었다. 많은 불편한 자리를 다니녀 습득한 것일 터.

“국무부장관께서 일 얘기를 깔끔하게 끝내주시면 제대로 된 술자리를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말에 부쉬가 픽 웃으면서 국무부장관의 어깨춤을 쓰다듬는다.

“파월, 들었는가?”

“예, 대통령님.”

“잘 부탁하네.”

대통령이 알아서 내 말에 힘을 실어준다.

부쉬는 내게 편안하게 얘기 하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장인어른께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편안한 얼굴로 파월 장관을 바라보았다.

“SKY그룹이 무기산업에 조금 집중을 해볼까 합니다.”

국무부장관은 파월은 대번에 좋은 표정이 굳어버렸다. 첨단무기산업은 무조건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커험, 이미 SKY에게 우리 항공기술을 인계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록히드마틴사의 기술과 고잉사의 기술을 흡수하지 않았습니까?”

“구세대 전투기 기술로 생색을 내십니까?”

파월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전투기들은 우리 미군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전투기들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해서 우리 SKY역시 미군의 차세대 전투기를 욕심내진 않았잖습니까?”

“전세계 그 어디도 우리 미군의 차세대 전투기를 탐낼 순 없습니다.”

강하고 확실한 어조.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친다.

부쉬 역시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가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그의 강요와 명령으로도 차세대 전투기 기술을 하나의 기업체에게 알려줄 정도의 능력은 없었다.

민주주의의 대통령 권한은 이정도인 것이다.

“설마하니 내가 차세대 전투기 기술을 바란다고 생각하셨다면 큰 오해라고 얘기하고 싶군요.”

파월이 ‘음? 아니야?’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양심이란게 있습니다. 주면야 당연히 감사합니다 하고 받겠지만 억지로 받아 낼 생각은 없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도, 그리고 파월 장관도, 내게는 친우가 아닙니까? 세상 천지, 친우를 괴롭혀 이득을 뽑아내는 친우도 있습니까? 그건 친우가 아니죠.”

“험험, 그랬습니까? 이거, 내가 미스터 천의 의도를 잘못 파악했군.”

파월이 순순히 사과의 뜻을 내비쳤다.

자신이 너무 강경하게 대응한 것 같다 생각한 모양.

“SKY는 미군에게 더이상 항공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얻고자 합니까?”

“전차 기술과 함선 기술입니다.”

파월이 슬쩍 부쉬를 바라보았다.

부쉬는 말 없이 샴페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전차와 함선 역시, 차세대 기술이 아닌 구시대 기술이겠죠? 그러나 지금 당장 사용 가능한.”

“예, 그렇습니다.”

“한국의 전차기술 역시 뛰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우리 미군의 전차기술을 탐낼 필요가 있습니까?”

“SKY는 기업입니다. 그리고 그 기업에는 연구원들이 있죠, 연구원들은 호기심이 많고, SKY는 직원 복지를 위해 연구원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싶을 뿐입니다. 생산 능률을 올리기 위함이랄까요?”

“흐음, 그렇다면 함선은?”

“이미 미군에게 일정부분 도움을 받아 이지스함을 건조하고 있다는 것은 여기계신 모두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파월.

오랜시간 대한민국은 노력을 기울였고, 조금씩조금씩 대한민국의 이지스 시스템은 완벽을 갖추기 시작하고 있는 단계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대한민국의 최초의 이지스함이 건조된 것은 2007년쯤이었다.

나는 그 시기를 조금 더 앞당기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할아버지이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신 할아버지를 꼬셔서 강제로 SKY항공우주기술 선박팀을 이지시함을 건조중인 조선소에 꽃아버려도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미국의 이지스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가져가 협상할 여지를 두는게 좋았다.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고지식한 분이고, 공명정대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손자놈 된 입장으로 비겁하게 할아버지의 힘을 등에업을 생각은 없었다.

굳이 할아버지에게 우리나라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끔 만든 이유는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SKY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최소한 뿌리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이 내가 하는일을 방해해서는 안 되잖는가.

예로부터 대한민국은 주변을 둘러싼 나라들에게 흔들려야 했다. 정권을 좌파가 잡던, 우파가 잡던. 미국과 중국, 일본에게 너무 휘둘려야 했다는 얘기다.

난 그런 압력들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했고, 그 주인공을 우리 할아버지라 생각했다. 핏줄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 자리에 아쉽게도 SKY는 껴 있지 않습니다.”

“흐음,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파월에게 진짜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니 고개를 주억거리는 파월.

“SKY에서 사람들을 보내 주세요, 견학 정도면 충분하겠죠?”

나는 만족스럽게 웃음지으며 말했다.

“견학 일정은 넉넉하게 한달정도로 해도 되겠습니까?”

파월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감시원들을 철저하게 붙여 놓을테니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견학이 끝난 시간에 견학을 간 직원들에게 자유는 보장 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안쪽에서만 철저한 감시가 진행 될 겁니다.”

“좋습니다.”

장관과 악수를 나누는데 조용히 있던 부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자, 이제 일 얘기는 다 끝난 게 맞습니까?”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장인어른과 나를 바라보는 부쉬. 나는 어깨를 으쓱였고, 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잔을 높이 듭시다!”

“위하여~!”

건배를 하고는 샴페인 한잔을 시작으로 다양한 음식들과 술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술이 거나하게 올라갔을 때 쯤.

나온 음식들은 이미 빈접시가 되었고, 양갈비등은 뼈만 앙상했다. 다들 배를 부여잡고 와인의 향에 취해 있을 때 쯤.

자연스럽게 방 안에는 시가 연기가 자욱했다.

부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스터 록펠러.”

“말씀하세요, 프레지던트.”

“다음 대선··· 나가시겠죠?”

부쉬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눈치로 말했다.

장인어른의 눈에 짧은 고민이 스쳐가는 듯 했으나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프레지던트께서 자리를 양보해준다면 고려해보겠습니다.”

의뭉이었다.

부쉬가 피식 웃었다.

재선에 성공하고 약 2년.

이미 공화당에게 미국의 시민들은 질타를 쏟아내고 있었다. 경제상황은 악화되었고, 전쟁은 끝날 줄 모른다.

어마어마한 화력으로 쏟아부으면 되겠지만, 세계 3차 대전을 우려한 전 세계의 압박이 미국에게 쏟아지고 있었고, 러시아는 암암리에 뒷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전세는 압도적으로 미국이 유리하지만 그것은 화력일 뿐, 미친놈들을 상대하는데는 애를 먹고 있었다.

“빈 라덴이 사라졌지만 망할 놈들은 자꾸만 기생충 처럼 어디선가 튀어나옵니다.”

“그렇군요.”

“타국은··· 미국만 놈들의 테러 상대가 되는 것에 아주 만족스러운지 질질 시간을 끌고 있죠.”

결국 이러나저러나 미국만 손해라는 얘기였다.

여기서 전쟁을 그만두고 물러나도 문제였다. 명예의 문제. 패전국이 될 순 없는 꼴이었다.

이미 승기는 확실했다.

“아담 후세인··· 그 놈을 처리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부쉬가 힐끗 나를 바라본다.

빈라덴을 잡았던 것 처럼, 그 놈을 잡아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말씀드렸다시피··· SKY PMC는 이라크에 참전하지 않습니다. 초기 약속이었던 2년을 채웠으니까요.”

파월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후··· 아쉽네요, PMC의 저력을 확인한 저로서는··· 그들의 존재가 우리 미국에게 큰 힘이 된다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말이죠.”

SKY PMC는 미군의 정예부대인 데부그루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뛰어난 전과를 보여주며 검은머리 학살자들이라는 별명에 더욱 힘을 보탰다.

휴가를 받은 미군들이 머리카락 색을 검은색으로 염색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이라크와 아프간 등지의 SKY PMC의 명성은 압도적이었다.

“뭐··· 어쨌든, 공화당을 향한 시민들의 민심이 땅에 떨어진 만큼, 미스터 록펠러께서는 부디 지금 당적을 유지한 채, 선거에 나서는 것이 유리할 겁니다.”

부쉬.

정치계의 명문가의 태생이라 그런지 판단력이 대단했다. 지금 그가 굳이 민주당을 선택해 대선에 뛰어들라 얘기하는 이유는 그는 이미 그의 마지막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재선에 성공했으니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였다.

“공화당이 다시 힘을 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아무래도 전쟁때문에 어쩔 수 없겠죠, 다음 대통령은 이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껴 안아야 할 겁니다. 아마 그게 미스터 록펠러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마치 이미 장인어른이 대통령이 된 것 처럼 얘기하는 부쉬.

“하하, 미래의 대통령께 잘 보여야 하는 것입니까 각하?”

파월의 농담에 부쉬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긴다.

“아니지, 여기 있는 미스터 천에게 잘 보이라고? 록펠러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SKY PMC가 단숨에 전쟁을 끝내버릴지도 모르니까.”

부쉬의 눈빛은 마치, 내가 후세인이 어디있는지 알면서 왜 처리해주지 않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하여간 정치하는 놈들은 반은 무당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말이다.

당연히 미래의 지식을 갖춘 나는 후세인이 현재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처리해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처리되고 전쟁이 종결되고 미국이 많은 이득을 취한다면, 단숨에 미 시민들의 민심은 다시 되돌아와 복수에 성공한 부쉬의 편, 공화당의 편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장인어른의 정치적인 장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과 평화, 그리고 봉사였다.

박애라고나 할까? 워싱턴의 주지사 자리에 오르면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전 세계적 평화를 실천한 사람이라는 슬로건으로 나서지 않았던가? 록펠러 재단이 해마다 전 세계에 뿌리는 자선비용 역시 어마어마한 수준이고.

“내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후세인의 위치를 알 수 있겠습니까? 미국의 CIA보다 뛰어난 정보력을 갖춘 정보단체는 없다는 걸 아시지 않나요?”

“흠··· 미스터 천에게는 행운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CIA는 그러더군요, 그는 어쩌면 예언가일지도 모른다고. 물론, 허무맹랑한 소리라 무시했습니다만, 가끔 그렇게 보이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난 어깨를 으쓱였다.

“SKY PMC가 이라크에서 활약하기 어려운 이유는, 현재 매우 바쁘기 때문입니다. 군사력이 필요한 일들도 많고요, 우리 PMC의 장점은 국가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 하나 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부쉬.

SKY PMC가 이라크에서 반 인륜적인 일을 저질렀다면 그 책임 역시 미국에게 있었다. 왜냐면 그들이 고용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SKY PMC가 반인륜적인 행위를 할 일은 없었다. 그들 역시 충성스럽게도 SKY의 기업 이미지를 신경쓰고 있을테니까.

“현재 진행형인 대한민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의 합작 사업인 유라시아 횡단 철도에 어마어마한 치안력이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북한, 중국은 그 치안력을 국가가 개입하기 힘든 사기업 SKY PMC에 일임할 생각이고요.”

부쉬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그들의 군부나 경찰이 움직이는 것 보다 SKY가 움직이는 게 공명정대 하겠죠.”

“예, 현재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곧 대규모 공사가 시작될 겁니다.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그렇기에 SKY PMC의 이라크 투입을 2년이라 얘기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못내 아쉬운 듯 보이는 부쉬의 태도.

그러나 그가 내게 제법 강압적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나중 일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2년 뒤, 그는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 확정된 상태나 다름 없었다.

그런 그의 슬기로운 은퇴 생활을 위해서 SKY와 척을 지고 싶지는 않을 터.

“대통령님의 편안한 은퇴생활을 위해 힘 좀 쓰시죠?”

난 그런 그의 약점을 깊게 파고 들었다.

“하하, 이리 대놓고 얘기하니 참.”

부쉬가 힐끗 장인어른을 바라본다.

“무엇을 드릴까요?”

그는 눈치가 빠른,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장인어른이 슬쩍 나를 바라보고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한걸음 더.

장인어른이 대통령으로 가는길에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 제 36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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