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50화 (350/458)

< 제 350화. >

잔뜩 긴장한 얼굴로 대통령 관저의 문을 통과하는 사내.

이제 보이는 저 파란 문만 통과하면 아마 안쪽에 천혁수 대통령이 앉아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어깨를 들쑥날쑥 움직이고 옷 매무새를 점검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대통령 경호원이 문을 열어주고 내부로 들어가는 사내. 그는 현 국정원장 최원기였다.

“찾으셨습니까 대통령님.”

“늦은시간에 미안합니다.”

감정의 고저가 없어 보이는 대통령의 인사에 국정원장 최원기는 쓰게 웃으며 대통령이 가리킨 자리에 엉덩이를 붙인다.

“백대표.”

“예, 대통령님.”

“보고서 좀 주시겠소?”

“예.”

국정원장 최원기는 대통령의 옆에 마치 그의 보좌관 혹은 비서실장처럼 곁을 지키고 있는 백철웅이라는 사내를 익히 알고 있었다.

사석에서는 백부와 조카 사이인 그들.

어떻게 보면 천혁수 대통령은 그를 아들처럼 대하는 순간도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백철웅에게도 국정원장은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여기있습니다. 선배님.”

무엇보다 최원기는 백철웅을 잘 알고 있었다.

군 정보사 시절, 백철웅은 그의 후임이었기 때문. 어째서 군대를 전역하고 깡패 밑으로 갈까 싶었지만, 그때 생각했던 그 깡패가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으니 어쩌면 백철웅의 선택이 자신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대통령이 되기 전 후보자 이전부터 이미 정치계의 명령에 의해 천혁수라는 인물의 뒷조사를 했던 최원기는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대통령이 얼마나 입지전적인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철혈의 통치가’ 그런 말이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으며 현 정치계의 어떤 인사보다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한 사람이란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깡패, 사채업자, 고리업자 등.

천혁수를 비하하는 말들이 많았지만, 그가 그런 시절에도 돈 욕심을 부려 인면수심의 괴물은 아니었단걸 아는 것.

그는 항상 없는자를 핍박하기 보다는 있는 놈들에게서 더 큰 이익을 창출해내는 그런 기형적인 수익구조를 가진 인물이었다. 상대하는 채무자들 역시 대부분 수십억, 수백억을 빌려가는 대기업 회장들이 대부분이었다.

괜히 명동 사채업 시장의 큰손이 아니었다는 뜻.

물론 대한민국 사채업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그가 흘린 피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 역시 알고 있지만, 비밀리에 물증 없는 일들을 지금의 대통령에게 캐물을 순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상념을 정리하며 고개를 숙여 자신의 후배이자. 천혁수 대통령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철웅이 준 서류를 확인하는 최원기.

그는 떨리는 동공을 숨길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쯧쯧, 최원장.”

“예, 대통령님.”

“아마 국정원도 모르는 일이었나 봅니다.”

“면목없습니다.”

서류에는 러시아 국적의 스파이 30여명의 한국 위조여권을 가지고 입국한 정황과 증거들이 즐비했기 때문.

“국정원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힐난.

그러나 최원기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눈 앞에 국정원이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떡 하니 있는데 어찌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최 원장을 비난 하고 싶지는 않소.”

“아닙니다. 제 불찰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 보다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생각합니다.”

“예, 대통령님.”

실제로 대한민국은 천혁수의 말 처럼 여태까지와 다르게 크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은 국정원장인 최원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돌아가는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으니 국정원 역시 밤이 없는 것 처럼 365일 24시간 훤한 불야성이지 않은가.

“그런데 자꾸만, 이런 정보의 구멍이 발생해서야 되겠습니까? 내 손주놈의 회사에서는 이렇게 타국에서의 정보도 놓치지 않고 체크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예··· 그래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님.”

“해결책은 있겠습니까?”

있을리가 없었다.

갑자기 인원을 충원한다고 해서 양질의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커다란 돈을 투자한다 해서 양질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미래를 위한 투자 수준에 불과하다는 걸 최원기는 잘 알고 있었다.

정부기관들이 으레 그렇듯.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고 해서 그 예산이 정말 정부기관을 위해, 그리고 국민들을 위해 전부 쓰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중간에 빼가는 놈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부정부패가 심한 경우는 예산의 10퍼센트도 올바르게 쓰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혈세를 더 투입하면 되겠습니까?”

“······”

“인력충원에 심혈을 기울이면 되겠습니까?”

“······”

예산을 증가 시키고 사람을 더 채용한다.

결국은 모든 것이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었고, 그 세금을 쓰고자 한다면 대대적으로 선전을 해야 한다. 그럼 당연히 국민들은 분노한다. 또 우리 세금 허튼곳에 사용하냐며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당장 양질의 정보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국정원장은 머리를 들 수가 업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이 순간이 지나기를 바랄 밖에.

“최 원장.”

“예, 대통령님.”

“듣기로는 이 놈의 선배라 들었소.”

“예, 백 대표와는 군 시절 연이 닿았습니다.”

“이 놈이 얘기하기로 최 원장은 정직하고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 했지요, 나는 사실 지금 최 원장의 그 자리에 최 원장을 기용한 것 역시 이놈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얘길 했기 때문이오.”

“그러셨습니까···”

최원기 원장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백철웅이 대통령에게 자신을 추천했기에 자신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엔 내가 최 원장에게 사람을 추천할까 싶습니다. 인사청탁이 아니에요, 나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정원이 국민들을 위해 온 힘을 다했으면 하는 마음에 추천하는 것입니다.”

최원기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백철웅을 힐끗거렸다.

천혁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 백 대표가 국정원으로 들어갔으면 싶습니다. 예산을 늘리고 사람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정보수준을 갖춘 SKY의 정보원들을 빼돌리는 방법이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으음··· 자칫 민간과의 협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비밀리에 처리해야겠지요. 내가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SKY와 국정원이 밀접한 정보교류를 통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입니다.”

“······”

최원기는 우려가 되었다.

SKY라는 기업 하나가 국가를 넘어서는 힘을 지니는 과정에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착가하는게 있는 것 같소 최 원장.”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 다 착각하는 게 있지.”

“그게 무엇입니까 대통령님?”

“이미 SKY는 대한민국을 넘어섰다는 것.”

“······”

“그러나 SKY의 뿌리는 틀림없이 대한민국에 있소, 그러니 SKY는 싫든 좋든 대한민국과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고.”

천혁수는 SKY가 대한민국에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란 걸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국정원장이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이란 것은 여기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백철웅 역시 그렇기 때문에 천혁수에게 국정원장 자리에 최원기를 추천한 것이었다.

“국정원이 가진 공권력과, SKY가 가진 정보력을 합친다면, 앞으로 더욱 양질의 정보를 가져올 수 있지 않겠소? 모든 것은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일 것이오, 내가 그리 만들어 드리리다.”

최원기는 사실 자신의 승낙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높은 천혁수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역대 대통령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전대 대통령들을 줄줄이 감옥에 보내버리고 있는 천혁수가 아니던가.

“대통령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천혁수가 빙그레 웃으며 최원기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대가 보여준 믿음은 앞으로 발전해 나가는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예, 믿겠습니다. 대통령님.”

최원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지자 백철웅이 힐끗 천혁수를 바라보다 말했다.

“회장님께서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백부님.”

픽 웃는 천혁수.

“며늘아기의 뱃속에 있는 우리 증손주에게 주는 선물쯤으로 얘기를 하면 알아 들을게다.”

“예, 백부님.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래, 바쁠테니 일 보거라 나도 좀 쉬어야겠구나.”

“예.”

아주 간단하게.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이 SKY의 손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투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아이티.

사실상 대한민국의 자치령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한민국의 자치령이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하는 세력은 이제 아이티에 존재 자체를 하지 않았다.

어떻게 아냐고?

모래사장을 가로지르는 내 곁에서 함께 뛰고 있는 존재.

“좀 쉴까요?”

“코코넛 한잔 하시겠습니까?”

“좋죠.”

적당한 나무 그늘 아래 엉덩이를 데고 앉으니 이재형이 날듯이 나무를 올라 코코넛 두 개를 따 온다.

사이 좋게 각자의 발과 발 사이에 군용대검을 끼우고는 코코넛을 내려찍어 까기 시작했다.

“더 처리할 정치인은 없어 보입니다.”

존재 자체를 하지 않는 이유.

존재하던 것을 지워버렸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생했어요, 당분간 냄새가 좀 날텐데 천천히 지워갑시다.”

“아닙니다. 굶주리고 험난한 아이티인들에게는 축복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행이고요.”

“정 대표님께 소식은 들었습니다.”

“예, 러시아 놈들 얘기하시는 군요.”

“예, 회장님.”

“코드원이 빠질 순 없을테니 부르는 모양이군요.”

“운이 좋게도 정 대표님의 지휘에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힐끗 이재형을 바라보니 진심으로 영광으로 생각하는 듯한 자세였다.

“군 정보사 시절 정 대표님의 명성은 대단했습니다.”

“그렇군요.”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랑이도 제말하면 나타난다더니 호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어요?”

“코코넛 드시고 계셨습니까?”

호석이 양복바람으로도 털썩 모래밭에 엉덩이를 붙인다. 코드원 이재형이 코코넛을 들어 호석에게 흔드니 고개를 끄덕이는 그.

이재형은 다시 날듯이 나무를 올라 코코넛을 하나 따 온다.

“제법 오래 걸린다 생각했더니, 아무래도 러시아쪽에서 움직임이 있나봐요?”

호석이 빙그레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예, 회장님. 금일 오전 인천 발 SKY AIR의 항공기에 대한민국 자원봉사단체가 탑승했다는 보고입니다.”

“자원봉사라.”

픽 웃음이 절로 나오는 소식이었다.

굳이 한국에 며칠 머문다 싶었더니, 저런 작전을 짜고 왔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그 작전은 실패였지만.

“구성원들이 전부 어리다고요?”

“예,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도 있었고, 미성년자들도 제법 섞여 있었습니다.”

“하여간 무식한 새끼들.”

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상황이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 넣는 러시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백인을 제외한 인종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보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호석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아직도 세상은 대항해시대의 황금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처럼 보였다.

세계 각지에 인종차별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니까.

대한민국이라고 꼭 예외겠는가? 동남아에서 빈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주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차별대우하는 사람들은 어느 국가던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어린애들은 선 넘지.”

호석이 씁쓸하게 웃는다.

“어지간하면 살려주는 방향으로 갑시다.”

내 말에 호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법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그렇다고 우리 대원들 피해 입으면서까지 하지는 마시고요, 어디까지나 우리 대원들이 최우선이니.”

“예, 명심하겠습니다.”

“놈들 무기는 어떻게 됐죠?”

“며칠전 항공기로 이미 아이티에 도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기 자체를 못 가져오게 만들수도 있었지만, 나와 호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론에도 선전하기 좋은, 그러니까 러시아의 약점이 되게끔 만들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깔끔하게 숨겼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외양부터가 러시아인이 아닌 한 없이 한국인에 가까운 고려인들을 기용 한 것도 그때문일테다.

“자, 뒷감당은 푸틴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는 제대로 해결만 합시다.”

타라락.

코코넛으로 건배를 하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언제 먹어도 이 청량감은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 제 350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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