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58화 (358/458)

< 제 358화. >

별도의 안내 없이 당일날 바로 준비한 전경련의 파티. 평일인데다가 SKY 호텔의 연회장에 예약이 없었기에 급하게 치뤄진 일정에도 전경련의 회장들은 별 거리낌 없이 참석했다.

“아이고, 회장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얼굴을 잘 모르는 회장의 인사에 그저 예의상 고개를 끄덕여 주며 웃어주었다.

전경련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대현, GL, KS의 회장들이 모두 참석하자. 나는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단상위에 올라서서 마이크 앞에 서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내게 주목한다.

“전경련 회원 여러분. SKY그룹 천우진입니다.”

짝짝짝.

작은 박수소리와 함께 그들의 주목을 끌어낸 나는 길게 시간 끌 필요 없이 본론을 꺼냈다.

“아이티에는 많은 공사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모든것은 대한민국의 국책 사업으로 진행을 해야겠죠.”

국책사업이라는 말에 전경련 인사들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난다. 원래 국책사업이라는게 투자금 없이 돈만 쏙쏙 빼먹는 사업으로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공무원도 노나고, 기업도 노난다.

자본주의 세상에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하냐고?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국책사업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으면 편했다.

자본주의.

이 상대적인 경제체재는 누군가 성공하면 누군가는 실패해야하고, 누군가는 많이 벌었다면 누군가는 많이 잃어야만 가능한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국책사업의 큰 틀에서 공무원이 노나고, 기업이 노났다는 얘기만 듣는다면 ‘그게 가능한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릴수도 있었다.

그럼 자본주의의 구조상 손해를 본 사람이 없는거 아니야? 라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손해는, 국책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한 주체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국민’이 가져간다. 혹은 ‘시민’ 혹은, ‘도민’.

모든 사업비는 철저하게 국가예산과 국민들의 혈세로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입에서 나온 국책사업이라는 말에 눈을 요사스럽게 빛내는 전경련의 인사들 역시, 그 눈먼돈을 줍기 위해서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깔을 하고 내게 집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곧, 발표가 있을 겁니다만, 이번 국책사업은 여태껏 진행되었던 국책사업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규모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죠, 대한민국이란 땅덩이의 한계상 말이에요.”

규모가 크다는 말에 회장 놈들이 더욱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이 된다. 흡사 모든것을 다 처먹는다는 아귀꼴이 따로 없었다.

슬금, 슬금.

대한민국 재계서열 10위권 내로 들어가지 못하는 기업체를 운영하는 회장놈들은 그 윗줄에 있는 회장들의 동태를 살핀다.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자신에게 떨어진 파이는 무엇일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이티라는 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를 위해 대한민국이 국민들의 혈세를 마구마구 쓴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국민들이 과연 대한민국 아이티 자치령에대해 좋은 생각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이어진 내 말에 그들이 멈칫 거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치가 백단인 놈들이 단순히 규모만 다른게 아니라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었다.

딱.

중지와 엄지를 딱 부딪히자. 내 등 뒤에 있던 스크린이 내려오고 SKY전자에서 개발한 무대용 빔 프로젝터가 스크린을 비춘다.

“보시는 바와 같이, 아이티에 대규모 건설사업이 진행되어야 하며, 이 건설사업의 파이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비용또한 어마어마하게 소모되겠죠.”

조선소, 군부대, 도로, 가옥, 관광.

지어야 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다시 손가락을 부딪히며 핑거스냅을 하자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에메랄드 색 푸른바다가 쫙 펼쳐진 아이티 해변의 모습이 펼쳐졌다.

“호오.”

“이야.”

“허허.”

그 전경에 많은 회장들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이곳을 관광단지로 형성한다면, 나쁘지 않은 수입원을 창출해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회장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보기에도 분명 매력적인 관광지였다. 그리고 바로 옆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주변국이라 할 수 있는 쿠바의 경우 ‘관광’이란 항목에서 그렇게 자유로운 나라들이 아니었다.

치안문제부터 시작해서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하더라도 ‘치안’문제에서는 세계 최상위 국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 치안력을 자랑하는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었다.

또한 현재 SKY PMC가 머물고있는 아이티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좁은 땅떵이에서 SKY PMC의 눈을 피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힘들 것이었다.

본래라면 아이티 역시 세계 최악의 치안력을 자랑했어야 하지만, 갱들의 도시라 불리는 아이티의 모든 갱을 ‘혁명단’이라는 세력으로 둔갑시켜 치안력에 힘을 보태고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물론, 이제는 그들의 단체를 해체 시키고, 새로운 자치병력으로 둔갑시켜야 할 단계이지만 어쨌든.

“대충 설명한 것 같으니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지 대현과 GL, KS그룹의 회장들이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던 다른 회장들 역시 자리에 앉는다.

“드라이하게 본론만 얘기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아이티 자치령에 많은 혈세를 투입한다고 하면 국민들이 뿔이 날 겁니다. 좋아하겠습니까? 지금 대한민국도 경제 위기상황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IMF를 지나 IT버블을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물론 여기 계신 많은 회장님들 덕분에 일본이나 해외시장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이지요.”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래도 당장 대한민국의 복지도 그렇게 훌륭한 편이 아닌데 다른 곳에 돈 쓴다고 해 보십시오, 아이티에서 우리에게 낸 세금이 얼마나 된다고 벌써부터 그곳에 자금을 투입하냐는 볼맨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상상을 했는지 혀를 차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회장들.

“그러니까, 여기 대한민국을 위한 애국자들이 가득한 우리 전경련에서 십시일반으로 아이티 좀 도와 봅시다.”

곳곳에서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르르르 눈깔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앞서 보여드렸던 국책사업은 20년 무이자로 상환할 계획입니다. 대대적으로 언론에 홍보를 할 겁니다. 우리 전경련이 이렇게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자치령 아이티를 응원한다고 말이죠.”

GL그룹 구윤회 회장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허허, 많은 지원을 해야 많은 땅덩이를 확보할 수 있나 봅니다.”

농담같은 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이티는 말입니다. 내륙 중앙에서 해변까지 오래 걸려봐야 잘 닦인 도로라면 30~40분 내외입니다. 그리고 모든 면이 둥그렇게, 해변에 닿아있죠.”

관광지로 쓸만한 부지가 많다는 얘기였다.

대현그룹의 정상영 회장이 말을 보탰다.

“이런이런, 얼른 점수를 따야 나라에서 땅을 많이 팔아주지 않겠습니까?”

“부지 매입은 투자금 형태로 진행할지도 모르죠, 대한민국 아이티 자치령에는 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자치령이라 말하고 있지만, 제주도처럼 특별자치도가 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어쨌든, 행정부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그들도 돈이 필요할터였다. 당장 아이티의 공무원들 월급부터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물론 당장 대한민국 공무원들 수준의 임금을 받긴 어려울테지만, 빠르고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향후 10년간은 점진적인 인건비증가가 있을겁니다. 급진적으로 이뤄지진 않을테니 그 부분도 감안 하시면 좋을겁니다.”

빨리 차릴수록 인건비를 아끼는 일이라는 걸 얘기 해 줬다.

재계서열 10위권 내에 있는 회장들은 바쁘게 보좌진이나 주변에 있는 회장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눈치 백단들이 모여있는 전경련 모임이지만 특히나 재계서열 10위권 내를 꽁으로 딴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단 적인 예라 할 수 있었다.

10위권 내 회장들은 내 의중을 눈치 챈 것이었다.

“아이고, 우리 회장님들 뭔가 크게 착각하는 게 있으신 것 같네요?”

마이크를 통해 스피커로 흘러나온 내 목소리에 재계서열 10위권 내에 있는 회장들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혀를 쯧쯧 하고 차며, 주변의 다른 회장들을 쳐다보았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큰 착각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덜컥 굳은 회장들.

“국책사업, 무조건 참여하세요. 모래 한 줌이라도 당신들 돈으로 아이티에 투자해야 할 겁니다.”

곳곳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버티고 싶으신 분들 버텨보세요, 당신들이 일군 그 회사에 SKY의 엠블럼이 꽃힐테니까.”

물끄러미 여유있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대현, GL, KS그룹의 회장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미 내가 경고하기도 전에 투자할 생각이 있어보였다.

“회장님들 빼고는 다들, 눈치가 백단 수준이네요.”

구윤회 회장이 허허 하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천단쯤 됩니까?”

“글쎄요? 한 만단?”

“하하하, 술이나 한 잔 하십시다 천 회장. 연탄불에 구운 막고기 어떻습니까?”

“좋죠?”

순식간에 호텔 연회장 음식보다 더 고급진 음식이 되어버린 연탄불에 굽는 막고기를 상상하며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대충 간 보고 싶은 회장님들 계시면 명심하세요, 사력을 다 해야 할 겁니다. 인사치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려 대현그룹의 정상영회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상영 회장님 얼마나 투자하실 생각이십니까?”

“20년 무이자지만, 어쨌든 돌려받는 돈이 아닙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럼 최소한 시총에 15퍼센트 정도는 투자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정도면 만족하냐는 눈빛으로 정상영이 내게 신호를 보낸다.

“에이 좀 더 쓰시죠.”

입맛을 다시던 정상영이 다시 입을 벌렸다.

“30퍼센트로 갑시다.”

나는 흡족한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들으셨죠? 30퍼센트.”

내 말을 들은 전경련의 회장들이 똥 씹은 표정을 하고는 바쁘게 비서들이나 보좌들을 호출하는게 보인다.

단상을 내려오니 KS그룹 최태수 회장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30퍼센트로 만족하십니까?”

“그 정도만 꺼내도 땡큐죠, 노인네들 쌈짓돈 털기가 좀 빡셉니까?”

“하하하, 눈치 있는 자들은 알아서 꼬리를 흔들겁니다 회장님.”

피식 웃은 나는 물끄러미 최태수를 바라보았다.

최태수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KS는 45%를 투자하겠습니다.”

스스로 꼬리를 흔드는 개임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석을 바라보았다.

“예, 회장님.”

“언론에 보도자료좀 뿌려주세요, 우리 전경련이 이렇게 애국심이 투철하다고.”

“예, 회장님.”

“얼마나 투자할건지 정확한 액수 1원단위까지 적어서 가져오라고 하세요.”

“예, 회장들에게 전하겠습니다.”

“가시죠, 회장님들이랑 소주나 한 잔 하러.”

“예, 회장님.”

***

소주가 몇 순배 돌았을까? 비슷한 삶이라고 얘기하긴 뭐 하지만, 어쨌든 남 부러울 것 없고 부족함 없이 살아온 사람들끼리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들과 태생이 달랐고 삶자체도 달랐을지 모르지만, 그들과 나의 공통점을 꼽자면 치열하게 살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도 경쟁자를 누르고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자수성가 했다 얘기할 순 없지만 그곳까지, 그 재벌가의 수장이 되기까지 성장한 스토리들은 제법 흥미를 끌어냈다.

“제법 취하는데요?”

내 물음에 회장들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용히 고기를 굽던 정상영 회장이 이제 자리가 끝나간다 생각했는지 질문을 던졌다.

“회장님.”

“예, 회장님.”

“궁금한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혹, 자치령에 말입니다.”

“예.”

“세울 머리는 정해졌습니까?”

도지사 자리라도 탐나나 싶었다.

하긴.

과거 정상영은 분명, 그러니까 대현그룹은 정치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공화국시절, 군사정권시절의 설움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내 처가 록펠러 가문처럼 말이다.

“적당한 놈이 하나 있어서 그놈을 앉히고 싶습니다만,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죠.”

“공정한 선거라면, 우리쪽에서도 달려들어도 되겠습니까?”

“선거 이후에도 공정한 사업배정이 진행됩니까?”

“그래야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 나이가 먹고, 꿈이 생기더라 이겁니다.”

“그러세요?”

“뒷돈 받아먹는 놈들 끔찍하게 싫어지더라고요, 해서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뭐,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방해도 하지 않고요.”

“감사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짠.

“크으.”

쓴 소주에 인상을 찌푸리는데 GL그룹의 구윤회 회장이 내 앞접시에 연탄불에 알맞게 익은 돼지고기 한 점을 올려준다.

“감사합니다.”

“이제 SKY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회장님? 이미 대한민국의 재계는 발 아래 두셨으니 말입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뜯어먹을 게 없지 않냐는 물음이었다.

“애초에 목적은 세계에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당장은 무기에 좀 집중해볼까 합니다.”

“국방력 때문입니까?”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그렇군요.”

“그러니 여기계신 회장님들이 전경련을 잘 이끌어주십시오.”

“허허, 주인의 자리를 잘 지켜야지요, 그게 경비견들의 책무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고기를 열심히 굽던 최태수가 힐끗 날 바라보며 물었다.

“무기산업은··· 미국이 꽉 잡고 있어서 여간 힘드시겠습니다.”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너무나도 많이 봐야했다.

그리고 첨단 무기 산업은 미국이 압도적이었다. 전세계 어떤 국가도 따라잡기 힘들만큼.

“그러니 미국부터 먹어 봅시다.”

“예?”

“허.”

“흐음.”

세 회장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나는 농담이라는 듯 웃으며 다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열심히 눈을 굴리며 내 말의 진위를 살피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힌트를 하나 줄까 싶었다.

“마침 내 장인께서, 미국에서 정치를 하고 계시죠.”

“아아!”

“허허.”

“이런이런.”

이제 눈치를 챈 모양이다.

미국을 먹겠다는 말.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 제 35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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