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45화. >
다음날.
푸틴이 바딘과 함께 볼가강 인근에 헬기를 착륙시켰다.
"여기라고?"
"예, 각하."
"쯧쯧."
절로 혀가 차지는 상황.
훈련소라기 보다는 거의 2차 세계대전 때 포로 수용소를 보는 듯한 비주얼의 낡은 건물 하나.
그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고려인들이 건물 바깥 연병장에 집합해 오랜시간 숙달되어 있는 제식을 펼쳐보인다.
"평균 연령대가 어때?"
"가장 어린 아이는 9살이고,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24살입니다."
"50년대부터 실시한 계획인데, 그럼 나머지들은?"
"30세가 넘어가면 임무를 종료 시키고 사회로 내보냅니다."
"확실해?"
"서류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팍 인상을 찌푸리는 푸틴.
바딘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서류는 그렇고, 실제로도 그런지는 모른다?"
"예, 각하. 죄송합니다."
푸틴이 인상을 찌푸리고 바딘을 한번 째려보더니 연병장을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러시아 군의 제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고려인 소년, 청년들.
제식 수준이 수준급에 달해 있으니 그들의 훈련이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제법 강병이네."
푸틴의 칭찬에 바딘의 뒤쪽에서 조심스럽게 따라오고 있던 훈련소장의 표정이 밝아진다.
"제식만 이런 건 아니겠지?"
"보고용으로 제작한 영상이 따로 있습니다. 어젯밤, 급하게 제작해 야간 훈련과 오전에 했던 아침훈련이 담긴 영상입니다."
"오, 그래?"
훈련소장이 바딘을 앞질러 푸틴의 곁에 바짝 다가간다. 바딘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지만 그를 만류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금 푸틴의 귀와 눈은 훈련소장에게 향해 있기 때문.
"바로 티타임을 즐기시며 보실 수 있도록 준비 해 놨습니다."
"오, 좋아."
끼이익.
낡은 경첩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나무에 철판을 덧댄 두꺼운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며 드러난 내부는 낡아 있었지만 제법 관리를 철저하게 한 것인지 겉보기보다 깨끗한 느낌을 준다.
"관리를 열심히 했군."
"감사합니다."
훈련소장이 안내 한 곳에 앉으니, 작은 스크린과 함께 다과상이 준비되어 있는 테이블이 보인다. 그리고 마치 시종처럼 서 있는 소녀들이 보인다.
"저 아이들은 뭐지?"
"훈련소의 소녀 첩보원들입니다."
"몇살?"
"가장 어린 아이가 19살로 올해 성인식을 치뤘습니다."
"그렇군."
"금발의 푸른눈의 아이들만 보다 동양인을 보니 신선하군."
푸틴은 잔뜩 만족스럽다는 듯 소파에 앉아 소녀들의 시중에 몸을 맡긴다.
훈련소장은 기분이 좋은지 잔뜩 흡족한 얼굴로 얼른 빔프로젝터를 조작해 아침에 찍어둔 영상을 실행한다.
-타다당, 타다당.
야간 사격술 영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호오."
푸틴의 입에서 감탄성이 튀어나온다.
이어서 볼가강에 뛰어드는 검은색 복장의 소년, 소녀들.
두려움과 추위를 잊었는지 차디찬 물 속에서도 수영을 하며 군데군데 떠 있는 표적을 향해 권총을 쏴댄다.
짝짝짝.
푸틴이 감탄의 박수를 터뜨렸다.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과연, 제식만큼 아주 훌륭한 사격술이야."
고개를 돌려 바딘을 바라보는 푸틴.
"앞으로 예산을 좀 더 투입해 주라고."
"예, 각하."
훈련소장의 얼굴이 활짝 폈다.
"자네가 여기서 근무한 게 얼마나 되었나?"
"올해로 18년째입니다."
푸틴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18년.
강산이 변했어도 서너번은 변했을 시간. 그 긴 시간을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고려인 특수군 훈련소를 아무도 관심에 두지 않았다고 보는게 옳았다.
"몇대 훈련소장인가?"
"제가 2대입니다."
"그렇군, 1대는 어떻게 되었지?"
"지병을 앓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군. 보고를 받기로 30세가 되면 훈련소에서 퇴출된다 들었네."
"그렇습니다."
"퇴출된 군인들은 어디로 가나?"
바딘은 입술이 마르는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분명 방금 전, 헬기에서 내려서 자신이 '사회로 돌려보낸다'라고 보고했기 때문.
"이곳 훈련소에서도 교관은 필요합니다. 해서, 우수한 성적과 능력을 입증한 아이들은 교관의 자리에서 애국심을 불태우고,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은 바깥으로 보냅니다."
"그냥 보내준다? 비밀 훈련을 받은 아이들을?"
"바깥에서도 비밀 임무를 수행합니다."
푸틴과 바딘 둘 모두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들이 하는 임무가 무엇이지?"
"각국으로 흩어져 돈을 벌고, 그 돈 중 일부를 우리 훈련소로 보냅니다. 사실... 연방에서 우리에게 내어주는 예산으로는 도저히 훈련소를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오시면서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현재 우리 훈련소의 총원은 약 4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이상은 유지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팍 인상을 찌푸리는 푸틴.
짧은 훈련 영상들을 봤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훌륭한 강병이었다. 감히 스페츠나츠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고려인이라는 특성과 '어린나이'라는 특색이 더해지며 어쩌면 스페츠나츠보다 더욱 전술적으로 이용 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 보였다.
"훌륭하군,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훈련소장을 맡은 빅토르 최입니다."
"계급이 어떻게 되는가?"
"대위입니다."
"마지막 진급이 언제였지?"
"18년 전입니다."
"이곳 훈련소로 오면서 대위가 된 것인가?"
"예, 각하."
고개를 돌린 푸틴이 바딘을 바라본다.
고개를 푹 숙이며 바딘이 말했다.
"1계급 특진을 명 하고, 앞으로 훈련소에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국방부에서도 따로 예산을 편성하라고 해, 또 스페츠나츠와 합동 훈련 같은 것도 계획을 하고, 따로 요원들과도 합동 훈련을 계획해, 아이들의 실력을 더 늘리라는 얘기야."
훈련소장이 화색이 된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문다.
누가 봐도 한 없이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정보총국장 바딘이 발을 구르며 크게 대답했다.
"예, 각하! 바로 진행시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훈련소장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인 푸틴이 자신의 곁에 서 있는 소녀를 바라본다.
"이름이 무엇이지?"
"나탈리아 고입니다."
"나탈리아라, 예쁜 이름이야."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성인식을 치룬 아이들이라고?"
"예, 각하."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린 푸틴이 옆 자리에 고려인 군인을 앉힌다.
자연스럽게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훈련소장을 바라본다.
"소령."
"예, 예?"
"1계급 특진이니 이제 소령이 되는 게 아니던가?"
"마, 맞습니다."
"그래, 소령."
"말씀하십시오 각하."
"훈련소 아이들 중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나?"
"기본 소양중 하나로 한국어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훌륭하군."
고개를 돌린 푸틴이 바딘에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한국 여권 지급해."
놀란 얼굴이 된 바딘.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신분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된 아이들로 따로 추려."
"임무입니까?"
"그래, 여기 아이들을 선교단 정도로 포장해서 아이티로 보내, 그리고 알렉세이를 데려 와."
바딘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훈련소장은 티나지 않게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정확히 어떤 임무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훈련소 아이들의 생사가 결정되는 순간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빅토르와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바딘이 툭툭 훈려소장의 어깨를 두들긴다.
훈련소장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푸틴에게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바딘 역시 빅토르를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쪽, 쪽, 쪽.
뒤쪽에서 입술이 부비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빅토르도 바딘도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철컥.
푸틴이 있는 접객실의 문이 닫히고, 평안한 얼굴이던 바딘의 얼굴이 흡사 흉신악살 저리가라 할 얼굴이 되어서는 빅토르 최를 바라본다.
"왜 그러십니까?"
퍽.
망설임 없이 빅토르의 정강이를 후려 찬 바딘.
"앞으로 각하께 직접적인 보고를 하기 전에, 나에게 각하에게 보고 할 내용 전부를 가져오도록."
"크윽... 예."
"이곳 고려인 특전단은 우리 정보총국의 산하기관임을 명심해."
"예, 잊지 않겠습니다."
"따라 와."
접객실에서 조금 떨어진 발코니.
자연스럽게 입에 담배를 문 바딘이 빅토르를 힐끗 거리다 물었다.
"아이들의 한국어 수준이 어느정도지?"
"원어민 수준입니다."
"확실해?"
"문화의 차이가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주말마다 교육의 목적으로 한국의 드라마나 뉴스, 방송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육의 일환이 확실한가?"
"이곳에 갇혀서 훈련만 받는 아이들입니다. 당연히 스트레스를 타파할 탈출구는 필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바딘이 팍 인상을 찌푸리다 빅토르의 정강이를 다시 한 번 찼다.
퍽.
"끅."
단단한 전투화발로 힘을 줘 걷어차니 정강이가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빅토르.
"네놈 눈빛이 건방지구나."
"죄, 죄송합니다."
"네 놈이 1계급 특진을 해도 소령이지,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나?"
정보총국장의 얼굴은 세상에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빅토르는 자신의 눈 앞에 사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다만, 정보총국의 인물이며, 푸틴을 곁에서 보좌하고 있으니 높은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정보총국장이다. 명심해 빅토르."
"예, 국장님."
"앞으로 모든 보고는 나를 거쳐 진행된다.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좋아. 네놈이 생각했을 때, 스페츠나츠 1개 소대를 뚫고 갇혀있는 포로를 구하기 위해서 고려인 특전단 아이들 몇이 필요하지?"
"여덟이면 충분합니다."
"한 개 분대로 충분하다? 확실해?"
"자신있습니다."
"감히 스페츠나츠를 무시하는 가?"
고개를 젓는 빅토르.
"아직 어린 아이들입니다. 성인식을 치뤘다고 해도 동양인 특성상 어리게 보이죠."
"확실히... 각하의 곁에 그 아이도 어려보이더군."
"그 아이의 나이가 올해 21살입니다."
바딘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묻는다.
"그렇군, 그런 특성들도 고려를 하는 것인가?"
"예, 스페츠나츠는 방심을 할 것이고, 우리는 그 틈 역시 파고들 것입니다."
"그럴 듯 해. 그렇다면, 스페츠나츠 일개 중대를 뚫고 포로를 구해오는 것은 얼마나 필요한가?"
"3개 분대면 족합니다."
"자신 넘치는 군."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교육한 아이들에게 강한 신뢰를 보이는 훈련소장. 바딘이 픽 웃으며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아이티에 있는 SKY PMC의 훈련소 현황, 보고서 지금 가져 와. 5분 주지."
전화를 끊은 바딘이 담배를 태우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 아이티에 우리 정보총국의 1급 정보요원 알렉산드로 알렉세이가 포로로 잡혀있는 상태다."
"예."
"그리고 그 아이티는 현재 대한민국이란 국가와 SKY그룹이라는 대한민국에 뿌리를 둔 기업이 점령하고 있지."
"이해했습니다."
"SKY그룹은 특이하게도 사병을 거느리고 있는 집단이다. 경호, 보안, 용병사업을 뛰고 있다는 소리야."
"SKY그룹이라면 언론을 통해 약간의 정보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아까 각하의 말은 여기 고려인 특전단을 투입해 놈들이 잡고 있는 우리의 1급 정보요원 알렉세이를 구출해오는 작전이다."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자신있나?"
"자신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바딘.
"좋아, 성인이 된 아이들은 모두 몇명이지?"
입술을 질끈 깨무는 빅토르.
"국장님께서는 아이티에 있는 SKY PMC의 보안이 스페츠나츠 일개 중대급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
입술을 깨무는 빅토르.
"왜 그러지?"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현재 훈련소에 있는 성인이 된 아이들을 모두 추려도 채 2개 분대가 안 됩니다."
"아, 3개 분대는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럼 성인에 근접한 아이들까지 꾸리면?"
빅토르가 놀란 얼굴이 되어 바딘을 바라본다.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를 사지로 넣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바딘의 오른발이 다시 한 번 빅토르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발로 찼다.
"크윽."
"정보총국의 많은 전사들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한다. 너희의 소속이 어디야?"
"정보총국입니다."
"성인이 되지 않았다고 전투력이 많이 떨어지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진행시켜."
"예..."
"전국적으로 고려인 고아들을 이곳 훈련소로 보낼테니 앞으로 기대해도 좋아, 각하께서 이곳을 마음에 들어 했으니, 앞으로 규모도 늘어날거고, 네 놈도 제법 꽃길을 걸을테니까."
"... 예."
빅토르가 우물쭈물 거리다 물었다.
"그런데, SKY PMC의 전투력이 정말 스페츠나츠 일개 중대라 확신하십니까? 혹 상회할 전투력은 아닌지..."
바딘의 대답은 오른발 정강이었다.
"감히 동양인 놈들이 뛰어나 봤자지."
빅토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성만 들어도 알 수 있듯, 그 역시 동양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 제 34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