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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의 재벌-352화 (352/458)

< 제 352화. >

빅토르는 멍한 눈으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 사내를 바라보았다. 검은 복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지만, 번들거리는 두 동공을 보고 있자니 실전경험이 아주 풍부한 사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꼼지락.

부관이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만지작거리는 순간.

퓩, 퓩.

사내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크윽.”

부관의 양쪽 허벅지에 구멍이 뚫렸다.

“농담인 줄 알았다면 미안하지만 진심이야.”

빅토르 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 꿇고 양 손은 뒤통수 뒤로 가져간다.”

침을 꿀꺽 삼킨 빅토르가 복면인이 시키는대로 무릎을 꿇고는 양손을 뒤통수로 가져갔다. 부관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무전기에 대고 ‘작전중지’를 소리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한숨이 절로 튀어나온다.

부관 역시 엉거주춤 작열통을 참으며 빅토르와 같은 자세를 취한다.

“이보시오.”

정중한 한국어가 빅토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왜.”

“저 안에 진입한 아이들··· 살려 줄 수는 없소이까?”

픽 웃음을 흘리는 복면인.

“네 놈들은 우리를 죽이러 왔는데, 우리는 살려주어라?”

“명령에 움직이는 군인들 아닙니까··· 저 핏덩이들이 뭘 알겠습니까? 다 윗대가리들이 잘못이지.”

복면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빅토르의 두 눈에 희망이 차 올랐다.

“오해하지 마, 나 역시 명령에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저 네 마음을 이해해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야, 결정은 회장님이 하신다.”

다시 두 눈에 절망이 깃드는 빅토르.

부디 아이들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물론 그는 헛된 희망이라는 걸 알았다.

말을 하고, 사리를 분별하기 시작할 나이부터 총기를 잡고 살인기계로 키워진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분명 SKY PMC에 맞서 분전을 펼칠 게 불 보듯 훤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총탄을 쏟아내는 사람을 안전하게 제압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니까, SKY PMC의 입장에서도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치익, 진입로 확보.

-치익, 목표물이 있을 방에 진입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계속 보고가 들어온다.

이 쯤이면 지휘부에서 뭐라 얘기가 없어 이상함을 눈치챘을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 하달된 임무를 달성할 때 까지 그들은 직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점점 더 절망적인 상황, 빅토르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애써 눈물을 참아냈다.

복면인이 제 가슴팍에 달린 무전기를 눌렀다.

“후우, 여기는 코드원. 지휘부 제압 완료, 적들이 지하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치익, 확인. 작전개시.

-치익, 작전개시.

같은 시각, PMC 훈련소의 지하.

호석은 좁은 방 안에서 알렉세이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치익 여기는 코드원. 지휘부 제압 완료, 적들이 지하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후우, 확인. 작전개시.”

-치익, 작전개시.

꿀꺽.

침을 삼키는 알렉세이.

호석은 말 없이 알렉세이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알렉세이가 누워 있어야 할 침대의 아래로 들어갔다. 별빛 하나, 달빛 한 점 드리우지 않는 지하이기 때문에 깜깜한 어둠속에서 호석의 위치를 찾아내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후우.”

긴장되는 듯, 그러나 사전에 지시 받은 연기를 이행해야 하는 알렉세이. 그는 힘 없이 조심스럽게 털썩 침대에 누웠다. 곧 들이닥칠 고려인 특전단의 총구가 자신의 정수리 혹은 심장을 향할 것이라 생각하니 두근거리는 심장이 멈추질 않았다.

꾹, 꾹.

그런 알렉세이의 긴장을 눈치 챘는지 침대 매트리스 한 곳이 위로 찔러 온다. 아랫쪽에 있는 호석이 알렉세이에게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걱···”

막 입을 떼려는 찰나.

끼이이익.

철제 경첩이 고요한 지하실에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본능적으로 알렉세이는 자신의 방 문이 열렸음을 알 수 있었다.

타닥, 타닥.

아주 작은 발소리로 방 내부에 여러명의 인물이 들어 왔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은 알렉세이.

툭, 툭.

차가운 금속의 물체가 알렉세이의 볼을 건드렸다.

알렉세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어둠에 적응한 눈은 눈 앞에 인영들의 실루엣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로 알렉세이 맞나?”

앳된 목소리의 러시아어.

알렉세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맞다. 본국에서 보낸 전사들인가?”

“그렇다.”

“후우, 드디어 왔군. PMC놈들은 어떻게 됐지?”

철컥.

“우리의 임무는 네놈의 숨을 거두는 것.”

소총의 장전소리와 함께 앳된 목소리로 알렉세이의 최후를 말하는 러시아의 군인의 말.

알렉세이는 결국 자신이 천우진과의 내기에서 졌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인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말하는 알렉세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알렉세이는 앞에 서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앳된 목소리의 군인이 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살인은 이번이 처음인 모양.

“쯧, 망설이는 순간. 네놈들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본국의 전사라는 놈들이 한심하군.”

“닥쳐!”

총구를 들이밀던 군인이 흥분하는 순간.

퓩, 퓩, 퓩, 퓩, 퓩, 퓩.

방 안에서 연달아 울리는 답답한 소음기가 달린 총성.

“크악.”

“뭐, 뭐야?”

“아악!”

방안에 들어왔던 러시아의 군인들이 자리에 쓰러졌다.

끼이이익 쿵! 끼이이익 쿵! 끼이이익 쿵!

복도 가득 철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펑! 펑! 펑!

섬광탄이 여기저기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알렉세이 역시 두눈을 질끈 감고 두 귀를 틀어 막았지만 삐——하고 이어지는 이명에 속이 울렁거리고 뒤집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고.

두 눈에 초점이 다시 맞아 졌을 때.

보이는 광경에 알렉세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눈과 귀에서 피를 흘리는 앳된 동양인들.

그리고 그들의 무장을 어느새 깔끔하게 벗겨낸 또 다른 동양인들.

“인원체크 했어?”

“총원 18명입니다.”

“아직 남았다. 세개 분대 병력이라 들었으니.”

“위쪽에서 지원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곧 교전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타이로 손발 확실하게 묶고 올라가.”

“예!”

PMC의 대원들은 바삐 움직이다 다시 지하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타당! 타당! 타당!

멀리서 몇 발의 총성이 들리고.

-치익, 제압완료.

“확인, 전부다 연병장에 집합 시켜.”

-치익, 확인.

호석이 고개를 돌려 아직도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알렉세이에게 말했다.

“내기는, 우리가 이긴 것 같군.”

알렉세이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의 3일, 잘 견뎌내 보자고.”

“크윽.”

호석이 히죽 웃으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자 알렉세이가 그 뒤를 따른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훈련소 건물 전체에 비상 사이렌이 울리자 마자 곳곳에서 군홧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애초에 준비가 돼 있었다는 듯,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지하실을 정리하고, 러시아의 고려인 특전단 아이들을 전부 연병장으로 끌고 나온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의료진 역시 빠르게 나타나 부상자를 확인하고 고려인 특전단의 건강을 살핀다.

***

위이이이이이이잉.

커다랗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사람들이 두리번 거리며 무슨일인가 싶은 표정을 짓는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이전에 몇발의 총성이 들렸으니 그들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미 상원의원이 침을 꿀꺽 삼키며 내게 묻는다.

“미, 미스터 천, 이게 무슨 일입니까? 또 반군 세력의 준동이오?”

어깨를 으쓱이며 걱정말라는 듯, 미 상원의원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SKY PMC의 최정예 대원들이 안전하게 지키고 있으니까.”

“그, 그렇소? 아까 총성이 들린곳이 저쪽 PMC의 훈련소 건물쪽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나는 웃으며 주변을 애워 싸고 있는 공정선거관리위원회의 인사들을 바라보았다. 각국에서 특별히 보낸 사람들. 그들은 모두 현재 이곳 아이티의 실상에 관해서 어떤 당부들을 듣고 왔을 터.

“궁금하면 가볼까요?”

탐탁치 않은 얼굴들을 하고 있는 그들과 함께 걸어서 고작 10분거리에 있는 PMC의 연병장으로 향했다. 사전에 호석과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으니 지금쯤이면 푸틴이 인상을 찌푸릴만한 장면이 준비되어 있을 터였다.

나를 비롯한 선거 관리위가 움직이자 만찬에 초대되었던 언론사의 인물들이 뒤 따른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특종의 냄새를 맡았을테다.

아쉽게도 만찬장 내에서 취재는 허락해주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의 펜대에는 힘이 있을 터였다. 어쩌면 몰래 카메라를 휴대했을지도 모를 일.

연병장에 도착하니 호석이 방탄조끼를 벗으며 날 바라보았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예, 별 탈 없이 끝났나요?”

“예, 작전은 완벽했습니다.”

“우리쪽 피해는요?”

“전무합니다.”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저쪽은요?”

“생명에 지장 있는 놈은 없습니다.”

호석의 호언장담 처럼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했다는 말. 때 마침 저쪽에서 복면을 벗지 않은 코드원이 우리 PMC의 대원들과는 다른 무장과 복장을 하고 있는 동양인 사내 둘을 데리고 오고 있었다.

동양인 한 명은 또 다른 동양인 사내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꼴이 코드원의 심기를 어지럽혔나 보다.

“임무 완수 했습니다. 회장님.”

“고생했어요, 의료진 불러서 저 치를 치료하라 하세요.”

“예.”

웅성웅성.

나와 같이 이곳에 온 선거 관리위는 물론 언론인들도 도대체 무슨일인지 무척 궁금한 모양새였다.

나는 모두가 알아 들을 수 있게 친절하게 영어로 제법 크게 말하기 시작했다.

“며칠전 우리 PMC는 러시아의 특수부대가 우리가 사로잡은 러시아의 1급 정보요원을 암살하려 한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각국의 인사들이 침을 꿀꺽 삼킨다.

이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완벽하게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각국의 인사들 중에는, 자신들의 국가에서 파견한 정보요원역시, PMC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저 동양인들이 모두 러시아의 특수부대라는 말씀입니까?”

미 상원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허··· 이를 증명 할 수 있습니까 미스터 천?”

미국은 아이티에 어떠한 정보 협작질도 하지 않았기에 당당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상원의원의 반응은 이 기회를 틈타 러시아를 압박할 욕심이 가득해 보였다.

나와 목적이 합치하는 부분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내 표정에서 자신감을 봤을까? 상원의원 역시 헤벌쭉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어떻게 한 번 숟가락이라도 올려볼까 하는 표정이었다.

“어디서 숟가락을 올릴라고 새끼가.”

놈에게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한국말.

단순히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며 놈은 여전히 헤벌쭉 웃고 있었다.

“회장님, 이 놈이 지휘관입니다.”

코드원이 내 앞에 지휘관이라는 놈을 무릎 꿇린다. 러시아에 있던 김장원 사장과 독거미가 보내온 사진에 분명 이 놈이 있었다.

“아아, 이름이 빅토르 최 였던가?”

놈이 한국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나는 부러 한국말을 사용했다.

내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게 놀랐는지 눈을 부릅 뜬 빅토르.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작전이 너무 허무하게 실패했다고 생각되지 않나?”

“설마, 본국에 배신자가 있는 것인가!”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피식 웃음을 흘린 내가 코드 원에게 손을 내밀자 그가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내게 내밀었다.

철컥.

능숙하게 권총을 장전하자 미 상원의원은 물론, 각국의 주요 인사들과 언론인들이 나와 거리를 벌리며 설마 하는 얼굴로 이쪽에 집중한다.

빅토르 역시 떨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하고 내게 집중했다.

“세상에 죽어야 할 사람은 없지, 하지만 죽여야 할 이유는 있는 법이야.”

내 손에 들린 권총의 총구가 빅토르의 이마를 조준했다.

“내가 네놈을 죽여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빅토르가 힐끗 뒤쪽에 누워 있는 고려인 특전단을 바라본다. 의료진들이 정성스럽게 치료하고 있는 모습이 보일 터. 눈치가 있는 놈이라면 내가 애초에 죽일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 챌 지도 몰랐다.

다시 고개를 돌린 빅토르가 날 빤히 올려다본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습니까?”

눈치가 제법인 놈이었다.

< 제 35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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