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43화. >
아이티에 지어진 SKY PMC훈련소.
그 중에 비밀스럽게 운영되는 지하 공간, 솔직히 감옥형태 혹은 ‘영창’이라 불리는 군인들의 징벌방 같은 개념을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지금 그곳에는 각국의 정보요원들이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얻을 것은 모두 얻었으니, 비인도적인 행위는 멈추고, 인도적인 행위로 그들을 대하고 있었다.
게 중에서도 나는 러시아의 정보요원, 알렌산드로 알렉세이의 방에 들어갔다.
할아버지에게 대한민국의 상임이사국 채택에 관한 얘기를 들었으니, 놈에게 가지 않고는 못 배길 일이었다.
“일어나 있었나?”
“오셨습니까.”
놈은 어느새 공손해진 모습이었다.
놈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무려 2일이 걸렸으니 지금 그의 태도를 이해 못할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 2일 동안 이 놈은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었고 말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내 곁에 서 있는 호석의 손에 의해서.
호석을 힐끗 바라본 놈이 흠칫 몸을 떤다.
눈은 강하게 아니라고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솔직한 몸뚱이를 감출 순 없는 모양.
“대한민국이 이번에 상임이사국이 될까 싶은데, 아무래도 푸틴 대통령이 반대를 할 것 같거든?”
“······”
“그래서 나는 푸틴을 좀 꼬시고 싶어, 스무스 하게 넘어갈 수 있게.”
“말씀드렸잖습니까··· 죽어도 국가에 해가 될 정보는 흘리지 않겠다고.”
정보요원답게 똑똑한 놈이었다.
이틀을 고문받으며 내게 딜을 해 올 정도였으니, 다른 놈들과는 확실히 러시아 놈이라 그런지 훈련 강도가 대단했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국적과 국가의 교육방법을 떠나, 그냥 알렉세이라는 이 놈 자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단단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쉽게 말해서 놈의 재능이라는 뜻.
“해가 될 정보까지 필요 없고, 푸틴이 대한민국의 상임이사국 채택에 OK만 해주면 돼, UN안전보장이사회? 정확한 명칭이 그런 것이었던가?”
“예, 맞습니다.”
“하여튼 거기에서 러시아가 OK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규칙이 그렇잖은가?”
“명목상의 규칙입니다. 사실 그곳에 가입되지 않아도 상관 없는 일 아닙니까?”
“국제사회에서 기본이 명분인데, 그 명분을 갖출 수 있는 일을 마다 할 필요가 있나?”
“각하께서는 쉽게 움직이실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네게 왔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푸틴이 대한민국 상임이사국까지 OK할 만한 약점 하나만 던져 줘, 간단하잖아?”
알렉세이가 푹, 한숨을 내쉰다.
놈의 머릿속이 매우 복잡할 것이다. 정보를 뱉지 않으면 당연히, 다시 비인도적인 대우와 처우에 시달려야 한다는 걸 그 역시 알고 있을테니까.
지금 이곳은 일종의 포로 수용소가 되었고, 포로들의 해방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달렸다.
타국가들은 혹시나 자신들이 전달받은 영상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잔뜩 웅크린 상태, 국제적인 지탄과 비난에 시달릴 것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상남자들을 넘어 머릿속에 물만 보면 환장한다는 연가시와 비슷한 느낌으로, ‘남자! 남자!’하는 경상도 남자들도 두손 두발을 들어올릴 미친 무대포 러시아 답게, ‘어쩌라고?’, ‘쟤 우리 요원 아니야.’를 시전중이었다.
“어차피 네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어, 이미 러시아에서는 너의 신분을 지웠다.”
“······”
“더 이상 애국이 의미가 없단 얘기야, 너는 이미 러시아 사람이 아니니까.”
믿을 수 없다는 눈.
“아마 놈들은 네가 어떤 말을 해도, 자신들과 관계없다고 발뺌 할 생각이겠지.”
말과 함께 품에서 서류를 꺼내 알렉세이를 보여주었다.
부들부들.
서류를 보는 알렉세이의 손이 떨린다.
그도 그럴게, 해당 서류는 러시아라는 국가의 ‘알렉산드로 알렉세이’라는 인물을 찾아본 결과가 적혀 있는 서류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러시아에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인물이 없는 사람처럼 말끔하게 지워진 상태였다.
정보요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중앙정부에서 따로 제재를 해 놨을테다. 개인정보 같은 것들을 쉽게 열람할 수 없도록.
보통은 ‘기밀’ 혹은 ‘00등급 기밀’이라는 얘기로 열람을 제안해 놓는게 일반적인데 알렉세이는 아예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알렉세이를 찾으면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 한 마디로 알렉세이는 이미 러시아의 국민이 아닌 것이다.
“각하께서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셨을 겁니다.”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지는 상황.
이런 충성심을 가지고 있으니 나는 알렉세이가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월급루팡이나 하고 있는 다른 요원들보다 이런 사람이 더 인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SKY의 아래서, 내 아래서. 이 놈 만큼 충성심이 뛰어난 대원들이나 직원들도 넘쳐 날 것이다.
허나 피부에 와 닿은 것은 이 놈이니, 이 놈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던 알렉세이 때문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호석에게 나도 고문 해 보라 얘기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 5초 뒤, ‘괜찮으니 해보세요’라고 말 했던 내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을 끔찍한 고통에 두손, 두발을 다 들었더랬다. 이 놈의 애국심과 충성심은 진짜구나 싶은.
“배신 하라는 얘기는 아니야 알렉세이, 대한민국이 상임이사국이 된다고 해서, 러시아가 잘못 되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않나?”
“러시아가 뭔가를 결정 할 때, 대한민국이 걸림돌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픽 웃음이 흘러나온다.
제 놈들의 치부가 담겨있었을 알렉세이의 발언에도 콧방귀나 끼며 ‘해볼테면 해 봐, 다 받아주마’하는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찬 것은 아닐까 싶은 러시아가 그들 기준, 고작 대한민국 때문에 할 일을 주저 할까 싶었다.
“그럴리 없다는 걸 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크음···”
“다시 얘기하지만 큰 건 필요없다. 국가에게 배신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선거로 뽑혔다 주장하는 푸틴을 배신하라 하는 얘기지. 그리고 이미 그쪽에서는 널 배신 하기도 했고 말이야.”
“날 배신했다고?”
“다른 국가는 요원들을 살리기 위해서 먼저 움직이더군, 대한민국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고 자신들이 움직여 줄 방향을 정해서 로비 아닌 로비를 해 오고 있지.”
팍 인상을 찌푸리는 알렉세이.
놈은 자신이 생각해도 러시아가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은 없을 것이란 걸 아는 모양이다.
“유일하게 러시아는 가만히 있는 중이고, 어디를 공격할까, 어떻게 해야할까, 뭐 그런 것을 고민하고 있는게 아닐까? 대한민국이, 그리고 SKY가 맞고만 있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 알렉세이가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앙 다물었다.
스륵, 호석이 나를 스쳐 알렉세이에게 다가간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알렉세이, 눈가의 눈물이라도 고일 듯 촉촉하게 젖어든다.
나는 팔을 뻗어 호석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호석이 왜 그러냐는 듯 날 바라본다.
대충 고개를 주억거려 주고는 다시 알렉세이를 바라보았다.
“하루 정도는 여유를 주지. 잘 생각해 보라고 러시아는 너를 버렸다는 걸.”
알렉세이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 호석이 이내 내 뒤를 따라 바깥으로 나온다.
“시간은 금이 아니었습니까?”
픽 웃음이 나온다.
호석의 말 속에는 ‘내가 개발한 고문으로 오늘 내로 얻어낼 것들이 많지 않겠습니까?’하는 질문이 숨어 있었다. 굳이 기회를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모양.
“제법 강단있고, 충성심 있는 놈이잖아요?”
“PMC에 그런 대원들은 넘칩니다.”
맞는 말이다.
PMC에 나에게 절대충성을 하는 대원들은 많았다. 호석과 내가 자신 할 만큼.
“아쉽게도 PMC에 외국인은 없네요?”
“음···”
모든 대원들이 철저한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그만큼 행동 반경 역시 한정적이라는 소리. 물론 PMC정보부에는 따로 혼혈이나 외국 태생의 인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커다란 일을 맡기기는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PMC가 정보등급을 나누고 있다는 소리다.
“요원 출신에 충성도가 높은 사람은 제법 탐이 나잖아요? 나는 충성심도 재능이라고 보거든요.”
“그렇군요.”
“충성 하게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겠지만, 뭐 지켜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기회는 하루가 맞습니다. 내일도 별 말 없다면 대표님 뜻대로 진행하시죠.”
“회장님 말씀대로라면··· 내일도 별 말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렇다면 차라리 충성심이 높다고 인정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알렉세이라는 놈의 충성심의 끝을 보고 싶었다. 과연 내일 시작될 고통의 공포에 굴복하고 입을 열 것인가. 아니면 충성심이라는 놈으로 버텨 볼 것인가.
처음 하루동안 호석에게 고문을 당했을 때, 우리가 알렉세이에게 요구한 것은 스파이 명단이나 러시아 정보국 소속의 지사들의 위치 같은 고급정보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이 맡은 임무와 자신의 소속등을 카메라 앞에 밝히라는 게 요구사항의 전부였다.
그 행위자체만으로 국가반역 행위같은 것이 될 순 없었다. 그것을 아는 알렉세이 역시 치가 떨리는 고통에 항복을 선언하고 자존심을 버린 것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러시아가 기어코 반대를 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상징적으로 국제사회에서 UN상임이사국은 제법 괜찮은 자리였다. 대한민국의 운신폭이 넓어진다는 것은 SKY의 운신폭 역시 자연스럽게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굳이 좋은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잖은가?
“영감탱이들 머리를 좀 썼네.”
“예?”
길을 걷다 혼잣말을 뱉으니 호석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프랑스나 영국의 영감탱이들 말입니다.”
“예, 그들이 어떤 것을?”
“대한민국을 상임이사국으로 올리고 싶어 한다? 말 뿐인 것이죠,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에게 인사치례까지 하는 일석이조의 판단.
“그 말씀은, 애초에 대한민국이 상임이사국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러시아가 알아서 컷트 시킬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미국도 순순히 자리를 만들어주겠다 설쳤을 터.
부쉬 입장에서 나와 록펠러가문에게 받아 먹은 게 있으니 ‘이 정도면 인사치례는 한 것 같습니다.’하고 오케이를 했을테다.
물론 그 역시, 대한민국이 상임이사국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게 불보듯 뻔 했다.
“러시아는 제 멋대로 할 놈들이니까요, 아마 상임이사국 자리에 또 하나의 민주주의 국가가 들어오는 것을 경계 할겁니다.”
“으음.”
“그러니까 러시아를 상대할 무기가 필요한 거에요, 적어도 상임이사국까지는 무사히 만들 수 있도록.”
호석이 픽 웃음을 흘린다.
“그렇다면 회장님도 일석이조의 전략을 짜신 셈이군요?”
나 역시 그를 바라보며 마주 웃었다.
“그런가요?”
“예, 러시아 요원을 얻거나, 러시아 정보를 얻거나. 두가지 선택지를 던지신 것 아닙니까? 뭐가 되었던 러시아 정보는 얻어 낼 테니, 그 과정에서 쓸만한 인재 하나를 얻느냐 마느냐 하는 일이겠군요.”
“이중첩자인지도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겁니다.”
“과연··· 과거 러시아 놈들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놈들입니다. 푸틴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하던 놈들이니.”
꼭 푸틴만 그랬겠는가.
역대 러시아의 국가정상들 모두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던가 말이다. 물론 과거로 올라가면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알렉세이가 우리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 좀 늦어질 겁니다.”
“그렇습니까?”
“놈이 얼마나 버티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죠, 대표님의 고문에 너무 쉽게 입을 털어버린다면야··· 딱히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니까.”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좋네요.”
어느새 걷다보니 훈련소 건물 옥상에 오른 나와 호석. 호석은 자연스럽게 품에서 시가를 꺼내 건넨다.
나 역시, 시가를 태우기 위해 이 곳에 올랐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고 몇 모금 뻐끔거려 보았다.
넓게 펼쳐진 카리브 해의 수평선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절로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교활한 영감탱이들을 어떻게 구워 삶아야 할까.”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을 생각하십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상임이사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로 총 5개 국가가 차지하고 있었다. 국력 쎈 놈들이 짱 먹고 있다는 소리였다.
중국은 뭐 후진다오가 있으니 한국에게 무조건 적인 호의를 보일 것이고, 미국은 애매하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호의를 보일 것이다. 후에 계산적으로 후일을 도모 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과 프랑스는 당장 호의를 베푸는 척, 선의를 보이는 척 하지만 언제든 태도가 달라질 수 있었다. 놈들은 국가적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한 면피 용도로 움직이고 있을테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보상’ 상임이사국이라는 놈이 등장한 상태, 아주 탐스러운 열매가 있으니 스멀스멀 속에 있던 ‘탐욕’이라는 놈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든지 집어 삼키지 않으면 SKY가 아니죠, 그렇죠?”
호석이 아주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을 삼킬 SKY가 아니겠습니까?”
“맞죠, 세상을 삼켜야죠.”
< 제 34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