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47화 (347/458)

< 제 347화. >

브리핑 실 내부로 들어온 알렉세이는, 임무를 받았다는 것에 잔뜩 들떠있는 앳된 청년들을 쭉 훑어 보았다. 절반 이상이 성인식을 치뤘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그렇지 않기에 가슴 한켠에는 묵직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바딘에게서 SKY PMC란 곳에 대한 정보를 받고나서 그 죄책감은 무게를 더했다.

SKY PMC.

아프리카 내전국들에서는 물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미국과 UN군, 프랑스 군에게 고용된 용병집단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망자’가 없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전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임무 달성률 98퍼센트라는 말도 안되는 성과를 올리고 있는 용병집단이었다.

어째서 100퍼센트가 아니고 98퍼센트냐 하면, 그들은 의뢰받은 내용과 일치 하지 않는다면 미련없이 등을 돌린다고 전해진다. 또한, 의뢰내용에 관계없이 해당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인도적인 일을 맞닥드린다면 또 미련없이 철수를 감행한다고 보고 받았다.

마치 UN평화유지군처럼 명분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얘기에 헛웃음이 지어졌다.

여타 PMC의 용병들은 ‘돈’에만 움직이는데, SKY PMC는 그렇지 않기 때문.

바딘이 보내온 정보에는 ‘천우진의 사병’이란 단어가 몇 번 언급되었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다.

“크흠.”

알렉세이가 헛기침을 하며 브리핑 실 단상위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자신의 헛기침에 잔뜩 긴장에 부동자세로 정면을 바라보는 청년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다국가, 다양한 군에서 의뢰를 받아 그 의뢰를 성실히 수행하는 PMC. 그리고 그런 PMC의 훈련소를 침투하는 일.

전장의 잔뼈가 굵은 교관들과 그런 교관들이 진두지휘 할 훈련소는 하나의 군부대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군부대가 아니라 전장에 이골이 난 강병들이 주둔하고 있는 주둔지라 보는것이 옳을 터.

바딘이 ‘스페츠나츠’를 만만하게 생각해서 그들과 PMC를 비교한 것은 아닐테다.

바딘의 예상으로는 아이티에 있는 SKY PMC의 전투력을 스페츠나츠 일개 중대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빅토르는 불안감을 숨길 수 없었다. SKY PMC가 보여주는 전과가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었다.

“자, 임무 브리핑 시작하도록.”

교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녹색 칠판 앞에 섰다.

여태껏 다양한 장비를 보급 받지 못했기에 녹색 칠판에 분필을 든 교관은 칠판에 분필로 필기를 하며 임무의 전 과정을 브리핑 하기 바빴다.

특전단의 차줄된 단원들 역시, 제 책상 앞에 있는 노트에 몽땅연필로 열심히 임무 브리핑을 받아 적기 시작한다.

“하.”

실소가 터져나오는 상황.

빅토르는 자신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작게 낸 소리지만 참지 못한 자신을 탓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SKY는 PMC에게도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고작 몽땅 연필과 누런 갱지위에 필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낸다는게 체급이 맞는 것인지 헛갈리기 때문이었다.

왜 모든 국가들이 미국에게 긴장하는가.

어째서 미국이 움직이면 눈치를 보는가.

그것은 바로 규모의 차이 때문이었다.

물론, 러시아 역시 한해에 국방비로 쏟아붓는 자금이 어마무시했다.

그러나 괜히 ‘천조국’이라 부르는 미국이 아니었다. 그들이 국방비로 쏟아붓는 예산은 놀랄, 노자가 절로 외쳐지는 금액이었다.

당연히 많은 금액을 쏟아붓는 만큼, 많은 아웃풋이 발생하고 그 덕에 아직조 세계 최고의 패권 국가는 미국이지 않은가 말이다.

즉, 투자를 해야 양질의 아웃풋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 특전단의 아이들은 실전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다. 물론 실전같은 훈련을 거치기는 했으나 그것 역시 한계가 있었다.

총과 실탄이야 흔해 빠진 러시아에서 아낌 없이 투자 할 수 있었으니 사격술은 대단할테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첨단장비의 부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빅토르 최.

‘이제와서 첨단 장비를 훈련시킨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

당장 임무가 코 앞인 상황, 새로운 장비를 그들에게 훈련시키는 것 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푸틴은 당장의 성과를 바라고 있었고, 특전단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고, 양질의 훈련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이번 임무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의무까지 있는 빅토르.

열정을 다 해 작전 내용을 듣고 있는 저 아이들에게 고려인 특전단 전체의 흥망성쇠가 걸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서, 너희들은 이곳 아이티에 ‘선교인단’ 혹은, ‘자원봉사 단체’로 위장해 잠입한다.”

교관이 칠판 위에 몇 개의 사진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당 사진을 아이들에게도 한장씩 나눠주기 시작한다.

“사진에도 쓰여져 있겠지만, 먼저 이 한국인. 이자가 바로 SKY그룹의 오너인 천우진으로······”

교관이 한창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는데 불쑥 브리핑실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훈련소장 빅토르 최.

정보총국장 바딘은 멀리서 손짓으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잠시 브리핑을 멈춘 교관이 훈련소장을 바라본다. 빅토르는 계속 진행하라는 듯 손짓 하고는 빠르게 바딘에게 다가가 경례를 올린다.

“얘기좀 하지, 소장.”

“예, 국장님.”

브리핑 실 바깥으로 나간 바딘은 뒤따라 나온 빅토르에게 말했다.

“임무 준비는 문제 없나?”

“예, 특전단원들은 전혀 문제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뭐지?”

“무기는 어떻게 보급 받습니까?”

“그 부분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 해 줄 테니, 너는 걱정할 것 없다. 지휘관은 정해졌는가?”

“제가 직접 갈 생각입니다.”

“흠, 그렇군. 그렇다면야 더할나위 없지.”

적당한 발코니에 나간 바딘이 입에 담배를 물며 말했다.

“그때 그 소녀 말이야.”

빅토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거이거, 눈치가 이렇게 없어서야. 각하께 차를 따라주던 아이 말이다.”

“아, 예. 성인식을 치뤘기에 소녀가 아닙니다. 국장님.”

“쯧, 어쨌든.”

“예, 말씀하십시오.”

“그 아이를 각하께서 호출하셨다.”

빅토르의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뭐지 그 표정은?”

“아닙니다.”

“이번 임무에 그 아이도 차출되는 것이었나?”

“예, 성인식을 끝낸 아이들 모두가 차출됩니다.”

“그 아이는 빼, 그리고 다른 아이를 넣으면 될 일 아닌가?”

우습게도 성인식을 치룬 아이와, 치루지 못한 아이의 전투력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육체적인 차이도 차이지만, 정신적인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인간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는 것 하나로도 그 성숙함이 늘어난다. 그런 기본을 바딘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답이 없군.”

“예··· 진행하겠습니다.”

“임무에 자신이 없나?”

“아닙니다.”

“좋아.”

툭툭, 담배불을 턴 바딘이 빅토르를 똑바로 바라보고는 말했다.

“임무 내용중 요인 구출과 호송이 있지?”

“예, 국장님.”

“내가 볼때, 여기 특전단이 그 정도 전투력을 지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할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는 바딘.

“크흠, 자신 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여기 아이들을 다 죽일수도 있는 일 아닌가?”

바딘의 말이 맞았다. 구출과 호송은 필수적으로 추격이 붙기 마련이었다.

“해서, 그 요인을 제거 해, 그리고 탈출을 하는게 단원들이 더 안전하지 않겠나?”

“듣기로는 정보총국 소속의 요원이라 들었습니다.”

“그렇지.”

“요원을 버리십니까?”

“불가피한 상황 아니겠는가?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1급 요원은 그만큼 우리에게도 위험하다고.”

“그렇군요···”

빅토르 최의 얼굴에서 죄책감을 읽은 바딘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는 우리 정보총국의 1급 요원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알고 있는가?”

“모릅니다.”

“임무에 나서지 않을 때, 그들은 어지간한 마피아 보스들보다 더한 대접을 받으며 삶을 영위한다. 그 이유는 언제든 그들의 목숨을 이 국가가 뺏아 갈 수 있다는 뜻이야. 그들은 그걸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그 요원이 죽음을 받아들일테니 걱정하지 말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죽는 순간까지 애국할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알 것이다. 그는 우리 연방의 전사니까.”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등을 돌린 빅토르의 등 뒤로 바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전단원들 역시, 그렇게 교육하도록.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임무에 문제가 없는 법이니까. 군사작전은 으레 그렇네.”

빅토르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대답 없이 그를 스쳐지나갔다.

정보총국장 바딘이 이곳 특전단 아이들에게 ‘정’이란게 있을리 없었지만, 빅토르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이곳의 소장일을 도맡아 한지가 벌써 18년이었다.

그 18년동안 갖난 아이들부터 성인식을 치룬 아이들까지 손수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빅토르의 존재는 대부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빅토르 역시, 아비로서 아이들을 수양딸, 수양 아들처럼 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훈련은 혹독하기 그지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아이들을 키웠었다.

그런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 넣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심지어 윗대가리라는 놈은 아이들을의 목숨을 무슨 파리목숨 취급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빅토르의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요원을 버리는 것 처럼, 우리를 버리진 않겠지···’

그가 굳이 최전방에서 지휘관으로 작전에 참여하는 이유.

그것은 혹시나 연방에서 ‘팽’당해 아이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자신은 훈련소장이니 어쩌면, 조금이나마 구출에 힘써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후우···’

***

볼가강 인근의 군사시설을 빠져나오는 육중한 트럭.

번호판이나 트럭에 쓰여져 있는 각인이 따로 없는 것으로 보아, 겉보기만 군용트럭이지 그것은 민간트럭이었다.

그런 트럭 앞에 불쑥 검은색 인영 하나가 튀어나간다.

끼이이이이이익.

당연히 얼어붙지 않은 도로 덕분에 트럭은 멈춰 설 수 있었다.

“#%$^#$%^#$%^”

트럭기사가 트럭에서 내려 욕설을 퍼붓는다.

“아따 코쟁이 새끼, 이스키 저스키 하기는, 운전 그래 혀서 되겄냐?”

“$%^%^#$%#$”

“잉, 십스키 개스키, 시바스키다 이스키야.”

황당한 얼굴이 된 운전기사가 자꾸만 이상한 말을 하는 동양인을 빤히 바라본다.

동양인이 히죽 웃으며 품에서 뭔가를 꺼내려하자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는 운전기사.

“아따, 총 아니여. 짜슥이 쫄기는.”

김장원의 얼굴이 워낙 험악하니, 갱스터 저리가할 비주얼 때문에 운전기사는 자연스럽게 겁을 먹은 상황이었다. 품에서 지갑을 꺼낸 김장원이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먹히는 100달러짜리 지폐 한움큼을 집어서는 트럭 기사에게 내밀었다.

“몇 가지 물어볼게 있는데, 어때?”

그리고 김장원의 입에서는 유창한 러시아어가 터져나왔다.

놀란 얼굴이 된 트럭기사가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리더니 김장원의 손에 있는 100달러자리 뭉치를 품에 갈무리한다.

“추운데 이곳에서 할 건 아니지? 여기는 택시도 없다고 친구, 내 차로 이동하지?”

“아따, 이놈 화끈허네잉, 그러자고잉.”

김장원은 어느새 웃으며 트럭에 오르고 있었다. 운전기사 역시 활짝 펴진 얼굴로 차량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서 대포같은 카메라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독거미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 제 347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