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41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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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난방으로 제 나라 말로 떠들어 재끼는 각국의 요원이라는 놈들. 특급 블랙 요원들이 아니어서인지 입이 가볍기 그지 없다. 과연 우리 PMC대원들은 어떨까 싶었다.
"우리 대원들도 저럴까요?"
뒤쪽으로 물러나 호석에게 작게 물었다.
호석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목숨 귀한 것은 저 놈들 뿐이겠습니까, 항상 대원들에게 목숨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라 교육하고 있습니다."
"잘 하셨네요."
저럴거라는 말을 돌려 하고 있는 호석.
내 반응이 떨떠름 해 보였는지 말을 덧붙인다.
"그러나 우리 대원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양질의 것이 없습니다."
"하긴, 우리가 좀 통제하고 있죠?"
"예, 각각 내려진 임무 이외에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회사 내부의 어떠한 사항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시스템입니다."
같은 팀, 혹은 같은 임무에 뛰는 사람이 아니라면 얼굴을 알기도 어려울 정도로 SKY PMC의 정예들은 훈련 받고 있었다. 정예가 아닌 이들은 함부로 정예들에게 접근 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마주하는 순간은 훈련소에 정예 대원이 교관으로 왔을 때 뿐.
정예 대원들은 나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중역급이 아니면 나의 스케쥴은 알 수 없었다.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대한 정보가 전부인 상황.
이것은 내가 삼현그룹의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깨달았던 것을 적용시킨 결과였다. 3비서실장은 2비서실장이 어떤 일들을 처리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후계 싸움에서 정보전이 가장 중요했고, 나는 바쁘게 움직이며 그 정보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 대원들은 정보를 얻기 힘든 구조로 만들었다는 소리다. 그러니 아주 중요한 기밀 정보들은 조금 안심해도 좋을 터.
어쨌든.
정보를 술술 불고 있는 다른 요원들과는 다르게 입을 딱 봉하고 있는 백인 놈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놈은 뭐죠?"
"알렉산더 알렉세이, 러시아놈입니다."
"아, 러시아. 충성심이 강한 놈인 모양이에요?"
"눈빛에서 당당함이 보입니다. 이번일과 자신은 관계가 없으니 떳떳하다는 거 아닐까요?"
새로운 해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 물음에 호석이 잠시 짧게 고민한다.
내가 질문을 허투루 뱉지 않는 다는걸 알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다.
"흐음, 다르게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예, 난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회장님 생각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왜 자신이 없으세요?"
"회장님의 말씀은 항상 옳지 않았습니까? 옳지 않은 것이 옳았다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옳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픽 웃음이 흘러나온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내게 호석이 친절하게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저는 저 놈이 옆에서 아는 체 했던 친구놈의 안구가 적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태연했던 반응을 가장 먼저 꼽고 싶습니다."
"아하, 제 놈은 잘못이 없으니 고문이 올리 없다?"
"예, 그렇습니다. 찔리는 게 있었다면 불안해 해야 하지만, 저 놈은 전혀 그래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요원의 경우 마인드 컨트롤이 경지에 달해 그럴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저 놈은 그렇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건 좀 새로운 식견이었다.
"오, 고도의 훈련을 받지 않았다?"
"예, 애석하게도 늙은이 같은 소리겠지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아, 그렇죠. 나도 많이 들어 봤어요."
"해서, 알렉세이라는 저 러시아놈이 경지에 달한 마인드 컨트롤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육체 또한, 그에 상응하는 훈련을 거쳤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호라."
"정신적인 부분이나 눈치적인 부분은 제가 알 수 없으나, 저놈에게서 고도의 훈련된 전사의 기운은 받지 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내게 나를 적대하는 놈의 아우라가 보이지 않았다면 나 역시 저 놈에게 속았을지도 모르기 때문. 그럴때면 나는 나의 곁에 있는 대원들이나 호석의 의견을 듣고 수용적인 태도로 임했을 것이다.
"확실히, 손이 고왔죠?"
내 말에 호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것까지 확인하셨습니까? 그 짧은 시간에."
잔뜩 칭찬의 기운을 담은 눈으로 날 따스하게 바라보는 호석, 공적인 자리에서는 대표와 회장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삼촌과 조카가 아니던가.
그가 날 생각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날 칭찬하는 눈을 하고 있으니 뿌듯하기도 했고.
"내가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저놈 곁에 내가 더 가까이 갔었으니까요."
"그렇군요. 혹, 회장님은 왜 저와 다르게 생각하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너무나 간단한 질문.
그러나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질문.
"감이죠, 감."
"으음."
호석이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그렇군요."
"원래 육감이라는 게 사람마다 발달된 구조가 다른 법이라."
"후우... 예, 회장님의 무서운 그 감, 혹은 촉. 믿습니다."
"여태껏 한번도 틀린적이 없으니 딱 믿으시면 됩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다른 놈들 적당히 조지고, 저 놈을 메인으로 하면 되겠습니다. 저 놈들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장면 제대로 녹화하고 있겠죠?"
"예, 회장님. 저기 대원들마다 하나씩 캠코더를 들고 있잖습니까."
"오케이, 잘 정리해서 할아버지한테 복사본 보내시고, 알렉세이 저 놈을 구워삶아 봅시다. 푸틴의 생각이 뭔지 궁금하니까."
"연장 준비할까요?"
"오브콜스."
호석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대원 셋을 데리고는 내 뒤쪽으로 움직였다.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는 게, 아마도 바닥에 비닐을 깔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
요원 놈들의 입이 더욱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제는 숨도 쉬지 않는지 어떤놈은 얼굴이 매우 붉게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바닥에 비닐을 까는 장면, 칼이나 망치, 각종 연장들을 만지는 장면.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일테니 놈들의 반응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수십분이 지나고, 하나 둘 지친듯이. 아니면 더 말 할 것이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기 시작하는 요원들.
모든 준비가 끝났는지 호석이 다시 내 곁에 다가와 섰다.
"할 말 끝난 놈들은 구금조치 취하세요. 협상 포로로 씁니다."
"흐음, 별로 좋아하진 않을겁니다. 모른척 할 수도 있고요."
"상관없습니다. 명분은 우리에게 있으니까."
"예, 회장님."
호석이 지시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움직일 때.
영국의 요원이 알렉세이라는 러시아 요원놈에게 박치기를 날린다.
"이 망할 새끼야, 명분이 없다며!"
"가만히 있어! 우리는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왜 갑자기 지랄이야?"
"내 눈깔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이 개새끼!"
"눈깔이 뽑힌 것도 아니고, 속눈썹 몇가닥이 전부야! 오바하지 말라고 윌리엄."
윌리엄이라 불린 영국요원이 입을 쩍 벌리며 알렉세이의 눈을 조준하고는 달려든다. 아마도 제 눈과 똑같이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오케이 거기까지."
나는 입을 벌리고 알렉세이에게 달려드는 윌리엄을 밀어찼다.
"크윽, 억울합니다! 저놈 눈깔도 똑같이 만들어주십시오!"
뭐가 그렇게 억울할까? 단순히 분한 마음을 풀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툭툭 양손이 뒤로 묶여 있어 바로 앉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윌리엄을 손수 일으켜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저 러시아 친구가 오늘의 메인이 될테니까, 저기 봐. 무대도 딱 준비가 되어 있잖아?"
억지로 몸을 세워 다시 무릎을 꿇은 윌리엄이 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다.
바닥에 깔린 비닐,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정리된 연장들, 그리고 가죽 끈이 메어져 있는 철제 의자 하나.
침을 꿀꺽 삼키는 윌리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지 놈의 등쪽에 닿아있는 내 손에 진동이 느껴진다.
"저 의자의 주인공은 네가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그나저나 할 얘기는 다 했나 윌리엄?"
"예! 회장님!"
절대 저 의자에는 앉지 않겠다는 강한 열망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노란색과 붉은색 그 어딘가의 생각을 뿜어내던 아우라도 이제는 완전한 초록색이 되어 있었다. 이 곳에 있는 요원들 모두가 초록색에 가까운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말은, 내 앞에서 저들 모두가 진실 될거라는 얘기다.
오직 한 명, 불안함에 드디어 동공이 떨리는 알렉세이만 붉은색 아우라를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알렉세이라는 저 러시아놈이 가장 애국자일지도 모르겠다.
호석이 성큼성큼 알렉세이에게 걸어가 놈의 뒤통수를 움켜쥔다.
"너는 저쪽이다."
"자, 잠깐. 나는 정말 아는 게 없다니까?"
"있는지 없는지는 두고보면 알겠지."
"아니, 정말이라고!"
제법 힘을 써 보지만, 아까전 호석이 말했듯, 놈은 신체단련에 크게 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종이인형처럼 호석의 손짓에 이렇게 저렇게 휘날린다.
결국 철제 의자에 앉아서는 발과 팔이 묶인 알렉세이.
대원들의 손에 의해 이곳을 벗어나는 타국의 요원들을 애처로운 눈으로 한참 바라본다.
윌리엄이라는 놈은 끝까지 알렉세이를 죽일듯 바라보며 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나갔다.
"에휴, 친구들한테 좀 잘하지 그랬니."
놈은 분명 내 한국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왜냐면 아까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 말에 눈쌀을 찌푸리고 있으니까.
푸틴이 제법 고르고 골라서 보낸 놈인 모양이다.
"그러게 빨리빨리 얘기하면 좀 좋냐? 굳이 고생을 하게 만드냐, 고생을?"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급한 나머지 한국어로 한 말에 놈이 러시아말로 대답했다.
"이봐봐, 한국말 알아 듣자나 벌써 거짓말 하나 뽀록 났지?"
"그,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춘 겁니다."
"이번엔 어떻게 알아들었는데?"
"그..."
툭툭 놈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애쓴다."
"......"
모두 나간걸 확인하고는 몇 남지 않은 대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PMC의 대들보 같은 최정예 대원들.
"시작하세요."
"자, 잠깐 말 하겠습니다! 모든 걸 다 말하겠습니다!"
난 고개를 저었다.
"미안, 준비한 게 많거든? 즐기다 가라."
나의 최정예 PMC 대원들은 고문에도 최정예였다.
"끄아아아아아악."
***
서릿발 휘날리는 모스크바의 대통령 관저.
푸틴은 여느날처럼 출근하자 마자 독한 보드카 한잔을 들이켜며 벽난로 앞에 앉아 시가를 입에 물었다.
그의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 일과였다. 일종의 루틴 같은 것. 시가를 태우며 간밤이 있었던 일들에 대한 보고를 듣는다. 뭔가 겉보기에도 성공한 삶의 표본같은 그런 느낌.
"그럼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각하."
"그래."
귀찮다는 듯 잔뜩 권태한 얼굴로 손짓하는 푸틴.
보좌관은 그런 푸틴의 태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간밤에 있었던 일 중, 가장 중요도 높은 사안들 먼저 보고를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탈 러시아 세력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동향보고입니다."
"감히 우리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 흥, 놈들이 전기도 없는 밤을 맞이하고 싶은 모양이군."
"조만간 요원들을 보내 몇몇 요인에 대한 숙청이 필요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진행 해, 싹 부터 밟아 놓아야 나중이 편하지."
"예, 각하."
"쓰읍, 후."
속으로 들이마시기에는 독한 시가를 한 모금 마시고 뱉은 푸틴이 불쑥 질문을 건넸다.
"그나저나, 요즘 아이티에 대한 보고가 없군, 벌써 삼일째던가?"
"마침 오늘 보고가 있습니다."
"그래?"
"예."
"해봐."
잠시 망설이는 보좌관.
팍 인상을 찌푸린 푸틴.
"말 같지 않나?"
"그것이... 일단 영상부터 확인하십시오 각하."
"틀어 봐."
벽난로 위쪽에서 내려온 스크린에 영상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한다.
-나 알렉산드로 알렉세이는 대통령각하의 명을 받아 대 러시아 연방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아이티로 파견, 임무는 SKY그룹과 대한민국에 대한 감시와 가능하다면 요인 암살 및, SKY그룹과 대한민국이 하는 일을 최대한 방해 할 것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푸틴.
"저, 저게 뭐야?"
보좌관은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뭐라 변명할 것이 마땅찮기 때문이었다.
"이 미친놈들이 무슨짓을 벌인거야!"
아무도 푸틴의 노호성을 말려줄 사람이 없었다.
< 제 34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