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36화. >
아이티의 국무총리라고 얘기하는게 이해가 쉬울, 소피앙의 집.
과거 프랑스의 잔재, 대한민국의 친일파가 있다면 아이티에는 친프파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홀로 우뚝 서질 못했던 아이티기에 자연스럽게 외세에 집착하며 삶을 영위했고, 그런 이들이 다른 이들보다 배불리는 나라였다.
소피앙이라는 인물 역시 그랬다. 현재는 아이티의 대통령 대행을 맡아 국무를 처리해야 하지만, 대한민국과 SKY, 그리고 혁명단이라는 복병이 가로 막아 뜻대로 아이티를 주물럭 거리지 못해 잔뜩 날카로운 상태인 그.
그런 그의 집에 프랑스 정보총국의 윌리앙이 방문을 했다. 윌리앙은 프랑스의 아이티 구호팀장이란 직책으로 방문했지만, 사전에 프랑스와 교류가 있던 소피앙은 그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윗 사람을 모시듯 정중하게 인사하는 소피앙.
윌리앙은 당연하다는 듯 걸음을 옮겨 상석에 자리 잡는다.
“지금 아이티가 정확히 어떤 상황입니까?”
“현재 혁명단을 주축으로 치안국과 무력 대립을 하고 있고, SKY PMC와 대한민국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이달 말에 전국민 투표가 치뤄지면 아이티란 국가는 사라지고, 대한민국의 자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윌리앙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아이티는 계륵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를 다시 반환하는 분위기였고, 아이티라는 국가는 그렇게 매력넘치는 국가는 아니었다. 프랑스 입장에서 굳이 아이티의 자원을 탐 낼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탐날 정도로 대단한 지하자원이나 해상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남을 주기에는 조금 아까운 딱 그 정도.
분명 값싼 인력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도 유럽에 갖혀 영토가 넓지도 인구수가 대단하지도 않았다. 과거의 영광은 많이 잃었다는 소리.
그렇다고 약소국이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영국이 홍콩을 먹고 있고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먹고 있었다. 결국은 반환협정을 맺었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뜻, 곧 중국의 국력이 크게 상승할 것은 모든 전문가들과 국가 주요인사들이 모두 아는 사실.
그런 상황에서 중국과 대립은 자칫 국력의 쇄락을 의미하기에 포르투갈도 영국도 회피한다고 보는게 옳았다. 각국의 금력이 넘치는 기업들은 중국시장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13억이 넘는 인구는 그만큼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과 포르투갈은 당연히 중국에게 유리한 결정을 해줄 수 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흐음, 대한민국이라.”
윌리앙이 손가락을 탁탁, 테이블을 두드리며 고민에 빠진다.
중국처럼 국력이 대단치 못한 나라.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나라. 당연히 중국보다 그 가치가 떨어져야 함이 옳았다.
인구는 약 5천만명에 크기도 작았다.
SKY라는 굴지의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내더니 어느새 국력이 수직상승하고 있는 그런 특이한 나라였다. 1950, 6, 25일. 한국전 이후 쇄락을 거듭하나 했더니 갑자기 급속도로 발전해 세계 경제력 8위까지 달성해버린 어마어마한 발전속도를 가진 특이한 나라.
이제는 SKY항공우주기술이라는 무기산업까지 손을데고 있으며 ICBM기술을 탑재했다고 여겨지는 그런 나라였다.
“도대체 미국은 뭘 하는거야?”
불쑥 짜증이 튀어나온 윌리앙.
그의 임무는 별 게 아니었다.
아이티는 계륵이지만, 너무 쉽게 대한민국에 넘길 순 없다는 게 상부의 뜻.
대한민국을 견제하고 SKY란 기업의 성장을 멈칫거리게는 만들어야 했다. 너무 순조롭고 순탄하게 흘러서는 안 된다는 뜻.
“그들을 방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뭡니까? 무기 같은 것이라면 프랑스도 지원해줄 용의가 있습니다.”
“으음··· 합법적으로 무기를 가져온 SKY PMC에게 상대가 되겠습니까? 듣기로는 대한민국의 함대역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히 대한민국의 해군이 카리브 해까지 진출하겠다? 그걸 타 국가들이 가만히 보고 있으리라 보십니까?”
“어째서인지 일본도 잠잠하고, 중국도 잠잠하니 대한민국을 견제할 나라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고개를 젓는 윌리앙.
“영국은 분명히 움직일겁니다.”
“그런가요.”
윌리앙이 소피앙이란 인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대에게서 더이상 프랑스에 대한 애국심이 보이지 않는군요, 혹 대한민국에게 어떤 제의라도 받았습니까?”
“커험.”
윌리앙은 소피앙의 헛기침에 확신 할 수 있었다.
저 놈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그 자리까지 올려준 게 우리 프랑스가 아닙니까? 이제와서 배신을 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찰나.
철컥.
문고리가 분리되는 소리와 함께 뚜벅뚜벅 걸어오는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의 검은색 일색의 행색을 보고는 놀란 눈이 된 윌리앙.
철컥.
문고리가 분리되는 것과는 다른 철컥이는 소리.
그것은 분명 검은색 복장을 갖춘 사내가 권총을 장전하는 소리였다.
자신의 미간을 정조준하고 있는 권총을 바라보고는 침을 꼴깍 삼키는 윌리앙.
“누, 누굽니까!”
소피앙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내에게 예의를 표한다. 사내는 소피앙을 신경도 쓰지 않고는 말했다.
“분명, 헛짓거리를 한다면 용서하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을텐데?”
사내가 영어로 얘기했기에 윌리앙은 그가 아이티 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솔직히 검은색 복면에 뚫린 구멍으로 보이는 피부색은 동양인의 그것이었다. 권총을 쥐고 있는 손 역시 마찬가지고.
“서, 설마 천우진 회장?”
“목소리가 다르지 않나?”
“그, 그렇군. 나는 천우진 회장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걸 듣지 못했습니다.”
“그건 네 사정이고. 나는 명령에 따른다.”
“이건 국제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 바 아니다. 회장님이 알아서 하실 일.”
“자, 잠깐.”
피슉.
사내에게 자비는 없었다.
옆에서 이마에 구멍이 뚤린 윌리앙을 잠시 바라본 소피앙이 침을 꼴깍 삼킨다.
“이봐.”
“예, 예.”
“잘했어, 앞으로도 날 파리들 꼬이면 바로 보고 하도록.”
“며, 명심하겠습니다.”
국가를 지킨다는 사명감이 없는 놈들은 언제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윌리앙은 알아야 했다.
한 번 배신한 놈은 두 번, 세 번도 할 수 있는게 인간이었다. 언제나 모든 것은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상대적으로 쉬운 법이니까.
소피앙은 전형적으로 제 안위와 안녕을 바라는 놈이었다. 그는 SKY PMC와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국력에 무릎을 꿇었다. 언제나 세계 평화는 멀고 현실적인 총구는 가까운 법이니까.
지금 아이티에 주둔한 무장세력 중 가장 강인한 SKY의 편에 서는 것이 제 목숨을 1초라도 연명할 수 있다는 걸 아주 잘 아는 것이다.
그런 눈치가 없었다면 소피앙은 절대 지금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을 터.
“회장님께서 너의 보고에 만족하셨다.”
툭툭 어깨를 두들기는 복면 사내의 말에 소피앙이 진심으로 헤벌쭉 거리며 특유의 허연 이빨을 드러낸다.
“감사합니다.”
“계속 그렇게만 해.”
“예!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여론조사는 계속 진행하고 있겠지?”
“예, 낮과 밤. 하루에 두번씩 진행하고 있습니다.”
“티 나지 않게 교묘하게, 알지?”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특기입니다.”
언제나 아이티의 국정은 불안했다.
가난과 굶주림에 아이티인들은 언제는 무장한 폭도들로 변하기 일수였다. ‘폭도’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그들의 간절함은 모르는 게 아니었다.
‘갱단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쥘 정도로 가난과 굶주림에 총기와 흉기를 들게 되는 나라가 아이티였다. 그러니 아이티의 정치인들은 언제 폭도들이 집에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살아야 했다.
해서, 티 나지 않게 여론조사를 하는데는 이골이 나 있었다. 이곳 저곳 첩자들을 심고 그 첩자들은 일반인들처럼 생활하며 주변 마을의 청년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이티라는 국가 전체의 여론을 알아낼 수 있었다.
땅이 작고, 인구수가 적다는 것은 그런 이점이 있었다.
“좋아, 시체는 우리가 처리하지.”
“예, 가, 감사합니다.”
사내가 권총을 다시 갈무리 하고는 박수를 한번 치자.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총을 든 PMC의 사내 몇이 들어와 윌리앙의 시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체 정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소피앙이 힐끗 눈치를 살피는데, 가만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던 복면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스윽.
복면 사내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잠구는 제스쳐를 취하자 소피앙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주억거림이었다.
***
혁명단이 주둔하고 있는 아이티의 국방부 건물.
그곳 역시 지진을 피해갈 수 없어 약 3분의 1 가량이 무너진 상태였지만, 워낙 적은 숫자의 혁명단이 거주 하고 있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식량역시 SKY PMC가 알아서 트럭을 통해 가져다 주니 그들은 배불리 먹지는 못하더라도 사는데 부족함은 없다 느끼고 있었다.
오늘도 국방부 주변의 건물을 기웃거리는 해외 언론사들.
“너무 조용한 거 아니야?”
“대한민국이 개입해서 그렇겠지, 상대적으로 국력이 압도적이잖아? 게다가 SKY PMC가 주둔하고 있는데 함부로 총질을 할 순 없는 노릇이겠고.”
“쯧, 정말 이달 말에 열릴 투표까지 이렇게 재미없게 진행된다고?”
금발이 기름진 남자 기자의 말에 주변의 다른 기자들이 인상을 찌푸린다.
“이봐 알레그로, 아무리 특종이 중요하다지만 총질을 하는 자극적인 사건을 응원하다니 미친거 아니야?”
“뭔 상관이야? 그러는 네들은 여기 왜 있는데? 네들도 그런 특종에 목매느라 지진까지 일어나서 죽을 뻔 한 도시에 계속 짱박혀 있는 거 아닌가? SKY가 주는 보급식량을 꾸역꾸역 처먹으면서 말이야.”
“그래도 응원까지는 선 넘었다는 말이야,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 한다고.”
“선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몇몇은 알레그로의 말에 동의를 표하기까지 하니 반대편의 기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러니 세상에 기레기라는 소리가 등장했지. 쯧.”
“돈이 하느님이고 부처님이고 알라님이야, 샌님같은 소리 하지말고 꺼지던가. 나는 총질하는 특종을 잡아서 훨훨 날고 싶으니까 말이야.”
기자들이 작은 시비에 휘말릴 때.
끼이익.
혁명단이 주둔하고 있는 국방부의 정문이 열렸다.
“뭐야, 보급차도 안 왔는데?”
기자들이 얼른 정문쪽으로 달려 나갔다.
정문에서 혁명단 사내 몇이 나무 관 하나를 옮기고 있었다. 급하게 만들었는지 조악해 보였지만 그래도 죽은 자에게 예의는 차렸다 볼 수 있었다.
“기자들이 잘 볼 수 있게 내려 놔.”
혁명단 부단주 말포이의 말에 기자들은 취재를 허락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얼른 나무관 곁으로 다가가 셔텨를 바쁘게 누르는 기자들.
“뚜껑 열어.”
관 뚜껑이 열리자 그 안에는 은발의 백인이 미간에 구멍이 뚫린채로 누워 있었다.
“우웩.”
몇몇 기자들은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까지 할 정도로 적나라한 시체의 모습이었다. 편안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은 미간에 뚫린 구멍으로도 얼마든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이 남자의 국적은 프랑스 인이다.”
기자들이 잠시 놀라하다가 얼른 셔텨와 함께 말포이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어느새 소식을 들었는지 저 멀리에서 생중계 카메라도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국적은 프랑스, 신분은 프랑스 정보총국의 비밀요원.”
말포이가 입을 열 때마다 특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알레그로라는 기레기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 특종이 자신의 것만은 아니란 게 조금 아쉬웠지만 어쨌거나, 이번 취재 출장이 참 마음에 드는 그였다.
벌써부터 자신의 인사고과가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기에.
“이 놈은 국제법을 어기고 현재 휴전을 하고 있는 아이티 국정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고, 아이티 국정에 무기를 보급하겠다 아이티의 대통령 대리에게 말하다 현장에서 적발되었다. 그에 우리 혁명단은 아이티의 영원한 안녕을 방해하는 놈을 추살했다.”
“부단주님! 과연 프랑스가 그 사실을 인정하시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반드시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이자가 프랑스 정보총국의 요원이라는 증거를 확보했다. 프랑스는 공개 사과를 하길 바라는 바이다.”
“그 증거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말포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말 없이 다시 국방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조악한 나무관은 덩그러니 뚜껑이 열린채로 취재진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 되고 있었다.
< 제 336화. > 끝