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49화 (349/458)

< 제 349화. >

굳이 내가 이곳 훈련소를 비우겠다 얘기하는 이유.

희망으로 가득찬 알렉세이의 저 눈을 절망으로 바꿔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희망의 끈이 내게 오길 바랐다.

“알렉세이.”

날 바라보며 의문을 띄우는 그.

“과연, 러시아에서 보낸 그 특전단이라는 놈들의 임무 목표가 무엇일까?”

“인명구출 및 호송 아닙니까?”

픽 웃음이 흘러나온다.

“과연 그럴까?”

떨리는 알렉세이의 동공, 그제야 호석도 그리고 그도 내 의중을 깨달은 모양이다.

“회장님께서는··· 러시아의 고려인 특전단이 암살을 위해 올 거라 생각하십니까?”

호석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렉세이가 언제 희망찬 표정을 짓고 있었냐는 듯 똥 씹은 표정이 되어서는 고개를 돌린다.

“내기 할까?”

“어떤 내기 말입니까?”

퉁명스러운 대답에 알렉세이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나는 놈들이 널 죽일 거라는데 걸지.”

“저는 그 반대에 베팅하면 됩니까?”

“그래, 내기에서 지는 사람이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걸로, 어때?”

“회장님께서 이기는 조건은 제가 죽는 것 아닙니까?”

“아니, 내가 네 죽음 만큼은 방해해주지.”

“으음, 각하께서 보내는 전사들은 호락호락 하지 않을겁니다.”

“풉.”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웃음.

호석의 얼굴에 잔뜩 어처구니 없음이 걸린다.

“흥, 스페츠나츠 전체가 달려 들어도 이곳을 점령 할 수 없을 걸?”

알렉세이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연방의 전사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전사들 중 최고라는 스페츠나츠 전체를 상대하겠다니··· SKY PMC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지나친 자만입니다.”

“과연 그럴까?”

“확신합니다.”

호석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럼 나와도 내기를 하겠나?”

“어떤 내기 입니까?”

“이곳에 온다는 고려인 특전단은 스페츠나츠는 아니지만, 약 3개분대 병력이 침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 그들을 우리 PMC는 1개 분대로 방어해주마.”

이번엔 반대로 알렉세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두 사내의 자존심이 부딪히는 것.

둘은 서로의 자부심의 스크래치를 용서 할 수 없다는 듯 뜨거운 눈빛을 주고 받는다.

누가 보면 알렉세이가 이곳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착각이 들 만큼.

“승자가 얻는 것은 뭡니까?”

내기에 응하겠다는 알렉세이의 태도.

“내가 이긴다면 3일을 고통속에 지내게 해 주지.”

“반대도 됩니까?”

“네가 이긴다면 7일을 고통속에 지내지.”

파격적인 조건.

그만큼 호석은 자신이 넘쳤다.

“승과 패, 그것은 어떻게 나눕니까?”

“우리 PMC 1개 분대가 러시아에서 보낸 3개 분대를 완벽하게 제압 혹은 제재 한다면 나의 승, 그 반대라면 너의 승.”

“내기 승낙하겠습니다.”

알렉세이의 두눈 가득 어떤 열망이 보이는 듯 했다. 아마도 자신을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속에 허우적거리게 만든 호석에 대한 복수심이 아닐까 싶었다.

“약속은 지키겠죠?”

호석이 알렉세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날 바라보았다.

“회장님이 보증인이 되어주십시오.”

“그러죠, 어려운 일도 아니고.”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 호석이 알렉세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알렉세이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불타오르는 눈을 하고는 호석을 바라본다.

“기대 되는군, 빠르게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어.”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째 나보다 더 불타오르는 둘이었다.

툭툭, 알렉세이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그의 방을 빠져나왔다.

바깥에 나오자마자 힐끗 호석을 바라보았다.

“1개 분대로 완벽하게 제압, 혹은 제재라니 조금 위험한 것 아닙니까?”

“해당 분대의 분대장을 제가 하겠습니다. 임시지만.”

“어우야, 관절 상해요 몸도 생각하셔야지.”

“하여간 러시아 놈들은 경상도 사람들보다 더 남자남자 해서 문제입니다. 제 놈들이 제일 센놈인 줄 알아요.”

“뭐, 자부심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최정예 분대에 분대장으로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회장님.”

“우리쪽에 피해는 없을 거라 확신하시나요?”

“제 팔을 걸겠습니다.”

호석이 이렇게까지 얘기한다면, 만약 내기에 패하거나 이겼더라해도 우리쪽에 회생불가능 할 피해를 입는다면 정말 팔이라도 하나 내놓을 게 분명했다.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런건 필요 없습니다만.”

“그만큼 자신있다 말씀드린 겁니다.”

“좋습니다. 기대하죠.”

“예, 회장님.”

***

끼이익, 끼익.

비행기의 바퀴가 활주로와 거친 마찰음을 내며 정지한다.

이윽고 착륙을 완료한 비행기에서 많은 동양인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금발의 푸른눈을 가진 러시아인들 사이로 한눈에 보아도 확 눈에 띄는 외양을 가진 동양인들.

그들은 바로 차디찬 러시아를 지나 한국에 비밀스럽게 도착한 러시아 소속 고려인 특전단 훈련소장 빅토르 최와 고려인 특전단의 단원들이었다. 붙어서 내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따로 멀리 떨어져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그들의 여권은 러시아인의 여권이 아닌 한국인의 여권이라는 것.

어째서 고려인 특전단이 한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이 붐비는 국제공항의 입국심사대에서 빅토르 최를 시작으로 모든 특전단이 한국 여권을 내밀며 ‘내국인 입국심사’에 응하고 있었다.

여권은 많은 과정을 거쳐 위조인지 진짜인지를 확인하기 마련,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들의 여권은 무사 통과였다.

입국게이트를 벗어나자 러시아 대사관에서 미리 준비 해 놓은 버스에 몸을 싣는 그들.

“며칠 푹 쉬고,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 질문 있나?”

“없습니다!”

태어나 비행기를 처음 타봤을 어린 청년들 그리고 소년, 소녀들.

그들은 휘황찬란한 서울의 야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기가 남한이야?”

“그러게 저 건물 봐, 엄청 높아!”

“모스크바에서도 저런 높이의 건물은 본적이 없어.”

“저 건물들은 뭐지?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엄청 높게 지어져 있는데?”

“저런게 바로 아파트라는 거야, 시가지 전술 시간에 집중을 했어야지.”

“아, 저런게 아파트라는 것이군, 모스크바의 아파트와는 많이 다른걸?”

“우리는 땅이 넓잖아? 여기 한국은 땅이 좁다는 군, 그래서 높게 짓는거야 면적대비 인구가 많으니까. 물론 수도에만 국한 된 것이겠지만.”

“여기에 우리 졸업한 선배들이 많이 일을 하고 있다며?”

“임금 수준이 확실히··· 모스크바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이제 성인이 되어 특전단을 벗어나야 할 시기가 도래할 단원들의 대화에 빅토르 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 보이지 않는 척 두 눈을 감고 있지만 그 역시 한국의 도로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매우 궁금했었다. 그러나 소장이라는 위치, 지휘관이라는 위치 때문에 부동심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끼이익.

“도착했습니다.”

“예?”

빅토르가 놀란 듯 눈을 떴다.

이제 겨우 1시간여를 차량으로 이동했는데 벌써 도착했다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곳은 한국이라 땅이 좁죠, 숙소는 편안 할 겁니다. 이동하시죠.”

“아,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너무 취하지 마세요,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질테니.”

빅토르 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단원들을 인솔하기 시작했다.

“모두 호텔로 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린 단원들은 러시아에 비하면 더운 날씨에 두꺼웠던 점퍼를 벗어던졌다. 10월의 대한민국은 선선한 가을 날씨로 러시아에서도 제법 혹독한 기후속에 살던 특전단원들에게는 한 없이 포근하기만 한 날씨였다.

“정말 살기 좋은 날씨군.”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웃을 청춘들.

별 것 아닌 일에도 헤벌쭉 싱글벙글 좋은 얼굴이 된다.

빅토르가 막 입을 벌려 호통을 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내일이면, 혹은 모레면.

저 밝은 얼굴을 가지고 있던 소년, 소녀. 그리고 청년들이 살인귀로 변해야 할 것이었다. 보고에 따르면 SKY PMC의 아이티 훈련소의 병력규모는 약 5천여명.

5천여명 전체를 상대하지는 않겠지만, 최악의 경우 전멸을 면치 못할 만큼 어려운 작전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진실이었다. 어쨌든 바딘 국장 역시 스페츠나츠 일개 중대의 전투력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으니 말이다.

“쯧.”

대사관 직원이 빅토르에게 다가와 말했다.

“며칠 머물지 않겠지만, 편안하게 쉬다 가십시오 본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사일테니.”

“고맙습니다.”

***

요즘부쩍 바쁜 일상을 보내는 천혁수가 방금 자신이 들은 보고가 사실인지 확인을 위해 고개를 들어 철웅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소리야?”

“국정원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따로 PMC 정보부에 채널을 둔 우리팀은 러시아쪽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아 챌 수 있었다?”

“예, 백부님.”

지금 이곳은 대통령의 집무실이 아니었다. 철웅은 어쨌든 외부인이기 때문에 함부로 청와대 집무실을 오고갈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현재 천혁수 대통령은 공무를 수행하는 시간이 아닌, 사적인 시간에도 지금처럼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 하는 놈들인데?”

“회장님이 계신 아이티로 들어갈 작정인 것 같습니다.”

“러시아 국적의 스파이 30여명이 한국인으로 위장해서 아이티로 입국한다?”

“예.”

눈썹을 꿈틀 거린 천혁수.

“녀석도 알고 있더냐?”

“제게 보고가 왔다는 것은, 회장님께도 같은 보고가 들어갔을 겁니다.”

“전화 연결 해 봐.”

“예.”

철웅이 품에서 커다란 위성전화기를 꺼내 다이얼을 몇 개 누르고는 천혁수에게 내밀었다.

-네, 여보세요.

“이놈아, 나다.”

-예, 할아버지. 안 주무세요? 한국 지금 늦은시간 아닌가?

“됐고, 소식은 들었느냐?”

-어떤 소식이요?

“러시아 스파이놈들이 한국에 잔뜩 들어와 있다는데 말이다.”

-아아, 들었습니다. SKY AIR에서 항공권도 예매 했던데요?

“러시아 놈들이?”

-예.

“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천혁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스파이 놈들이 SKY AIR를 이용해 아이티로 날아간다. 참 아이러니 한 상황이 아니던가.

“놈들이 분명 아이티에서 어떤 수작을 펼치기 위해 가는 것일텐데, 어째서 가만히 있느냐?”

-예상으로는 우리가 데리고 있는 러시아 포로를 제거하기 위함일 것 같습니다.

“네 놈이나 우리 똥생이들은 관계가 없고?”

-미친놈들이 아니라면, 감히 가족들을 건드리겠습니까?

“흐음, 러시아 놈들도 북한 못지 않은 미친놈들이라 뭐라 얘기하기가 어렵구나.”

-어쨌든, 아마 그 러시아 포로의 입을 두려워하는 것이겠죠. 제법 많은 비밀을 알고 있을테니까. 듣기로는 1급 요원이라고 하더군요.

“1급 요원?”

-러시아는 요원들의 등급이 특급 최상위부터, 3급 최하위까지 구분된다고 합니다.

천혁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지금 네가 사로잡은 그 포로놈은 1급 요원이고?”

-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러시아 스파이놈들은 어떻게 해 줄까? 보기에는 고려인들의 후손이라 한국인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더구나.”

-그냥 가만히 두셔도 됩니다.

“자신 있다?”

-저보다는 정호석 대표가 더 자신있어 하던데요?

“만에 하나, 천에 하나라도. 위험한 일에 내 증손주들은 없어야 할 것이다. 며늘아기도 당연하고.”

-그럼요.

“영, 신뢰가 되질 않는구나.”

입 밖으로 꺼내는 말과 다르게 천혁수의 표정은 한 없이 부드러워 보였다. 얼굴만 봐도 그가 얼마나 손자 천우진을 신뢰하고 있는지 느껴지는 모습.

-에이, 또 서운한 소리 하신다. 하여간 걱정하지 마셔요 안 그래도 러시아 놈들이 아이티 쪽에 무기 반입 하려고 용을 쓰고 있는 것도 애써서 무시하느라 힘드니까요.

“무기 반입도 걸렸더냐?”

-예, 모르는 척 하느라 혼났습니다.

“하, 제대로 하는 일이 없구나 러시아 놈들.”

-에이, 우리 PMC가 일을 제대로 하는 거죠.

“쯧쯧.”

갑자기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천혁수가 도끼눈을 뜨고는 혀를 찬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아니, 사설 정보업체라 불러도 될 PMC 정보부도 파악하는 일을, 도대체 우리나라 최고라 일컫는 국정원 놈들은 뭘 하고 있을까 싶구나.”

-아하, 저는 이만 끊습니다 할아버지.

“그래, 일 보거라.”

싸늘한 얼굴이 된 천혁수가 전화기를 철웅에게 건냈다.

“철웅아.”

“예, 백부님.”

“아무래도 네 놈도 나랏일 좀 해야겠구나.”

“으음··· SKY의 삯을 받고 있습니다 백부님.”

“그것도 계속 받아 먹고, 우리 국민들의 혈세 중 일부도 받아 먹거라.”

“국정원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아무래도 그 놈들 일 하는 꼬라지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국정원장을 호출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천혁수.

“지금 바로 불러 와.”

“예, 백부님.”

< 제 34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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