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37화 (337/458)

< 제 337화. >

영국에서 날아온 윌리엄과 알렉세이가 멍하니 윌리앙의 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군.”

윌리엄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알렉세이. 힐끗 윌리엄을 바라보다 물었다.

“죄책감은 느끼지 않나?”

픽 웃는 윌리엄.

“내가? 왜?”

“자네가 제대로 통역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럼 그 자리에 있던 타국의 요원들은 다 접시물에 코박고 뒤져야지.”

알렉세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들 역시··· 알고 싶었던 거겠지, 정말로 SKY의 천우진이 제 말을 지킬지.”

고개를 주억거린 윌리엄.

“그나저나, 혁명군이 처리한 걸로 만들다니 이것 참. 기발하다고 해야할지 진부하다고 해야할지.”

“증거를 가지고 있다지 않은가.”

윌리엄이 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마, 진짜로 가지고 있겠지?”

“그렇겠지, 게다가 이곳 아이티는 프랑스와 관계가 깊지 않은가? 저 프랑스의 요원이 나대다가 죽은 이유도 대충은 알 것 같고 말이야.”

“프랑스와 혁명균이 명목상 반목을 시작하겠군.”

“그래도 프랑스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 국제적인 비난을 피하고 싶다면 말을 삼가하는 게 좋을테니까.”

“증거라도 공개하는 날 엿 될거라는 걸 모르지 않겠지.”

“진짜 혁명군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믿지도 않을걸? 당연히 뒷배로 SKY가 있다는 걸 눈치챌거야.”

“그렇겠지.”

알렉세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힐끗 윌리엄을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

“오 마이 갓, 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다니, 벌써부터 오금이 저리는 군.”

“헛소리 그만 하고, 혹시 저번 막사에서 모였던 요원들 모아줄 수 있나?”

“왜?”

“마냥 당하기만 하면 우리답지 않잖은가? 엿이라도 한 번 먹여보자고, 머리에 구멍 뚫리지 않는 선에서 말이야.”

윌리엄이 재미있다는듯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오케이.”

***

비닐과 고무줄로 이루어진 모자를 쓰고, 국자를 들어 국을 푼다. 그리고 내게 국을 받은 아이티인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한국식 예의를 표한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이만큼 순수할 마음을 표현하려는 듯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짓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참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캄사함미다.”

“맛있게 먹으렴.”

절로 웃음짓게 만드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받고 한참을 국을 푸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데 뒤쪽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호석이 다가와 조용히 서 있었다.

아마도 한참을 기다리다가 배식을 받기 위한 줄이 끊임없이 이어지니 인기척을 드러낸 모양이다.

“오셨어요?”

“기분 좋아보이십니다 회장님.”

“하하, 아이들이 진심을 다해 고맙게 생각하니, 저도 힘이 나네요.”

“만족하신다니 다행입니다.”

“가끔 좋은일도 하고 살아야겠어요.”

빙그레 웃는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보고 할 일이 생겼나보죠?”

“예, 회장님.”

아무리 한국말로 대화를 한다지만, 아이들도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와 같은 한국말을 하게 된 지금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대화는 자제하는게 좋았다.

PMC대원 중, 그나마 인상이 좋은 대원이 어느새 SKY의 로고가 선명한 앞치마를 두르고는 내 곁에 선다.

“제가 나머지 하겠습니다 회장님.”

피식 웃음이 터질 복장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국을 푸는데 저 터질듯한 팔 근육은 사치가 아닌가 싶었다.

“고생하세요.”

“고생이라니요? 힐링이지요.”

“그럼 다행이고.”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들겨 주고 힐끗 루시를 바라보았다. 최근 입덪과 먹덪이 번갈아 오며 제법 고생을 하고 있는 루시지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게 행복한 모양인지 활짝 웃고 있었다. 궂은땀을 흘리면서도 그녀의 얼굴에는 가식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괜찮아 루시? 너무 무리 안 해도 돼.”

“아니야 우진, 나 행복해.”

“정말이지?”

“그럼!”

“난 또 일 하러 가야하나 봐.”

루시가 안타깝다는 눈으로 날 힐끗 바라본다.

“좋아하더니, 좋아하는 일 못하겠네?”

“아쉽지만 어쩌겠어?”

픽 웃은 루시가 내 엉덩이를 통통 두들기며 말한다.

“다녀와 허니.”

“고생해.”

“응~”

나 역시 다시 뒤돌아서 배식을 하는 루시의 엉덩이를 통통 두들기고는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먹덪으로 조금 과하게 먹는다 싶더라니, 엉덩이에 살이 올랐나. 두들기는 맛이 제법이다.

“해변이나 걸어 볼까요? 이제 해일 위험은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니.”

“하하, 그러시죠.”

끝 없이 펼쳐진 수평선.

태양을 반사하며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는 바다는 언제 봐도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해변에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SKY가 전세를 내서도 아니요, SKY만의 해변이어서도 아니었다. 그 만큼 아이티 사람들은 현재 여유가 없다는 방증일테다.

호석이 익숙하게 시가를 하나 건넨다.

“오.”

평소 태우던 것과 다른 놈이었다.

“어제 좋은 놈이 올라왔습니다.”

“좋네요.”

몇 모금 뻐끔 거리자 호석이 보고를 잇는다.

“금일 프랑스 정보총국의 요원 윌리앙의 시체가 생중계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습니다.”

“의도한 거였으니까, 제대로 됐네요.”

“그 이후에 각국의 정보부 요원들의 움직임이 이상했습니다.”

“회동이라도 하던가요?”

호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대충 희고 고운 모래위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야자수 아래라 나름 햇빛도 가려준다.

“대검 좀 주시겠습니까?”

호석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품속에서 대검을 꺼내 건넨다. 나는 대검을 받아 들고는 망설임 없이 코코넛 나무를 향해 던졌다.

툭.

호석은 능숙하게 떨어지는 코코넛을 받아 들었다. 다시 떨어지는 대검 역시 능숙하게 받아낸다.

“나이스 캐치.”

“열어드릴까요?”

“예, 부탁드립니다.”

호석이 털썩 자리에 주저 앉더니, 양발 바닥을 붙이고 그 안에 대검을 꽃는다. 그러더니 신발끈을 통해 대검을 대충 묶어 고정하고는 코코넛을 대검 날에 내려찍기 시작한다.

“놈들이 회동을 한다라.”

“칠까요?”

살벌하게 코코넛을 대검에 내려찍으며 하는 말이기에 더욱 분위기가 험악하게 느껴지는 멘트.

픽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뇨, 좀 지켜봅시다. 우리 지렁이들이 어떻게 꿈틀 대는지, 너무 몰아 붙인것도 사실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놈들이 아니라도, 지금 프랑스는 골치가 아플테니까 뭔가 행동에 나서려고 할 겁니다. 우선 그쪽에 집중 하는 걸로 해 보죠.”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느새 코코넛의 녹색 겉 껍질은 사라지고, 딱딱한 흙갈색의 속 껍질이 나타났다.

대검으로 조심이 입구 부분에만 구멍을 내고는 내게 전해주는 호석.

“갈증 안 나세요?”

“하하, 저도 하나 따먹어야겠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코코넛 물을 한모금 들이켰다.

나무에 열려있던 것을 바로 땄는데도 청량감이 느껴진다. 코코넛 물에 시가 한 모금.

별거 아니지만 대단한 힐링이다.

휙, 툭.

어느새 대검을 던져 코코넛을 딴 호석이 다시 껍질을 벗기며 묻는다.

“이제 슬슬, 아이티를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회장님.”

“그렇죠.”

“루시 아가씨도 슬슬 배가 불러 오실겁니다. 사실 지금이 오히려 중요한 시키였지요.”

“멘탈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보여 다행입니다.”

“예, 그래도 좋은 곳으로 옮기는게 나을겁니다.”

“의료적인 부분 얘기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정리해야죠, 아이티. 이번 구호팀을 핑계로 온 요원들만 정리하면, 우리도 이제 뜹시다. 한국의 손에 들어왔다고 보는 게 맞으니까.”

“알겠습니다.”

안에 있던 코코넛 물을 모두 마시고는 말했다.

“훈련소는 여기로 완전 이전 합니다. 다음 목표지는 아프리카니까, 여기가 좀 더 가깝잖아요?”

“결국 그 땅에 발을 디디는군요.”

“버려두긴 아까워서요, 넓은 땅덩이와 많은 자원이 살아 있을테니까요.”

“많은 리스크 역시 있습니다. 국제적인 비난도 대단할거고요.”

“그건 제가 알아서 막아 봐야죠.”

호석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훈련에 박차를 가해야겠군요.”

“그나마 여기 날씨가 아프리카랑 비슷하기도 하잖아요? 훈련하기 좋을겁니다.”

“타클라마칸과 이곳을 로케이션 돌리며 훈련시키겠습니다.”

“혹독하겠네.”

“아프리카 놈들은 수니파 못지 않은 놈들인지라.”

“예, 그쪽으로는 우리 정대표님이 더 전문가시니까.”

어깨를 으쓱이는 호석.

“하하, 회장님께서 수니파에 대항할 특별 훈련법을 직접 만드셨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하죠.”

호석은 아프리카 놈들이 수니파보다 더 하다고 했지만 아니다.

수니파 만큼 잔혹하고 잔인한 적들은 아마 21세기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PMC가 직접 수니파 놈들을 거의 몰살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앞으로 놈들같은 부류의 테러단체 역시 탄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원래의 미래에는 IS라는 놈들이 등장했지만, 그들 역시 등장하지 않을 것 같았다. 놈들의 머리들이 될 싹들을 빈라덴을 정리하며 미리 정리했기 때문.

아직도 빈라덴의 잔존 세력들은 SKY라고 하면 껌뻑 고개를 숙일 정도로 교육받은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코코넛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고는 멍하니 카리브 해를 바라보며 시가를 한참이나 태웠다. 이런게 힐링이지 별 게 힐링이 아니었다.

“좋~타.”

***

덜덜덜덜.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한 작은 나무 집.

리조트라 부르기 애매한 모습이지만 어쨌든 이곳은 원래는 리조트가 운영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리조트의 테마가 ‘통나무 집’이었기 때문에 지진 피해에서 무사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어쨌든 덕분에 그곳의 나무 테이블에 각국의 정보부 요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모두가 천우진의 호출에 막사에 있던 인물들이다.

“보자, 미간에 구멍이 난 사람은 윌리앙이 전부인 모양이군, 이거 보기보다 새가슴 들이었구만 그래.”

윌리엄의 살벌한 농담에 요원들이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며 웃었다.

“어이, 손님을 불렀으면 시원한 맥주라도 내와야 하는 것 아니겠나?”

독일 요원의 말에 피식 웃는 윌리엄.

“에어컨도 없는 나라에서 무슨 염병할 시원한 맥주? 맥주 자체가 있다면 다행이지.”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진 이후로 전기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시원한 냉수를 마셔본지도 오래인 요원들이었다.

“정말 뭣 같은 나라야.”

“동의하지.”

더위 때문에 평균 불쾌지수가 높은 상황, 요원들이 짜증 섞인 얼굴로 윌리엄을 바라본다.

“그래서 우린 왜 모았는데?”

“아, 자네들을 부른건 나 지만, 목적은 여기 이 친구가 가지고 있지.”

모두의 고개가 알렉세이에게 돌아간다.

“이봐 친구들.”

“친구는 얼어 죽을.”

“여기서는 더워 죽겠지.”

천우진이 나긋나긋, 조용하게 경고하던 것을 듣고 있던 사내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터프한 깡다구가 느껴지는 요원들.

알렉세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말이야, 잔뜩 쫄아서 어깨를 웅크리고 있기엔 달고 태어난 그 물건에게 미안하지 않나?”

“커험.”

“오우 쉿, 난 미간에 구멍 뚫리는 일은 사절이야, 네 말처럼 내 물건은 아직 쓸 데가 많거든.”

“그렇지, 죽기엔 억울하잖나? 이런건 개 죽음이니까.”

알렉세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죽지 않을 정도의 위험이라면? 어때? SKY에게 우리의 자존심을 밟아버린 그 무지막지한 천우진이라는 사내에게 엿 한 번 먹여보고 싶지 않나?”

요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핀다.

“우리가 죽지 않으면서 천우진을 엿 먹일 방법이 있다고?”

“있다면?”

요원들의 눈빛이 요사스럽게 빛난다.

어디가서 어깨에 힘 깨나 주고 다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힘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존재의 등장으로 눈을 내리깔고 꼬랑지를 말았을 뿐.

본래 가지고 있던 이빨과 발톱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맥주를 요구하던 독일의 요원이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이거 맥주보다 더 좋은걸 준비 해놨군.”

혀를 핥는 그의 모습에 다른 요원들 역시 그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알렉세이의 입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 제 337화.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