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46화 (346/458)

< 제 346화. >

러시아 볼가강 인근, 고려인 특전단의 연무장.

며칠 전 푸틴과 함께 정보총국장 바딘이 다녀간 그곳의 훈련소장 빅토르 최.

대위의 계급장을 버리고 새롭게 소령의 계급이 선명한 전투모를 쓰고 연병장에 나타난 그가 커다랗게 소리쳤다.

“제군들!”

대답은 없고 발을 구르는 제식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어린 소녀, 소녀들, 혹은 앳된 청년들.

“드디어 본국이 제군들의 노력을 인정했다!”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들이 된 특전단.

“해서, 첫 임무를 받았다.”

잔뜩 기대감이 그들의 얼굴에 꽃 피운다.

이제 대우가 바뀌는 것일까? 더이상 감자따위로 끼니를 때우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맛 대가리는 더럽게 없고, 비릿내가 가득한 싸구려 단백질 파우더는 이제 안녕인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얼굴들.

“호명하는 제군은 앞으로 나오도록.”

빅토르 최의 곁에 있던 교관이 이름을 하나씩 호명할 때 마다, 아이들 사이에서 훈련성과가 높고 실력이 좋기로 소문난 청년들이 속속들이 불려나온다.

이어서 아직 성인식을 치루진 못했지만, 성인이란 나이에 근접한 아이들까지 호명되며 약 40여명의 특전단 구성원들 중, 무려 절반 가까이 앞으로 나왔다.

“이상 21명은 자랑스럽게도 본국에게 임무를 하달 받았다.”

임무에 차출 받지 못한 아이들은 울상이 되었다. 그들의 대우가 별반 달라질 것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이 생긴 듯 보였다.

그러나 감히, 교관이나 훈련소장에게 이렇다 할 한 마디를 뱉지 않는다.

그것만 보더라도 잔뜩 반항심이 가득할 어린 나이에 통제에 따르는 법을 학습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그 통제의 과정에서 제법 혹독한 훈련이 있으리란걸 알려주는 방증과도 같았다.

“너희의 임무는 위장 잠입, 요인 암살, 요인 경호 및 호송 임무다. 자세한 작전은 따로 브리핑실에서 진행하도록 하지, 제군들은 지금 즉시 브리핑실로 이동한다.”

빅토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을 인솔할 교관이 크게 소리친다.

“이동!”

차라락.

발을 구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소년, 소녀, 청년들이 교관을 따라 이동을 하고 남은 소녀 소년들을 바라보는 빅토르 최.

“너희들에게도 기회는 있다. 먼저 임무에 나서는 동료들이 임무를 빈틈없이 수행 할 수 있도록 응원을 아끼지 마라. 전방에 힘찬함성 5초간 발사.”

““이야야야야야야야야!””

아이들의 함성에 질투와 분노, 걱정이 담겨 있다는 걸 느낀 빅토르가 씁쓸한 웃음을 짓고는 손을 들어올려 주먹을 쥐니, 함성이 멈춘다.

“좋다. 제군들의 함성은 잘 들었다. 앞으로도 정진 할 수 있도록.”

차라락.

다시 한 번 대답은 발을 구르는 것으로 대신한 소년, 소녀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던 빅토르가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말을 잇는다.

“또 하나, 너희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아이들은 궁금증을 가득 머금은 눈으로 빅토르에게 집중했다. 멀리 빅토르가 손짓하자. 군용트럭 한 대가 정문에서 연병장으로 들어온다.

끼이익.

멈춰선 군용트럭에서는 앳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머리색이 모두 검은색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인들의 후손이 분명했다.

“신병들이다.”

수근수근.

빅토르의 말에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그럴게 여태껏 ‘신병’은 한 달에 한 두번, 어쩌면 1년에 한 두번 있는 아주 작은 행사에 불과했기 때문, 예산이 한정적이기에 품을 수 있는 대원수가 정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흔히 ‘졸업생’이 있어야만 신병을 받던 시스템이었는데, 이번 달에는 졸업생이 없었다. 그래도 신병이 들어 왔다는 것은 예산이 늘어났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고, 그것을 아는 아이들은 달라질 식사를 기대하며 자연스럽게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앞으로 신병들의 교육에 최선을 다하도록.”

차라락.

잔뜩 겁에 질린 고려인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마치 장난감을 바라보듯 쳐다보는 특전단 소년, 소녀들.

빅토르가 교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16세 이상의 신병들은 따로 교육을 진행 해, 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은 단원들이 알아서 잘 이끌도록 멘토를 붙여주도록.”

“예!”

“그럼 난 브리핑실로 가도록 하지.”

“예, 소장!”

***

조명이 많지 않아 처음 이곳을 방문한다면 역시나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이 적당할 아이티 소재의 PMC훈련소 지하.

나도 처음은 이곳의 분위기가 흉흉하다고 느꼈지만 그것도 며칠을 오가다보니 제법 적응이 되었는지 이제는 별것 아니라는 듯 익숙하기만 하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저 멀리 끝방에서 들려오는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이곳의 설립 목적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본래 이런 용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꼭 아니라곤 할 수 없으려나.”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PMC 대원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암담한 절규가 메아리치던 방의 철제 문을 열어준다.

끼이익.

듣기 싫은 경첩 소리와 함께 열린 철문.

그 안에 의자에 앉아서는 다 죽어가는 초췌한 얼굴의 사내 알렉세이가 보인다.

“오셨습니까.”

호석의 흰색 와이셔츠가 다 젖은 채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다.

“어때요?”

고개를 젖는 그.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알렉세이라는 놈이 가진 충성심.

무려 3일을 잠을 재우지 않고 고문했다.

그래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내게 보이는 알렉세이의 붉은색 적대의 아우라는 꺼지지 않았다. 다른 국가의 정보원들은 이제 내게 녹색 신뢰의 아우라를 뿜어내는데 아직도 알렉세이 이 놈 만큼은 붉은색 적대의 아우라가 그대로였다.

“이러니 탐나지 않을 수가 있나.”

내 사람으로 만들면 참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놈의 애국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봐 알렉세이.”

내 입에서 영어가 흘러나오자 그가 다 죽어가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고생했다.”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는데 몸이 흠칫흠칫 떨린다. 알렉세이는 극한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가까스로 제 멘탈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그의 육신은 고통에 물들어 각인되어 있음에도 정신력으로 입을 열지 않는 것.

인정해줘야 했다. 나와 적대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이런 정신력이라면 인정해줘야 함이 옳았다.

“이제 그만 하죠, 대표님.”

“쯧··· 그렇습니까.”

“예,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미친 나치들도 아니고.”

“후우··· 알겠습니다.”

비인도적으로 세상을 삼킬 생각은 없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절대자가 되고 싶은 것이지 힘으로 찍어 눌러 군림하고자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군림해야 할 상대들은 각국의 정상들 뿐, 나머지 일반인들에게는 마음으로 군림해야 할 테다.

이제와 무슨 가식이냐 할 테지만, 나는 실제로 아무에게나 이런 고문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문은 필요 없고 정보도 크게 필요 없었다. 그런 것들이 없어도 알아서 PMC정보부와 대한민국 국정원은 양질의 정보를 가져온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그게 모자라다면 돈을 쓰면 그만이었다.

각국의 지도부 인사들 중 아직 돈을 싫어하는 놈들을 만나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돈을 보고 흔들리지 않았다면 놈의 정신력이 대단하거나 욕심이 없거나, 청렴결백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액수가 부족할 뿐이었다고 난 생각한다.

100만달러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천만 달러를, 천만달러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1억 달러를 제시하면 될 일이었다. 그것을 위해 SKY는 지금도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열심히 회전하면 돈을 일 시키는게 아니겠는가.

“대표님도 고생하셨습니다. 휴가 드릴까요?”

“하하, 괜찮습니다. 오늘만 좀 쉬겠습니다.”

“그러세요.”

알렉세이가 고생 한 만큼, 그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듣고 있었을 정호석 대표 역시 고생했을테다. 가장 옆에서 영혼을 울리는 처절한 절규를 매분, 매초 듣고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 실제로 이 방의 경계 임무를 배정받은 대원들은 4시간에 한번씩 교대로 진행했다.

본래 다른 경계 임무는 최대 12시간이 1회 근무시간인 점을 고려한다면 업무의 강도가 최소 3배 이상이라는 뜻이 될테다.

“후우···”

한국말을 드문드문 알아듣는 알렉세이.

그렇기 때문에 나와 호석의 대화를 듣고 대충 자신의 처지를 유추해냈을 터.

저 안도의 한숨은 그런 의미에서 내뱉은 것일테다. 원래라면 그런 것 조차 숨겼을 놈이지만, 지금 지칠대로 지쳐 있기에 그의 진심이 바깥으로 세어나왔다고 보는게 옳았다.

“그래, 안심해도 좋아, 네 놈에게도 당분간 휴가가 주어 질테니.”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린 알렉세이가 내 눈을 빤히 바라본다.

“질문을 해도 됩니까?”

비명을 질러대느라 다 쉬어빠진 목소리로 끊어지듯 말을 뱉은 알렉세이, 내가 고개를 주억거려주자 다시 한 번 피가래가 끓는 목소리로 묻는다.

“우리 연방에서 연락은 없습니까?”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제 놈은 이곳에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과연 본국은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연락도 없었다. 다른 국가들은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왔지, 가령 특수법안을 통과시켜 세금을 절감하게 해준다던가, 아니면 큰 틀에서 미래의 이익을 보장해준다 하는.”

“우리 연방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서운함이 잔뜩 묻어 나온다.

“네가 아는 러시아는 어때? 그런걸 할 놈들로 생각하나? 나라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글쎄. 고위관료들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잘못을 하고 인정하는 꼴을 본적이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아쉽나?”

애써서 고개를 흔드는 알렉세이.

떨리는 그의 동공만 보더라도 그가 누구를 위해 이 고통을 견뎌냈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내게 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건네는 질문이었다.

“푹 쉬어 두라고, 어쩌면 바빠질지도 모르니까.”

무슨 뜻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알렉세이.

“네놈이 입을 열진 않았지만, 처음 이곳에 온 목적을 분명 밝히지 않았나? 러시아에서만 이렇다 할 화해의 제스쳐가 없으니, 나는 네 놈을 이용해 언론에 나갈 생각이야. 내가 러시아에게 바라는 것들이 몇개 있거든.”

“연방이··· 인정 할 것이라 생각합니까?”

어깨를 으쓱였다.

인정을 하던 하지 않던.

어쨌든 감히 내게 잽을 날렸으니 스트레이트나 훅 정도는 한 방 먹여줘야 SKY고 천가이며, 천우진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했다.

“맞고만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지, 한 대를 맞았으니 최소한 두대는 때려야지 않겠어?”

“······”

말이 없는 알렉세이를 뒤로 하고, 지친 호석을 일으켜 세우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 양 팔꿈치를 제 허벅지 언저리에 대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쥔 알렉세이는 아마도 저 자세로 한참의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었다.

철컥.

문이 닫히고 경계를 서던 대원에게 말했다.

“양질의 음식과 휴식을 주세요. 고생했으니.”

“으음.”

대원은 내 명령에 의문이 생긴 모양이다.

어째서 SKY에게 해를 입히려는 존재에게 그런 대우를 해주냐는 듯.

“멋지잖아요.”

“예?”

“그 고문을 버텨내고 제 신념을 지키는 사람. 멋있지 않습니까? 존경스럽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요?”

대원이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예, 회장님. 멋집니다.”

“멋진 놈이니까, 우리도 나이스하게 대우 해 줍시다. 그래야 우리가 더 멋져보이지.”

대원이 내 농담에 픽 웃음을 흘린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고생하세요.”

앞장서서 걷는 내게 다가온 호석이 물었다.

“러시아에서 이렇다 할 제스쳐가 없다는 게 확실합니까?”

“예, 아직 별 다른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으음.”

“왜 그러시죠 대표님?”

“놈들이 조용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정보원을 우리가 사로잡았는데 말이죠.”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직 PMC 정보부는 러시아에게서 이렇다 할 징조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

“그러게요, 우리 푸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놈들의 자존심 상, 분명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을겁니다.”

나는 걱정말라는 듯 호석의 어깨를 두들겼다.

“설마하니, 여기 훈련소에 군사들이라도 보내겠습니까?”

호석 역시 말도 안된다는 듯, 하하 거리며 웃는다.

“대가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는 이상, 그런 무리수를 두지는 않겠지요. 스페츠나츠 일개 중대 이상이 아니라면 감히 비벼보지도 못할 겁니다.”

“그런가요?”

“그럼요, 이곳 아이티의 PMC전부라면, 스페츠나츠 전체도 능히 상대해 낼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호석의 말.

“그럼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지켜보도록 하죠.”

“예, 회장님.”

< 제 34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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