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51화 (351/458)

< 제 351화. >

굳이 공항으로 나갈 이유는 없지만 나와 호석은 부러 공항으로 나갔다.

아이티라는 국가의 공항이 좁고 하나인만큼 다른 곳으로 올 가능성이 전무 한 상황.

착륙한 SKY AIR의 점보 여객기를 바라보는데 내리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동양인이었다. 현재 정부가 마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당연히 이미그레이션은 단촐하다.

"저 아이들인가 봅니다."

내 말에 호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전력을 살피기 위해 집중한다.

"어때 보이세요?"

"겉보기에는 그냥 때 타지 않은 청년들처럼 보이는군요, 군데군데 과연 성인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 보이고요."

나 역시 호석과 별반 다르지 않게 그들을 봤다.

"저기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저 놈이 지휘관인 모양입니다."

"예, 혼자 날이 바짝 서 있네요, 전투를 앞둔 전사처럼."

"언제 올까요? 저놈들."

"길어도 내일밤은 넘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아이들은 마치 놀러라도 온 것 같고, 지휘관은 잔뜩 긴장했으니 그 불협화음 때문이라도 길게 시간을 끌려고 하지 않을거라고 보여집니다."

"속전속결로 끝내야한다?"

"예, 실전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아마도 실수를 우려할 것입니다."

이쪽분야는 나보다 호석이 전문가일테니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부터 나는 별관에서 지내도록 하죠."

"예, 따로 지시를 해 두겠습니다."

부러 공항을 나왔지만 꼭 러시아에서 보냈다는 고려인 특전단을 보기 위함은 아니었다. UN측에 따로 요청을 했고, 미국 측에도 따로 요청을 했다.

요청의 내용은 당연히 돌아오는 주 월요일에 시행될 아이티에서의 투표 때문.

전문 감독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인물들을 그들을 통해 지원 받았다. 누군가 아이티에서 일어난 투표에 대한 공신력을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입장으로서는 전혀 그럴 이유가 없지만 세상의 이목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니던가.

점보 여객기에서 내리는 대부분의 사람들 모두 SKY와 대한민국이 요청한 신뢰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정치인도 있었고, 법조계의 인물도 있었으며, 예술계의 인물도 있었다. 어찌되었던 대부분 '돈'보다는 '명예'를 쫓는 사람들이었다.

"먼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내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영어에 갖가지 인종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나라의 사정이 어려운 만큼, 여러분들을 모시는데 부족함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머지 서비스는 최선을 다할테니 양해를 바랍니다."

고개를 젓던 흑인이 말했다.

미국쪽에서 보낸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다.

부쉬라는 공화당이 미국을 꽉 쥐고 있으니 대외적으로 민주당 상원의원을 보냄으로서 대외 신인도를 높이려는 수작이었을테다.

"아닙니다. 미스터 천, 여기 계신 모두가 이미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 할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이 어려운 나라에 대한민국이 선뜻 먼저 선의의 손길을 내미니 세계평화에 앞장서야 할 미 연방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와 제법 격렬하게 악수를 나눴다.

"과찬이십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이번 선거의 공정선거관리위원회의 장이라도 된 것 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프랑스 인권운동의 젊은 운동가 마이크롱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독일의......"

나는 웃는 낯으로 그들 전부와 악수를 나누고는 준비된 차량 위에 그들을 태웠다.

차량이 출발 하기 전, 그들을 쭉 살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직 치안이 완벽하게 안정되었다 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이 곳에서 제대로 작용하기 어렵고, SKY PMC역시 자유롭게 활동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서, 위원회의 위원분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에는 따로 경호원을 배치 시켰으나, 밤길은 어느나라던 위험한 법, 야간에는 이동을 자제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어쩔 수 없지요, 개의치 마십시오."

"이동간에는 항상, 배치되어 있는 경호원들에게 먼저 언질을 주십시오, 그럼 그들이 어느곳이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모실겁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힐끗 호석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미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말했다.

"내일 저녁에는 SKY에서 따로 만찬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그리고 내일 오후까지 편하게 아이티를 구경해보십시오."

"오, SKY에서 준비하는 만찬이라 기대가 큽니다."

"하하, 장소가 장소인만큼 아쉬운 만찬일 수 있으니 너무 큰 기대는 삼가해주십시오."

"하하, 알겠습니다."

탁.

차량의 문을 닫고 떠나가는 차량의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호석이 곁에 다가와 말했다.

"회장님, 굳이 내일 저녁을 만찬의 시간으로 잡으셨습니까?"

내일 밤이 호석이 생각했을때 고려인 특전단이 작전을 시작할 베스트 시간일테다.

그런 위험한 시간에 굳이 신경을 써야 할 각국의 고위관료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았냐는 핀잔과 같았다.

"구경 시켜 줘야죠, 증인도 만들어야 하고."

호석이 잠시 '아!'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또, 큰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 할 뿐이죠."

"푸틴이 아주 곤란해질 수 있겠습니다."

"그래야죠, 그래야 내가 원하는 걸 가져오니까."

"문제없이 진행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셔야죠, 우리 PMC 대표신데."

"하하, 알겠습니다."

호석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니 나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

한국 국적의 자원봉사단이라 소개를 하니 SKY에서는 그들위해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 사실이 웃프게 느껴지는 빅토르 최는 쓰게 웃었다.

"쯧."

이곳 '숙소'라 부를 곳까지 오면서 지켜본 아이티의 실상은 정말이지 러시아의 빈민촌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고 보여질 만큼 시설이 최악이었다.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허름한 옷을 입고 물이 없어 어린아이들이 코코넛 열매를 따기 위해 나무를 오르는 그림은 정말이지 '참담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였다.

완벽한 지붕이 있고, 유리는 없지만 나무창을 열면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전경을 확인 할 수 있는 방들이 준비된 완벽한 숙소.

최대 수용인원이 약 500여명이라는 숙소에는 한국에서 온 건설 노동자들은 물론 SKY그룹의 각종 계열사에서 파견온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식사까지 SKY에서 책임져 주고 있었다. 구내식당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은 언제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으며, 나름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퀄리티의 음식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와, 나 또 먹고 왔어 소피!"

"양심껏 먹으라고! 멍청한 세르게이!"

"아니 한식이라는 거 말이야, 정말 매력적인 음식인 것 같아. 그 알싸한 매운맛은 중독성이 엄청나다고!"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구내식당에서 음식이나 축내고 있는 특전단의 어린 전사들을 보고 있자니 빅토르는 골이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굳이 SKY에서 친절을 베푸니 혹, 자신들이 걸리지는 않았을까 조마조마한 빅토르와 다르게 아이들은 무엇하나 겁나는게 없어 보였다.

그저 순진무구한 저 나이때 아이들 그대로로 보였다.

"후우..."

한숨을 푹 내쉰 빅토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부관의 질문에 고개를 젓는 빅토르.

"전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으니 걱정이 되는군."

"아... 실전 경험이 없어서 긴장감이 없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쯧쯧... 이러다 반드시 사고가 나기 마련이야, 작전을 서둘러야겠어."

"으음, 침착하게 먼저 사전조사를 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빅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에는 우선 훈련소라는 건물의 경계 병력부터 체크를 하지."

"예, 다행이 이곳에서 훈련소 건물이 멀지가 않습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확실히 그랬다.

이곳 SKY직원 숙소는 훈련소와 도보 5분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공교롭게 아주 가까운 거리.

"무기의 이동은 완벽한가?"

"금일 밤, 무기 역시 이곳 숙소로 가져올 생각입니다."

"위치는 정확하겠지?"

"비행기에서 내려 이곳 숙소로 오기전에 먼저 확인했습니다. 틀림없이 무기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좋아, 야시경과 같은 장비 역시 있었는가?"

"확인해보지 못했으나, 목록 그대로 존재한다해도 야시경은 몇개 되지 않습니다."

"쯧, 분대장들만 겨우 쓰게 되겠군."

"예, 소령님."

빅토르가 팍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단장이라 불러, 그리고 러시아 말 쓰지 않게 교육 철저하게 시키고."

"죄송합니다."

이곳 식당에는 SKY직원들의 왕래가 잦았다. 그런데 특전단의 전사들은 아직도 음식을 먹으며 러시아식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으니 복장이 터질거 같은 빅토르였다.

저렇게 경계심이 없어서야, 기회가 많아 실전 경험을 계속 쌓았어야 하는데 기회자체를 주지 않으니 실전경험이 미흡한 아이들.

"이제라도 기회를 잡아야 해."

어떻게든 이번 기회를 살려야 했다.

그것만이 특전단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는 빅토르였다.

특전단이 산다는 것은 그들의 우두머리인 자신의 안녕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으니 반드시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고 싶은 빅토르.

그의 두눈이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

다음날 오후 9시.

해가 완전하게 사라진 아이티의 밤.

서로 다른 이유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공정선거관리위원단은 SKY가 준비한 만찬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고, 빅토르와 고려인 특전단은 작전개시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조용하게, 특전단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호석과 이재형, 그리고 그들을 필두로 한 SKY의 최정예 대원들 몇몇은 각자의 위치로 빠르게 흩어졌다.

겉 보기에는 SKY에서 준비한 만찬때문에 시끌벅적한 상황, 빅토르는 쌍안경으로 만찬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신이 우리를 돕는 군."

빅토르의 입가가 스륵 올라갔다.

그도 그럴게 만찬장 주변으로 SKY PMC의 많은 병력이 포진해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운이 좋았다고 얘기해도 될 만큼 각국의 주요인사들을 경호하기 위해 과하다 싶을 만큼의 병력이 투입된 상황.

자연스럽게 빅토르의 목표인 SKY PMC 훈련소의 경계는 허술해질 수 밖에 없었다.

-치익, 작전지 도착했습니다.

무전을 받은 빅토르가 얼른 무전기에 묻는다.

"그곳 병력 상황은?"

-이상 할 만큼 병력이 없습니다. 최상층 숙소에만 곳곳에 불이 켜져 있을 뿐, 별다른 경계병력은 없습니다.

"완벽하군."

신이 그의 앞 길에 가호라도 내리듯 너무나도 완벽한 상황.

"지금 바로 그곳으로 이동하겠다. 작전지시를 기다리며 대기하도록."

-치익, 확인.

야음을 틈타 빠르게 야자수 숲을 지나치는 빅토르와 부관.

"무기 상태는 점검했나?"

"이상 없었습니다."

"좋아."

SKY PMC의 훈련소 연병장이 환하게 시야에 잡혔을 때, 빅토르가 고개를 끄덕이니 그의 부관이 작전 실행 명령을 무전기에 말했다.

"돌입"

얼른 쌍안경을 들어 연병장을 확인하는 빅토르.

"저격수들은 불 켜진 창문을 조준하도록."

"예."

연병장을 가로지르는 검은색 인영들. 그러나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는 PMC 인물들은 없었다. 오히려 하나 둘 불이 꺼지며 취짐에 돌입하는 모습.

긴장했는지 빅토르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는다.

-치익, 지하실 진입 완료, 경계병력 없음.

눈을 동그랗게 뜬 빅토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국의 정보부 요원들이 감금되어 있을 지하.

그런데 경계병력이 없다?

"방으로 진입하고 작전을 종료하는 순간까지 절때 방심하지 말라고 전해!"

"예? 예!"

빅토르의 다급한 음성에 당황을 하면서도 그대로 무전으로 명령을 하달하는 부관.

-치익, 목표의 방 앞에 도착. 목표는 취침중.

'이상해... 이상해!'

"대기! 대기하라고 해!"

부관이 잔뜩 당황한 얼굴로 어째서 그러냐는 표정을 짓는다.

"이건 말이 안 돼! 스페츠나츠 일개 중대급 전투력이라 했다. 정보총국장이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헛소리를 했을 이유가 없어!"

"하지만, 오늘은 만찬이 있기 때문 아닙니까?"

"개소리! 그럴리가 없다. 이건 함정이야!"

"예?"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어, 제기랄... 내가 왜 그걸 눈치채지 못했지?"

잔뜩 당황한 부관이 세차게 고개를 털며 말했다.

"소령님, 어쨌든 지금은 명령을 내리셔야 합니다."

"작전중지, 작전중지! 전 대원 빠르게 철수한다! 빨리 무전 날려!"

다급하게 외치는 빅토르.

부관이 무전기를 들어올리는 순간.

철컥.

소총의 장전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려온다.

"동작그만,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 거리면 대가리에 구멍 뚫린다."

어둠속에서 불쑥 들려오는 한국어.

빅토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 제 35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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